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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기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41-0 (93380) 출간일: 2025년 8월 11일 정가: 25,000원 제본: 무선 쪽수: 392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예술 > 디자인/공예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생태/환경 > 생태/환경 일반 만들기 인류학, 고고학, 예술, 건축 지은이: 팀 잉골드 옮긴이: 차은정, 오성희, 권혜윤 만들기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만들기는 앎을 창조하고, 환경을 짓고, 생을 변환시킨다. 이 책에서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의 본질이 디자인(설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를 행하는 과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해놓은 결과를 물질에 투영하는 것이 아니며, 제작자와 물질이 나란히 조응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과정임을 역설한다. 나아가 사물을 고정된 물체로 환원하지 않고 생성의 흐름을 가진 살아 있는 물질로 감각하는 앎의 방식을 제시한다. 잉골드의 관점에 따르면 ‘앎’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사물과 함께 조응하는 방식으로 성장하여 비로소 우리의 일부가 된다. 이 책은 사물을 창조하는 활동의 의미, 질료와 형상의 관계, 디자인이 가진 문제, 살아 있는 풍경을 인식하는 일, 행위의 의미, 우리 몸에서 손의 능력과 역할 등에 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더불어 선사 시대 석기 제작, 중세 시대의 성당 건축, 둥근 둔덕의 생성, 기념물의 건립, 연 날리기,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 만들기에 관한 다양하고 참신한 사례를 선보인다. 만들기는 생성하고 변형하는 세계 속에서 계속 나아가는 생명의 행진, 즉 조응이다. 내용 소개 살아 있는 사물들과 조응하면서 함께 자라는 과정 생성하고 변형하는 세계 속에서 계속 나아가는 생명의 행진 연인들의 다정한 시선처럼 서로가 구별되지 않을 때까지 감응과 물질이 씨줄과 날줄로 서로를 휘감는 혼합이야말로 만들기의 본질이다. —「제7장 도주하는 신체들」중에서 『만들기』는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2013년에 출간한 『Making』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이른바 ‘선의 인류학 3부작’이라고 불리는 세 권의 저술 중에서 『라인스(Lines)』(2007)와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Life of Lines)』(2015) 사이에 펴낸 두 번째 저술이다. 이 책은 물질 세계를 고정된 것이 아닌 생성하고 변형하는 움직임으로 인식하도록 이끈다. 이때 인간 존재 역시 다른 존재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사물’로서 세계의 내부에서 사물들과 조응하며 성장한다는 점을 잉골드는 강조한다. 잉골드는 이 책에서 이론가와 실천가를 대립적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에 반대하며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통합된 관점에 따르면 ‘앎’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앎’은 내부로부터 사물과 함께 조응하는 방식으로 성장하여 비로소 우리의 일부가 된다. 잉골드는 이러한 앎의 방식은 예술과 건축에서 그러하며, 인류학과 고고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아래는 각 장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한 것이다. 제1장 내부로부터 알기 “당신이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으로 성장해야 하고, 그것이 당신 안에서 성장하게 해서 당신의 일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 앎은 외부에서 주어지는가? 내부에서 자라나는가? 잉골드는 외부의 초월적 위치에서 대상화를 통해 아는 것이 아닌 세계의 내부에 참여하고 경험함으로써 아는 방식에 주목한다. 진정한 앎의 방식을 배우기 위해서는 ‘~에 대해’ 배우는 방식을 버리고 ‘~와 함께’ 배우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인류학에서의 ‘민족지’ 방법을 비판한다. 회고적 서술로 환원하는 민족지의 기록 방법에 반대하면서, 그 대신 참여적이고 변환적인 실천의 방식으로 ‘참여 관찰’을 옹호한다. 제2장 생명의 물질 “이것은 사물을 다시 생명으로 되돌리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만들기를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달성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넣고 그걸 재료에 투영하여 마침내 재료가 의도한 형태를 갖추는 순간 제작이 ‘완성’됐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질료형상론의 영향을 받은 사고방식이다. 잉골드는 이러한 인식에 반대하며 만들기의 본질은 투영을 통해 인공물의 재료에 정신을 부과하는 일이 아니며, 실천자와 물질이 생동하는 흐름을 따르면서 형태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잉골드는 질료형상론을 비판하면서 질베르 시몽동의 개체화 이론을 참조하여 형태발생론을 전개한다. 물질문화 연구에서 말해지는 ‘물질성’ 개념에 대한 비판도 포함된다. 제3장 주먹도끼 만들기에 관하여 “깨지기 쉬운 부싯돌은 숙련된 석기 제작자의 손 안에서 액체처럼 흐르게 되고 흐름의 소용돌이로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모든 잠재적 타격혹은 회오리가 되어 이로부터 파단면이 파도처럼 잔물결을 이루며 퍼져 나간다. 석기 제작자는 격지를 떼는 리드미컬한 타격 운동을 하며 이 흐름을 따라간다.” 주먹도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문제는 오랫동안 ‘선사시대의 가장 기이한 수수께끼’로 여겨졌으며, 그동안 고고학은 그 제작 방법에 대해 다양한 학설을 내놓았다. 전통적 가정은 주먹도끼의 대칭적 형태를 만들려는 디자인이 ‘미리’ 있었고 그에 따라 도끼가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잉골드는 주먹도끼 제작을 둘러싼 여러 학설들을 검토하면서 사물을 창조하는 활동의 본질을 재검토한다. 이로써 석기와 같은 도구 역시 질료와 형상의 관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힘과 물질의 관계를 통해, 즉 조응의 활동으로 만들어졌음을 주장한다. 제4장 집 짓기에 관하여 “중세 건물은 바로 그 ‘돌보는’ 과정, 즉 숙련된 공예술의 지성에서 디자인되었다. 우리는 건물을 지은 석공에 대해, 그들이 그리면서 디자인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하면서 그렸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디자인은 드로잉처럼 작업의 과정이었지 정신의 투영이 아니었다.” 중세 대성당은 사전에 설계된 디자인의 산물이었을까? 