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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적경제의 발견 | 포도밭출판사

    정가 13,000원 | 264쪽 | 135*210mm | ISBN : 9791195277032 사회적경제의 발견 나중이 아니라 지금 행복한 경제! 엮은이: 충남연구원 보도자료 경제 규모는 커지는데 왜 삶은 점점 더 빈곤해질까? 우리는 언제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불행하게 살아야 할까? 우리의 행복, 우리 스스로 돌보며 살 수 없을까? 삶 속의 사회적경제를 발견하라! 시장경제는 빙산의 일각! 이것이 진짜 경제다 우리는 시장경제가 압도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빠르고 편리한’ 온갖 서비스가 제공되고, 지갑만 열면 ‘싸고 다양한’ 물건을 언제든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지갑이 두툼하기만 하면 아쉬울 것이 없는 세상. 하지만 지갑을 채우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 지갑이 얄팍해졌을 때 마주치는 현실은 더 엄혹하기만 하다. 그래서 개인들은 돈벌이를 멈추면 곧 끝장날 것처럼 위태로운 심정마저 느낀다. 어느덧 ‘경제’란 돈벌이를 성공적으로 추구하지 못하는 사람을 궁지로 모는 현실의 속성이 되었다. 이러한 경제에 압도된 사회는, 정치든 문화든 손쉽게 돈벌이의 수단으로 환원시켜나간다. 이는 어느 어두운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일면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길한 힘이 가속화돼가는 와중에 ‘진짜 경제’를 성찰하고 실험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압도돼 있는 시장경제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반전(反轉)을 전파하는 이들, 자기 자신과 주변에서부터 ‘상호성’ ‘호혜성’ ‘신뢰’ ‘관계’ ‘순환’ 등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이들. 삶 속에서 사회적경제를 발견하고 구현해가는 이웃들이다. 사회적경제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생활하려면 많은 물건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혼자나 가족이 물건과 서비스를 직접 장만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교환하거나 구매할 수도 있다. 시장과 경제가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 아닐까?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례들은 흔히 우리가 경제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나 돈으로만 매개했던 삶을 다른 방식으로 꾸려간 사례들이다.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기존의 시장 구매와는 다른 방식으로 마련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와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사회를 바꿔가고 있는 이야기들이다.”(13쪽, <들어가며>에서) 『사회적경제의 발견』은 사회적경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소개한다. 사회적경제의 실천 사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란 무엇인가’란 논의가 활발한 와중에 이 책은 오히려 이론에서 눈을 돌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 모습을 찾는다. 그 이유는 사회적경제가 애초에 삶 속에서 능동적으로 가꿔지는 것이지 이론을 좇아 구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사회적경제 사례들을 ‘돌보다 / 알리다 / 먹다 / 낫다 / 만들다 / 다니다 / 일하다 / 배우다 / 만나다 / 묵다 / 벌다 / 헤어지다’라는 구분을 통해 소개한다. 이 구분은 생애의 흐름 속에서 마주치는 기본적인 필요들이기도 하다. 여기 소개하는 사회적경제 사례들은 인간의 기본적 필요들을 시장경제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충족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으며 각각 공동육아, 지역언론, 로컬푸드, 대안의료, 적정기술, 공정여행, 사회적 일자리, 마을학교, 네트워킹 공간, 대안주거, 지역금융, 협동장례 등의 방식으로 대표된다. 흔히 사회적경제 영역이라고 하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을 우선 떠올리는데, 이 책의 사례 중에는 주식회사의 이야기도 두 편이나 들어 있다. ‘(주)옥천신문사’와 ‘(주)즐거운밥상’이다. 사업체의 형태가 무엇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사람을 중시하며, 민주적인 운영을 통해, 공동체의 공공성과 지속성을 강화하는가’라는 기준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돈이 아니라 이웃을 선택하라 “하늘과 땅만 보고 농사만 지으면 되는 줄 알았지요. 땀 흘려 지은 농산물 어데로 가는지도 모르고 누구한테 얼마에 파는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지요. 내 이웃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네 농산물이었지요. 같이 나누고 싶은데, 믿음으로 건네고 싶은데, 대도시의 공판장과 유통회사들은 가격을 후려치면서 모양 좋은 것만 가져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연과 사람을 생각하는, 옥천의 친환경농업하시는 분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습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던 거지요. 우리가 농사짓는 땅이 있는 곳, 옥천을 살려내고 싶었습니다.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고 그렇게 지역도 살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름하여 ‘옥천살림’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84~85쪽, <옥천살림협동조합> 편에서) 돈의 힘이 압도하는 세상에서 다시금 우리의 행복을 우리 스스로 돌보며 사는 방법. 이 책에 담긴 사례들이 보여주는 선택지는 바로 ‘이웃’이다. 나아가 ‘지역’이고 ‘공동체’다. 우리가 잘 아는 말로 “한 아이가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우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온 마을을 가꾼다. “만인은 일인을 위해, 일인은 만인을 위해”라는 사회적경제의 주요한 이념에도 그러한 뜻이 잘 담겨 있다. 책에 실린 사례 중 한 곳인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사명은 “자신을 돌보라, 서로를 돌보라 그리고 공동체를 돌보라”라고 한다. 돈이 아니라 이웃을 선택한다는 것은, 우리가 삶에서 충족하고자 하는 다양한 필요를 저 메마른 돈에만 맡기지 않고 더 능동적으로 가꾸겠다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웃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하고, 구체적인 만남을 도모하면서 일어난 변화의 예시들이 바로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이웃들과 직접 만든 공동육아어린이집, 살기 불편한 데도 전월세 인상 때문에 주인 눈치만 보던 청년들이 함께 만든 주택협동조합, 지역의 건강한 먹거리를 우리 지역부터 공급하자며 세운 로컬푸드협동조합, 학교와 지역을 연결하며 지역과 공동체를 재생하려는 교육사회적기업,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교류를 넘어 일터를 공유하며 자원과 삶의 재분배를 꿈꾸는 동네협동조합, 여행자와 주민이 서로 배우고 생각하며 지속 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여행협동조합, 중앙언론이 알려주지 않는 지역 주민을 위한 소식을 스스로 전파하는 지역신문,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지역경제의 디딤돌을 만드는 신용협동조합, 지역 자원을 활용해 에너지 복지를 실현하는 적정기술협동조합, 병의 치료를 넘어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려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복마전이 되어버린 장례 문화를 바로잡고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공제조합 등의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적극적인 선택과 의지가 필요할 때다 시장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얼굴을 맞댈 기회를 줄이지만 사회적경제는 그런 기회를 더욱더 늘리려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삶을 좌우하지 않도록 사회적경제는 일하고 소비하는 손들이 서로를 드러내고 만나길 원한다. 만나고, 서로의 처지를 공유하고, 다른 선택지를 찾는 과정에서 또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다르게 살 수 있는 힘을 배양한다. 하지만 사회적경제의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현실 속에서 사회적경제는 시장경제와 함께 존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시장경제의 힘이 압도적으로 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경제의 영역을 넓히고 그 힘을 키운다는 건 중립이 아니라 어느 편을 정해서 서는 우리들의 선택을 필요로 한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례들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다. 이미 존재하기에 좋은 길잡이가 되고, 최소한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살펴볼 좌표가 되어준다. 그리고 ‘나중이 아니라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는 (때로는 험난한) 발자취들이다. 그런데 이 길은 당연히 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이 책이 독자를 설득하고자 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함께하자, 같이 살자.” 차례 발간사 “사회적경제라는 말이 너무 어려워요” • 5 들어가며 사회적경제란 무엇일까 / 하승우 • 10 돌보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자라는 공동육아 공동육아협동조합 모여라어린이집 / 강윤정 • 21 알리다 믿을 만한 신문, 아무리 봐도 없다고요? (주)옥천신문사 / 정순영 • 42 먹다 마을과 농민의 만남, 먹거리를 지켜라 옥천살림협동조합 / 권단 • 69 낫다 동네에 마음 편히 찾아갈 ‘주치의’가 있나요?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 조세종 • 90 만들다 건강한 에너지를 직접 만드는 ‘작은 손’ 작은손적정기술협동조합 / 박춘섭 • 109 다니다 허물없이 드나들며 순환하는 공정여행 너나드리협동조합 / 김억수 • 126 일하다 우리의 일터, 이곳의 진짜 주인은 우리죠 (주)즐거운밥상 / 장효안 • 139 배우다 마을이 성장시키는 학교,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 충남교육연구소 / 조성희 • 166 만나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마을 공간 공간 사이 / 김종수, 장동순 • 187 묵다 집세 버느라 집에 있을 시간이 없다고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 홍은일 • 204 벌다 일인은 만인을, 만인은 일인을 위하는 금융 논골신용협동조합 / 유영우 • 222 헤어지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지혜로 뭉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 배한호 • 238 나오며 백견, 불여일행 / 하승우 • 253 지은이 소개 강윤정 천안NGO센터 센터장, 사회적기업 북카페산새 이사, 천안아산한겨레두레협동조합 이사, 충남사회경제네트워크 이사, 천안시 작은도서관협의회 운영위원. 정순영 <옥천신문> 전 편집국장.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권단 옥천 주민. 조세종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대전사회적기업협의회 회장,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교육위원. 박춘섭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책임연구원. 김억수 너나드리협동조합 전 대표이사, (사)서천생태문화학교 상임이사. 장효안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전 책임연구원. 협동조합 우리동네 이사. 조성희 충남교육연구소 사무국장. 김종수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센터장. 장동순 천안아산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협동조합 우리동네 사무국장, 공간 사이 총괄 매니저. 홍은일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연구원. 유영우 논골신용협동조합 이사장,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 공동대표, 서울협동조합협의회 이사 겸 조직위원장. 배한호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한의사. 천안아산한겨레두레협동조합 이사장,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연합회 감사. 하승우 땡땡책협동조합 이사장, 교육공동체 벗 이사. 자치와 자급의 삶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 라인스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38-0 (93380) 출간일: 2024년 3월 14일 정가: 23,000원 제본: 무선 쪽수: 368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 > 문화연구/문화이론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생태/환경 > 생태/환경 일반 라인스 : 선의 인류학 지은이: 팀 잉골드 옮긴이: 김지혜 시작도 끝도 없으며,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선(line)에 대한 인류학 탐구 막다른 곳 너머 ‘더 먼 곳’을 향해 열리는 선의 여정 학제, 문화,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대한 책 심오하고 창조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선 인류학의 시작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모두 선을 따른다는 점이다. 『라인스』는 이처럼 일상생활 속, 역사 속, 세계 속 어디든 존재하는 선을 탐구한다. 심오하고 창조적인 관점을 통해 과감하게 사유하는 팀 잉골드는 이 책을 시작으로 ‘선 인류학’을 전개해나간다. 그는 열린 길을 따르며 움직임 속에서 성장해나가는 행로(wayfaring) 방식을 매혹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은 학문 세계에 몰두하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음악가와 화가, 서예가와 장인,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 에게 새로운 길을 엮는 매듭이자 또 다른 길을 향해 열리는 고리가 될 것이다. 선을 따라 이어지는, 끝도 시작도 없는 이야기로서의 세계가 펼쳐진다.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모두 선을 따른다는 점이다 『라인스』(Lines)는 영국의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2007년에 출간한 그의 대표작이다. 1948년생인 팀 잉골드는 1970년대부터 연구 활동을 했는데, 2007년 환갑에 이르러 그동안의 연구 주제들과 자신의 화두를 집약해 『라인스』를 출간하면서 마침내 ‘선 인류학’의 시작을 알렸다. 잉골드는 『라인스』 출간을 통해 자신이 ‘인류학과 결별하는 것이 아닌가’ 되묻고는 이 시점부터 자신이 비로소 선을 연구하는 사람, 즉 선학자(linealogist)가 되었다고 말한다. 잉골드는 『라인스』 출간 이후 『산다는 것』(Being Alive, 2011), 『만들기』(Making, 2013),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The Life of Lines, 2015), 『조응』(Correspondences, 2020) 등을 잇따라 출간하는데, 실제 『라인스』 출간 이후 그의 논의들은 모두 선에 대한 고찰 속에서 펼쳐진다. 『라인스』는 ‘선 인류학’이라는 창조적인 흐름의 시작에 있는 기념적인 책으로서, 삶과 생명에 대한 심오한 관점을 제시하며 역사, 문화, 예술, 기술, 생태, 진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풍부한 고찰을 선보인다. 은유도, 이론의 대상도 아닌, 실제의 ‘선’을 탐구하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 『라인스』에서 탐구하는 선은 은유로 표현된 선이 아니며, 이론을 구성하는 대상으로서의 선도 아니다. 잉골드는 우리 일상 속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실제의 ‘선’을 탐구한다. 그래서 선이라는 낯선 주제는 처음에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이것이 정말 인류학의 연구 대상일 수 있을까? 선의 탐구가 사람과 사물에 대해, 역사적 시간과 일상생활에 대해 과연 무언가 말해줄 수 있을까? 잉골드는 세계를 동적인 만들기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때문에 사람과 사물에 대한 연구 역시 그것들을 독립된 존재로서 파악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되고, 그 연구는 그들을 구성하는 선을 따르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또한, 사람들의 삶의 내부에서 여정을 시작해 열린 길을 따르며 관계들 속에서 조응하며 만들어나가는 성장의 실천, 그 자체가 인류학이라 여긴다. 『라인스』에는 선을 따르며 나아가는 행로의 실천이 중요한 삶의 방식으로 제시되는데, 잉골드에게 이것은 인류학 실천이기도 하다. 『라인스』는 이러한 잉골드의 사유와 실천이 만들어낸 하나의 매듭과 같은 작품이다. 인류학자 마크 에버트는 『라인스』를 평가하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라인스』를 읽고 나면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처럼 우리가 매일 같이 수행하는 활동의 의미조차도 전적으로 새롭게 지각하게 된다. 나아가 “생명은 점에 가둬지지 않는다. 생명은 선을 따라 나아간다”는 말로 표현되는, ‘끝이 시작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방식에 눈을 뜨게 된다. 세계 속의 선을 알아차리고 따르는 경험은 ‘산다는 것’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 이에 잉골드는 주저함 없이 강조한다. “정말로 선은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고 있다”고. 행로의 구불구불한 선처럼 끝과 시작이 이어지는 여섯 장의 이야기 1장 언어·음악·표기법 1장에서 잉골드는 자신이 어떤 이유로 선을 연구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며 논의를 시작한다. 사실상 선과는 무관하게도, 처음 잉골드를 사로잡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말과 노래를 구별하게 됐는가”라는 질문. 과거에는 음악이 무엇보다도 ‘가사의 울려 퍼짐’이었고, 언어란 ‘말소리’로 이해되었던 것에 반해 오늘날에는 음악에서 가사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고, 언어란 이제 말소리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일종의 ‘의미 체계’가 되었다고 잉골드는 지적한다. 그리하여 이 변화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음악은 말이 없게 되고, 언어는 침묵하게 됐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언어의 침묵’이 발생한 이유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잉골드는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이행하던 시기의 변화들을 조사한다. 이때 잉골드는 언어의 침묵이 ‘쓰기’가 이해되는 방식의 변화, 즉 쓰기가 손으로 하는 기입으로 이해되다가 어느 시점부터 말의 언어구성 기술로 바뀌어 이해되기 시작한 변화와 관련 있음에 주목한다.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쓰기의 역사’를 살피는 과정에서는, 쓰기의 역사란 보다 폭넓게는 ‘표기법의 역사’에 포함된다는 점을 확인한다. 그리고 표기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을 때, 표기법은 다름 아니라 선으로 구성됨을 깨닫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잉골드는 선의 생산과 의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2장 자취·실·표면 2장에서는 선과 선이 그려지는 표면의 관계를 살펴본다. 선의 탐구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선이 새겨지는 표면과의 관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선의 역사를 살피려면 선과 표면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를 살펴야 한다. 때문에 2장에서는 표면이 탐구 대상이 된다. 잉골드는 표면 탐구에 앞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선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선의 주요한 두 가지 분류를 제시한다. 바로 ‘실’과 ‘자취’다. 실과 자취는 표면을 만들기도 하고 표면을 없애기도 하면서 움직임과 성장의 선을 만들어나간다. 3장 위로·가로질러·따라서 3장에서는 선과 표면의 관계가 변형된 결과들을 살펴본다. 3장에는 비판적 논의가 포함된다. 무엇에 대한 비판일까. ‘위로’의 움직임과 ‘가로질러’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잉골드는 먼저 ‘산책’과 ‘조립체’ 사이의 구별을 사례로 제시한다. 산책은 몸짓의 자취인 반면 조립체는 점대점연결장치로 만든 인공물이다. 점대점연결장치 방식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형시키고, 환경을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점거하는 곳으로 지각하게 한다. 잉골드가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존재들이 땅에 거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양상”이라 생각하는 방식은 바로 ‘따르는’ 움직임의 방식이며, 잉골드는 이를 행로(wayfaring)라고 표현한다. 3장에서 잉골드는 교점을 직선으로 잇는 연결망 방식과 운송의 방식을 비판하면서, 그물망이라는 얽힘의 구역에서 선을 따르며 살아가는 존재 방식을 이야기한다. 잉골드에 따르면, 존재들은 움직임과 성장이 통합된 행로의 방식을 실천함으로써 세계에 거주한다. 4장 계보의 선 4장에서 살펴보는 것은 ‘계보의 선’이다. 계보의 선이라는 주제에서 즉각 떠오르는 사례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등장하는 도식, 즉 생명 진화를 묘사한 계보도이다. 잉골드는 찰스 다윈이 이 도식을 그리면서 ‘선을 따라가는 삶’이 아닌 ‘각각의 점 안에 있는 삶’을 그렸다고 말한다. 계보도를 구성하는 ‘점선’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점선이 자명하게 드러내는 바, 이 계보의 선은 생명선도 아니고 인간에 대한 줄거리조차 아니다. 잉골드는 이처럼 선의 관점을 통해 역사 속에서 ‘진화’ 개념이 어떻게 다뤄져왔는지를 검토한다. 5장 그리기·쓰기·캘리그래피 5장에서는 다시 ‘쓰기’ 주제로 돌아간다. 잉골드는 그리기와 쓰기에서의 몸짓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쓰기가 본래 의미대로 기입의 실천으로 이해되는 한 그리기와 쓰기 사이에 엄밀한 구분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리기와 쓰기를 다른 것으로 이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고찰하면서 잉골드는 (앞서 논의한 말과 노래의 분리를 포함한) 이 ‘현대적인 분리’를 추동하는 이분법, 즉 기술과 예술 사이의 이분법을 지적한다. 6장 선이 직선이 되는 법 6장에서는 ‘선의 으스스한 유령’, 즉 직선을 고찰한다. 선이 반드시 곧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어떻게, 우리의 인식 속에서 선은 반드시 직선이어야만 하는 것이 되었을까. 잉골드는 직선이 근대성의 도상이 되었다고 말하며, 직선의 역사적인 근원을 쫓는다. 잉골드는 직선을 수수께끼라고 표현한다. 직선은 표면을 지배하지만 그 무엇도 연결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종류의 움직임이나 몸짓도 체현하지 않는다. 더불어 근대성의 확실성이 의심받는 상황에 처하면 한때 점과 점을 잇던 직선은 조각나버린다. “선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 속에서 다시금 세계를 엮어나가는 몸짓” 책의 말미에는 『라인스』와 선 인류학의 맥락과 의미를 상세히 해설하는 역자 후기를 실었다. 이 ‘초대장’ 같은 글에서 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별히 내가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성장’에 대한 것이다. 개발주의와 자본주의로 점철된 세계에서 ‘성장’의 의미는 고도의 테크노사이언스와 자본화, 규모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이러한 파국적인 상황에 저항하는 많은 이들은 ‘탈성장(degrowth)’이라는 탈출구를 추구하곤 한다. 그 개념은 나름대로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남기지만 나는 잉골드의 시도가 훨씬 더 대담하다고 생각한다. 잉골드는 우리의 ‘성장’이 무엇인지 다시금 사유하고, 결정론적인 성장이 결코 성장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성장의 욕구와 욕망을 긍정하며 재전유하면서 우리는 삶과 세계를 다시 직조하는 내파의 가능성도 확인하게 된다. […] 선은 오직 다시금 찾아지고 따라가질 때 새로운 세계를 열게 만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선을 통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그 ‘새로운’ 길은 ‘따라가는 것’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비어 있는 공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 속에서 다시금 세계를 엮어나가는 몸짓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도는 세계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현대의 경향과는 사뭇 다르다. 행로의 여정은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의미 있다.” 지은이 소개 팀 잉골드 Tim Ingold 영국의 인류학자. 1948년 출생. 애버딘 대학교 사회인류학과 명예교수이며 영국학사원과 에딘버러 왕립학회 회원이다. 1970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사회인류학 학사학위를, 197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연구를 위해 핀란드 북동부의 스콜트 사미족을 현장 조사하며 스콜트 사미족 공동체의 생태 적응, 사회 조직 및 민족 정치를 연구했다. 이후 헬싱키 대학교를 거쳐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멘체스터 대학교에서는 북극 북부 민족 연구와 더불어 순록 무리와 사냥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갔다. 이 연구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 인간-동물 상호작용의 개념, 수렵 채집 사회와 목축 사회의 비교 인류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후 잉골드는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인류학, 생물학, 역사학 분야에서 ‘진화’ 개념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연구했으며,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언어와 기술의 연관성에 관심을 가지고 기술과 예술의 인류학을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1988년 이후로 잉골드는 생태인류학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는 한편, 지각 체계에 대한 제임스 깁슨의 연구에 영향을 받아 인류학과 심리학에 생태학적 접근법을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환경 지각과 숙련된 실천이라는 주제를 연결하는 연구를 통해 2000년에 『환경 지각』(The Perception of The Environment)을 출간했다. 2002년부터 잉골드는 환경 지각에 관한 초기 연구에서 비롯한 세 가지 주제, 즉 첫째로는 보행자 움직임의 역동성, 둘째로는 실천의 창의성, 셋째로는 글쓰기의 선형성을 주제로 탐구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삶과 경험에서 움직임, 지식, 기술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했다. 이 연구로 2007년에 『라인스』(Lines)를 출간했다. 이후 인류학, 고고학, 예술, 건축학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인간과 인간이 거주하는 환경의 관계를 탐구하여 2013년에 『만들기』(Making)를 출간했다. 이외에도 서른 권 이상의 인류학 저서를 출간했다. 2018년 대학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독립 학자로서 계속 연구하고 집필하고 있다. 옮긴이 소개 김지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해양쓰레기와 함께 세계 짓기: 지구적 해양보전에서 나타나는 존재들의 연합과 분열」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잡지 『Littor』에 「해양쓰레기 탐사기」(2022)를 연재했고,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2022), 『비재현적 방법론: 연구를 재상상하기』(2023)를 공역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사 이 책은 숲길에서 족보까지, 글쓰기 행위에서 패턴 있는 실내 장식까지, ‘선’이라는 이토록 간단한 낱말로 엮은 무수한 의미에 대해 심오하고 풍부하며 매혹적인 사색을 제공한다. 학제, 문화,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대한 책. 이 책을 읽는다면 컴퓨터 사용이나 여행을 다녀오는 행위의 의미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 스티븐 로즈(Steven Rose), 오픈 유니버시티 신경과학과 명예교수 팀 잉골드가 제시하는 매혹적인 미로를 통해 길을 따라가기 전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선이 존재하는지, 우리가 그 선들을 구분하지 않아 얼마나 잘못 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 메리 미즐리(Mary Midgley), 뉴캐슬 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 행려가 세계를 여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독자들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던 때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 마크 에버트(Mark Ebert), 서스캐처원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학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서 “그 위에 글을 조금 쓰겠다”던 저자의 야망은 매혹적으로 달성됐다. — 스티븐 풀(Steven Poole), 「가디언」 기자 본문 중에서 이 학문[인류학]은 존재가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도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지닌 비교학이며, 현재 상태의 존재로는 결코 안주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비판학이다. -22쪽 걷기, 직조하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노래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이 모든 것들이 이러저러한 선을 따라 진행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목적은 선의 비교 인류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의 기초를 세우는 데 있다. 내가 아는 한, 이러한 종류의 것은 시도된 적이 없었다. -23쪽 행려(wayfarer)는 끊임없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는 그의 움직임이다. 위에서 보았던 예시에서 이누이트족의 경우처럼 행려는 세계 속에서 여행의 선으로 예시된다. -159쪽 나는 행로가 인간과 비인간들을 모두 포함하여 살아 있는 존재들이 땅에 거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양상이라고 생각한다. -170쪽 거주민은 세계가 지속적으로 탄생하는 바로 그 과정 속에서, 그 안으로부터 탄생에 참여하는 사람이자, 삶의 흔적을 남기며 세계의 무늬와 질감에 기여하는 사람이다. -170쪽 길 위에 있는 행려는 언제나 어디엔가 있지만, 그 모든 ‘어딘가’는 다른 어딘가로 가는 도중에 있다. 거주하는 세계는 이러한 길들로 이루어진 얽힌 모양의 그물망이며, 삶이 그것들을 따라 나아가면서 지속적으로 직조된다. -174쪽 거주민의 지식은 한마디로 말하면, 따라가면서 통합된다. -183쪽 이야기로 말해지는 것들은 말하자면 존재한다기보다는 발생한다. 즉 각각은 계속 진행해가는 활동의 순간이다. 한마디로 이것들은 객체가 아니라 이야깃거리이다. -185쪽 나는 작가가 걷기와 상응하는 것을 수행하길 그만두었을 때 낱말이 조각으로 환원되고 결과적으로 파편화된다고 주장한다. -191~192쪽 정주민은 장소를 점령한다. 반면 유목민은 점령에 실패한다. 하지만 행려는 실패한 점령자나 주저하는 점령자가 아니라 성공한 거주자이다. 그들은 사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때때로 상당히 먼 거리를 폭넓게 여행하고, 이 움직임을 통해 그들이 지나간 각 장소의 계속되는 형성에 기여한다. 요컨대 행로는 장소가 없는 것도 장소에 묶인 것도 아니라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205쪽 삶은 가두어지지 않고, 오히려 관계들의 무수한 선을 따라 세계 사이로 길을 누비듯이 나아간다. -209쪽 요컨대 생명의 생태학은 실과 자취의 생태학이지 교점과 연결장치의 생태학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의 탐구 주제는 유기체와 그들의 외부 환경 사이의 관계들이 아니라 그들 각자가 걸려든 삶의 방식을 따라가는 관계들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간추리자면 생태학은 선으로서의 삶에 대한 학문이다. -209쪽 생명은 점에 가둬지지 않는다. 생명은 선을 따라 나아간다. -213쪽 행로의 선은 거주의 실천과 그것이 수반하는 우회적인 움직임을 통해 성취되는 것으로 장소적(topian)이다. 반면에 진보적인 전진이라는 거대 서사에 의해 추동된 근대성의 직선은 무장소적(utopian)이며, 탈근대성의 파편화된 선은 탈장소적(distopian)이다. -330쪽 정말로 선은, 삶처럼 끝이 없다. 삶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길을 따라 일어나는 그 모든 흥미로운 일들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이 갈 수 있는 더 먼 곳이 있기 때문이다. -333쪽 차례 감사의 글 라우틀리지 클래식 에디션 서문 들어가며 1장 언어·음악·표기법 2장 자취·실·표면 3장 위로·가로질러·따라서 4장 계보의 선 5장 그리기·쓰기·캘리그래피 6장 선이 직선이 되는 법 역자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보도자료 다운로드