중세 석공들 역시 도면을 그렸다는 증거가 있지만, 그들이 그린 도면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건축 설계도와 같은 도면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드로잉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드로잉에는 현장에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간 과정이 반영돼 있다. 따라서 중세 시대의 대성당 같은 거대한 규모의 건물 역시 “어떤 이름 모를 건축가의 사변적 비전을 장엄하게 완성한 것”이 아니라, 현장의 여러 석공과 일꾼들이 수시로 가졌던 “의사소통 왕래”와 “엉성한 실천”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이 확인된다. 제5장 눈뜬 시계공 “디자인이란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실행 이전에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 장은 디자인을 둘러싼 논쟁을 더 깊이 탐구한다. 디자인은 무엇을 의미할까? 디자인은 더 이상 만들기와 구분될 수 없는 것일까? 디자인과 만들기는 단지 같은 것을 나타내는 두 단어일 뿐일까? 잉골드는 디자인이 완결성이나 종결을 추구하기보다는 희망이나 꿈을 다루면서 열린 결말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획이나 예측이 아닌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과 꿈을 뒤쫓고 있어야만 창조적 상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제6장 둥근 둔덕과 대지 하늘 “둔덕에서 과거는 삶의 지속적인 연속성을 위한 토대로서 모여든다. 반면 기념물에서 과거는 뒤로 밀려나고 오직 유물로서만 남는다.” 둥근 둔덕은 어떻게 생겨날까? 대지와 하늘은 어떻게 만나고 뒤섞이는가? 나무는 어떻게 자라는가? 바람은 숲속에서 무엇을 하는가?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잉골드는 환경이란 “대상의 환경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환경은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부풀어오르고 성장하고 감싸고 펼쳐지고 흐르는 환경이다. 즉 환경은 생생한 에너지와 힘으로 자신을 만들어나간다. 때문에 잉골드는 우리가 설령 ‘대상의 세계’를 점유(occupy)한다 할지라도 그 점유자에게 세계는 등 돌린 모습으로만 보일 것이라 말한다. 세계의 움직임과 지속적인 형성에 동참하는 방식. 잉골드는 그것을 주거(inhabit)라고 표현한다. 제7장 도주하는 신체들 “장인이 물질로부터 사고하듯이, 무용수는 신체로부터 사고한다. 생동하며 역동적으로 구성되는 신체 속에서 인격과 유기체는 하나다. 신체는 유기체-인격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신체 또한 사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사람들과 사물들의 관계를 논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또한 사물들이기 때문이다.” 신체란 무엇일까? 잉골드는 신체란 활동이 격정적으로 펼쳐지는 소란 자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신체가 무엇이냐고 묻는 상황에 다시 주목한다. 신체에 관해 사고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신체로부터 사고한다. 신체는 신체화의 대상이 아니라 활성화하는 무엇이다. 잉골드는 고정된 신체화를 거부하는 활성화의 논의를 통해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은 물론 인격과 유기체의 이분법도 해체하고자 한다. 나아가 ‘객체의 행위성’을 논하는 현대 이론들을 비판한다. ‘행위성’은 사물을 ‘객체’로 격하시키는 잘못된 전제에 기반한 사고로서, 객체가 없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행위성이 아닌 단지 행위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잉골드는 하나의 예로서 연날리기를 설명한다. 연이 둥실 떠올라 하늘에서 춤추기 위해서는 연 날리는 사람, 연, 공기의 작용이 필요하다. 이때 인간만이 주체이고 연과 공기가 객체라면, 연과 공기에는 ‘행위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 공기란 스스로 행위하지 행위성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연도 공기의 행위 덕분에 움직이지 자신의 행위성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때문에 잉골드는 연날리기가 ‘행위성의 춤’일 수 없으며, 이는 ‘행위의 춤’이라고 말한다. 연의 비행은 사람의 행위, 연의 행위, 공기의 행위가 조응하며 활성의 춤을 추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객체는 없다. 제8장 손으로 말하다 “한마디로 손은 말할 수 있다. 손은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서 그 진행조건에 대한 세심한 주의력으로도 말할 수 있으며, 또 손이 만들어내는 동작과 [재료에 흔적을 남기는] 기술적 행위로도 말할 수 있다.” 손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고고학자 앙드레 르루아그랑이 『행위와 말』에서 설명하길, 과거 인간이 어느 순간 사회생활과 상징문화의 영역에 진입하면서 손과 얼굴의 관계가 재설정되었는데, 손은 기술적 운영을, 얼굴은 언어와 발화의 운영을 맡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잉골드는 여기서 만든다는 것은 즉 대화하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만들기를 수행하는 손은 르루아그랑의 말대로 기술을 운영하는 것일까? 이 장에서 잉골드는 손이 말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눈이 시각적이고 합리적인 기관인 반면 손은 촉각적이며 감응적으로 조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잉골드는 손의 퇴행에 맞서 손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하는 손이 그리는 선(line)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제9장 선을 그리다 “말하는 그리기는 이미지가 아니며, 이미지의 표현도 아니다. 그것은 몸짓의 흔적이다.” 앞서 논의한 대로 제작 과정에서 물질과 교류하는 손의 역할은 다양하다. 손은 말하는 손이자 느끼는 손이자 그리는 손이다. 이 장에서는 그리는 손이 하는 일을 살펴본다. 손이 하는 일 중 하나로 ‘말하는 방식으로서의 그리기’가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손으로 그린 모든 선은 신체 동작의 흔적이 되기 때문이다. 신체동작적인 선은 곧 말하는 그리기의 선이다. 말하는 그리기란 마치 음악 연주와도 같다. 첼로 연주를 예로 들면, 활 털을 현에 접촉해 선율을 자아내는 것, 이것은 연필로 종이 위에 드로잉의 자취를 새기는 일과 마찬가지로 말하는 그리기 행위다. 이 같은 사례는 고고학자의 발굴 작업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고학자가 모종삽으로 발굴 현장의 단면을 감각하며 따를 때 이 또한 말하는 그리기와 같다. 건물 짓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건설자가 삽과 같은 건설 도구로 벽과 통로를 만들 때 그의 손은 말하는 그리기를 행하는 것과 다름없다. 손이 수행하는 말하는 그리기를 검토한 후 잉골드는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선의 본성과 특질을 검토한다. ‘통합되고 일관된 사고’를 지향하는 직선형 사람들의 방식에 견주며 잉골드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구불구불한 선을 따라 걷는 당나귀의 경로이다. 잉골드는 우리도 직선의 폭주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대로 자기 생을 발견하며 길을 따라 나아가는 당나귀의 행로를 따르자고 말한다. 지은이 소개 팀 잉골드 Tim Ingold 영국의 인류학자. 1948년 출생. 애버딘 대학교 사회인류학과 명예교수이며 영국학사원과 에딘버러 왕립학회 회원이다. 1970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사회인류학 학사학위를, 197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연구를 위해 핀란드 북동부의 스콜트 사미족을 현장 조사하며 스콜트 사미족 공동체의 생태 적응, 사회 조직 및 민족 정치를 연구했다. 이후 헬싱키 대학교를 거쳐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맨체스터 대학교에서는 북극 북부 민족 연구와 더불어 순록 무리와 사냥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갔다. 이 연구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 인간-동물 상호작용의 개념, 수렵 채집 사회와 목축 사회의 비교 인류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잉골드는 이후 인류학, 생물학, 역사학 분야에서 ‘진화’ 개념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연구했으며,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언어와 기술의 연관성에 관심을 가지고 기술과 예술의 인류학을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1988년 이후로는 생태인류학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는 한편, 지각 체계에 대한 제임스 깁슨의 연구에 영향을 받아 인류학과 심리학에 생태학적 접근법을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환경 지각과 숙련된 실천이라는 주제를 연결하는 연구를 통해 2000년에 『환경 지각(The Perception of the Environment)』을 출간했다. 2002년부터는 환경 지각에 관한 초기 연구에서 비롯한 세 가지 주제, 즉 첫째로는 걷기의 역동성, 둘째로는 실천의 창의성, 셋째로는 글쓰기의 선형성을 주제로 탐구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삶과 경험에서 움직임, 지식, 기술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했다. 이 연구로 2007년에 『라인스(Lines)』를 출간했다. 2013년에는 인류학, 고고학, 예술, 건축의 연관성 및 인간과 인간이 거주하는 환경의 관계를 탐구하여 『만들기(Making)』를 출간했다. 2015년에는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Life of Lines)』를 출간하면서 이른바 ‘선의 인류학 3부작’을 선보였다. 이외에도 여러 인류학 저서를 출간했다. 그의 학문과 실천은 현대 인류학과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옮긴이 소개 차은정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규슈 대학교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 대학교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숲은 생각한다』, 『부분적인 연결들』, 『부흥문화론』(공역), 『타자들의 생태학』,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공역),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공역), 『오늘날의 애니미즘』(공역) 등이 있다. 이름 없는 삶의 궤적에 관심을 두고 역사 인류학적 연구를 해왔으며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 일본으로 귀환한 일본인의 기억과 삶’에 관한 연구로 박사 논문을 작성했다. 지금은 해방 이후 한국의 생태 운동사를 좇으며 한반도의 생명 사상에 내재한 종교성을 규명하고 있다. 오성희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유네스코 지정유산을 활용한 교사용 지도서 개발 연구(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기획)에 참여했으며, 『유네스코 유산, 평화를 품다』를 공동 집필했다. 파주 중앙도서관의 역사민속문화 기록화 사업 『기억으로 남는 새말』, 『민통선과 함께 살아온 임진강변 탄현 6개 마을』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문화유산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역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유산(living heritage)으로서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공존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남북접경지역 무속과 문화유산을 공동체와 신령, 정체성의 서사를 통해 살펴보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권혜윤 라이스 대학교 인류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지리산 국립공원과 마을 주민의 자연 보호 관념과 실천」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옮긴 책으로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공역),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공역)가 있다. 현재 자연 보존 및 복원이 어떻게 인간과 비인간의 삶을 재구성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본문 중에서 스스로 알아라! 이는 40여 년 전 핀란드 북동부 사미족(Saami) 사람들 사이에서 초보 현장연구자로 있던 내가 실용적인 작업들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을 때 나의 연구참여자들이 종종 유일하게 해주었던 조언이다. -15쪽 당신이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으로 성장해야 하고, 그것이 당신 안에서 성장하게 해서 당신의 일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 -15쪽 탐구의 기술에서 사고는 우리가 작업하는 물질의 유동 및 흐름과 함께 따라 나아가고 이에 끊임없이 답하며 수행된다. 이 물질은 우리가 물질을 통해 생각하듯이 우리로 생각한다. 여기서 모든 작업은 하나의 실험이다. -29쪽 우리는 만들기를 하나의 투영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이는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먼저 머릿속에 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원자재를 마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투영은 재료가 의도된 형태를 갖추는 순간에 끝을 맺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인공물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62쪽 나는 그보다는 만들기를 성장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싶다. 