  • 보통의 행복 | 포도밭출판사

    2018-04-23 출간 | 원제 愛と欲望の雜談 | 정가 12,000원 | 156쪽 | 128*188mm | ISBN 9791188501021 보통의 행복 지은이: 아마미야 마미, 기시 마사히코 옮긴이: 나희영 책 소개 세상이 말하는 '여성성'과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고 열등감에 빠지는 모습을 묘사한 자전적 에세이 <여자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여>로 여성 독자들의 전폭적인 공감과 사회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가 아마미야 마미.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으로 사회적 주변인들의 삶을 세심히 응시하며 통상적인 사회학 방법론과 다른 방식의 새로운 사회학 글쓰기를 선보이며 2016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을 수상한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 두 사람은 2015년 4월 어느 날 지하철역 개찰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딱히 정해진 주제도 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우연처럼 시작된 둘의 대화는 오늘날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주제인 '사랑과 욕망'에 대한 것으로 모아진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은 건가? 이제는 욕망을 갖지 않는 것이 시대의 흐름인가? 타인과 마음을 나누기가 무서운 '혐오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사랑은, 연애는 정말 감정의 사치일까? 긴 대화를 나누면서 작가와 사회학자는 서서히 알아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이어지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기 자신으로서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도자료 작가와 사회학자가 이야기하는 혐오 시대의 사랑과 연애 이십 대를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를 보면 “한 번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고 답한 이가 20%에 이른다고 한다. 비혼율이 급상승한다는 통계 결과도 있다. 이를 보면 ‘사랑과 연애’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말이 사실인 듯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일까. 우리는 여전히 타자와의 만남을 원하지만, 세상이 타자와 만나기가 무서운 사회가 되어가는 탓은 아닐까. 아마미야 저는 고민 상담 연재를 두 개 하고 있는데요, 둘 다 “연애를 할 수 없다”는 고민이 엄청 많아요. 기시 오네트(일본에서 회원 수가 가장 많은 온라인 결혼중개업체)에서 발표한 ‘제20회 새내기 성년 의식 조사’에 의하면, 새내기 성년의 7할이 ‘교제 상대가 없다’, 5할이 ‘교제 경험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해요. 가장 재밌는 게 ‘한 번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2할 정도였다는 거예요. 혈기왕성한 시기인 이십 대 얘기예요. 기본적으로 어느 조사를 봐도 성행동이나 연애행동 자체가 점점 줄고 있어요. 또는 몇 번이나 사귄 경험이 있는 사람과 한 번도 사귄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갈리고 있어요. - 본문 43~44쪽 타자와 만나기 무서운 사회, 연애는 할 수 있는 사람만 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랑과 연애의 모습, 욕망의 풍경도 달라진다. 저자들은 1990년대만 해도 사회규범에서 벗어나는 일탈이 멋진 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성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고 약물복용담을 자랑하는 것이 멋지게 보이던 시대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섹스에 탐닉하는 것은 물론, 술을 마시는 것조차 촌스럽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뭔가에 도취되는 것을 멋있게 여기던 저때와 달리 지금은 특별한 체험에 휘둘리는 사람은 촌스러운 걸로 치부된다. 시대에 따라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욕망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다. 특히 지금 시대에 느껴지는 큰 특징 하나는 타자에 대한 배외주의, 혐오 감정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아마미야 꼭 연애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타인과 관계 맺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친구가 생기지 않는 거죠. 다들 사람 사귀는 게 어렵다고 느끼는 듯해요. 기시 모두들 사람이 두려운 거겠죠. 두렵기 때문에 만나지 못해요. (…) 타자가 두렵기 때문에 혐오 발언 같은 배외주의적인 일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공격성의 이면에는 공포감이 있는 것이죠. 아마미야 틀림없이 뭔가를 빼앗기거나 손해를 입거나 끔찍한 일을 당할 거라는 느낌 때문에 공격적이 되는 거겠죠. 기시 (…) 전반적으로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어요. 그래서 뭐랄까, 극단적이에요. 타자가 두려워서 관계를 맺을 수 없다거나 (…) 주변 사람들을 보면 많이들 그래요. 모두 이미 친구나 연인을 만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타자가 두려운 사회에 살고 있어요. - 본문 55~58쪽 연애는 꼭 해야 하나? 바람은 피면 안 되나? 도저히 타자와 마음을 나누기가 무서운 사회에서는 연애 감정 역시 꺼리게 된다. 실제로 그런 경향이 짙어지는 것이 오늘날의 풍조다. 하지만 연애가 없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없을까? 사랑이 옅어지면서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능력도 같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시 만나서 연애의 계기를 만드는 걸 이른바 ‘소셜 스킬’이라 하잖아요? 그건 말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요. 신체를 이용하면 폭력이 되고요. 단순히 “좋아해”라며 내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끔 만들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전술이 필요하거든요. 상대가 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건데, 이걸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죠. 실은 우리도 그렇고 이 사회가 언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 거예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해요. 아마미야 진정한 의미에서 연애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거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기시 공공연하게 개인적인 의사소통들은 하고 있지만 어딘가 서툰 점들이 있는 거죠. - 본문 32~33쪽 우리는 왜 만나고 사랑하고 혐오할까 보통의 행복, 그리고 생의 가능성 혐오 분위기가 높은 사회, 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격차 사회에서는 인간관계도 연애도 불평등하게 조직된다. 이른바 ‘연애 격차 사회’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들은 ‘보통의 행복을 얻으면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한다. ‘보통의 행복’이란 평범한 일상을 잘 가꾸는 삶을 뜻하는 말인 한편, 우리가 경계할 것들을 말하고 있다. 꼭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항상 대단해야 한다는 강박, 누구보다 압도적이어야 한다는 경쟁심 들을 비우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도 행복할 것. 이렇게 자신이 머물 ‘보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 존재의 자리를 긍지와 자부심으로 채워나가는 것. 이것이 저자들이 권하는 행복의 방향이며 생의 가능성이다. 기시 (…) 끝까지 파고들면 우리들의 욕망은 굉장히 뻔해요. 엄청난 집착을 가진 사람만 욕망이 있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도 욕망이 있는데, 사실 의외로 온건해요. 특별한 미인이 되지 않아도, 그렇게 부자가 되지 않아도 좋고요. 평범하고 아담한 곳에서 그럭저럭 살아나가기를 바라죠. 많은 사람이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욕망도 평균치에 가깝게 온건해지는 거죠. 그래서 보통의 행복을 얻는다면,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 본문 22쪽 저자 소개 아마미야 마미 (雨宮まみ) 작가. 여성의 자의식, 연애, 성 등을 주제로 독자와 소통하는 많은 글을 발표했다. 2011년 출간한 《여자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여 女子をこじらせて》가 사회 전반에 큰 화제를 일으켰고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지은 책으로 《성실하게 살면 손해입니까? まじめに生きるって損ですか?》 《방에서 느긋한 생활 自信のない部屋へようこそ》 《계속 독신으로 살 생각이야? ずっと獨身でいるつもり?》 《여자여 총을 들어라 女の子よ銃を取れ》 등이 있다. 기시 마사히코 (岸政彦) 1967년생으로 사회학자다. 오사카시립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를 수료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류코쿠(龍谷)대학을 거쳐 2017년부터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주제는 전후 오키나와의 노동력 이동과 아이덴티티, 도시형 피차별 부락의 구조와 변용, 생활사 방법론 등이고, 에스니시티(ethnicity), 차별, 사회 조사 실습 등을 가르치고 있다. 오사카 번화가를 자주 어슬렁거리며 재즈와 동네 산책을 좋아한다. 『동화와 타자화-전후 오키나와의 본토 취직자들(同化と他者化─戰後沖繩の本土就職者たち)』,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보통의 행복(愛と欲望の雜談)』(대담집), 『처음 만나는 오키나와(はじめての沖繩)』 등을 썼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으로 2016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을 수상했고, 첫 소설 『비닐우산(ビニ-ル傘)』으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과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에 올랐다. 옮긴이 나희영 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했고, 현재 출판사에서 기획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차례 시작하며_ 아마미야 마미 첫 번째 만남_ 보통의 행복을 얻을 가능성 필연적인 상대와 우연히 만나고 싶다? 사람들이 탐내는 것을 나도 원한다 무분별한 욕망이 더 진실하다는 망상 ‘보통의 행복’을 바라는 시대 뿌리내리지 못하는 연애 웨딩드레스 입고 싶어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칭찬받고 싶다 “한 번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아주머니는 사회에 꼭 필요하다 개인의 능력에 맡겨도 괜찮을까? 불륜율이 결혼율을 떨어뜨린다? 힘든 경쟁과 개인의 고통 차별의 역전 현실과 문자 메시지의 간극 부정적인 마음 길들이기 기분을 분명히 전한다 사이에_ 기시 마사히코 두 번째 만남_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다는 것 ‘포엠 장례’는 용서해! 규슈에는 포옹 문화가 없다! “결혼하지 않아도 좋으니 아이만은 낳아” 딸이 즐겁게 지내는 게 못마땅한 부모 무라카미 하루키여도 어림없는 ‘대출’ 집짓기란 어떻게 살지를 선언하는 것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결혼 ‘결혼 안 한다’고 결정하면 실례일까? 알콩달콩한 결혼에 대한 동경 바람피워도 들키지 않으면 OK? 결국, 남자가 싫은 거죠? 내가 싫으니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다 몸이 목적이면 왜 안 돼? 담쟁이덩굴 같은 다리털까지 너무 좋아 연애도 목표를 내걸고 매진해야만 하나? 사회학이 싫어진 건 그래서일까? 관계가 깊을수록 쓸 말은 줄어든다 마치며_ 아마미야 마미 · 기시 마사히코

  • 관계와 경계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15-1 (03300) 출간일: 2021년 1월 28일 정가: 15,000원 제본: 무선 쪽수: 260쪽 판형: 130×210mm 분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생태/환경 국내도서 > 자연과학 > 생명과학 국내도서 > 인문 > 인류학 관계와 경계 엮은이: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 지은이: 이동신, 김정미, 권헌익, 김산하, 최태규, 조윤주, 천명선, 이형주, 이항, 황주선, 김기흥, 박효민, 박선영, 이인식, 주윤정 코로나로 인한 불안과 위기는 인간만의 것일까 팬데믹 1년, 동물들은 어떠한 위기에 처해 있는가 인간과 동물이 안전하게 공존할 방법은 무엇인가 국내의 대표적인 학자와 전문가, 활동가가 모여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최신의 연구와 성찰을 나누다 국내에서 처음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딱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전 세계는 전례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이런 사태를 만든 가해자와 피해자는 누구인가? 인간의 취약성과 동물의 취약성은 어떻게 얽혀 있으며 인간보다 훨씬 전염병에 취약한 동물들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을까?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은 메르스, 구제역, 조류독감과 같은 인간-동물질병 방역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빚을 지고 있는가? 발생부터 대처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는 인간과 동물이 맺고 있는 관계와 촘촘히 얽혀 있다.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침범하고 동물체험카페에서 진귀한 야생동물들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는 사람들 한편에는 전염병의 원인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마구 살처분되는 동물들이 있다. 인간이 함부로 좁힌 거리와 함부로 넓힌 거리, 그 사이 생태적으로 올바른 공존의 거리는 얼마일까? 이 책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국내 학자, 전문가, 활동가 등이 한데 모여 이룬 성과이다. 인간-동물 관계 연구의 최신 논의와 성찰을 담았다. ‘거리’의 중요성 ‘거리두기’라는 말은 코로나와 함께 우리에게 찾아왔다. 거리두기라는 말은 대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일컫는다. ‘사람끼리 밀집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동물의 거리, 나아가 동물과 동물의 거리는 어떨까.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그 어느 때보다 신경 쓰는 지금, 우리는 사람과 동물 간의 거리, 동물과 동물 간의 거리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을까. 체험동물원이나 동물체험카페 같은 공간을 만들어 야생동물을 만지고 쓰다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가. 병에 걸리지 않을 도리가 없을 만큼 가축들을 밀집해 키우는 지금의 공장식 사육방식은 과연 지속가능한가. 이런 질문들에 응답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팬데믹은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사이’를 생각하다 인간-동물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사유하기 위해 영문학자 이동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고 제안한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이’를 고민하자는 말에는 ‘차이’에 집중하지 말자는 함의가 있다.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고민하기보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사유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을 차이 혹은 동질성으로 파악하고 위계화하는 논의틀은 이제 버려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동물의 ‘사이’를 고민하고 적당한 ‘거리’를 부여하는 실천이다. ‘인간중심주의’에 맞서다 만일 코로나19가 정말로 이전과 다른 ‘뉴노멀’ 시대를 가져온다면, 그 안엔 아마도 인간중심주의적인 현실과는 다른 현실을 만들라는 어려운 요구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15편의 글의 공통된 연구 주제는 ‘인간-동물 관계’이다. 인류학, 사회학, 수의학, 영문학 분야 연구자뿐 아니라 동물권 단체, 지역공동체, 동물원과 생태공원 등의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과 영역을 가진 필자들이 참여했다. 코로나 시대의 반려동물은 물론 동물원 동물, 야생동물과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부터, 가축과 인공육 그리고 해상양식동물에 대한 이야기, 인수공통감염병과 동물 관련법에 대한 이야기,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철학적 혹은 사회학적 고민이 담긴 이야기 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인간중심주의로 점철된 인간-동물 관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또 코로나로 현실이 급변하는 이 시기에 인간-동물 관계를 고민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이 되고 있다는 절박함을 공유한다.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논의가 직접적으로 동물을 접하는 영역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되기에,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에, 학제간 연구뿐만 아니라 학계와 현장의 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동물 경계에 대한 새로운 서사 코로나19로 ‘거리’가 중요해진 이 순간은 사람들끼리의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 그리고 동물과 동물 사이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이’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인간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바라볼 기회인 셈이다. 이 책의 1부 에는 ‘사이’를 얘기하는 네 편의 글을 모았다. 이동신은 「차이에서 사이로: 인간-동물 관계와 거리두기」 에서 포스트 코로나의 ‘포스트’라는 단어를 문제 삼으며, 섣부르게 미래로 나가기보다 현재의 인간-동물 관계를 ‘차이’가 아닌 ‘사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써 나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김정미는 「근거리 입양: 파랑새 ‘짹이’ 이야기」 에서 파랑새와 우연히 같이 살게 된 경험을 통해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고민하면서 ‘입양’이라는 말로 이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관계를 풀어 나가고 있다. 권헌익은 「원거리 입양: 코끼리 ‘마야’ 이야기」 에서 머나먼 거리를 두고도 동물과의 친밀한 사이를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원거리 입양을 제안한다. 권헌익은 제한적이고 고정된 친족 개념의 입양과 달리 유동적이면서 때로는 개방적인 입양 관습과 개념을 부족사회에서 찾으면서, 동물과도 유사한 입양 관계가 가능함을 이야기한다. 김산하는 「야생의 거리와 공존의 생태계」 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를 고민하기 전에 자연상태에 있는 동물들 사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이에서 확인되는 물리적이고 생태적인 거리두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자연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다시 야생성을 되찾도록 하는 ‘활생’이 중요하다. 인수공통감염병 상황에서 동물의 취약성 코로나19 팬데믹의 시작은 인간과 동물의 접점에 있었다. 그리고 팬데믹으로 위기를 겪는 것은 동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만을 걱정하고 인간만이 피해자인 듯 여기고 있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걸릴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동물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까? 이 접점에서 인간과 동물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어떤 변화를 시도해야 할까? 2부 에서는 인수공통감염병 팬데믹 상황에서 동물이 가진 취약성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를 정리했다. 최태규는 「팬데믹 상황의 동물원 동물들」 에서 야생동물이지만 인간이 만든 공간에 갇혀 있는 동물원 동물과 반려동물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누리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버려지고 잊히고 죽임을 당하는 유기 동물들의 상황을 살펴본다. 조윤주는 「팬데믹 상황의 보호소 동물들」 에서 확진된 보호자의 반려견과 반려묘에게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인된 이후 사람들에게 퍼졌던 공포와 그로 인한 사회 현상을 살펴본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보호소의 운영상태 악화와 자원봉사자 감소가 우려되었지만 뜻밖의 국면도 있었다. 집에 고립된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이 주는 위로와 유대감이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면서 오히려 유기동물 입양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이다.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틈을 동물이 메워 준 셈이다. 천명선은 「감염병 환자로서의 동물: 팬데믹 상황의 가축」 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수성이 있다고 알려진 개와 고양이, 동물원의 고양이과 동물, 농장의 밍크 등이 모두 사람으로부터 감염되었음에도 ‘환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동물은 병원체 그 자체로 여겨지거나,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인간에 대한 위험으로만 간주된다. 이형주는 「팬데믹 상황의 동물을 위한 법과 제도」 에서 인간 사회의 법과 제도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듯 동물을 위한 법과 제도 역시 이 취약성을 배려해야 함을 강조한다. 인간-동물의 질병에 대한 원헬스적 접근 이번 팬데믹의 중요한 책임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야생동물 서식지를 침범한 인간에게 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증가하게 되면서 종간 장벽을 넘어 바이러스가 퍼질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급속도로 확산된 세계화와 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감염병 확산에 더욱 취약한 조건으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에 이상적인 배양공간을 제공했다. 결국 코로나19는 단순히 인간의 질병도 동물의 질병도 아니다. 이것은 인간-동물의 접촉과 상호작용으로 일어난 질병으로 규정해야 하며 단순히 의학적·생물학적 문제로 국한할 수 없다. 인간-동물의 문제를 좀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다루려면 의학은 물론 수의학과 생태학 그리고 사회과학적인 접근이 결합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질병에 대한 포괄적 접근을 요구하는 흐름을 ‘원헬스 운동’이라 부르며, 이 운동은 지금까지 인간-동물로 분화되어 왔던 의학적 접근법을 광범위하게 통합할 것을 주장한다. 3부 에는 인간-동물의 관계에서 감염병의 지위를 고민하는 글 세 편을 실었다. 이항은 「팬데믹의 시작: 인간, 가축, 야생동물의 접점」 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인간-가축-야생동물이 조우하는 접점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이항은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인간-가축-야생동물의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특수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종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혼란은 물론 안보에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다. 황주선은 「질병생태학: 야생동물 유래 신종감염병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 에서 야생동물에서 유래하는 신종감염병에 대한 생태학적 이해를 제공한다. 황주선은 ‘질병생태학’이라는 분야의 소개를 통해 병원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연적이고 인위적인 얽힘 현상을 ‘생태’라고 규정한다. 질병생태학은 단순히 바이러스의 분자적 생물학적 단위로 질병을 파악하는 기존 생의학적 패러다임을 넘어 인간-가축-동물-생태환경까지 광범위한 요소들을 포괄하여 다룰 때 비로소 질병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기흥은 「한국 질병관리체계와 인간-동물질병의 공동구성」 에서 코로나19 방역정책을 고찰하며 한국 질병방역의 기본틀이 인간-가축-동물 질병의 주기적 발생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특히, 2000년 이후 발생한 인간(메르스, 사스)-가축(구제역, 조류독감)-동물(아프리카돼지열병) 질병의 방역경험이 현재 다른 서구국가들의 방역정책과 다른 특이한 대응방식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동물질병의 경험이 공동구성되는 과정이었다. 인간-동물 관계의 미래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인간과 동물의 삶에 전례 없는 영향을 끼치며 ‘포스트 코로나’ 담론이 전방위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터와 일상생활에서 어려움과 불편함을 겪고 있지만, 한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먼 미래에 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일들이 보다 빠르게 우리의 현실로 가능해지고 있거나, 현재 인류의 삶의 방식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4부 에서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앞으로의 인간-동물 관계에 어떤 가능성들이 열려 있을지, 혹은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을지 살펴본다. 박효민은 「육식의 미래와 인공육의 이슈」 에서 공장제 축산업에 기반한 육류 소비가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환경적, 윤리적, 비용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축산업 기반 육식의 대안으로서 인공육의 문제를 다룬다. 이를 위해 현재의 기업적 축산업의 문제가 무엇이며 왜 지속가능하지 않은지, 그리고 기술적 측면에서 현재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는 인공육 중 특히 배양육의 발전 단계는 어디까지 왔는지를 살피고 인공 배양육의 장점과 기술적 난제, 사회적으로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짚어 본다. 박선영은 「마을과 바다의 새로운 관계: 지속가능성인증의 가능성」 에서 국제인증을 통한 지속가능한 어업의 가능성을 논의한다. 이 글은 한국의 전라남도 완도에서 책임수산물에 부여하는 에코라벨 프로그램 ASC 국제인증 심사를 받은 과정을 다루고 있다. 박선영은 이 글을 통해 코로나19를 계기로 현재 수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반성적으로 고찰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ASC 인증 사례의 소개를 통해 향후 지속가능한 수산물을 위해 어떤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인식은 「우포늪 습지 복원과 생태적 전환,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 에서 필자가 오랜 시간 우포늪을 보전하는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나아가 정부가 시행하는 그린뉴딜이 에너지산업을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경제정책에 머무르지 않고, 생태계의 불균형과 생물다양성 감소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혁신적인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윤정은 「코로나 시대의 생태적 전환과 실천들」 에서 코로나19가 드러내고 있는 현재 인간과 동물 관계의 취약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친다. 필자는 코로나 이후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포스트 코로나’ 담론이 횡행하고 있지만, 정작 대부분의 논의들이 경제와 산업의 측면에 치우쳐 있어 막상 이 팬데믹을 초래한 근본 문제를 고민하는 반성적 사유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제기한다. 또 다른 형태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코로나가 보여 준 인간과 동물 관계의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대처가 필요하며, 특히 이 과정에서 인간이 자연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엮은곳 소개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는 2018년 “인간-동물 관계의 전환: 신사물론적 경계 허물기”라는 주제의 서울대학교 교내지원사업을 진행하는 연구팀으로 출발해, 2019년 “위계에서 얽힘으로: 포스트휴먼시대의 인간-동물 관계”라는 제목으로 교육부 인문사회기초연구사업에 선정된 후 현재까지 활동을 잇고 있는 연구팀이다.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등장한 생명과 생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자연, 인간-동물의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관계와 규범을 넘어 ‘공존’과 ‘얽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본 연구팀은 인문학(문학), 사회과학(사회학, 인류학), 자연과학(수의학, 생태학, 행동학) 연구자들로 구성된 융합 연구 네트워크이다. 이곳에서는 인간-동물 관계가 위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비판하며, 관계 속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얽힘’을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동물 관계를 재구조화하기 위해 근거자료를 구축(동물인격, 동물인구, 동물인식)하고, 인간-동물 상호작용 과정을 분석하며, 생태정치 및 생태미학 사례를 조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은이 소개 이동신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A Genealogy of Cyborgothic: Aesthetics and Ethics in the Age of Posthumanism』 『영미 소설 속 장르』(공저) 『세계를 바꾼 현대 작가들』(공저) 『21세기 사상의 최전선』(공저)을 썼다. 주요 논문으로 「좀비 반, 사람 반: 좀비서사의 한계와 감염의 윤리」 「좀비라는 것들: 신사물론과 좀비」 「망가진 머리: 인공 지능과 윤리」 등이 있다.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사회인류학 석좌교수. 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초빙석좌교수. 구소련 시베리아 원주민 사회의 환경사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주요 저서로 『전쟁과 가족』 『또 하나의 냉전』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등이 있다. 김정미 서울대학교 인류학 박사과정 수료. 『테크놀로지, 창조와 욕망의 역사』 『100세 혁명』 『아마존의 성공비밀』 『관시(關係)와 비즈니스: 중국 비즈니스 문화의 심층 구조』 등을 번역했다. 김산하 야생 영장류학자. 인도네시아 자바 긴팔원숭이 연구로 박사학위. 영국 크랜필드 대학 디자인센터 연구원이자 현재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으로 활동한다. 『스톱 시리즈 1~9권』 『비숲』 『야생학교』 『습지주의자』 『살아있다는 건』 등을 썼고, 『무지개를 풀며』 『사회생물학』 『활생』 등을 번역했다. 최태규 에딘버러 대학 응용 동물행동학 및 동물복지학 석사. 청주동물원 수의사.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휴메인벳’에서 활동한다. 천명선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 교수. 『조선시대 가축전염병의 발생과 양상』 『근대수의학의 역사』 등을 썼고, 『동물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번역했다. 주요 논문으로 「일제강점기 광견병의 발생과 방역」 「구제역 관련자들의 체험과 그 의미에 대한 질적 연구」 등이 있다. 조윤주 서정대학교 애완동물과 교수. 동물보호소의학(shelter medicine)과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반려동물 보호자의 사육포기 중재방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도심 내 길고양이의 개체수 조절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형주 (사)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공저)를 썼다.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허핑턴포스트〉 〈월간비건〉 등에 동물에 대한 글을 기고했으며 현재 〈한국일보〉 〈네이버 동그람이〉에 고정 칼럼을 연재한다. 이항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의생명과학 박사학위. 야생동물 보전생물학과 정책 연구에 주력하면서 「한국표범의 계통 연구」 등 90여 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황주선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야생동물 질병생태학으로 박사학위. 『동물의 행동』(공저)을 썼고, 『윙~ 파리를 어떻게 잡을까』 『동물이 색으로 말해요』 『하마를 목욕시켜 주는 동물은?』 『야생동물의 질병』(공역)을 번역했다. 김기흥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Social Construction of Disease』 『광우병 논쟁』 『호모 메모리스』(공저)를 썼다. 〈중앙일보〉 과학분야 고정칼럼을 연재한다. 학술지 「과학기술학연구」 「EASTS East Asian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과학사학회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효민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 공정성의 다양한 관점에 대해 사회심리학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청탁금지의 법과 사회』(공저) 『평화의 여러 가지 얼굴』(공저)을 썼다. 주요 논문으로 「Reward stability promotes group commitment」 「공정성이론의 다차원성」 「이주민 주거 밀집지역 내 내국인 인식 연구」 등이 있다. 박선영 경희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국제정치전공) 수료. 2003년부터 국내환경단체에서 저어새, 두루미, 따오기 등 멸종위기조류 및 습지 보전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했다. 보호지역, 생태관광, 지속가능한 어업을 중심으로 한 국제환경규범의 국내 적용과 실천에 관심을 두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인식 우포자연학교 교장. 『비밀의 정원 우포늪』 『낙동강의 선물 주남저수지』 『우포늪의 생물』 등을 썼다. 우포늪 보전과 멸종된 따오기 복원 추진 사업을 주도했으며, 우포늪가에 살면서 야생동식물 보호와 서식처 확대를 위해 습지보전운동을 하고 있다. 주윤정 사회학자. 장애, 생명사회학, 인간-동물 관계, 사회운동 등을 연구했고 대표적인 연구는 시각장애인 연구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보이지 않은 역사: 한국 시각장애인의 저항과 연대』 등을 썼고, 「상품에서 생명으로: 가축 살처분 어셈블리지와 인간-동물 관계」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책 속에서 만일 코로나19가 정말로 이전과 다른 ‘뉴노멀’ 시대를 가져온다면, 그 안엔 아마도 인간중심주의적인 현실과 다른 현실을 만들라는 어려운 요구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요구의 폭과 깊이를 진정으로 가늠하는 첫걸음은 바로 인간-동물 관계 연구에서 시작한다. - 9쪽 박쥐나 천산갑으로 전파된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말로 코로나19를 규정하며 특정 동물을 유해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이 말의 틈새를 들여다보며 인간의 식습관이나 개발 욕구로 인해 뒤틀린 인간과 동물의 사이를 얘기할 때다. 인적이 뜸해진 거리에 나타난 동물을 야생동물이라고 부르며 신기해하기보다는, 이런 말로 동물과의 사이를 짐작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얘기할 때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고민하고 조정하는 것만큼, 동물들끼리의 사이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얘기할 때다. - 15쪽 생태적인 공존의 기초는 다차원에 걸친 존재적 거리두기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 58쪽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에서 야생 멧돼지의 대규모 사살은 사상 최초로 문명 밖 야생의 영역에서 자행된 ‘야생 살처분’이자 인간과 야생동물 간의 평행관계를 파기한 사례이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발병한 병이 한반도에까지 도달한 것은 당연히 인간과 인간이 운송한 물자의 이동 때문이고, 한국의 멧돼지는 이것의 직접적인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문제의 원흉으로 낙인 찍혀 전국에서 사살되고 있다. - 60쪽 이제는 야생과의 관계를 재검토하고 새롭게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대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는 인간이 야생의 영역에 침투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위험의 가능성 중 한 가지 결과를 보여 줬을 뿐이다. - 60~61쪽 사람의 손으로 야생동물을 기르는 기관인 동물원은 그 존재의 의미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 사회는 동물원을 더 이상 동물을 함부로 이용하는 오락시설로 내버려 둘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집단으로 모이는 장소에 야생동물을 가두어 구경시키는 일이 공중보건학적으로 너무 위험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 74쪽 바이러스가 야생동물에게서 왔기 때문에 인류가 ‘야생동물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별 문제없이 지내고 있던 야생의 바이러스를 우리 인류가 ‘억지로 끄집어내’ 우리 자신을 ‘자해’했다고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 130~131쪽 신종감염병을 두고 자연의 습격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저 드라마적 사고일 뿐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극히 건조하고 기계적이다. 미생물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 더 많은 숙주로의 노출을 적극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 148쪽 새로이 관계를 설정하고 종합적인 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의 적절한 거리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대사회는 계몽의 방식으로 자연을 정복한 이후 자연을 낭만화하거나 애완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과 단절된 도시의 삶을 보충하기 위해 자연의 대리물들을 건설해 야생과의 접촉점들을 증가시켜 왔다. - 246쪽 차례 서론 1부 사이 : 인간-동물 경계에 대한 새로운 서사 차이에서 사이로 : 인간-동물 관계와 거리두기 [이동신] 근거리 입양 : 파랑새 ‘짹이’ 이야기 [김정미] 원거리 입양 : 코끼리 ‘마야’ 이야기 [권헌익] 야생의 거리와 공존의 생태계 [김산하] 2부 동물 : 인수공통감염병 상황에서 동물의 취약성 팬데믹 상황의 동물원 동물들 [최태규] 팬데믹 상황의 보호소 동물들 [조윤주] 감염병 환자로서의 동물 : 팬데믹 상황의 가축 [천명선] 팬데믹 상황의 동물을 위한 법과 제도 [이형주] 3부 질병 : 인간-동물의 질병에 대한 원헬스적 접근 팬데믹의 시작 : 인간, 가축, 야생동물의 접점 [이항] 질병생태학 : 야생동물 유래 신종감염병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 [황주선] 한국 질병관리체계와 인간-동물질병의 공동구성 [김기흥] 4부 관계 : 인간-동물 관계의 미래 육식의 미래와 인공육의 이슈 [박효민] 마을과 바다의 새로운 관계 : 지속가능성인증의 가능성 [박선영] 우포늪 습지 복원과 생태적 전환,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 [이인식] 코로나 시대의 생태적 전환과 실천들 [주윤정] 후기 : 관계와 경계에 대해 덧붙이기