이는 처음부터 제작자를 생동하는 물질로 가득한 세계 속 참여자로 두는 것이다. 이 물질은 그가 함께 작업해야 하는 것이고, 만들기의 과정에서 제작자는 그것과 함께 ‘힘을 합치거나’, 그것을 함께 놓거나 분리하고, 합성하고 정제하면서 무엇이 나타날지 기대해본다. -63쪽 아슐리안 양면석기라는 기묘한 사례에 대한 탐구는 형성 중에 있는 세계(마치 오래 전에 완성되어 우리가 되돌아볼 수 있는 세계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세계)의 본질적 관계가 질료와 형상의 관계가 아니라 힘과 물질의 관계라는 결론으로 우리를 거침없이 이끈다. -120~121쪽 깨지기 쉬운 부싯돌은 숙련된 석기 제작자의 손 안에서 액체처럼 흐르게 되고 흐름의 소용돌이로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모든 잠재적 타격혹은 회오리가 되어 이로부터 파단면이 파도처럼 잔물결을 이루며 퍼져 나간다. 석기 제작자는 격지를 떼는 리드미컬한 타격 운동을 하며 이 흐름을 따라간다. -122~123쪽 중세 건물은 바로 그 ‘돌보는’ 과정, 즉 숙련된 공예술의 지성에서 디자인되었다. 우리는 건물을 지은 석공에 대해, 그들이 그리면서 디자인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하면서 그렸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디자인은 드로잉처럼 작업의 과정이었지 정신의 투영이 아니었다. -151쪽 아슐리안 양면석기라는 기묘한 사례에 대한 탐구는 형성 중에 있는 세계(마치 오래 전에 완성되어 우리가 되돌아볼 수 있는 세계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세계)의 본질적 관계가 질료와 형상의 관계가 아니라 힘과 물질의 관계라는 결론으로 우리를 거침없이 이끈다. -158쪽 디자인이란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실행 이전에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185~186쪽 디자인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디자인은 완결성이나 종결을 추구하기보다는, 계획이나 예측이 아닌 희망이나 꿈을 다루며 열린 결말을 지향하는 것이다. 핀란드의 건축가 유하니 팔라스마가 썼듯이, “디자인은 언제나 사전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찾는 과정이다.” -187쪽 디자인의 과제는 이 희망과 꿈을 뒤쫓아 되돌리는 것이다. 무거운 물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채 가볍게 여행하며, 디자이너의 선은 도망치는 상상력의 환영을 뒤쫓고 그것들이 도망가기 전에 고삐를 죄어, 제작자와 건설가가 자신들의 보다 느리고 무게감 있는 속도로 따라갈 수 있도록 실천 현장에 이정표처럼 흔적을 남긴다. -187~188쪽 이러한 감싸기와 펼쳐짐의 관계에서, 둔덕은 기념물과 다시 한 번 차이를 드러낸다. 올위그가 쓰기를, “팅에서는 법이 살아 있는 기억에 의지했지만, 기념물은 문자 그대로 죽은 돌에 기억을 새긴다”(ibid.: 33). 둔덕에서 과거는 삶의 지속적인 연속성을 위한 토대로서 모여든다. 반면 기념물에서 과거는 뒤로 밀려나고 오직 유물로서만 살아남는다. 둔덕-사물이 우리를 초대하여 둔덕 형성 과정에 참여하게 하지만, 기념물은 우리를 밖으로 차단한다. 그것은 닫히고 완결되었다. -212쪽 장인이 물질로부터 사고하듯이, 무용수는 신체로부터 사고한다. 생동하며 역동적으로 구성되는 신체 속에서 인격과 유기체는 하나다. 신체는 유기체-인격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신체 또한 사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사람들과 사물들의 관계를 논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또한 사물들이기 때문이다. -235쪽 이론가들이 사물을 소생시키려고 헛된 노력을 들여 부득불 객체 행위성 개념을 발동한 것은 당연하다! 행위성에 대한 호소는 달리 말해 신체화(embodiment)의 논리, 곧 사물을 그 자체로 바꾸려는 논리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 신체화의 논리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한 번에 힘을 몰아 신체화된 행위성의 망령을 쫓아내고 사물에 활성화된 생명을 다시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238쪽 한마디로 손은 말할 수 있다. 손은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서 그 진행조건에 대한 세심한 주의력으로도 말할 수 있으며, 또 손이 만들어내는 동작과 [재료에 흔적을 남기는] 기술적 행위로도 말할 수 있다. -288~289쪽 기술의 향상은 손으로 말하는 감응적 조응을 손끝의 촉감적 섬세함으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손이 손끝으로 대체되면서 손이 하는 다루기, 뻗기, 쥐기는 그 자체로 활성화된 움직임이라기보다 신체의 경험을 모델화한 이해의 메타포가 되고 있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다루고’ 개념을 ‘쥐어서’ 어느 수준의 지식으로 ‘뻗어’ 간다고 말하지만, 이때 우리 손을 직접 사용한다는 것은 아니다. -306쪽 참된 학자는 모두 당나귀다. 완고하고 변덕스럽고 끈질기고 호기심이 왕성하고 성급하다. 자신의 세계에 매료되고 감탄한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속도대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들은 희망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확실성 따위의 환상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가는 길은 이리저리 열려 있다. 그것은 예측 불가능하다. 그들은 사물의 씨알을 마음에 담고 좇으며, 그렇게 하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모든 배움은 자기 발견이다. 다음은 어디인가? 스스로 알아라! -352쪽 차례 서문과 감사의 말 제1장 내부로부터 알기 제2장 생명의 물질 제3장 주먹도끼 만들기에 관하여 제4장 집 짓기에 관하여 제5장 눈뜬 시계공 제6장 둥근 둔덕과 대지 하늘 제7장 도주하는 신체들 제8장 손으로 말하다 제9장 선을 그리다 역자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보도자료 다운로드