  •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 포도밭출판사

    2016. 5. 10 / 121×188mm / 192쪽 / 13,000원 / ISBN 979-11-952770-6-3 (03380)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지은이: 데이비드 그레이버 옮긴이: 나현영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원리와 기술을 일깨우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게 해주는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낮은 이론’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질 만한 사회 이론은 무엇인가?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20대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선거 결과를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평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선거 결과에 따라 (이를테면 ‘여소야대’냐 ‘여대야소’냐에 따라) 누군가의 삶에 당장 ‘희망’이 생기는 일은 희박합니다. 소외된 이들의 처지나 박해받는 현장의 상황은 여전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느라 힘겨운 이들에게 정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선거 이후 오히려 헛헛하다는 말이 많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질 만한” 탐구, 그리고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고 말하는 사회 이론을 읽어볼 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인류학자이자 아나키스트 활동가인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이력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바로 이를 주제로 연구와 활동을 해온 인물입니다. 이 책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에는 자율적인 사회와 정치를 가능케하는 조건에 대한 그의 핵심적 성찰들이 매우 선명하게 간추려져 있습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에 대하여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서구 사회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인물입니다. 최근 국내에도 그의 새로운 저작들까지 여럿(『가치 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부채, 그 첫 5,000년』,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관료제 유토피아』) 출간되었습니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을 세계적으로 알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그레이버에게 “대단히 눈부시고 독창적인 정치 사상가”라는 찬사를 보냈고, 『21세기 자본론』의 저자 토마 피케티와 그레이버가 벌인 자본주의 시스템과 경제 문제에 관한 논쟁도 유명합니다. 그레이버는 특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자주 소개됩니다. ‘직접행동 네트워크’ 모임과 ‘세계정의 운동’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고, 그 탓에 예일 대학교 재임용이 거부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월가를 점거했던 오큐파이 운동에 깊이 참여하며 “우리는 99%다”라는 구호를 작성했던 활동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레이버는 인류학을 통해 탐구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원리와 기술’을 사회 이론과 연결시키는 독보적인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이자 인류학자인 모리스 블로흐는 데이비드 그레이버를 두고 “이 시대 최고의 인류학 이론가”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왜 인류학인가 인류학 하면 흔히 민속 사료를 살펴보고 원시부족들을 관찰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인류학의 주요한 질적 연구방법인 민족지학(ethnography)은 실제로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 생활상의 맥락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여기서 인류학 연구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사유체계와 개념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식의 “고루한 헤게모니에 맞설 수 있는 최적의 학문”이 인류학이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인류학이 “인간에 대한 숱한 통념들이 진실이 아님을 입증하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을 제시하기 때문”이고, 나아가 “인류학이 중요한 것은 단지 통념을 깨뜨려서만이 아니다. 인류학은 우리는 왜 처음부터 정부와 감옥과 경찰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 묻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의 핵심 주제인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질 만한 사회 이론”을 탐구하는 데 있어 아나키즘의 방식과 인류학의 연구를 긴밀히 연결시켜나가는 이유입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란 무엇인가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이름이 낯선 까닭은, 이 말 자체를 그레이버가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은 우선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의 어떤 시점에 존재하게 될지 모르는 어떤 급진적 이론”으로 구상되었습니다. 일종의 예시적 이론인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이론은 아나키스트 운동의 주요 원리이기도 한 ‘예시적 정치’(즉,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형식의 사회성을 창출하여 이미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직접행동의 원리”)와 나란히 진행될 이론이기도 합니다. ‘낮은 이론’을 찾아서 그레이버는 첫 장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학파와 아나키즘 학파의 특징적인 차이를 짚으며 “마르크스주의는 혁명 전략에 관한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담론이 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아나키즘은 혁명적 실천에 관한 윤리적 담론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마르크스주의 학파와 달리 아나키즘에는 ‘고급 이론’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나키즘에서는 명확하고 총제적인 분석을 위한 고급 이론보다 여러 사람 사이에서 의사를 결정하고 합의를 구하는 과정에 관한 이론이 더욱 중요합니다. 아나키즘에 필요한 이론은 고급 이론이 아니라 “변혁을 위한 기획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론”으로서의 ‘낮은 이론’입니다. 이러한 아나키스트 이론은 “다른 사람의 기본 가정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대신 서로를 강화하는 기획”을 찾으려 합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은 이러한 포부로 ‘낮은 이론’의 윤곽을 그리고 있습니다. 대항권력의 인류사, 그리고 사고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상상력 그레이버는 인간 사회는 항상 권력과 동시에 반(反)권력을 내포해왔다고 지적합니다. 어떤 사회든 권력이 존재하면 반권력도 항상 공존한다는 말입니다. 반권력은 ‘대항권력’이라고도 불리는데, 전형적인 정의로 보면 “자치 공동체에서 급진적 노동조합, 민병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자본에 반대하는 사회제도”를 통칭하여 대항권력이라고 합니다. 권력과 반권력이 공존하며 대치하는 상태는 ‘이중권력’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레이버는 이중권력 상태에서 중요한 것은 “상충하는 원리와 모순된 충동들 자체가 아니라 이것들을 중재하는 조정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은 갈등 없는 사회라는 목표보다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레이버가 제시하는 대항권력 이론의 요점은 “대항권력은 이미 깊숙이 우리들 사이에 배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급진적 변혁의 순간에 완전히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형태를 도입할 수 있게 하는 대중적 역량의 원천”입니다. 이것은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독창적인 점은, 대항권력을 이야기하며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같은 서구의 ‘위대한 혁명’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피아로아족과 티브족과 말라가시 사람들의 사례, 즉 통념상 ‘근대 세계’에 속하지 않는 사회의 사례를 살펴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탐구는 결국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 안에 갇혀 사고하는 틀, ‘사회’, ‘국가’, ‘국민국가’, ‘혁명’ 등에 대한 사고틀을 무너뜨려야 하는 이유를 일깨웁니다. 대항권력을 제대로 고찰하기 위해서도 통념을 깨는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레이버는 이를 “장벽 무너뜨리기”라고 부릅니다. 장벽 무너뜨리기는 사회적 대안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도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고의 장벽에는 주로 ‘상상적 총체성’이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앞서 ‘사회’, ‘국가’, ‘국민국가’, ‘혁명’ 등의 개념을 언급했는데, 이에 더해 ‘민족’이나 ‘이데올로기’ 등도 마찬가지로 “총체적 체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에 근거한” 개념들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레이버는 이러한 ‘총체성’들은 실제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현실’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우리 상상적 구조 안에 결코 완전히 포괄되지 않는 무엇을 가리킨다. 특히 ‘총체성’은 언제나 상상의 산물이다. 민족, 사회, 이데올로기, 닫힌계 등등……. 이것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현실은 항상 무한히 더 복잡한 셈이다.” 그레이버가 강조하는 것은 ‘상상적 총체성’에 갇힌 통념들을 뒤집어보자는 것입니다. 특히나 사회의 대안을 사고할 때 우리는 지극히 저 총체성에 갇혀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근대 사회’가 아닌 인류 사회들의 모습들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다르게 해석할 근거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그레이버는 그 실질적인 방법으로서 ‘사고의 경첩’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이런 것. ‘혁명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이 있다고 할 때, 상상적 총체성에 근거해 혁명을 어떤 지각변동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대신에 질문을 바꿔서 “혁명적 행동은 무엇일까?” 하고 자문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에 답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혁명적 행동은 특정한 권력 또는 지배 형태를 거부하고 그에 맞서 사회관계를 (그 집단 내부에서까지) 재구성하는 모든 집단행동을 일컫는다”라는 답이 가능합니다. 또한 “스스로를 구성하며, 공동으로 규칙이나 운영 원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재검토하는 자율 공동체를 창조하려는 시도는 거의 혁명에 근접한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혁명’이 반복되면 ‘거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혁명적 행동의 목표가 반드시 정권 전복만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인류학은 곧잘 옛날 얘기로 치부되고, 아나키즘은 자주 순진하고 낭만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비전을 이야기하면, 이를테면, 갈등이 고도화되고 이전 시대의 상상을 초월하는 자본주의를 경험한 인류에게는 그런 순진한 비전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반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레이버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삶은 양적으로는 변화했지만 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이전에 존재했던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에 살고 있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다른 시간에 살고 있지도 않다. 공장이나 마이크로칩의 존재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가능성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 서구가 몇 가지 새로운 가능성을 도입했다 해서 오래된 가능성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예시적 사회 이론은 앞서의 원리들 속에서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고 말합니다. 그레이버는 이에 근거해 이 책에서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을 위한 사회 이론의 조각들을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차례 서문 ‘낮은 이론’을 찾아서 그레이브스, 브라운, 모스, 소렐 이미 존재하는 것과 다름없는 아나키스트 인류학 장벽 무너뜨리기 존재하지 않는 학문의 기본 원리 ‘혁명 이후’의 시나리오 내가 배신할 수밖에 없는 인류학 추천의 글 –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와 진심 / 하승우 찾아보기 지은이 소개 데이비드 그레이버 David Graeber 인류학자이자 아나키스트 활동가. 뉴욕 주립대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 대학교,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9년부터 1991년 사이에는 마다가스카르 지역에서 현장연구를 실시했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 연구와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으로 돌아와 ‘직접행동 네트워크’ 모임과 ‘세계정의 운동’ 등에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 이력 탓에 예일 대학교 재임용이 거부되었을 때는 전 세계에서 서명 운동이 일기도 했다. 2011년에는 월가를 점거한 오큐파이 운동에 참여했다. 그레이버는 ‘우리는 99%다’라는 유명한 구호를 작성한 활동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저서로 『가치 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부채, 그 첫 5,000년』,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관료제 유토피아』 등이 있다. 옮긴이 나현영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공역), 로버트 베번의 『집단 기억의 파괴』, 존 케이지의 『사일런스』,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등을 번역했다. 추천의 글 그레이버는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에 감춰져 있어 이들 스스로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방법을 빌려온다. 아나키즘을 어떤 이론의 틀에 가두지 않고 혁명적 실천에 관한 윤리적 담론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런 방법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본 가정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대신 서로를 강화하는 기획”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 하승우(정치학자) 국가 없이 우리는 살 수 있을까? 그레이버는 이 질문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이미 국가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최근 몇 년 동안에 우리를 지켜줄 국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적지 않은 이들에게 이 책은 국가 없이 사는 기술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게 해줄 것이다. – 후지이 다케시(역사학자) 책 속에서 일반적인 설명에서 아나키즘은 흔히 이론적으로는 한발 뒤처지지만 열정과 성실로 두뇌를 벌충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가난한 사촌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실 이런 비유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왜곡된 것이다. 19세기의 이른바 ‘창시자’들은 스스로 특별히 새로운 것을 창안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조직화, 자발적 결사, 상호부조와 같은 아나키즘의 기본 원리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인간 행동 양식이라고 생각했다. 국가 및 모든 형식의 구조적 폭력과 불평등과 지배를 거부해야 하며(아나키즘의 문자적 의미는 ‘지배자 없음’이다), 이 모든 형식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서로를 강화한다는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 39~40쪽 아나키스트 이론은 다른 사람의 기본 가정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대신 서로를 강화하는 기획을 찾으려 한다. 어떤 점에서 통약불가능한 이론들이라 해서 존재할 수 없거나 서로를 강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유일무이하고 통약불가능한 세계관을 가진 개인들이라 해서 친구나 연인, 공통의 기획에 힘쓰는 동료가 되지 말란 법은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아나키즘에 필요한 이론은 고급 이론보다 오히려 ‘낮은 이론’이라 부를 만한 것일지 모른다. 변혁을 위한 기획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론 말이다. – 46~47쪽 이 책의 제목을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이라 붙인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인류학이야말로 우리가 다루는 영역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계에 현존하는 자치 공동체와 비시장경제를 조사했던 이들이 사회학자나 역사학자보다 인류학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 민족지학 연구자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관찰하고 이들의 행동에 감춰진 상징적, 도덕적, 실천적 논리를 밝히려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에 감춰져 있어 이들 스스로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의미를 발견하려 하는 것이다. 급진적 지식인이 맡아야 할 역할도 정확히 이와 같다. 지식인은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관찰해 그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의 더 큰 함축적 의미를 찾아낸 뒤, 그 이념을 처방이 아닌 기여로, 가능성으로, 곧 선물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 50~51쪽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 봤자 원시인들 얘기 아냐?” 인류학을 어느 정도 연구한 아나키스트에게 이런 식의 주장은 매우 낯익다. 전형적인 대화는 주로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회의론자: 좋아, 아나키즘이 실제로 작동한다고 생각할 근거를 대면 아나키즘 사상 전체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정부 없이 존재하는 사회가 가능한 사례를 단 하나라도 들어 줄 수 있어? 아나키스트: 물론, 사례는 무수히 많아. 당장 떠오르는 이름만도 열 가지가 넘지. 보로로족, 바이닝족, 오논다가족, 윈투족, 에마족, 탈렌시족, 베조족……. 회의론자: 다들 그냥 원시인이잖아! 현대 과학기술 사회의 아나키즘을 얘기해달라니까. 아나키스트: 좋아. 성공적인 실험의 예는 아주 다양해.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같은 노동자 자주관리 사례가 있는가 하면, 리눅스는 선물경제 이념에 기초한 경제 실험을 했지. 합의와 직접민주주의 원리 위에 세워진 갖가지 정치 조직이 있고……. 회의론자: 그래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모두 소규모의 고립된 운동들 아냐. 나는 사회 전체에 대해 묻고 있다고. 아나키스트: 사회 전체의 변혁을 시도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야. 파리 코뮨이나 스페인 혁명만 해도……. 회의론자: 그래,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보라고! 다 죽었잖아! 무슨 수를 써도 결과는 똑같다. 이 말싸움에서는 이길 재간이 없다. 회의론자가 ‘사회’라고 말할 때 정말로 의미하는 것은 ‘국가’ 내지 ‘국민국가’이기 때문이다. – 87~89쪽 사실 이 곤봉을 든 남자는 우리가 사는 세계 어디나 침투해 있다. 대다수는 그가 만들어내는 무수한 경계와 장벽을 가로지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의 존재를 상기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산더미처럼 음식이 쌓여 있고, 그 몇 발자국 옆에 굶주린 여인이 서 있는 광경을 보았다고 하자.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대다수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광경이다. 그러나 당신은 여인에게 음식을 집어줄 수 없다. 그랬다간 십중팔구 곤봉을 든 남자가 나타나 당신을 때릴 것이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아나키스트는 항상 곤봉을 든 남자의 존재를 상기시키려 한다. 버려진 군사기지를 무단 점거해 살고 있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아니아 공동체에서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벌이는 의식이 좋은 예다. 크리스티아니아 사람들은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고 백화점에서 장난감을 훔쳐 거리의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모두에게 경찰이 산타클로스를 때려눕히고 울부짖는 아이들에게서 장난감을 낚아채는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 132~133쪽 새로운 운동의 핵심 용어는 ‘과정’이다. 여기서 과정은 ‘의사 결정 과정’을 뜻한다. 북아메리카에서 의사 결정은 거의 언제나 합의를 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에도 이데올로기적 억압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모든 바람직한 합의 과정은 타인의 관점 전체를 나와 똑같은 관점으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합의 과정의 목적은 한 집단의 공동 행동 방침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안을 표결로 수락 또는 거부하기보다, 다듬고 또 다듬고, 폐기하거나 다시 고쳐 최종적으로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 151쪽 위의 사례들은 결국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민주주의(democracy)’는 본래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엘리트주의자들이 비방을 목적으로 만든 용어로, 문자적으로만 풀이하면 민중의 ‘힘’ 또는 ‘폭력’을 뜻한다. ‘아르코스(archos, 통치)’가 아닌 ‘크라토스(kratos, 힘)’인 것이다. 이 용어를 만든 엘리트주의자들은 민주주의가 단순한 폭동이나 폭민의 지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당연히 그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다른 누군가가 민중을 항구적으로 정복하는 것이었다. (…) ‘민주주의’가 ‘대의(representation)’의 원리를 포함하는 용어로 완전히 탈바꿈하다시피 한 것은 나중의 일이다. (한편 ‘대의’라는 용어는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가 지적하듯 그 자체로 매우 기이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원래 왕 앞에 선 민중의 대표를 뜻하는 말이었다. 즉, 스스로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내부의 사절을 지칭하는 용어였던 것이다.) 어쨌든 민주주의는 이렇게 탈바꿈하고 나서야 명문가 출신 정치 이론가들에게 재조명되어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 160~162쪽

  • 타자들의생태학 | 포도밭출판사

    지은이: 필리프 데스콜라 옮긴이: 차은정 ISBN: 979-11-88501-27-4 (93380) 출간일: 2022년 10월 12일 정가: 18,000원 제본: 무선 쪽수: 184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문화연구/문화이론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생태/환경 > 생태/환경 일반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사회비평/비판 > 환경문제 월딩 시리즈 1 타자들의 생태학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인류학 지은이: 필리프 데스콜라 옮긴이: 차은정 책 소개 새로운 지식과 실천을 모색하는 인류학 총서 《월딩 시리즈》 첫 책 레비스트로스의 계승자로서 현대 인류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론가 필리프 데스콜라의 저서 국내 첫 번역 출간! 『숲은 생각한다』 저자 에두아르도 콘과의 대담 수록 현대 인류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론가인 필리프 데스콜라의 책. 그는 이 책에서 자연과 문화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관점과 그것에서 비롯하는 이론들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논평하면서, 그 자신이 ‘자연의 인류학’이라 부르는 학문적 기획에 대해 논한다. 데스콜라는 이 책을 통해 근대사회와 과학기술의 존재 양식을 재고함으로써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인류학을 주창하고, 인간과 비인간존재(‘타자’) 간의 ‘관계의 생태학’에서 나타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주지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앎과 실천을 통한 존재론적 구성의 변화를 통해 지구 환경과 인류가 처한 위기를 해결할 방향을 모색한다. 보도자료 《월딩 시리즈》를 시작하며 내놓는 첫 책은 필리프 데스콜라의 『타자들의 생태학』이다. 필리프 데스콜라는 레비스트로스의 계승자로 손꼽히는, 현대 인류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대표작인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2005)가 출간되었을 때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극찬했다. “이 책은 인류학적 성찰에 새로운 출발점을 제공하며, 앞으로 수 년 동안 우리의 모든 논쟁에 필수적인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타자들의 생태학』은 데스콜라가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를 출간한 후 2년이 지난 2007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초청 강연을 위해 작성한 원고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데스콜라는 서두에서 밝히기를 자신이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간 관계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일반 모델을 개발”하여 ‘관계의 생태학’을 주창했다면, 『타자들의 생태학』에서는 자신이 ‘자연의 인류학’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논하겠다고 밝힌다. 데스콜라는 현 세기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 과제는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데스콜라는 자연과 문화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 짓는 이원론적 관점에서 비롯한 자연 대 문화의 논쟁들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20세기 인류학에서 ‘말없이’ 있던 자연을 전면에 내세우는 문제의식의 전환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인류학을 전개한다. 데스콜라는 이 학문적 기획을 ‘자연의 인류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데스콜라가 ‘자연의 인류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계의 생태학’이라 부르는 것, 이 두 가지는 실로 그가 학자로서 초지일관 천착해온 주요 이론이고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데스콜라는 이 책에서 특히 사회와 환경의 관계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법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자신이 지닌 관점의 인식론적 기반을 명확히 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전개하는 ‘자연의 인류학’과 ‘관계의 생태학’의 핵심과 맥락을 이해하고자 할 때 『타자들의 생태학』은 더없이 탁월한 안내서 역할을 할 것이다. 『타자들의 생태학』은 어느 평자의 말처럼 “작지만 큰 타격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인간중심주의’를 무너뜨리는 근본적 전환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연과 문화를 구분 짓는 서구적 이원론 개념에서 벗어나 종국에는 그러한 구분마저 무너뜨리고자 하는, 데스콜라가 ‘자연의 인류학’을 내세워 전개하는 강력한 기획을 응축해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데스콜라는 이 책을 통해 근대사회와 과학기술의 존재 양식을 재고함으로써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인류학을 주창한다. 또한 인간과 비인간존재(‘타자’) 간의 ‘관계의 생태학’에서 나타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주지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앎과 실천을 통한 존재론적 구성의 변화를 통해 지구 환경과 인류가 처한 위기를 해결할 방향을 모색한다. 지은이 소개 필리프 데스콜라 Philippe Descola 인류학자. 194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히스패닉 역사학자인 장 데스콜라가 그의 부친이다. 데스콜라는 생클루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파리대학 고등연구원에서 레비스트로스의 지도하에 에콰도르와 페루 국경의 아추아르 족을 현지 조사하여 민족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6년 9월부터 만 3년간의 일정이었고 아내이기도 한 인류학자 앤크리스틴 테일러와 함께한 현지 조사였다. 아추아르 족은 1970년대 당시 아마존 열대우림의 동부지역에 기반한 지바로 족 중 거의 유일하게 바깥 세계와 접촉하지 않은 부족이었다. 데스콜라는 아추아르 족이 인간과 비인간 동식물을 ‘사람’이라는 동일한 차원에서 사고하며 인공적인 구조물과 자연물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서양의 우주론과는 별개의 아마존의 애니미즘적 우주론을 정립했다. 이 연구는 『길들인 자연: 아추아르 족의 상징주의와 실천 La Nature domestique: symbolisme et praxis dans l'écologie des Achuar』(1986)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1987년에 프랑스 사회과학 고등연구원 교수로 임명되었고, 2000년 6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자연의 인류학’의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2001년에는 레비스트로스가 설립한 사회인류학연구소(LAS) 소장으로 임명되어 2013년까지 운영했다. 2012년에 국립과학연구원(CNRS)으로부터 금메달을 수여받았고 2014년에 국제 코스모스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연의 사회에서: 아마존 원주민의 생태학 In the Society of Nature: A Native Ecology in Amazonia』(1994)에서부터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 Par-delà nature et culture』(2005)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요 저작을 통해 다양한 우주론의 실천적 전개를 가로막는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서 인간과 비인간 간 ‘관계의 생태학’을 주창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식과 실천이론을 제시해왔다. 그는 지금까지도 지구 생태계를 위한 인문학을 모색하며 21세기 ‘존재론의 인류학’을 이끌고 있다. 옮긴이 소개 차은정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규슈 대학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 대학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숲은 생각한다』, 『부분적인 연결들』, 『부흥문화론』(공역)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시리즈 소개 월딩 시리즈 월딩(worlding)은 있기(being)에서 하기(doing)로 삶의 문제의식을 전환합니다. 《월딩 시리즈》는 지구생명체 간의 공생 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실천을 모색하는 인류학 저서들을 소개합니다. 1. 『타자들의 생태학』 필리프 데스콜라 지음 / 차은정 옮김 2.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지음 / 존재론의 자루 옮김 3. 『라인스』 (근간) 팀 잉골드 지음 / 김지혜 옮김 4. 『오늘날의 애니미즘』 (근간) 오쿠노 가츠미, 시미즈 타카시 지음 / 차은정, 김수경 옮김 책 속에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입장의 대립은 다음과 같다. 한쪽에서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소위 천연자원의 사용과 통제와 변형이 초래하는 제약의 측면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보다도 자연이 그 한계와 기능 방식에서 동질적이라고 해도 상징적인 측면에서는 이질적이므로 자연의 상징적 조작의 특수성을 통해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접근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두 입장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은 모두 자연과 사회의 이원성에 관해 같은 전제를 공유하고 있고 게다가 이 전제에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전제가 인류학적 접근의 여러 단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함으로써 이 전제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 12~13쪽 우리는 이 난관들을 어떻게 헤쳐갈지를 자문할 것이다. 자연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 개인과 집단을 이전과 다른 새로운 아상블라주(assemblage)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 관계의 생태학은 이러한 재구성을 통해 조성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그 조짐의 근거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며, 인류학은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는 데에 동의해야만 그러한 재구성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 14쪽 나는 왜 인류학계에 불었던 ‘유물론’과 ‘유심론’의 대립적인 논쟁을 이토록 파고드는 것일까? 내가 채택한 이 단순한 용어는 미국을 한때 훑고 지나간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학문 분야는 곤경에 처하자 지적 수단을 찾아 난관을 극복했고, 나는 그저 지난 국면을 트집 잡을 뿐이지 않은가? 전혀 아니다. 자연주의적 환원주의와 기호론적 관념론은 여전히 건재하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이 놓일 수밖에 없는 인식론적 연속체의 양 축을 형성하고 있다. - 45쪽 연속체의 한쪽 끝에서는 자연이란 인지적 보편성, 유전적 인자, 생리적 욕구, 지리적 제약 등을 마구잡이로 수집할 수 있게 하는 편리한 포괄용어이며 문화는 그러한 자연의 산물이라고 단언할 것이다. 반대쪽 끝에서는 자연이란 내버려두면 언제까지나 말이 없고 그 자체로는 불가사의하며 문화가 자연에 부착하는 기호와 상징으로 번역될 때에만 유의미한 현실로서 존재하게 된다고 역설할 것이다. - 46쪽 자연적인 문화에서 문화적인 자연으로 이어지는 직선 축에서는 평형점을 결코 찾을 수 없고 단지 어느 한쪽 극에 가까운 타협점을 찍을 뿐이다. 근대사상의 여식인 인류학은 요람에서부터 이 문제를 알았고 그 후 지금까지 풀려고 애써왔다. 마셜 살린스가 『문화와 실천이성』(1976)에서 이야기한 비유를 빌어 말하면, 이 과학[인류학]은 지성의 제약과 관습적 실천의 결정성이라는 사방의 벽에 갇혀 한 세기 이상 감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일 뿐인 죄수와 같다. - 48~49쪽 이를테면 레비스트로스는 루소의 공로가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문제시함으로써 민족학 분야를 창설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1966)에서 “모든 민족학의 일반 문제는 바로 자연과 문화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문제”라고 썼을 때, 그는 레비스트로스의 관점과 공명한다. (...) 나 또한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글을 써왔기 때문에 저들의 운명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나는 「자연의 사회들과 사회의 자연」(2002)이라는 논문에서 “사회적 실재의 구축 원리는 기본적으로 인간 존재와 그의 자연환경 간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썼다. - 55~56쪽 우리가 알던 자연은 인간이 이해하고 통제하려 하고 그 인간에게 변덕을 부려 고통을 주면서도 가치, 관습, 이데올로기가 설 자리가 없는 자율적인 규칙성의 장을 구성하는 영역이었다. 이 환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 특화된 줄기세포 배양 등을 둘러싸고 자연은 어디서 멈출 것이며 문화는 어디서 시작될 것인가? 확실히 이런 질문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 115~116쪽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통한 사회생활의 일반적 지식으로서 이해되는 인류학은 이렇듯 다양한 접근법을 한데 엮는 데에서 특히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첫째 인류학이 어떤 면에서 자연과 문화의 관계에 관한 철학적 문제의식을 계승해왔기 때문이다. - 118쪽 요컨대 내가 집념하는 자연과 문화의 대립에 대한 비판은 자연적 대상과 사회적 존재의 관계성을 다루기 위해 사용된 개념적 도구의 광범위한 재작업을 시사한다. 이 대립이 수다한 비근대적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는 서구 사상의 발전 과정에서 뒤늦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근대 세계의 자연주의(naturalism)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동떨어진 문화를 판단하는 기준을 구성하기는커녕 세계와 타자의 객관화를 지배하는 더욱 일반적인 스키마의 가능한 표현 중 하나일 뿐이다. 자연주의는 그러한 새로운 분석적 장에 통합할 필요가 있다. -121쪽 세계의 구성요소와의 관계를 정의하기 위해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스키마는 정신 구조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중 일부는 선천적이고 일부는 사회생활의 속성에서 유래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조가 모두 서로와 양립할 수는 없으므로, 모든 문화 시스템 그리고 사회적 조직화의 각 유형은 비록 우발적이지만 역사 속에서 종종 비슷한 결과와 함께 반복되는 여과 및 분류와 조합의 산물이다. 이 요소들의 성질을 명시하고 그 구성의 규칙을 해명하고 그 배열의 유형학을 작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류학이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과제이다. - 122쪽 차례 영어판 서문 서문 1장 조개 논쟁 사이펀의 적절한 사용에 관하여 이론상의 생태학 레비스트로스의 두 자연 2장 인류학적 이원론 능산적 자연, 소산적 자연 대상의 역설 논란과 수렴 - 환원의 궤도 - 번역의 궤도 3장 각자의 자연 속으로 진실과 신념 근대인의 미스터리 일원론과 대칭성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결론 대담 횡단하는 우주론과 혼의 윤리학 옮긴이 후기 자연의 인류학과 관계의 생태학 찾아보기 보도자료 다운 받기

  • 책 만들기 책 (초판) | 포도밭출판사

    170×240mm┃112쪽┃16,000원 책 만들기 책 지은이: 최진규 책 소개 ‘나만의 책 한 권’을 직접 만들어요 종이책, 리플릿, 웹자보, 전자책 만들기 초간단 익힘책 자신만의 콘텐츠로 직접 책을 만들고 싶은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많아집니다. 하지만 편집 디자인 프로그램이 낯설고 작업 과정이 생소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죠. 이 책은 직접 디자인 프로그램을 익혀 책 만들기에 도전하는 이들을 위한 초간단 익힘책입니다. 인디자인(InDesign) 및 시길(Sigil) 다루는 법과 편집 디자인 절차를 익히도록 구성했습니다. 책자 및 리플릿, 웹자보 만들기와 전자책 만드는 법을 안내합니다. 저자는 출판 편집자로 12년을 일했고 프리랜스 책 디자이너 활동을 같이한 지는 6년째입니다. 디자인 전문 강좌나 미술 관련 수업을 들은 적 없이 무작정 디자인 작업을 시작한 점이 남다른 이력이죠. 편집 디자인의 내용과 절차를 안다는 것 하나만 믿고서, 인디자인 참고서만 몇 권을 펼쳐놓고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독학하는 초심자’였던 저자는 책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책 만들기를 시작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여 이 책을 썼습니다. 보도자료 ‘나만의 책 한 권’을 직접 만들어요 이제 ‘메이커’들의 시대라고도 하죠? 자기 필요를 스스로 구현하는 일, 특히 손수 물건을 만드는 일에 대한 주목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출판에서도 그러한 흐름이 눈에 띕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창작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예전에 비하면 훨씬 손쉽게 다룰 수 있는 편집 디자인 프로그램과 소량 부수도 괜찮은 품질로 저렴하게 인쇄할 수 있는 제작 환경 덕분에 누구든 의지가 있다면 큰 부담 없이 책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특색을 가진 작은 서점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출판물을 알릴 창구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게도 편집 디자인 작업이 처음일 때는 적잖은 시행착오와 예기치 않은 오류를 만납니다. 이 책은 그러한 실수를 최대한 줄이면서 ‘내 책 한 권 만들기’라는 목표를 이루도록 돕고자 합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가능한 매끄럽게, 어렵지 않은 책부터 한 권 두 권을 만들어보면서 핵심 도구와 절차를 익히도록 구성했습니다. 8페이지 중철제본, 16페이지 무선제본 책자 만들기로 첫발을 떼고 나서는 리플릿과 웹자보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간단한 전자책을 만드는 과정으로 안내합니다. 인디자인, 핵심 기능부터 찬찬히 익혀요 대표적인 책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어도비(Adobe)사의 인디자인(InDesign)이 있습니다. 인디자인 교재가 많이 나와 있는데, 인디자인의 수많은 기능이 빼곡히 망라된 책은 아무래도 초심자로서는 살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 만들기 책』은 인디자인의 많은 도구와 기능 중에서 핵심적인 것을 간추리고, 매끄러운 편집 디자인 절차에 따라 내용을 구성했습니다. 작업 도구를 숙달하는 것만큼이나 바람직한 흐름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죠. 무엇이 일의 처음이고, 무엇이 마무리인지를 알면 책을 만드는 일이 더는 막막하지 않습니다. 이를 익히고 나면 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디자인에 한발 다가갈 수 있죠. 이제는 종이책 못지않은 독서 수단이 된 전자책 만드는 방법도 담았습니다. 다만 복잡한 작업이 필요한 전자책 제작이 아니라 기본적인 요소로 이루어진 텍스트형 전자책 만들기 방법을 소개합니다. 전자책 만들기 챕터에서는 인디자인이 아닌 시길 프로그램을 사용합니다. 좋은 디자인의 원칙 『책 만들기 책』에서는 내용 틈틈이 좋은 디자인을 위한 원칙들을 소개합니다. 절대적인 원칙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좋게 인식할 수 있는 자간, 행간, 글꼴 등의 기준들이 있습니다. 책을 만들 때 누구든 이에 대해 고민하여 결과물을 만들지만, 마땅한 기준을 전혀 알지 못한 채라면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고 자칫 결과물에도 아쉬움이 남겠죠. 좋은 디자인을 위한 나름의 기준을 정리하여 공유하고, 작업할 때 주로 어떤 점을 고민하면 좋을지에 대한 경험을 담았습니다. ‘책 디자인, 나도 해보고 싶다’는 이들을 위하여 저자는 2006년에 출판 편집자로 일을 시작해 지금도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편 2012년부터 책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어깨 너머로 디자이너의 작업을 보면서 줄곧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이윽고 직접 책 디자인을 해보기로 결심했다고 해요. 그리고 지금껏 그때 결심하길 참 잘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만들고 싶은 바를 이렇게 저렇게 구상하고,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손을 움직여 그것이 눈앞에 나타나도록 하는 디자인 작업에서 많은 기쁨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쓴 이유도 바로 ‘손수 만드는 기쁨’을 더 많이 나누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책 속에서 저는 편집자로 출판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디자이너의 작업 파일을 볼 때마다 어찌나 그 일을 직접 해보고 싶던지요. 그러다 6년 전 어느 날 한 출판사로 무작정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결국 채택은 안 되었지만 시안을 만든 일 자체가 참 뿌듯했어요. 몇 번 더 도전해서 드디어 ‘내가 디자인한 첫 책’이 생겼고 지금까지 책 디자인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 저는 인디자인을 다루는 데 서툴렀습니다. 그런데도 작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책 만드는 과정을 경험에 비춰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로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끝나는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 더 많은 애를 썼습니다. 부족한 인디자인 다루는 솜씨는 필요할 때마다 방법을 찾으며 연마했습니다. 초심자가 ‘책 만들기’를 배우는 방법으로, 인디자인의 많은 기능을 섭렵하는 쪽보다 단순한 책이더라도 매끄러운 과정을 통해 만들어내고 손에 쥐는 경험을 여러 번 쌓는 쪽이 더 중요하고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인디자인 교재라기보다는 ‘책 만들기 익힘책’이라 생각하고 적었습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제가 책 만들기를 익힌 방법을 녹여 내용을 구성했습니다. 얇고 간단한 중철제본 책을 만들어보고, 다음으로 좀 더 요소가 있는 무선제본 책을 만들어봅니다. 여기까지 해보면 응용력이 생겨서 이후에 어떤 두껍고 복잡한 책을 만들더라도 막막하지 않습니다. 책 만들며 익힌 도구들이면 충분히 리플릿, 웹자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전자책은 시길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니 도구가 다르지만 책 만드는 과정에는 동일한 점이 있습니다. 작업 과정을 익히면 몇 가지 낯선 도구의 사용법을 익히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나만의 책 한 권’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한 권 다음에는? 더 많은 책을 오래도록 꾸준히 만들어 여럿에게 나눠주시길. 그 시작에 이 책이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서문에서 차례 서문 시작하기 전에 step 1_ 8페이지 중철제본 step 2_ 16페이지 무선제본 step 3_ 리플릿 / 웹자보 step 4_ 전자책 지은이 소개 최진규 충북 옥천에서 포도밭출판사를 운영하고 책을 펴낸다. 편집자로 출판일을 시작했고, 책 디자인을 같이한 지는 6년째다.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조합원으로 활동하며 출판물 및 웹사이트 디자인을 협업하고, 인디자인 배움 강좌를 진행한다. 지은 책으로『출판, 노동, 목소리』(공저)가 있다.

  •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 포도밭출판사

    2018-10-12 출간 | 정가 13,000원 | 200쪽 | 128*188mm | ISBN 979-11-88501-04-5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지은이: 김정선 책 소개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의 작가 김정선의 첫 소설. 앞서 적은 책들의 저자이면서 스스로 소개하듯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을 20년 넘게 해온 교정 교열자인 김정선이 우울감에 빠져들 때마다 펼쳐 읽은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대한 리뷰와 자신의 삶이 응축된 이야기를 뒤섞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그래서 '리뷰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이 원고가 만들어졌다. 작가는 우울이 찾아들면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는 도서관 구석 자리나 밤늦은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있는 24시간 카페 귀퉁이를 찾아 셰익스피어 작품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햄릿』 <헨리 4세>, <오셀로>, <십이야>,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심벨린>, <리어 왕>, <템페스트>의 주인공들과 자신이 함께 등장하는 인생극장을 적어나갔다. 이 책은 독서가이자 서평가이며, 섬세한 솜씨의 문장 수리공인 김정선의 새로운 도전이며, 그의 진수가 담긴 특이점이다. 추천사 이름 모를 포도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읽었다. 완벽히 충족되지 않는데 그렇다고 관둬지지도 않아서 일생 동안 나를 고단하게 만드는 욕망들을 해석해주는 것 같았다. 나와 당신과 우리와 그들의 우울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쓸쓸하고도 황홀한 독서였다. 저자의 꿈에서처럼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기도 한 삶을 엉덩이로 찧으며 달려가는 기분이다. 그가 안내하는 비극과 희극의 세계가 너무 어지럽고 즐거웠다.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조르고 싶지만 이렇게 아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리 자주 쓰일 수 없지 않을까. 혼자인 밤에 이 책을 또 다시 꺼내볼 듯하다. - 이슬아 (「일간 이슬아」 저자) 책을 읽는 내내 깊고 깊은 마음의 수렁을 생각했다. 그 속에서 나는 아주 작게 있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 등을 말고 웅크려 있는 나. 좋았다. 짙은 어둠이 투명해지는 순간, 울컥하는 고요를 바라보며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았으니까. 그 흔한 반성도 다짐도 없는, 경이와 환멸의 삶 한가운데 내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이아림(<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저자) 저자 소개 김정선 단행본 교정 교열 일을 오래 해오고 있다.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이다. 30년 정도 하면 미치거나 돌이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멀쩡하다면 일을 제대로 안 한 걸 테니까. 그러니 30년이 되기 전에 이 무간지옥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런 고민을 제법 진지하게 할 무렵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이런 책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긴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 등도 다 그렇게 낸 책들이니 말해 뭐하랴. 보도자료 ‘문장 수리공’ 김정선의 첫 소설 그의 진수가 담긴 특이점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의 작가 김정선의 첫 소설. 앞서 적은 책들의 저자이면서 스스로 소개하듯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을 20년 넘게 해온 교정 교열자인 김정선이 우울감에 빠져들 때마다 펼쳐 읽은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대한 리뷰와 자신의 삶이 응축된 이야기를 뒤섞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그래서 ‘리뷰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이 원고가 만들어졌다. 사실 김정선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로 이름을 얻기 한참 전부터 자신이 읽은 책들의 서평을 써왔고 그의 글을 각별히 여기는 독자가 적지 않았다. 그는 2009년부터 수년간 인터넷서점에서 운영하는 서평 블로그에서 ‘후와’라는 닉네임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고, 그때 적은 글들을 추려 2013년에는 『이모부의 서재』를 임호부라는 필명으로 내기도 했다. 교정 교열자로 일한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오랜 시간 그는 많은 책을 읽었고, 간혹 건강이 나빠져 글쓰기가 힘들었던 시기를 빼면 항상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왔다. 이 책은 뛰어난 독서가이자 서평가이며, 섬세한 솜씨의 문장 수리공인 김정선의 새로운 도전이며, 그의 진수가 담긴 특이점이다. 우울한 밤들에 읽은 10편의 셰익스피어 희곡 그는 일하는 시간에는 책을 만들고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책을 읽는 삶을 산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오래해온 일과가 있다. 심장 수술 이후 뇌병변 장애를 얻은 어머니의 간병이다. 10년도 훌쩍 넘는 짧지 않은 기간, 그는 여타의 일들을 뒤로 하고 홀로 어머니를 모셨다. 한편 오래 전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지병인 ‘탈장’과도 싸웠다. 내 몸속 장기 중 하나는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 눈물을 흘리는 대신, 끊임없이 내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애쓰곤 했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그 장기가 제 위치를 벗어나는 걸 느끼고 손끝을 이용해 몰래 몸 안으로 밀어 넣기를 반복해야 했다. (…) 내 몸속 장기 또한 내 팔다리처럼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해야 하는 건 결코 달가운 경험이랄 수 없었다. 어린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내 몸속 장기가 흘린 눈물이 내 양 볼을 적실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대신, 몸 밖으로 밀고 나오려고 애쓰는 부분만이라도 잘라내버릴 수는 없을까, 고민했었다. 내 손이 아주 예리한 날을 가진 칼이 되는 꿈을 꾸곤 했던가. _36~37쪽 그가 시달려야 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울감에 깊게 빠져드는 날들. 일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조차 어렵게 만드는 우울이 그를 덮쳤다. 여기에 더해 안구건조증마저 심해지자 결국 그는 당분간 교정 교열 일을 쉬겠다고 일터에 통보하고 거의 난생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나타나 그를 붙잡은 것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그는 셰익스피어를 다시 꺼내 읽게 된 계기를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빼 든 책의 첫 문장을 읽고 나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온몸이 굳어버리는 걸 느꼈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1막 1장의 첫 문장이자 안토니오의 대사. (…) 아마 그때부터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으리라.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라고 중얼거리면서. _105~106쪽 이렇게 시작한 셰익스피어 읽기는 꽤 오랜 시간 이어진다. 그는 『햄릿』 『헨리 4세』 『오셀로』 『십이야』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심벨린』 『리어 왕』 『템페스트』를 차례로 읽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셰익스피어 소설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인생극장’이 그의 머릿속에서 상영되기 시작한다. 그때 작가가 머문 장소는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는 도서관 구석 자리일 때도 있고, 밤늦은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있는 24시간 카페 귀퉁이일 때도 있었다. 이 책은 20년 넘게 교정 교열자로 일해온 저자가 우울감에 시달리는 밤마다 도서관 구석을, 카페 귀퉁이를 찾으며 10편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어나간 오롯한 기록이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인생극장’ 속 우울한 나의 분신을 바라보기 다른 작가의 작품이 아닌 ‘셰익스피어’였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작가는 머리말에서 굳이 셰익스피어를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뭘 알아서 쓴 글도, 뭔가를 알고 싶어서 쓴 글도 아니다. 다만 내 우울감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쓴 글일 뿐.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책들 또한 마찬가지다. 뭘 알아서 그 책들의 내용에 대해 아는 체를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아는 체를 하고 싶어서 그리 한 것뿐이다. 가끔은 그런 나를 보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 _4쪽 ‘그냥 아는 체를 하고 싶어서’ 셰익스피어를 골랐다고 심드렁한 투로 고백하지만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작가는 기념비적인 ‘인생극장’을 창조해 우리에게 선보인 셰익스피어이지만, 정작 셰익스피어 자신은 깊이 우울해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작가는 『로미오와 줄리엣』 4막 2장에 나오는 캐풀릿 가문의 하인에 잠시 주목해본다. 연극을 통틀어 딱 한 번 등장하는 그는 “캐풀릿에게 곧 열릴 결혼식 초청장을 받아 들고 맥없이 나가는 역”을 맡았다. “아주 잠깐 등장하는데다 대사도 없어, 어떤 연구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자신이 맡을 깜냥으로 집어넣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역할이다. 작가는 “모두들 무대 위에서 자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걸 즐길 때, 혼자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그 하인”의 존재에 대해 유심히 생각한다. 그의 존재가 꼭 셰익스피어의 분신 같고, 또한 우울한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아서다. 아니다. 그런 게 아닐지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우울했던 것이다. 너무 우울했던 나머지, 우울해하는 자신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연극에서 한 음절의 대사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쓸쓸히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이렇게 중얼거렸으리라. 나는 너를 모른다, 너의 이름도 모르고, 너를 본 적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 또한,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졌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 _15쪽 사랑의 맥락, 가족의 맥락 작가는 셰익스피어 리뷰와 자신의 이야기를 두 개의 부에 나누어 담았다. ‘1부 사랑’, ‘2부 가족’이다. 이는 자신의 우울감의 정체를 두 개의 맥락을 통해 반추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사랑의 서사와 가족의 서사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도 이 두 가지 맥락을 발견한다. 그래서 『햄릿』 『헨리 4세』 『오셀로』 『십이야』 『맥베스』는 사랑의 맥락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심벨린』 『리어 왕』 『템페스트』는 가족의 맥락으로 독해한다. 여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사랑보다 가족의 맥락에 초점을 두어 독해하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통해 자신들의 ‘주어’가 눈뜨도록 했어야 했다. 비록 그 사랑이 호르몬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더라도 말이다. (…) 철천지원수로만 알았던 상대 가문의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면, 그리고 그 사랑이 단지 호르몬의 장난질만은 아니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새롭게 눈을 떴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부여된 ‘주어’의 역할을 다하면서 고통을 감수하고 치욕을 떠안으며 두 가문의 거짓된 화해라도 이끌어냈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둘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든 죽음을 택하든 그건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떠나버림으로써, 그들이 속한 두 가문은 물론 공동체 또한 원죄에 의한 거짓된 화해와 협력이라는 탁한 피를 부여받게 만들었다. 이거야말로 비극이다. 그들에게도 공동체에게도. _97~98쪽 작가의 셰익스피어 독해에는 통상의 접근법 혹은 관점에 반하는 해석이 종종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암세포 같은 인간’이며 ‘불협화음의 소리를 내는 대표격’이자 ‘돈밖에 모르는 더러운 유대인’ 샤일록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가. 그러나 샤일록은 안토니오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에겐 정당화를 위협하는 하나의 도전이자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던 셈이다. 샤일록을 제외하면 다른 인물들은 하나같이 결함을 가진 존재들이다. 안토니오는 여러 척의 선단을 한꺼번에 띄우는 무리수를 두고도 태평하기만 한 한심한 사업가이고, 바사리오는 포셔의 사랑을 얻기 위한 여비마저 친구인 안토니오에게 꾸어야 할 만큼 대책 없는 루저다. 한편 포셔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든다는 핑계로 순전히 운에 의지해서 자신의 사랑을 결정짓는 몽상가에 불과하다. 이들에 비한다면 샤일록은 온전한 어른이다. 저들이 내뱉는 욕설과 침을 고스란히 맞아가며, 상권이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돈과 다이아몬드를 움켜쥐고 이자로 자신의 생명을 늘려가는 것만이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은 존재다. 이 희곡에서 다른 인물들과 달리 지극히 산문적이고 독립적인 대사를 내뱉는 유일한 존재. (…) 뭔가 결함을 가진 존재들은 샤일록이라는 도전을 함께 해결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_113~114쪽 ‘주어’와 ‘술어’의 존재론 이 소설에서 김정선 작가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지점 하나는 자주 ‘주어’를, ‘술어’를 언급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장을 분석하기 위해 저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읽기 위해 ‘주어’와 ‘술어’를 활용한다. 20년 넘게 교정 교열자로 일한 까닭일까. 그는 주어나 술어, 혹은 동사, 형용사 같은 품사를 도구로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곤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 주인공들의 서사를 읽을 때는 물론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도 저 도구들이 사용된다. 누군가들의 문장을 오래 들여다본 생애의 주인공인 작가는 ‘주어’나 ‘술어’에 대한 분석을 그저 문장론이 아니라 존재론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햄릿]는 국내외의 모든 갈등과 분쟁을 자신의 왕궁으로 향하게 만든 셈이다. 자신의 왕국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거나 돌파함으로써 대문자 주어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강력한 대문자 주어가 될 만반의 준비를 마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강력한 대문자 주어는커녕 자신이 거느려야 할 술어와 내쳐야 할 술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분열적인 주어가 되고 말았다. _21~22쪽 나 또한 처음부터 이렇게 살려던 건 아니었다. 누군들 우울하고 슬픈 삶이 좋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내가 밤새 주물럭거리는 문장처럼 지우고 다시 쓸 수도 없는 것을. (…) 다만 한 가지 깨달은 건 있다. ‘행복’은 ‘사랑’과 달라서 내가 온전히 주도할 수 없다는 것. ‘사랑하다’는 동사여서 주어인 내가 그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을 온전히 주재할 수 있지만, ‘행복하다’는 형용사여서 주어인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 나는 다만 그 ‘행복한’ 형용, 즉 행복한 그림 안에 들어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그렇지 않을 땐 행복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사랑과 달리 행복은 내가 추구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상태를 누리고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없다는 것. _195~196쪽 “삶은 엉덩이다” 작가를 오래 사로잡은 꿈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엉덩이 꿈’이다. 이 꿈이 알려주는 것은 삶이 비단길만도 아니고 자갈길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삶은 엉덩이다”라는 깨달음을 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희극 10편을 펼쳐놓고 그 위를 내달린 독서의 끝에 남는 깨달음도 그와 같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인생극장 속에서 때로 하염없이 미끄러지고 때로 울퉁불퉁한 바닥을 구른다. 이때 삶이 다만 엉덩이의 문제라는 사실은 곤란함인가 다행스러움인가. 이틀간 앓으면서 나는 내내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이제까지 꾼 꿈 중에서 그나마 선명하게 기억하는 유일한 꿈이다. 다시 꾸고 싶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꿈이기도 하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꿈. 등장인물은 나 혼자고 배경이랄 만한 것도 없다. 비단을 깔아놓은 듯 매끄러운 바닥을 엉덩이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다가 자갈밭처럼 울퉁불퉁한 바닥을 엉덩이를 쿵쿵쿵 찧으며 달려가는 꿈이었다.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었다가 다시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었다가. 꿈은 말하고 있었다. 네 삶은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었다가 다시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일 것이다. 아니, 꿈이 전한 말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삶은 엉덩이다. 알겠느냐? _29쪽 차례 머리말 • 4 1부 사랑 ‘장기 적출’ 커플 • 10 진눈깨비 • 13 한밤의 셰익스피어 • 16 h와 H 사이에 놓인 남자-『햄릿』 • 19 피리 • 23 포도주 • 27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 - 『헨리 4세』 • 31 적출 혹은 누출 • 34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내 몸속 장기가 흘린 눈물이 내 양 볼을 적실 수 있을까 • 36 사랑하는 나와 사랑받는 나 - 『오셀로』 • 40 가면 • 43 “그대는 내게 진실을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 48 목소리 • 52 “저는 제가 아니에요” - 『십이야』 • 55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 60 사과꽃이 떨어지는 소리 • 65 만남 • 70 삶에 묶인 끈을 당길 때 • 73 “내 행위를 알려면 나를 몰라야 할 것이오” - 『맥베스』 • 77 내 조바심과 불안을 가져간 여인 • 86 2부 가족 주삿바늘을 피해 숨는 혈관 • 92 관상동맥 - 『로미오와 줄리엣』 • 95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 101 흰 건반과 검은 건반 - 『베니스의 상인』 • 107 결론에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끄는 이야기들 • 119 시작과 끝, 그리고 처음과 마지막 • 127 치명적인 맥락, 가족 • 132 아버지의 발바닥 - 『심벨린』 • 137 다시 ‘장기 적출’ 커플 • 141 처음을 위한 깜빡과 마지막을 위한 깜빡 • 149 ‘밖’이 ‘안’이 되고, ‘안’이 ‘밖’이 되는 - 『리어 왕』 • 157 감수성이 균열을 감지할 때 • 164 나처럼은 살지 않겠다 • 170 ‘우리’와 ‘그들’ • 177 ‘우리’가 되기 위해선 마법이 필요하다 - 『템페스트』 • 181 마법의 섬과 거기서 거기인 삶 • 186 나쁜 꿈 • 191 “다음에 다시 봐요 우리” • 195 참고하거나 인용한 책들 • 199