- 침묵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42-7 (03600) 출간일: 2025년 11월 10일 정가: 33,000원 제본: 무선 쪽수: 376쪽 판형: 186×216mm 분야: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음악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예술일반 침묵 존 케이지의 강연과 글 지은이: 존 케이지 옮긴이: 나현영 책 소개 침묵을 통해 세계를 다시 듣게 하는 책 퍼포먼스, 사운드아트, 개념미술 등의 지적 기초를 낳은 현대적 선언 음악론을 넘어 예술과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탐구한다 “이 책은 다르게 생각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케이지는 20세기 예술가들이 신경증에서 벗어나는 길을 생각했고, 우리가 거기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더 생생하고 덜 경직된 세계를 발견했다. 《침묵》은 이러한 세계로 데려가는 안내서다.” 1961년 《침묵》의 출간은 예술사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된다. 이 책의 출간은 전후 예술의 방향을 바꾼 ‘사상적 사건’이었다. 《침묵》은 존 케이지가 청년기에서 장년기까지 쓴 글 중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글을 망라해 엮은 책이다. 1937년에서 1961년 사이에 쓴 23편의 기고문과 에세이, 강연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서 케이지는 ‘음악이란 무엇인가?’ ‘왜 작곡을 하는가?’를 질문한다. 케이지는 작곡을 의도나 표현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흐름과 하나인 행위로 다시 정의하고자 한다. 예술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고, 의도가 아닌 우연이며, 유의 생성만이 아닌 무의 생성이라고 바라본다. 케이지는 예술을 세계로부터 분리된 창조 행위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의 울림과 함께하는 활동으로 되돌리려 한 것이다. 케이지는 삶을 산다는 것은 듣는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리가 차단된 무향실에 있더라도, 청력 기관을 잃더라도, 그럴 때조차 우리는 자신의 신체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 경험은 죽는 순간까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지속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과 소리는 불가분이다. 이때 소리를 통제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세계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수록 삶은 더 근사한 것이 된다고 케이지는 주장한다. 케이지는 〈선언〉에서 “곡 하나를 쓴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쓴다. 더불어 〈무에 관한 강연〉에서는 “나는 할 말이 없고 할 말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으며 이것이 내게 필요한 시다”라고 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고, 냉전의 심화와 핵전쟁의 공포를 겪었으며, 사회 분위기가 소비지상주의와 표준화의 열망에 급속히 물드는 것을 경험한 케이지는, 생애 내내 압도적인 ‘큰 것’에 반대했다. 그리고 인간 역시 자아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보았다. 케이지는 자신의 작업들을 무로부터 아무것도 아닌 것을 생성하는 일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폭력에 저항하며 시(時)의 삶을 지속하려는 그의 방식이었다. 케이지는 유(something)가 아닌 무(nothing)라는 토대가 세계의 보편성이라고 천명하면서, 무의 원리에서 유를 생성하는 다양한 실험을 펼쳤다. 케이지는 이 작업들의 궁극적 목적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존재를 세계 속에 개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로써 그가 갈망한 것은 바로 삶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일이었다. 음악뿐 아니라 시와 철학, 무용과 회화, 예술 그 자체의 본질에 질문을 던진 현대의 가장 독창적인 예술론 중 하나로 평가되는 이 책은 지금도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마르지 않는 예술적 경험을 선사한다. 아래는 책에 실린 주요 글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음악의 미래: 크레도〉 이 글은 존 케이지가 이십대 중반이던 1937년에 작성한 초기의 음악적 선언문으로, 그가 이후 평생 동안 추구할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미래의 음악에서는 ‘불협화음 대 협화음’이 아닌 ‘소음과 악음(樂音)의 충돌’이 핵심이 될 것이며, 기존 화성학은 소리의 전 영역을 다루는 작곡가에게는 부적절하게 여겨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험 음악〉 이 글에서 케이지는 자신의 음악을 ‘실험 음악’으로 정의하며, 청자에 중심을 두는 태도를 통해 실험 음악의 의미를 확장한다. 작곡가가 아니라 청자의 입장에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음악을 ‘실험적’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실험 음악은 기보되지 않은 소리, 즉 주변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소리의 세계로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실험 음악: 법요〉 이 글은 케이지의 선(禪) 사상이 깊이 반영된, 그의 음악적 방법론에 대한 가장 명료한 교리적 진술 중 하나다. 케이지는 ‘실험적’이란 단어가 성공과 실패로 판단되는 행위가 아니라 단지 그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행위에 대한 기술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명확히 정의한다. 작곡가가 “의도와 비의도를 구별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주관-객관, 예술-삶 등의 이분법이 사라지고 소재(소리)와의 합일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프로세스로서의 작곡〉 - I. 변화 - II. 불확정성 - III. 소통 “I. 변화”에서는 케이지의 작곡 철학이 어떻게 통제에서 해방으로, 결과에서 과정으로 이동했는지를 보여준다. “II. 불확정성”에서는 케이지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동료 작곡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며, 작곡가의 통제가 풀리고 연주자에게 자유와 책임이 부여되는 다양한 방식을 논한다. 작품의 어떤 요소가 확정적이고 어떤 요소가 불확정적인지에 따라 연주자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비교 분석하며 비이원론적 사상을 심화시킨다. “III. 소통”에서는 케이지의 작곡 철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음악의 본질’과 ‘소통의 의미’를 다룬다. 일련의 선문답 같은 질문과 인용을 통해 서구 전통에서의 ‘소통’ 개념을 해체하고, 예술을 무목적인 삶의 과정으로 재정의한다. 무위(無爲)와 원융무애(圓融無礙)와 같은 동양적 관점을 제시한다. 〈작곡법〉 - 〈주역 음악〉과 〈상상의 풍경 4번〉에 사용된 작곡 프로세스를 설명한다 - 〈피아노를 위한 음악 21~52〉에 사용된 작곡 프로세스를 설명한다 케이지가 ‘우연성 작업’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주역 음악〉과 〈상상의 풍경 4번〉의 작곡 프로세스는 《주역》의 점괘를 통해 이루어졌다. 