  • 껍데기 민주주의 | 포도밭출판사

    2016. 12.16 / 125×200mm/ 212쪽 / 14,000원 껍데기 민주주의 기득권 공화국에서 민주공화국으로 지은이: 하승수, 하승우 보도자료 부패한 권력자를 끌어내린 빈자리를 이제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지금 모든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국민들의 관심은 앞당겨 치러질 대선에 모아지는 듯하다. 하지만 저 자리에 ‘좋은 대통령’을 앉히면 근심이 사라질까. 이번 사태를 겪으며 느낀 참담함이 그 때에는 가실 수 있을까? 가진 자는 법이든 돈이든 거칠 것이 하나 없고, 없는 자는 존재 자체부터 너무나 사소하고 비참하게 여겨지는 이곳은 ‘기득권 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분명히 되어 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실상이 드러났듯 지금껏 이 나라를 제 것인 양 마음껏 농단한 것은 기득권 일당이다. 이러한 사태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다음 행보는 어떠해야 할까. 『껍데기 민주주의』는 ‘기득권 공화국’과 ‘헬조선’을 초래한 원인을 진단하고, 사회가 과두지배나 다름없이 운영되는 ‘껍데기 민주주의’ 체제의 문제를 파헤친다. 형제이면서 풀뿌리 활동가이자 정당인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변호사 하승수와 정치학자 하승우는 근본적인 사회 전환의 실마리를 찾고자 ‘민주주의’ ‘자본주의’ ‘풀뿌리’ ‘개발과 폭력’을 주제로 정해 대화를 시작했다. 이 책은 고르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는 시민들이 적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오히려 더욱 나빠지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변화를 위한 한 걸음을 뗐다. 저자들은 소수 기득권이 아닌 우리들 ‘여럿’을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느리게 질주’하자고 제안한다. 기득권 공화국 대한민국, 왜 이럴까? 2016년 한국사회는 숱한 현안들을 마주했다. 4월에 제20대 총선을 치렀고, 곧이어 기록적인 폭염을 겪었으며, 더위가 꺾일 무렵에는 울산 앞바다와 경주에서의 지진으로 긴장된 나날을 보냈다. 사회 곳곳에서 혐오 범죄가 잇따랐고, 비용 절감에만 고심하는 불의한 일터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소위 ‘뜨는 동네’의 임차상인들이 힘없이 거리로 내몰렸고,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 농민은 결국 목숨을 잃었다. 주민들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라는 화약고를 이 땅에 배치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비로소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매서운 날씨에 국민들을 광장에 서게 했다. 마침내 이 참담한 ‘기득권 공화국’의 우두머리이던 박근혜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렸지만, 아직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전망이 밝다고는 할 수 없다. 2017년이면 ‘87년 체제’ 이후 30년이다. 하지만 이 사회의 민주주의는 곳곳에서 결함을 노출하고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여전히 ‘헬조선’이다. 『껍데기 민주주의』는 기득권 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목도하게 된 지금, 이제는 현상만이 아닌 원인을 보자고 제안한다. 하승수, 하승우 두 사람은 형제라는 점 외에도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오랜 동안 시민운동에 몸 담아왔고 풀뿌리, 아나키즘, 공공성 등을 화두로 삼는 점에서 일치한다. 녹색당이라는 공통분모도 있다. 하승수는 올해까지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다가 임기를 마치고 현재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로 있으며, 하승우는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으로 있다가 올해부터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들은 나날이 터져 나오는 현안들 속에서 보다 근본적인 사회 전환의 실마리를 고민하고자 대화를 시작했다. 이 책은 고르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는 시민들이 적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오히려 더욱 나빠지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같이 고민한 결과물이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풀뿌리, 개발과 폭력… 결국 ‘삶’으로 수렴되는 주제들 『껍데기 민주주의』는 변호사 하승수와 정치학자 하승우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두 저자는 87년 ‘민주화’ 이후 30년을 맞이하는 지금, ‘헬조선’의 원인을 진단하고, 사람답게 살아갈 방도를 모색하기 위해 다섯 차례의 대담을 벌였다. ‘헬조선’을 초래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그것을 ‘껍데기 민주주의’라는 말로 지적한다. 시민들이 중요한 문제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사회가 과두지배체제와 다름없이 운영되는 것의 근본 원인에 ‘껍데기 민주주의’가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이번에 촛불의 힘으로 더욱 심각한 ‘농단’을 막고 부패한 일당에게 죄를 묻는 데까지는 왔지만,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빈번한 ‘껍데기 민주주의’의 전횡을 해소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저자들은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민주주의’ ‘자본주의’ ‘풀뿌리’ ‘개발과 폭력’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시작했다. <1장_ 민주주의를 말하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지역화 및 분권화 전략을 말하고, 정당민주주의의 한계 및 이를 넘어서기 위한 제도적 대안을 논의한다. 특히 ‘좋은 정치인이 민주주의를 진전시킨다’는 생각은 오류라고 지적하며, 과두지배체제를 깨고 신뢰할 수 있는 대의정치구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스템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 특히 선거제도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승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2장_ 자본주의를 말하다>에서 하승수는 토지, 돈, 노동력의 상품화가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진단하며, 이렇게 상품화된 것들을 다시 공유화하는 움직임을 자본주의를 극복해가는 실마리로 제시한다. 하승우는 자본주의가 생산/유통/소비/폐기라는 각각의 단계를 끊어버린 사태가 오늘날의 가파른 일상과 정치사회적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된다고 지적하며, 다시금 ‘순환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탈자본주의 전략의 핵심이라고 논의한다. 변화의 가능성을 참조하기 위해 하승우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의 경우를 상세히 소개한다. <3장_ 풀뿌리를 말하다>에서 두 저자는 ‘풀뿌리’ 개념을 살펴보며 대화를 시작한다. 풀뿌리는 배제와 소외를 딛고 스스로를 조직해나가는 정치적 주체를 일컫는 말인데, 최근 들어서는 홀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아래부터의 동력을 일으키는 기초 연결망으로서 그 정의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저자는 풀뿌리 부문과 관련하여 잘못되고 있는 흐름에 대해서는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탈정치적 운동은 없다’ ‘관이 민을 통제하는 거버넌스?’ ‘시민사회조직의 비민주화’ ‘청구형 정치의 민낯’ ‘명망가 의존의 심각성’ 등의 꼭지는 제목에서부터 짐작되듯 잘못된 경향에 대한 비판이자 풀뿌리 활동가인 저자들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이기도 하다. <4장_ 개발과 폭력을 말하다>에서 하승수는 개발과 폭력의 범위를 국소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과 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으로까지 넓혀서 따져야 한다며 대화를 연다. 하승우는 개발과 폭력 모두 지배의 문제로 파악하며 논의를 이어간다. 즉 개발은 경제적 지배 현상, 폭력은 정치적 지배 현상인데 한국 사회의 특수성은 개발과 폭력이 끈끈하게 결합되어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어떤 주체들이 그러했는가.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가와 자본의 결탁이다. 구체적으로는 관료와 그들에 밀착한 경제적 이해 집단의 결탁이다. 저자들은 이 사악한 결탁을 깨뜨릴 실마리로서 제도가 뒷받침되는 경제적 분산 및 정치적 분권을 검토한다. 구조적인 전환만이 아닌 사람들의 일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르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실천을 일상에서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혼자서 답을 찾기 보다 더 많이 ‘대화’하자 시대는 큰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앞서 적은 국내 현안들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 뉴스들을 봐도 전 지구적 시대 변화가 감지된다. 올해 6월 영국발 브렉시트가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고, 지난 달 11월의 미국 대선에서는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당선되며 세계 정치사회 지형에 거센 파고를 일으켰다. 올해 한반도에 찾아온 폭염과 지진 탓에 뒤늦게 실감했으나, 전 지구적으로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경고하는 바다. 그렇기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반문하는 때가 잦아진다. 저자들은 이럴 때일수록 ‘대화’를 하자고 제안한다. 혼자서 답을 찾지 말고 서로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소수의 ‘기득권’이 아니지만 우리는 ‘여럿’이기에. 우리가 서로 만나고 대화를 시작했을 때 어떤 힘이 우리에게 생길지는 실로 누구도 단정하지 못한다. 기득권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민주공화국’을 만들어나갈 힘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들은 이 책을 ‘함께’ 읽고 더 많은 대화와 토론의 장을 만들어나가자고 이야기한다. 차례 여는 글_ ‘헬조선’의 본질을 꿰뚫어 보자 1장_ 민주주의를 말하다 껍데기 민주주의 우리가 집권하면 달라진다? 민주주의의 주체는 누구인가 ‘무주공산입니다, 싸우세요!’ 제대로 된 정당의 기능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자 정당이 해야 할 일 갈등의 전국화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 2장_ 자본주의를 말하다 탈자본주의는 가능한가 끊어진 관계의 복원 사례만으로는 안 된다 차베스 정권은 어떻게 했나 정의로운 전환의 길 “자력화하지 않는 시민은 시민이 아니다” 체제 전환의 실마리들 균열선을 보라 3장_ 풀뿌리를 말하다 기초조직의 발견 캣맘이라는 풀뿌리 권력은 원래 우리 것이다 탈정치적 운동은 없다 관이 민을 통제하는 거버넌스? 게이트키퍼는 누구인가 시민사회조직의 비민주화 청구형 정치의 민낯 명망가 의존의 심각성 풀뿌리는 삶의 문제다 4장_ 개발과 폭력을 말하다 국가와 자본의 결탁 사적 폭력에서 공권력으로 관료조직과 사법부의 폭력 참여와 분권으로 가는 먼 길 관료제를 깨려면 시스템의 규칙을 바꾸자 경제성장주의는 끝났다 이 위기를 뭐라고 호명해야 할까 닫는 글_ 우리가 다수다! 책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본질에 관한 토론이 실종되었다. 물론 수많은 현안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안만 따라다녀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풀뿌리, 개발과 폭력 등의 화두를 대화 주제로 삼았다. 시기적인 맥락도 있다. 이제 1987년 이후 30년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 지금은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깊게 87년 이후 30년을 돌아보는 토론이 필요한 시기다. 결국 87년 이후에 대한민국이 소위 ‘헬조선’이 된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여는 글: ‘헬조선’의 본질을 꿰뚫어 보자」에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한 첫걸음은 이것을 더 이상 개인의 질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질문에 답하려면 일단 우리는 만나야 한다. 지금처럼 혼자서 답을 찾아본들, 답을 찾은 듯 보여도 위기는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며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닫는 글: 우리가 다수다!」에서 지은이 소개 하승수 변호사였지만, 10년째 휴업 중이다. 1996년 참여연대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참여연대에서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협동사무처장 같은 역할을 맡았다. 2001년 시민자치정책센터 창립에 참여했고,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으로 재창립하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2001년부터 경기도 과천에서 지역 시민운동에 참여했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제주대학교 교수로 근무하며 제주 지역의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2008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창립에 참여해서 초대 소장을 맡았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고 녹색당 창당 과정에 참여해, 2016년 9월까지 5년간 사무처장,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전면 개혁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하승우 ‘풀뿌리 공론장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생운동에 한 발가락 정도만 담그고 살다 의도치 않게 대학원에 갔다. 그 후 여러 단체에 몸을 담았지만 분란을 일으키고 나오는 삶을 반복하다 시민자치정책센터를 만나면서 풀뿌리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2006년 중반부터 한양대, 경희대 등에서 강의하고 ‘프로젝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대학에서 번 돈으로 2007년 지행네트워크라는 연구공동체를 만드는 데 참여했고, 대학을 관둔 뒤에는 자치와 자립, 협동조합, 시민정치, 아나키즘, 공공성 같은 주제로 독서회를 만들고 시민들을 만났다. 2013년 10월에는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과 땡땡책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1년 녹색당 창당 과정에 발기인으로 참여했지만 계속 겉돌다 2016년에 덜컥 공동정책위원장으로 코가 꿰였다. 인생은 알 수 없다.

  •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 | 포도밭출판사

    135×210mm┃336쪽┃17,000원┃ 2017년 11월 17일 출간┃ ISBN 979-11-88501-01-4 (03330)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 지은이: 김신범 보도자료 “화학물질로 인한 재앙은 앞으로 더 많이, 더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중에 또 무엇이 우리를 죽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면 말이죠” 인류가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사용량이 계속 늘고 있다. 우리 주변의 화학물질은 벌써 수만 종에 이르고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난다. 이제 이 물질은 누구도 피할 수 없을 만큼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자칫 생명을 앗아갈 만큼 치명적이기도 한 화학물질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일일이 독성을 파악하고, 용도에 맞게, 올바른 방식으로 쓰도록 규제되고 있을까. 짐작하듯이 그렇지 못하다. 문제가 좀 심각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지울 수 없는 큰 아픔과 상처는 물론,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숱한 과제를 드러냈다. “도대체 정부는 뭘 했단 말입니까?” 이렇게 따지는 것도 한계를 드러냈다. 스스로 신경 쓰지 않으면 아무도 돕지 않는다. 그런데 화학물질은 워낙 새로운 물질이다 보니 개인이 혼자 똑똑해져서 위험을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같이 안전해져야 한다. 문제는 그 길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 이윤에 눈 먼 기업들이 진실을 감추기 위해 펼쳐드는 ‘비밀’이라는 방패가 그것이다.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밀과의 싸움’이 필요한 것이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싸움을 해온 사람이 있다. 수은 공장 노동자인 문송면의 죽음이 계기가 되고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의 결과로 세워진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창설 때부터 일해온 김신범 실장이다.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에는 그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 화학물질 관리 실태의 취약점들과 ‘같이 안전한 사회’를 위해 나부터 할 일들이 안내되어 있다.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하길 바라는 모두를 위한 ‘화학물질 이야기’다.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 최초의 합성치약인 오돌(Odol)이 판매된 것은 1903년이었고 합성세제 퍼실(Persil)이 등장한 것은 1907년이다. 가정용 합성페인트의 등장은 1930년대였고, 플라스틱이 장난감과 주방용품, 가구 등에 사용된 것도 이때부터다. 미국에서의 합성농약 사용량은 1947년에 1억2천4백만 파운드였다가 1960년에는 무려 6억2천7백만 파운드로 늘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인류의 화학물질 생산과 소비는 급증했다. 한국은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의 시작과 함께 화학물질 생산이 본격화되었고, 일상생활 속으로 화학물질과 그 제품이 확산된 것은 1970년대 이후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얼마 안 된 1988년에 문송면의 수은 중독과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이 터졌다. 2011년에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일어났다. 화학물질 생산과 소비가 급증하는 만큼 그로 인한 피해 또한 급증한다. 이 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심각한 상황을 맞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면 말이다. 안전한 일상을 위한 변화의 길목을 가로막는 큰 방해물들이 있다. 그것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드러났듯, 안전에 무감하고 탐욕에 눈 먼 기업들 및 그들을 비호하는 정치권력이다. 이제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 국내 화학물질 관리 체계의 중요한 변곡점을 이끈 주역이자 오랫동안 사회적 약자들의 안전한 노동을 위해 활동해온 저자는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에서 그 길을 신중히 안내한다. 화학물질 관리 실태를 보라 환경부는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화학물질을 4만 4천여 개로 추정하는데, 이중에 독성이 파악된 것은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3만 7천여 개의 물질은 독성 파악조차 안 된 실정이다. 독성을 모른 채 그냥 쓰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실정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화학물질 관리가 이뤄지던 초기인 1970년대 미국에서부터 계속돼온 실정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이 상황을 어렵다고 놔둘 게 아니라 보다 효과적인 정책과 엄밀한 규제를 통해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일례로 말하는 것이 유럽의 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z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 같은 제도다. 이 제도의 핵심은 “노 데이터, 노 마켓(No Data, No Market)”으로 표현된다. 독성과 용도에 대한 데이터 없이는 화학물질과 그 제품을 시중에 내놓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화학물질로 인한 위험은 유럽뿐만이 아니라 인류 공통이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화학물질 관리 수준을 정비하자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고 그 결과 2013년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화평법(화학물질의등록및평가등에관한법률) 제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법이 어떤 세력들에 의해 그만 무력화된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위험하게 만드는가 가습기살균제, 살충제 달걀, 발암물질 생리대… 이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팔기 이전에 안전을 충실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다. 무슨 소린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말이지? 답은 간단하다. 우리 사회는 기업에게 사전에 위험을 파악하고 안전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정책과 체계가 없다. 앞서 적었듯, 이른바 화관법과 화평법이 2013년에 제정되었다. 그런데 이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기업들은 대놓고 “이제까지 법을 안 지켜도 되었는데 갑자기 법을 지키라고 하면 망하란 소린가” “제품 내 화학물질 독성을 일일이 다 파악하라고 하면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논리로 이에 맞섰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기업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고 강력하게 지시하고 나서면서 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하겠다는 기대는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다.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첫째로 필요한 것은 기업들이 사용한 화학물질 취급 정보다. 그런데 2013년 기준 국내 기업들 중 86% 가량이 화학물질 정보를 ‘영업 비밀’을 이유로 공개하길 거부했다. 이것들은 정말로 영업상 중요해서 비밀이었을까. 아니다. 심지어 회사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둔 정보까지 공개 요구 시 영업비밀이라고 우기는 일도 있었다. 공개하라는 강제가 없으니 그냥 감추는 것이다. 2015년 화관법 개정 시행 이후로는 공개 정보 비율이 많이 늘었지만 아직 과제는 많다. 가만 보면 화학물질 정보가 영업비밀일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일반인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저자는 미국 환경부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들려준다. 저자는 미국 환경부 직원을 통해 미국에서는 영업미밀 인정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미국은 회사가 영업비밀을 주장하여 얻고자 하는 이득, 즉 시장 내 독점적 지위보다 제품 구매자가 제품 정보를 온전히 이해하고 가격과 안전과 성능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더 우선시한다. 정부가 영업비밀을 인정해주는 것은 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본다. 이 차이인 것이다. 이렇게 상식적인 일이 왜 우리 사회에서는 그토록 어려웠을까. 결국 권력이 누구 편인가의 문제이다. 소비만 안전해지는 길은 없다 생산을 바꿔야 모두가 안전해진다 저자 김신범은 처음에 노동자들에게서 발생하는 직업성 암의 원인을 추적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 노동조합에 들어가 활동하다 깨달은바, 노동자들이 처한 여러 위험들을 노동조합을 통해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금속노조 내 ‘취약노동자분과’를 만들어 건강권 캠페인들을 추진한다. 많이 알려진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등이 그가 추진한 캠페인들이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화학물질 연구자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는 관련 연구조사뿐 아니라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발암물질목록> 만드는 작업을 시작으로, 여러 알권리운동과 조례제정운동 등을 벌이며 국내 화학물질 관리 체계를 정의롭게 바꾸고자 힘써왔다. 그는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를 만나는 일로 이력을 시작하여, 지역을 만나고, 소비자를 만나면서 접점을 넓혀왔다. 화학물질 연구자이면서 그의 관심은 늘 노동자, 마을, 이웃이다. 여러 영역을 거친 끝에 그가 말하는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생산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석면 베이비파우더 사건을 기억한다. 갓난아기를 위한 제품에서 치명적인 석면이 검출된 사건이다. 이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베이비파우더 제품에서 석면이 검출됐다면, 그걸 만든 현장 노동자들도 석면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제품 생산 현장에서부터 안전을 규제했다면 저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예도 말해보자. 만약 공장에서 독성물질을 사용하고 있다면 누출사고가 발생 시 지역주민에게 피해가 미친다. 문제가 이러하다면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까? 굴뚝을 감시하는 것인가? 주변 하수도 감시를 철저히 하는 것인가? 보다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해법은 공장의 독성물질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이것부터 시작해야 문제가 차례로 해결될 수 있다. 생산에 주목하고 생산을 바꾸자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저자는 이러한 가르침을 전해준 이들로 켄 가이저 교수 등을 책에서 소개하기도 한다. 발암물질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엄청난 영감과 영향을 준 국제암연구소의 로렌초 토마티스 역시 각별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스승으로 소개하는 저들의 공통점은 화학물질 자체만이 아니라 늘 이웃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떤 경우에도 결코 탐욕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자신을 믿자! 긴 화학물질 이야기의 끝에서 찾은 결론이 놀라울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 자신을 믿자고 말한다. 2009년에 직접 나서서 힘을 모아 <발암물질목록1.0>을 만들고 발표할 때도 실감했던 바다. 정부에게, 혹은 힘 있는 누군가에게 조르기만 한다고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직접 나서서 움직일 때 함께할 이들이 나타난다. 저자는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큰 목표 역시 이와 같이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전망한다. 그리고 생산 따로 소비 따로 동떨어지지 말고 계속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화학물질 문제는 개인들이 각자 똑똑해져서 안전해지기에는 한계가 많다. 전문가도 낱낱의 화학물질을 다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며 우리는 일상 속에서 무방비의 순간들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는 곧 ‘너의 안전이 나의 안전’임을 설득한다. 같이 안전해지는 것만이 진짜 안전이라고 알려준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의 힘을 믿고, 우리가 원하는 안전에 대해 같이 목소리 내자고 말을 건넨다. 지은이 소개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 발암물질을 조사하고, 시민과 노동자를 위한 화학물질 알권리 정책을 만드는 연구자이며,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는 활동가다.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 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마을 만들기 사업에 던지는 질문》(공저), 《환경정의, 네가 뭔지 알고 싶어: 우리와 다음을 생각하는 청소년 환경정의 교과서》(공저) 등이 있다. 추천의 말 달걀에 살충제가 있고 생리대에 발암물질이 있다는 뉴스에 화가 나는가? 당신의 혈액에는 달걀과 생리대에서 발견된 것보다 더 위험하고 더 많은 유해물질이 있을지 모른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유해물질 사고의 희생자가 자신이 아니어서 안도했다면 이제 이 책을 제대로 만나보시라. – 고혜미(방송작가 · PD) 국내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이 자리잡는 과정에 중요한 변곡점이 하나 있다. 그 변곡점이 바로 김신범이다. 그가 있었기에 노동자, 어린이, 여성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화학물질 관리 체계를 고민할 수 있었다. – 고금숙(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 팀장)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감추는 자가 범인이라는 진실을 알았다. 이토록 무겁고 두려운 진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끊이지 않는 산단 화학물질 사고에서도 확인했다. 20년 넘는 잠복기간이 지나 피해가 발생한 석면 피해자와 삼성반도체 피해자들이 증인이다. 그래서 비밀은 위험하다. – 최준호(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가습기살균제, 생리대 사건 등에서 보듯 기업은 스스로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위험에 맞서 함께 외치고 행동할 때다. – 한은영(울산울주아이쿱생협 이사) 노동자이면서 지역주민이면서 부모이기도 한 우리가 나설 때, 화학물질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걸 이 책은 보여준다. “위험이 확인되지 않았으면 안전”한 것이 아니라 “안전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위험”한 것이다. – 나현선(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국장) 이 책은 생활 속에서 가장 널리 쓰이면서도 사회문제로서는 관심 밖이던, 화학물질이 대한 인식의 간극을 담백하게 메워줄 것이다. 감시자로서의 ‘당신’에게는 훌륭한 화학물질 책이 될 것이고, 위험한 사회를 걱정하는 ‘당신’에게는 안전한 사회를 향하는 사회학 책이 될 것이다. – 윤은상(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이 책은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사는 우리의 불안이 과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의심이야말로 정당하다고 위로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안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있음을 알려준다. 화학물질이 불안한 당신에게 권한다. – 배보람(녹색연합 평화생태팀 활동가) 2011년 이른 봄, 저자가 일상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유해화학물질을 줄여보자며 학부모단체를 찾아왔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교육단체에서 무슨 유해물질을 고민한단 말인가, 싶었다. 그 의구심의 순간이 이제는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드는 초석으로 바뀌었다. 한국의 유해화학물질 정책과 제도를 바꿔내는 저자의 발걸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 박수미(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사무국장) 10여 년을 함께하며 저자의 현장에 대한 애정과 일에 대한 열정을 느꼈다. 그 애정과 열정의 산물인 이 책이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 현재순(《일과건강》 기획국장) 이 책에는 저자가 현장에서 오롯이 경험하여 도출한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 생생하게 설명되어 있다.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기꺼이 동참할 독자들이 많아지리라는 좋은 예감이 든다. 의지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실행이 필요한데, 그 실행의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 이선임(서울아이쿱생협 이사장) 차례 머리말 제1장. 화학물질을 만나다 나무가 우거진 수원캠퍼스에서 시작된 여행 원진레이온 피해자를 만나다 가난보다 더 무서운 노동 노동자들이 화나는 진짜 이유 답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곁 일터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제2장. 거짓 지식에서 벗어나다 다시 맡은 화학물질 일 로렌초 토마티스와 국제암연구소 1과 2를 둘러싼 싸움 로렌초 토마티스, 국제암연구소의 변질에 맞서다 발암물질 목록을 작성하자 발암물질 감시운동에 들어서다 제3장. 일터에서 발생하는 암 암은 왜 논쟁을 일으킬까? 금속노조, 발암물질 조사를 시작하다 9,044개 제품 중 47% 숫자 뒤의 진실 우리도 금지물질 목록을 만들자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법 발암물질 없는 사업장, 톡식프리 타타대우상용차 우리 아버지 좀 도와주세요 0.01%만 직업성 암 환자? 직업성 암 환자는 수천 명이 넘을 것 서랍 속 자료를 꺼내 당사자에게 제공하라 제4장. 생산과 소비는 만나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다 베이비파우더 속 석면 ‘발암물질감시’ 운동에서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운동으로 2016년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현장에서 이제야 맞추어진 퍼즐 보스턴에서 얻은 깨달음 제5장. 당신의 마을은 안녕하십니까 물고기가 죽었다고? 화를 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발암물질 때문에 화난 주민들 발암물질 사용, 기업의 권리인가? 발암물질은 줄여야 한다 알권리를 다시 생각한다 비밀에 대하여 마을과 공장이 너무 가깝다 제6장.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세상 화학물질의 위협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 절망 뒤에 찾아온 희망 생각의 틀을 바꾸자 ‘우리’가 나설 때 바뀐다 엄마 아빠인 당신에게 드리는 제안 지역주민인 당신에게 드리는 제안 노동자인 당신에게 드리는 제안 엄마 아빠이며, 지역주민이며, 노동자인 당신에게 드리는 제안 원하는 것은 말할 때 이루어진다

  • 광장이 되는 시간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09-0 (03300) 출간일: 2019년 7월 19일 정가: 15,000원 제본: 무선 쪽수: 268쪽 판형: 128×205mm 분야: 1. 인문학 > 인문에세이/인문비평 2. 인문 > 인문일반 3. 에세이 > 한국에세이 4. 사회과학 > 사회운동 광장이 되는 시간 천막촌의 목소리로 쓴 오십 편의 단장 지은이: 윤여일 책소개 운동의 현장이 사고의 광장으로 ‘도청앞 천막촌’은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막아내고자 제주도청 맞은편 길가에 천막을 치고 모여든 사람들의 마을이다. 사회학자이자 동아시아사상사 연구자인 저자 윤여일은 ‘연구자 공방’ 천막을 세우며 ‘천막촌 사람들’이 되었다. 이 책은 천막촌 살이의 기록이자 천막촌 운동의 고민, 난관, 모색, 성장에 관한 에세이다. 그로써 독자와 함께 천막촌을 정신적으로 체험하고자 한다. 이 책의 부제는 ‘천막촌의 목소리로 쓴 오십 편의 단장’이다. 각 단장은 저자가 천막촌에서 접한 누군가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저자는 천막촌에서 다가온 목소리들로 독자가 들어올 사고의 광장을 마련한다. 천막촌이라는 제주의 운동 현장에서 한국의 사회현실을 바라보는 일종의 좌표를 만들어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보도자료 제주가 지금 모습이길 바라는 당신이 알아야 할 이야기 제주가 앓고 있다. 화산활동이 만든 오름과 신비로운 동굴, 수백 년 우거진 숲, 푸르른 바다 그리고 소중한 생명들이 앓고 있다. 지난 십 년 간 제주의 자연생태는 난개발과 과잉관광으로 도처에서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이런 제주에 국토부는 훨씬 많은 관광객을 받기 위해 두 번째 공항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민주적인 의사수렴, 최소한의 알 권리도 무시되었다. 공항 예정부지 주민들은 자신의 집과 고향이 사라지고 그 위로 활주로가 깔린다는 통고를 언론보도로 들었다. 더구나 강정에 만들어진 해군기지에 이어 제2공항은 공군기지로 전용될 가능성이 크다. 제주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제주는 섬이다. 섬의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환경수용력이 관건이다. 현재 제주는 하수처리능력이 포화상태로 일부 하수를 그대로 바다로 방류하고 있다. 쓰레기처리능력도 한계에 달해 압축 쓰레기를 몰래 필리핀으로 보냈다가 반입을 금지당했다. 공항이 하나 더 생겨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들어온다면 어찌될 것인가. 얼마나 많은 난개발이 이어질 것인가. 섬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시설 하나를 짓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공항은 개발들의 첨병이다. 현재 제주의 도민들 사이에서는 국토부의 제2공항 건설사업에 절차적 하자가 크다, 제2공항 건설 이전에 현공항의 활용가능성을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 제2공항 건설 여부를 도민의 의견수렴을 거쳐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다. 하지만 국토부는 제2공항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일단 시작된 국책사업은 자기정당화의 논리로 무장한 채 자기관성에 따라 진행 중이다. 개발과 갈등의 섬. 이것이 제주의 현주소다. 제주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운동의 운동 그래서 제2공항 사업을 막기 위해 예정부지의 주민만이 아닌 여러 시민이 모여들어 천막촌이 형성되었고 모인 이들은 천막촌 사람들이 되었다. 천막촌은 예정부지 주민의 단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를 지키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또한 다른 단식자가 생겨났다. 천막촌 사람들은 고민이 많았다. 단식자가 쓰러지기 전에 단식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했다. 또한 운동을 긴 호흡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너무 큰 희생을 짊어지지 않고, 더 희생되지 않고, 힘을 내는 사람이 힘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운동을 운동시켜야 했다. 운동의 실험이 일어났다. 천막촌 사람들은 국토부와 제주도정이 요식적 행정절차로 진행하는 설명회나 보고회에 난입하고 이를 저지했을 뿐 아니라 ‘공항 말고 장터’, ‘공항 말고 백배’, ‘공항 말고 합창’, ‘공항 말고 광장’, ‘공항 말고 바당’을 마련해 시민 참여의 장을 만들었다. 촛불 집회 때도 사람들이 모일 곳 없던 제주에서 천막촌은 정치의 광장으로 진화했다. 운동들의 운동, 운동들을 위한 운동 천막촌은 제주에서 전례 없던 것이나 고립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외롭지 않다. 천막촌은 국책사업 반대운동이자 점거운동이자 지킴이운동이다. 대추리, 새만금, 용산, 두물머리, 강정, 밀양. 천막촌은 지난 많은 운동을 앞에 두고 있으며, 그것들을 참고하고 계승한다. 과거의 운동은 천막촌에게 침전된 가능성이고 실천의 참조점이고 못 이룬 약속이다. 천막촌은 그 과거들을 여기저기서 불러들이며 새로운 미래를 산출하고자 한다. 그로써 과거 운동은 현재 운동 속에서 되살아난다. 서사로서 방법으로서 감정으로서 물음으로서. 현재 운동은 과거 운동들을 구제하는 속성을 지닌다. 이것은 시대순으로 기록되는 운동사와는 다른, 운동의 역사. 이처럼 여러 운동을 계승하고 그 운동들을 다시금 운동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천막촌은 운동들의 운동이며, 천막촌 역시 미래에 도래할 여러 운동에게 그렇게 쓰이고자 하기에 운동들을 위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마을, 다른 생활 그리고 천막촌은 마을이다. 볼록 솟은 천막은 그릇이 뒤집어진 형상이다. 사람들이 사연과 의지, 그리고 저마다의 방식과 기술을 가지고 흘러들어와 이 안에서 함께 차오르고 있다. 이곳을 천막촌, 즉 천막들의 마을로 부르는 것은 단지 천막이 여러 개여서가 아니라 집이 아닌 천막에서 지내며 전에 없던 마을을 살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천막촌은 자격과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자들이 자유를 살며 집단의 삶을 가꾸는 실험적 마을이다. 자격과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자들이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합의과정에서 배제된 자들이 새로운 공공영역을 만들어내고자 하고 있다. 여기, 새로운 마을과 다른 생활이 있다. 생성되는 관계가 있다. 의지가 있다. 긴 약속과 결심이 있다. 분노가 있다. 분노는 절규로 고립되지 않고 공분으로 승한다. 놀람이 있다. 자신 그리고 타인에게서 새로운 발견이 일어난다. 성장이 있다. 사고와 행동과 언어가 자라난다. 상상력이 있다. 상상력이 향하는 미래가 있다. 시도가 있다. 시도가 수놓는 역사가 있다. 이러한 ‘있음’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마을에서 ‘산다’는 흔들리며 많은 동사를 짊어진다. 이 마을은 삶의 새로운 실존 형식을 실험 중이다. 천막촌에서 만난 목소리들 이 마을에 이런 목소리들이 있다. “결국 그 밤 천막을 다시 세웠고 천막이 늘어났습니다. 천막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껏 참아온 분노가 축적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 서 있었다. 왜 이러고 있느냐고 당신들이 한 번이라도 물었다면. 우리는 질문 받기 위해 굶었고 마주치기 위해 서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의 규정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으로 싸웁니다. 우리는 아직 없는 이름들입니다. 한 번도 호명된 적 없는 주체들입니다.” “우리는 부당한 공권력 앞에 분노한 얼굴들입니다. 폭력에 저항하는 인간입니다. 이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학살의 당사자입니다.” “당신은 누구냐고 묻길래, 우리는 겁쟁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더 참혹한 미래를 만날 자신이 없어 지금 여기서 싸운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은 싸우는 모습을 가시화하지 않으면 운동의 성과를 잃곤 한다.” “경찰 정보과가 협상하겠다고 왔다. 대표 보고 나오라고 했지만 나갈 대표가 없었다.” “현재는 과거에서 오는 어떤 결과라기보다 미래 때문에 일어나는 시도인지 모른다.” “기만에 속아온 세월들, 이제는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 “나도 모르게 나를 가두는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저 계단에서 제주의 새로운 정치 언어가 나올 것이다.” “나무는 나예요. 나는 나무처럼 싸울 거예요.” “천막촌에 오면 할 일, 자기 위치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설거지를 하겠다.” “이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민으로서 지내는 것이다.”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겠다.” “저지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가보고 싶다. 운동이 이렇게 궁금하고 흥미로운 적이 없다. 여기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같이 있어 더 먼 곳을 보고 먼 곳까지 가려는 시간을 겪어왔다.” “내가 세상을 못 바꾸더라도 이렇게 부딪치면 세상은 나를 바꾸지 못하겠구나.” “질 때 지더라도 잘 지고 싶다.” 운동의 천막을 펼쳐 사고의 광장으로 함께 살아가기가 아닌 홀로 살아남기를 요구받는 사회, 존재가 거처와 관계를 잃고 홀로 배회하는 시대에서 천막촌의 생활은 사건적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운동을 일으키고 일상을 가꾸는 집단의 실험이 발생하고 있다. 사실 천막촌 같은 운동의 현장은 정치적 광장이 되고자 하나 현실적 제약에 가로막히고 성과보다 한계가 드러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제약과 한계야말로 사고가 깊어지고 행동의 모험이 요구되는 계기다. 그 제약은 사고가 얽혀들 자리이며, 그 한계는 여기까지 행동했기에 맞닥뜨릴 수 있다. 천막촌 사람들은 제약과 한계들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려 부단히 고민하고 행동하고 있다. 천막촌은 세상이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불안해하는 사람들, 지금을 어떻게든 바꿔내야 한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의 예시이며 원형이다. 따라서 저자는 천막촌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닌 바깥의 누군가를 위해서도 천막촌을 기록하고 천막촌의 사고를 가다듬고자 했다. 천막촌에서 찾아온 목소리를 단장으로 키워내 타인에게, 미래에 건네고자 했다. 운동, 일상, 현장, 정황, 승리, 패배, 성취, 시련, 성장, 개발, 자본, 국가, 식민, 주권, 주변, 광장, 약속, 체념, 무력, 미력, 행복, 기쁨, 예감, 예언, 절망, 희망, 심연, 도약, 개체, 집단, 연루, 공명, 감응, 마을, 이주, 돌봄, 지위, 경계, 자격, 권리, 통치, 정치, 난민, 인민, 호명, 배제, 평등, 대등, 위계, 다수, 합의, 결행, 곡절, 사연, 실험, 관계, 세계, 여성, 남성, 배움, 미래, 과거, 상황, 기록, 기억, 계승, 급진, 생태, 언어, 물음, 이름, 문체, 사상 저자가 천막촌을 기술하기 위해 다시 음미해야 했던 단어들이다. 이 책은 멀리 있는 타인, 훗날을 위한 기록이자 사색이다. 당신과 미래는 우리의 지금과 닿아 있다고 믿기에. 지은이 소개 윤여일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십 년간 수유너머의 일원이었다.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로 베이징에서, 도시샤대학 객원연구원으로 교토에서 체류했으며, 현재 제주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 제주에서 지내고 있다. 2019년 1월 동료들과 연구자공방 천막을 세우며 천막촌 사람들이 되었다.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동아시아 담론』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상황적 사고』 『여행의 사고』(하나·둘·셋)를 쓰고, 대담집 『사상을 잇다』를 펴냈다. 책 속에서 이 책은 오십 편의 단장短章들로 짜인다. 그리고 운동을 담으려면 문장 또한 운동해야 한다고 여겨 분석적이기보다 함축적인 문체를 취한다. 당신의 머리와 마음 속에서 운동하는 문장이기를 바란다. - 단장 1. 단장과 광장 이 지점에서 천막촌이 촛불에 던지는 물음은 우리가 선한 목자를 골랐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양떼인가이다. 즉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다. - 단장 9. 촛불 이후 천막들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끝 너머를 의식하고 사라짐 이후를 바라본다. 언젠가 사라질 이곳에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알게 된다. - 단장 10. 긴급의 공간 겁쟁이들은 희망하기를 희망한다. 희망希望. 희希는 바라다는 뜻과 함께 드물다는 뜻도 담고 있다. 바랄 수 있는 게 끊긴 상태가 절망이라면 희망은 드물게나마 무언가가 있다는 것. 절망은 희망의 반대말이 아니라 희망을 구해 나서야 할 토양. 겁쟁이들은 희망해야 하기에 희망하기를 희망한다. - 단장 15. 예견하는 겁쟁이 우리는 미력하다. 하지만 함께하기에 무력하지 않다. 미력은 힘의 시작이다. - 단장 16. 미력과 무력 내몰린 그 자리가 자유가 시작되는 곳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예속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예속 속에서 활로를 개척하는 활동이다. 자유롭게 산다기보다 자유를 사는 것이다. - 단장 18. 내몰림과 자유 떠밀림과 떠맡음. 수동성과 능동성이 중첩되는 그 자리를 우리는 사고의 거처로 삼는다. 현실의 제약은 그 현실을 뚫고 나아가려는 사고에게 가능성의 조건이기도 하다. 사고는 이곳에서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 단장 19. 앎은 운동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와 함께 알아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와 함께일 때 알 수 있는가. - 단장 20. 배움은 일어나는가 천막촌은 공간이자 시간이다. 그 시간은 긴급함을 의미한다. 그 긴급함이란 현재를 인식하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급히 불러들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 단장 22. 아하의 순간 ‘이미-정함’이라는 예정豫定을 ‘어쩌면’이라는 예감으로 바꾸려는 사람들. 예감豫感. 미리 느낌. 그로써 우리에게 현재는 다른 미래의 전조가 되며 다른 미래는 현재에 이미 작용하게 된다. - 단장 23. 다른 미래와 예감 미래를 짊어지려는 이들에게 과거와의 싸움은 미래를 향한 도전, 딱 그만큼 무겁고 버겁다. - 단장 24. 과거와의 싸움 추방되는 자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자 할 때 무얼하는가. 점거한다. 그렇다면 배제된 자들은 자기 자리를 찾고자 할 때 무얼하는가. 난입한다. - 단장 25. 배제와 난입 우리에겐 보다 많은 권리의 형상, 보다 잦은 권리의 사건화가 필요하다. 그것들은 만인이 확보할 권리는 아니겠으나 타인에게 번역될 권리다. - 단장 26. 통치와 정치 제주도청은 무엇 하나 내줄 생각이 없었다.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우리를 내몰아냈다. 하지만 우리도 아직 끝낼 생각이 없다. 길 건너 도청을 보며 무슨 일을 벌일지 궁리 중이다. 시력마저 금지할 수는 없다. 상상은 이미 도청 내부로 난입하고 있다. - 단장 27. 계단을 점거할 권리 평등과 대등. 이곳에서 평등과는 다른 대등을 사고하게 된다. 만약 평등이 자격이나 지위의 동등함이 전제된 관계의 수평성을 뜻한다면 대등은 각각의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성취된다. 같아서가 아니라 달라서 대등할 수 있다. - 단장 37. 평등과 대등 상대는 말을 함부로 부리지만 말이 소중한 우리는 말에 매인다. 상대가 남용해 그 말이 닳을수록 우리의 말은 가난해진다. 상대로 인해 말이 의미를 잃으면 우리가 지고, 말이 부패하면 역시 우리가 지는 불공정한 싸움. - 단장 44. 빼앗긴 언어 친구는 말한다. 볼 때마다 말한다.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 홀로 패배에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내게 그러할 것이듯. 그리고 우리는 패배를 패배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 단장 49. 승리의 시간대 이 책은 아직 운동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동요하며 이곳의 살이와 활동의 시도들을 모아 미래로 전달하고자 한다. 누가 어떠한 상황에서 수신자가 될까. 과연 이 기록이 미래에 쓰임이 있을까. 천막촌은 운동들을 위한 운동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답할 수 없다. 이 물음에 입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지금 당신이다. - 단장 50. 운동들을 위한 운동 차례 앞에 쓰다 천막촌을 기술하기 위해 음미해야 했던 단어들 천막촌의 역사 천막촌이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열 가지 이유 제2공항이 생기면 사라질 성산의 풍경 1. 단장과 광장 2. 현장과 광장 3. 새로운 마을과 다른 생활 4. 천막촌의 시작 5. 어떤 운동을 앞에 두고 있는가 6. 땅의 이름이 운동의 이름이 되는 곳들 7. 점거하는 자들 8. 특이한 지킴이 9. 촛불 이후 10. 긴급의 공간 11. 감전과 충전 12. 이 세계의 윤곽을 듣고 싶다 13. 자신을 알다 14. 타인을 알다 15. 예견하는 겁쟁이 16. 미력과 무력 17. 고苦와 쾌快 18. 내몰림과 자유 19. 앎은 운동하는가 20. 배움은 일어나는가 21. 장이 안다 22. 아하의 순간 23. 다른 미래와 예감 24. 과거와의 싸움 25. 배제와 난입 26. 통치와 정치 27. 계단을 점거할 권리 28. 실존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 29. 이주한 사람들 30. 경계의 존재 31. 마을과 커먼즈 32. 얽혀듦과 휘말림 33. 문제를 일으키는 능력 34. 합의와 입장 35. 결행과 연루 36. 선택하지 않은 것들의 역사 37. 평등과 대등 38. 권력화를 막아 39. 연극정치와 민주주의 40. 단식과 폭동 41. 싸움의 기술들 42. 비자림로 이야기 43. 제주녹색당과 강정에서 온 사람들 44. 빼앗긴 언어 45. 운동하는 말 46. 두 가지 동하다 47. 세계상의 획득 48. 운동의 성취는 직접적이다 49. 승리의 시간대 50. 운동들을 위한 운동 뒤에 적다