케이지는 작곡가의 주관을 완전히 배제하고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우연성 프로세스의 목표는 작곡가 개인의 취향, 기억 등의 심리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피아노를 위한 음악 21~52〉는 이전의 엄격한 우연성 기법에서 한 단계 나아가 그래픽 기보와 불확정성 연주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의 작곡법은 투명 종이에 무작위로 표시된 흠집의 위치를 마스터 페이지와 중첩하여 음표를 결정한 후, 우연성 작업으로 연주 기법을 지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작곡된 기보가 완성된 후에도, 연주에 관한 다수의 상황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연주자는 극도의 자유를 얻게 된다. 여기서 케이지는 이러한 경우 “과연 무엇이 작곡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현대 음악의 전조〉 이 강연은 음악의 목적, 구조, 기법 등 전통적인 정의를 재검토하고, 무조성 이후 현대 음악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케이지는 서구 음악의 두 가지 중심축인 구조와 형식을 대립되는 요소로 설명하고, 화성 구조의 해체로 인한 무조성 등장의 의미를 분석한다. 〈미국 실험 음악의 역사〉 과거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소리 그 자체를 추구하는 미국 실험 음악의 맥락과 철학을 규정한다. 케이지는 이 글에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선형적 시간관을 거부하고, 우연성 작업과 불확정성 연주를 통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을 하는 익명성의 음악을 옹호한다. 케이지가 규정하는 실험 음악의 최종 목적은 개인의 표현이나 예술적 기교와 취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에릭 사티〉 에릭 사티의 음악과 철학을 분석하며 케이지 자신의 실험 음악 미학을 정립하는 글이다. 케이지는 사티를 전통적 예술 개념을 거부하고 무관심에서 ‘소리 그 자체’를 이끌어낸 선구자로 해석한다. 사티가 제안한 ‘가구 같은 음악’은 케이지의 불확정성 음악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케이지가 사티에게서 발견한 ‘무목적성’과 ‘주변 환경의 수용’은 케이지 자신의 불확정성 음악과 〈4분 33초〉 등의 작곡에 직접적인 사상적 배경이 된다. 〈에드가르 바레즈〉 케이지는 에드가르 바레즈가 모든 가청 현상을 음악의 소재로 받아들이고 소음을 도입함으로써 현대 음악사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케이지는 바레즈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개인적 상상력이 소리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필요성과는 불일치한다고 보는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케이지에게 있어 바레즈는 20세기 음악의 본질을 확립한 선구자이지만, 그의 작곡 방식은 여전히 과거의 예술가적 관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무용에 관한 네 편의 소고〉 - 목표: 새로운 음악, 새로운 무용 - 우아함과 명료함 - 오늘날…… - 음악과 무용에 관한 2쪽의 지면과 122개의 단어 “목표: 새로운 음악, 새로운 무용”에서 케이지는 타악기 음악을 통해 소리와 리듬을 해방하고, 이를 통해 음악이 단순한 무용의 반주가 아닌 무용의 불가결한 일부가 되는 새로운 협력 관계를 모색한다. 케이지는 19세기 음악이 낡은 소리의 변주와 동일한 리듬에 갇혀 있다고 보고, 타악기 음악을 통해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아함과 명료함”에서 케이지는 현대 무용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위기의 해결책을 모든 시간 예술의 본질인 리듬 구조의 명료함과 우아함의 이원적 상호작용에서 찾는다. 케이지는 현대 무용이 개인의 개성이라는 빈약한 토대에 기대고 있으며, 발레, 재즈, 인도 음악/무용 등 다른 시간 예술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생명의 비밀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케이지는 현대 무용이 무르익기 위해서는 명료함(구조)과 우아함(형식)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에서는 머스 커닝햄 무용단과의 공동 작업을 설명하며 음악과 무용의 독립을 통해 ‘삶 자체의 긍정’을 추구하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천명한다. “음악과 무용에 관한 2쪽의 지면과 122개의 단어”는 불확정성 철학과 개념 예술의 미학을 극도로 압축하여 표현한 글이다. 〈로버트 라우션버그, 예술가와 그의 작품에 관해〉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혁신적인 예술, 특히 콤바인 회화에 대해 쓴 심층적인 분석이자 헌사이다. 케이지는 라우션버그를 ‘예술과 삶 사이의 간극에서 행동’하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예술로 수용함으로써 미술의 전통적 개념을 해체한 선구자로 평가한다. 케이지는 라우션버그의 작품을 단순히 콜라주나 구성으로 보는 것을 넘어, 만물이 우발적으로 모인 장소이자 혼돈 상태에 있는 현실 그 자체로 해석한다. 케이지는 라우션버그의 작품을 경험하는 것이 보는 습관을 점검하고 새로운 눈의 사용법을 배우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무에 관한 강연〉 이 강연은 케이지의 불확정성의 미학과 선(禪) 철학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핵심 텍스트 중 하나로, 형식과 구조를 통해 오히려 무 그 자체와 현재 순간의 경험을 강조하는 개념적 연설이다. 이 강연은 케이지의 음악처럼 엄격하게 계산된 시간 구조를 따르면서도, 내용은 ‘할 말이 없다’는 선언과 자전적 일화, 우연한 사색으로 채워져 있다. 케이지는 강연의 시작부터 말의 목적이 침묵의 생성을 돕는 데 있음을 선언하며, 전통적인 사상 전달의 역할을 거부한다. 강연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내용의 무목적성과는 대조적으로 시간의 간격이 엄격하게 조직되어 있다는 점이다. 케이지는 예술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소유 개념을 거부함으로써 자유를 획득하고 순수한 생명을 경험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강연은 케이지의 예술이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의도 대신 경험 그 자체를 제공하려 했음을 보여주며, 침묵과 구조를 통해 현재의 소리와 존재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유에 관한 강연〉 이 강연에서 케이지는 작곡가 모턴 펠드먼의 음악을 중심으로 유와 무의 관계, 예술가의 역할, 그리고 삶의 태도 등을 논한다. 시작에서 “이것은 유에 관한 강연이며 당연히 무에 관한 강연이기도 하다”고 명시하며, 무와 유가 어떻게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전진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를 주제로 삼는다. 펠드먼의 음악을 ‘유와 무의 수용’이라는 케이지 자신의 철학과 연결하며, 궁극적으로는 삶 자체에 대한 통제와 소유를 내려놓고 그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삶의 태도를 역설한다. 〈한 명의 화자를 위한 45분〉 이 낭독 텍스트는 음악, 강연, 연극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글은 우연성 기법을 사용하여 작성되었으며, 전통적인 음악의 경계를 넘어 모든 소리를 포용한다. 우연성과 더불어 무목적성을 강조하며, 예술과 삶을 분리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케이지는 우연성을 통해 소리, 침묵, 연극적 요소 들을 통합하고, 통제와 목적을 거부하며, 삶의 모든 순간을 예술적 사건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글은 제목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전통적인 의미의 논리적인 답변을 제공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예술적 행위이자 질문에 대한 탐구의 과정을 보여준다. 케이지는 질문에 대해 직접적이고 명료한 답을 주기보다는 역설, 비유, 그리고 일상적인 관찰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케이지는 우리가 특정한 목적지나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무한한 우주’로, ‘미지의 세계’로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케이지의 관점에서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답은, 정해진 목표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모든 규칙을 깨고 모든 방향으로 탐험하는 행위 그 자체이다. 케이지는 고정된 목적지보다 움직이는 과정에, 명확한 의미보다 혼돈의 수용에 중점을 둔다. 〈불확정성〉 이 글에는 90개의 짧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일화들은 케이지의 불확정성 개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예술, 삶, 우연, 질서와 혼돈 등의 주제를 다룬다. 일관된 서사라기보다는 단절되고 독립적인 경험들을 모아놓은 형식이다. 이 짧은 이야기들은 삶 자체가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일화들의 집합임을 보여준다.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현장 안내서〉 이 글은 케이지의 음악관, 미학,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를 특유의 유머와 아이러니를 통해 드러내며, 음악과 버섯이라는 두 가지 관심사를 병치하여 논리를 전개한다. 존 케이지는 버섯 채집과 균류학에 대한 열정을 음악과 예술에 대한 그의 철학을 설명하는 은유적 틀로 사용한다. 케이지에게 버섯 채집은 일종의 수행이며, 자연 속에서 예술과 삶의 불확정적인 본질을 확인하는 행위다. 그는 음악 애호가들에게 기존의 틀을 벗어나 우연과 무목적성을 수용할 것을 제안한다. 지은이 소개 존 케이지 John Cage “모든 사건들이 결정적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만들었으며, 일어난 모든 일과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나를 만들고 있다.”_ 존 케이지 존 케이지는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가장 ‘현대적’인 작곡가이자 예술가, 사상가가 된 인물이다. 그는 191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명가 아버지와 언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퍼모나 대학에 다니다가 일률적인 교육 제도에 충격을 받은 그는, 새로운 경험을 찾아 떠난 유럽에서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수많은 사건들이 동시에 한 인간의 경험 속에 얽혀 즐거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대 건축, 미술, 음악 등등에 두루 관심을 가졌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한 유명 건축가에게 “건축가가 되려면 건축에 일생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듣고 건축 공부를 그만둔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와 현대 음악의 선구자 아널드 쇤베르크에게 같은 질문을 받고는 기꺼이 그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화성학에 전혀 소질이 없었던 케이지에게 쇤베르크는 그가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혀 평생 음악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케이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렇다면 그 벽에 머리를 박는 데 일생을 바치겠습니다.” 타악기에서 미래의 음악의 가능성을 엿본 케이지는 작곡가 생활 초기 주로 무용에 사용할 타악기 음악을 작곡하며 생계를 잇는다. 1940년대 초 그는 무용가이자 안무가 머스 커닝햄을 만나 인생의 동반자가 된다. 이 시기 케이지의 혁신적인 발명품 중에는 그랜드 피아노 현 위에 나사나 볼트, 틈막이 등의 이물질을 부착해 타악기처럼 만든 ‘프리페어드 피아노’가 있었다. 이미 일찍이 선(禪)에 관심을 갖고 있던 케이지는 서구 세계에 불교를 전파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스즈키 다이세쓰와 함께 공부하며 소리를 작곡가의 기억 및 호불호로부터 해방시키는 비의도적 작곡 방식을 연구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주역》으로 점을 쳐 음높이, 음길이, 강약을 비롯한 소리의 모든 측면을 결정한 〈주역 음악〉이다. 1952년에 발표한 〈4분 33초〉는 그의 실험이 절정에 이른 곡이다. 《주역》으로 곡의 길이만을 결정하고 나머지를 모두 배제한 이 곡에서 연주자가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닫는 동작만을 취하는 동안, 청중은 공연장에 가득한 기침 소리, 바람 소리, 먼 소음 등을 듣게 된다. 케이지는 침묵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 다시 듣게 만들었다. 케이지는 일상의 우연, 예기치 못한 만남, 버섯 채집 같은 자연의 경험을 예술적 사유와 연결한다. 이 책에는 음악만큼이나 버섯 얘기가 유달리 많이 나오는데, 케이지는 “버섯은 짧은 시간에 자라기 때문에 우연히 그것이 신선할 때 마주친다면 그것은 마치 짧은 시간 생명이 있는 소리와 마주치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숲속을 거닐면서도 자신의 침묵의 작품을 연주한다. 예술은 곧 삶이며 발견의 과정임을 주장한 그는 수많은 예술 운동에 영향을 끼쳤으며, 오노 요코, 백남준 등 플럭서스 운동을 이끈 예술가들의 사상적 기반이 되어 주었다. 1961년 출간된 《침묵》은 이전까지 케이지가 했던 그 어떤 활동보다 케이지를 유명하게 만든 책이다. 그가 1937년부터 1961년 사이에 쓴 기고문과 에세이, 강연문 등을 엮은 이 책은 음악뿐 아니라 시와 철학, 무용과 회화, 예술 그 자체의 본질에 질문을 던진 현대의 가장 독창적인 예술론 중 하나로 평가된다. 변혁에 목말랐던 새로운 세대에게 그의 책은 신성한 텍스트와도 같았으며, 현재까지 무수한 번역판을 포함해 약 50만 부 이상이 팔린 이 책은 지금도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마르지 않는 예술적 경험을 선사한다. 옮긴이 소개 나현영 포도밭출판사의 나선형 시리즈에서 SF, 생태, 포스트휴머니즘을 주제로 다양한 책을 기획하여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무정한 빛》,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등이 있다. 