  • 오늘날의애니미즘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39-7 (93200) 출간일: 2024년 8월 30일 정가: 23,000원 제본: 무선 쪽수: 356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종교문화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생태/환경 오늘날의 애니미즘 지은이: 오쿠노 카츠미, 시미즈 다카시 옮긴이: 차은정, 김수경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점에서 만나는 애니미즘 인류세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늘의 사상으로서 애니미즘을 되살리다 폭넓은 경험과 시야를 가진 인류학자와 경이로울 만큼 명석하고 논리적인 불교학자가 서로의 이야기를 감싸며 새로운 존재론의 지평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흔하디흔한 존재로부터 펼쳐지는 장엄한 만다라 인류의 꽉 막힌 진로를 열기 위한 열쇠가 애니미즘에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저편 세계는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 만약 그 사이를 왕래하는 통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경험될까? 곰, 새, 엘크, 개구리, 풀, 나무 같은 다종의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인간은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인간 아닌 생명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며 무얼 말하고 싶은지, 이를 우리가 섣불리 환원하지 않고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을 살다 문득 온갖 만물과 이어진 ‘신’을 느끼는 일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평의 존재론과 연결될 때, 우리 삶과 세계의 흐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인류세의 특징들을 만든 고정된 이원론을 넘어서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시도는 무엇일까? 애니미즘은 우리가 자력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아님을 일깨우며, 우리를 무시무종의 세계로 이끄는 타력의 바람 속으로 안내한다. 그곳에서는 아주 작고 흔한 사물 혹은 생명에서도 저마다의 만다라가 피어난다. 어떤 존재든 영혼을 통해 여러 세계를 왕복 순환하고, 세상 만물은 저마다 독립해 있으면서도 서로를 포섭하며 잇달아 뒤얽힌다. 그렇게 흔하디흔한 존재로부터 장엄한 만다라의 그물망이 펼쳐진다. 인류는 우리 스스로 세계의 진로를 막아버린 과정을 냉철히 돌아보고 이제 막았던 통로를 열어야만 한다. 인류의 꽉 막힌 진로를 열기 위한 열쇠가 애니미즘에 있다.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 왕복하고 포섭하는 이야기들 『오늘날의 애니미즘』의 저자 오쿠노 카츠미는 인류학자이고 시미즈 다카시는 불교학자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힘을 합쳐 다양한 소재와 방법을 동원하고, 나아가 사유의 방법론 자체를 새로이 고안하면서 애니미즘이라는 거대한 주제와 씨름한다. 오쿠노 카츠미는 ‘존재론의 전환’이라 불리는 인류학 흐름을 연구하는 일본의 인류학자로서, 존재론의 인류학을 책, 잡지, 웹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왕성한 활동과 실력으로 일본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인류학자다. 시미즈 다카시는 불교학자이며 라이프니츠와 미셸 세르 연구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대승불교의 창시자인 나가르주나, 일본 헤이안 시대의 승려 구카이,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 도겐 등의 불교 철학 연구에 몰두한다. 수려하고 묵직한 논리 구사로 정평이 난 학자다. 두 사람은 연구 이력도 성격도 상반되는데, 이 책에서는 이 점이 오히려 논의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오쿠노 카츠미는 현장 연구 경험이 풍부한 인류학자답게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인도네시아의 푸난족, 시베리아의 유카기르족 등의 민족지적 사례를 통해 애니미즘 존재론을 논의한다. 시미즈 다카시는 초기 불교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는 사유 전통 속에서 이항대립 사고를 분석하는데, 특히 라이프니츠, 미셸 세르, 브뤼노 라투르, 그레이엄 하먼 등이 전개한 서양 철학을 분석적으로 끌어오는 한편 복수의 이항대립 조합을 사고하기 위해 ‘삼분법’을 제안한다. 삼분법이란 세 종류의 이항대립을 조합하여 그 연결을 변화시킴으로써 그것들의 이원성을 조정한다는 방법론이다. 초기 불교에서부터 이야기된 사구분별(四句分別)을 제4렘마, 혹은 테트랄레마로 해석하면서 초기 불교와 현대 철학의 교차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4장은 오쿠노 카츠미가, 2장과 5장은 시미즈 다카시가 썼으며, 3장과 6장에는 두 사람의 대담을 실었다. 오쿠노 카츠미가 애니미즘 존재론에서 왕복순환하는 영혼의 차원을 다룬다면, 시미즈 다카시는 상호포섭하는 세계의 차원을 다룬다. 두 사람이 각자 주목한 차원이 교차하며 애니미즘 지평의 구체성과 추상성은 더욱 풍성해진다. 동아시아 존재론으로서 애니미즘 이제 우리가 질문을 풀어갈 차례 이 책에서 불교 철학은 존재론의 위상을 갖는다. 동아시아의 불교 철학이 서양 철학과 동등한 형이상학의 지위를 갖는다는 뜻이다.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 속에서 새로운 인류학적 이론이 생성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우주론’을 논하기 위한 사상적 토대가 제시된다. 역자 차은정은 이 책이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 책은 인류학과 불교의 만남에서 어떤 앎이 생성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서로를 포섭하고 또 포섭당하며 끝없이 펼쳐지는 또 다른 그물망의 세계다. 생성의 인류학이자 존재론의 불교학이다. 이러한 존재론들을 앞으로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가 이 질문을 풀어갈 차례다.” 지은이 소개 오쿠노 카츠미 奥野克巳 일본의 인류학자. 1962년 규슈 북서부의 사가현(佐賀県)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学)에서 「재앙의 설명과 재앙에 대한 대처: 보르네오 섬 카리스 사회에서 정령, 독약, 흑마술(災いの説明と災いへの対処─ボルネオ島カリス社会における精霊, 毒薬, 邪術)」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릿교대학(立教大学) 이문화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 멕시코 원주민 사회를 방문하고, 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멜라네시아, 유럽 등지를 떠돌아다닌 후 방글라데시에서 잠시 승려 생활을 했다. 보르네오 섬의 화전 경작민인 카리스 부족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한 이래 지금까지 카리스 족과 더불어 수렵 채집민인 푸난 족에 관한 현지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는 또한 다자연주의, 다종인류학에 기반한 일본 인류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며 저술, 번역, 대중 세미나, 잡지 발간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에서 존재론적 인류학을 대표하는 인류학자 중 한 사람이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과 동물, 흥정의 민족지(人と動物, 駆け引きの民族誌)』(2011), 『고마움도 미안함도 필요 없는 숲의 사람들과 살아가며 인류학자가 생각한 것(ありがとうもごめんなさいもいらない森の民と暮らして人類学者が考えたこと)』(2018), 『사물도 돌도 죽은 자도 살아있는 세계의 사람들에게 인류학자가 배운 것(モノも石も死者も生きている世界の民から人類学者が教わったこと)』(2020) 등이 있다. 시미즈 다카시 清水高志 일본의 불교학자이자 철학자. 1967년 혼슈 중부의 아이치현(愛知県)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아이치대학(愛知大学)에서 「세르, 창조의 단자: 라이프니츠에서 니시다까지(セール, 創造のモナド─ライプニッツから西田まで)」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도요대학(東洋大学) 종합정보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라이프니츠, 미셸 세르, 브뤼노 라투르 등의 프랑스 철학을 연구했으며 최근에는 대승불교를 확립한 나가르주나(龍樹), 일본 불교의 기틀을 다진 구카이(空海) 등 사상가를 연구하며 불교를 동아시아의 형이상학이자 독자적인 존재론으로서 조명하며 그 논리를 탐구한다. 주요 저서로는 『다가올 사상사: 정보·단자·인문지(来るべき思想史─情報・モナド・人文知』(2009), 『미셸 세르: 보편학에서 행위자 연결망까지(ミシェル・セール─普遍学からアクターネットワークまで)』 (2013), 『밀려드는 실재(実在への殺到)』(2017), 『구카이론/불교론(空海論/仏教論)』(2023) 등이 있다. 옮긴이 소개 차은정 서울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규슈대학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대학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숲은 생각한다』, 『부분적인 연결들』, 『부흥문화론』(공역), 『타자들의 생태학』,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공역),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공역) 등이 있다. 이름 없는 삶의 궤적에 관심을 두고 역사 인류학적 연구를 해왔으며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 일본으로 귀환한 일본인의 기억과 삶’에 관한 연구로 박사 논문을 작성했다. 지금은 해방 이후 한국의 생태 운동사를 좇으며 한반도의 생명 사상에 내재한 종교성을 규명하고 있다. 김수경 서울대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 대학에서 「무덤의 금기와 경계: 부산 비석문화마을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서울생활문화 자료조사 『시흥동: 서울 서남부 전통과 현대의 중심』, 파주 중앙도서관의 역사민속문화 기록화 사업 『파주 DMZ의 오래된 미래, 장단』, 『장파리 마을 이야기』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끼는 다양한 방식들에 관심을 두고 현재는 무덤의 기술과 사자(死者)의 존재론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본문 중에서 애니미즘에는 이쪽과 저쪽 그 어느 쪽도 있을 수 있다는 〈뫼비우스의 띠〉 모양의 연결통로가 있었다. 사람이 곰을 보내주는 의례 속에 곰이 신의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면, 애니미즘이란 단지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보낸 것 자체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32쪽 이와타 케이지는 푸난족(말레이시아 사라왁주 발람 강가에 사는 수렵민)의 한 남자가 바람총을 입에 물고 ‘훗’하고 숨을 불어넣는 모습을 목격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화살이 일직선으로 공중을 날아가 빠른 속도로 과녁에 적중하기를 기대했겠지만, 화살의 종적은 묘연한 채 작은 새가 파닥거리며 땅에 떨어졌다. 이를 본 이와타는 화살이 날아가 탁 하고 작은 새가 떨어진 인과율의 한순간이 아니라 그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42~44쪽 연결통로의 안쪽에는 무인과적 연결의 원리로 성립되는 동시 또는 무시의 기이한 시간이 묻혀 있다. 샤먼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우연한 계기에 그것을 엿보거나 경험한다. 애니미즘이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안팎의 구별이 없는 하나로 이어진 공간상의 무한루프일 뿐만 아니라 저쪽 어딘가에 동시 또는 무시가 잠재해 있다. 그리고 그 연결통로의 어디쯤에서 사람은 느닷없이 충격적인 형태로 신과 만난다. -52쪽 그[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이렇듯 어느 한 이항대립을 우선 상정하고 사태를 그 양극의 어느 쪽으로도 결코 환원하는 일 없이, 그 위에 다양한 이항대립을 조합함으로써 그것들의 대립을 조정하거나 변환한다는 사고는 인류 보편적인 것이다. -64쪽 여러 대립 이항, 예를 들어 인간과 자연, 주체와 대상 등을 분리해서 사고하거나 혹은 그것들의 상호작용이 불가분해서 각각을 독립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한쪽을 다른 한쪽으로 환원하거나 여하간 그것이 오로지 인간과 자연의 문제로만 고찰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나 이원론적으로밖에 사물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애당초 그러한 주제를 단독으로 다루고자 할 때 이미 실제로는 별개의 대립 이항까지 얽혀들어 작용하고 있다. -66~67쪽 ‘과학의 대상을 관계짓고 서술하는 주체가 처음부터 그 주체와 분리된 것으로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지식을 얻어가는 것이 과학’이라는 근대인의 사고는 사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체와 대상, 하나와 여럿의 복잡한 교착 관계를 은폐하고 있으며 실태와는 크게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77쪽 나는 여기서 세 개의 이원성(이항대립)을 논했는데, 그것들을 모두 조합하면 확실히 일즉다 다즉일의 세계관으로 알려진 화엄불교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느껴집니다. 겉보기에 전혀 다른 영역인 과학 및 기술 분야에서 라투르가 분석한 것은 작금에 다다른 과학의 상황론이지만, 세르가 말하듯이 여러 학문이 서로 ‘그물망’ 모양의 총체를 이룬다면 그것 또한 일즉다 다즉일의 세계입니다. -109쪽 오쿠노 씨가 인용한 마츠오 바쇼의 ‘개구리와 파문’ 이야기인데요, 이것도 참 좋은 비유입니다.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나타나고, 그 공간에 구멍이 있어 그곳으로 시간이 스며든다. 시간이 스며든다는 것은 순환한다는 것이지요. 동시성이 있으면서 순환이 있다는 것. 이것들이 교차하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적 사건 모두 마침내 테트랄레마의 세계로 변해간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141쪽 예를 들어 보르네오의 이반(Iban)족은 절구와 절굿공이를 사용해 매일 아침 쌀을 찧어 정미합니다. 사실 그 절구는 바닥에 일종의 장치가 있어 악기가 되기도 하는데, 그들에게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생활의 구심력이 됩니다. 벼의 신도 그 소리를 기뻐하며 구름이나 빗물이 되어 다시 논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쌀을 먹는 것인지 쌀에 먹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그러한 시작도 끝도 없는 세계는 또한 순환의 세계이기도 해서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정미(精米) 소리라는 것이지요. 거기에 사람들과 그 하루하루의 삶이 있습니다. -145쪽 이와타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즐겨 그렸습니다. 수묵화풍의 감귤이 다섯 개 그려진 그림이 나오는데요, 보통 여백은 그림의 하얀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와타는 그림에서 감귤을 오려내면 뻥 뚫린 구멍이 생기고, 그 잘려나간 부분 이외는 전부 여백이라고 합니다. 하얀 부분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누구라도 평면에서 감귤과 그 옆의 공간을 이항적으로 파악한 평면적 시각에서 하얀 부분을 여백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것을 포섭하는 삼차원의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도 감귤이 아닌 부분, 즉 여백이 있다. 전부 연속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게 참 재미있는 사례 같아요. -153~154쪽 애니미즘이란 자신과 자신의 주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를 항상 열어두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물과 생명에 주의를 기울이면 사물과 생명 그리고 세계로부터의 작용에 응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한다. “거대한 ‘타력’을 느끼면서 ‘자력’을 잊지 않는 것, 이렇듯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사상으로서 ‘타력’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여기서 말하는 애니미즘이다. -185~186쪽 이항대립들 사이의 이러한 조합 조작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20세기 후반 인류학계와 철학계를 휩쓴 포스트모던 논의가 어떠했는지를 상기해보면 역으로 한층 더 명확해질 것이다. 서양적 주체와 그 문명, 그와 대비된 외부적 타자라는 이원론적 가치관을 상대화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주창되었는데, 이것은 이미 복수의 이항대립—‘주체/대상’, ‘안/밖’(피포섭과 포섭)—이 무분별하게 결부되는 양상을 보였다. -222쪽 [포스트모던의 상대주의는] 복수의 이항대립 조작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빗나간 서양문명 비판이 행해졌고, 비서양의 문명적 뿌리를 가진 우리까지 그러한 시선에서 서양문명의 상대화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어서 우리 스스로 문명의 독자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225쪽 애니미즘 사상이란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응답이며 부름이기도 한, 표현과 함께 경험되는 다양한 정념과 진배없다. -248쪽 통일된 주체를 획득하기 위해 ‘주체/대상’의 이원론에서 끝까지 대상을 부정하려는 것 혹은 ‘이마고’의 매혹에 끝없이 유인되는 것은 애니미즘의 세계관으로 보면 속임수에 속아서 포획되는 사냥감의 심성이다. 즉, 근대인이라는 의미에서 주체적이고자 하는 것은 유카기르족에서는 오히려 동물인 것, 포획물인 것, 그저 고기인 것이다. -256쪽 결국 나 자신이 삼분법으로 사고하게 된 것은 인류가 정말로 보편적으로 사고해온 문제의 가장 근저에 있는 것은 세계의 다양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지역에는 한정된 하나의 생활방식이 있고, 잠시 잠깐이라도 그것과 모순되지 않는 형태로 풍부한 다양성이 있다는 것. 이것이 인류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애니미즘의 근저에 있는 사고방식이 아닐까요? -282쪽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최초의 근본적인 이원론, 즉 하나와 여럿의 이항대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느 한쪽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양극이 양극을 서로 포섭하는 모델을 생각해야 합니다. -284~285쪽 차례 들어가며 1장 애니미즘, 무한의 왕복 순환과 붕괴하는 벽 2장 삼분법, 선, 애니미즘 3장 대담Ⅰ 4장 타력론의 애니미즘 5장 애니미즘 원론—‘상의성’과 정념의 철학 6장 대담Ⅱ 나오며 역자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보도자료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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