본문 중에서 곡 하나를 쓴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_37쪽 그러나 귀를 기울이면 그 안에도 매혹이 있다. _41쪽 텅 빈 시간이나 텅 빈 공간 따위는 없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보고 또 듣는다. 실제로 침묵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공학적 목적으로 최대한 조용히 만든 방을 무향실(無響室)이라 하는데, 여섯 개의 벽면이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이 방에서는 소리의 반향이 일어나지 않는다. 몇 년 전 하버드 대학교 무향실에 들어간 나는 두 가지 소리를 들었다. 하나는 높은 소리 하나는 낮은 소리였다. 담당 엔지니어에게 설명하자 그는 높은 소리는 내 신경계가 작용하는 소리, 낮은 소리는 내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라고 알려 주었다. 죽을 때까지 소리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죽은 후에도 소리는 계속될 것이다. 음악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_46쪽 그러나 미래에 대한 이 자신감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소리는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갈림길에서 의도하지 않은 소리를 택한 이들의 몫이다. 이 전회(轉回)는 심리적이며 처음에는 인간적 특성을 포기하는 것처럼, 음악가의 입장에서는 음악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심리적 전회는 우리를 자연으로 인도해 이 세계에서 인간과 자연은 둘이 아닌 하나이며 모두를 놓아 버린다 해도 잃는 것은 없음을 서서히 또는 갑자기 깨닫게 한다. 아니, 사실은 전부를 얻는다. _46쪽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소리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복잡한 음악적 기법을 사용해 새로운 가능성과 인식의 근사치에 도달할 수 있다. 아니면 아까 말한 것처럼 소리를 통제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음악에 대한 생각을 비운 뒤, 인간이 만든 이론이나 인간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서보다 소리를 소리 자체로 표현할 수단을 찾는 일에 착수할 수도 있다. _47쪽 소리의 명확히 정의된 대립물은 침묵이며 음길이는 침묵을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소리의 특성이므로, 소리와 침묵을 포함한 모든 타당한 구조는 서양의 전통대로 진동수가 아니라 음길이에 기초해야 한다. _52쪽 소리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나 소리 없이 삶은 단 한순간도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_53쪽 무목적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예컨대 침묵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다시 말해 침묵에 대한 마음의 인식은 어떻게 바뀔까? 예전에 침묵은 소리와 소리 사이의 간극으로 다양한 목적에 유용하게 쓰였다. 그중에는 고상한 편곡을 목적으로…… 위의 목적을 비롯해 다른 목적이 전혀 없는 경우 침묵은 무언가 다른 것, 즉 침묵이 아니라 차라리 소리, 주변 음이 된다…… 이 귀가 아무 할 일이 없는 마음과 결합할 때 그 마음은 자유롭게 청취의 행위로 들어가 각 소리를 많든 적든 선입관의 근사치인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듣게 된다. _62~63쪽 음악 그 자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이상적 상황임이 분명해진다. 인간의 마음은 주변 음, 88개 피아노 건반 이외의 음높이, 셀 수 없는 음길이, 비음악적이거나 불쾌한 음색을 무시하고,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경험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데 쓰일 수 있다. 또는 마음은 창조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욕망을 포기하고, 경험의 충실한 수신기로 기능할 수도 있다. _72쪽 나는 할 말이 없고 할 말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으며 이것이 내게 필요한 시다. _168쪽 나는 반쯤은 관념적으로 반쯤은 감상적으로, 전쟁이 났을 무렵, 조용한 소리만을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에서 무엇이든 큰 것에는 진실도, 선도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조용한 소리는 고독, 또는 사랑 또는 우정과 닮아 있었다. 내 생각에, 영원, 그리고 가치는, 적어도 《라이프》, 《타임》 그리고 코카콜라와는 무관했다. _177쪽 수용보다 창작에 책무를 느끼는 작곡가는, 그 시점에 유행하는 깊이를 암시하지 않는 모든 사건을 가능성의 영역에서 배제해 버린다.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평가받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사랑을 축소하고 두려움을 키우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려하는 것이다. 이런 작곡가는 무수히 많은 문제에 부딪힌다. 그의 작품은 어느 누구의 작품보다 더 뛰어나고, 더 인상적이며, 더 아름다워야 한다. 이것, 이 아름답고도 심오한 대상, 이 걸작은 삶과 정확히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 관계는 다름 아닌 유리된 관계다. _192쪽 모든 유는 무의 메아리다. _194쪽 일단 정말로 듣기 시작하면 누구도 생각을 할 수 없다. _258쪽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은 개선이 아니다. 생성하고, 지속하고, 존재를 벗어나 침묵하는 일, 바로 무위다. _312쪽 차례 출간 50주년 기념판 서문 서문 선언 음악의 미래: 크레도 실험 음악 실험 음악: 법요 프로세스로서의 작곡 - I. 변화 - II. 불확정성 - Ⅲ. 소통 작곡법 - 〈주역 음악〉과 〈상상의 풍경 4번〉에 사용된 작곡 프로세스를 설명한다 - 〈피아노를 위한 음악 21~52〉에 사용된 작곡 프로세스를 설명한다 현대 음악의 전조 미국 실험 음악의 역사 에릭 사티 에드가르 바레즈 무용에 관한 네 편의 소고 - 목표: 새로운 음악, 새로운 무용 - 우아함과 명료함 - 오늘날…… - 음악과 무용에 관한 2쪽의 지면과 122개의 단어 로버트 라우션버그, 예술가와 그의 작품에 관해 무에 관한 강연 유에 관한 강연 한 명의 화자를 위한 45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불확정성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현장 안내서 주석 찾아보기 보도자료 다운로드
- 홈페이지 | 포도밭출판사
포도밭출판사는 인문사회, 문학, 디자인 분야의 책을 만듭니다. '나선형' 시리즈를 통해 SF문학을 출간합니다.
- 포도밭출판사
포도밭출판사 출간도서
- 책 만들기 책 (개정판) | 포도밭출판사
2018-10-17 출간 | 정가 17,000원 | 무선 | 120쪽 | 170*240mm | ISBN 979-11-88501-05-2(13580) 샘플 원고 다운로드 책 만들기 책 개정판 지은이: 최진규, 김민희 보도자료 실패 없이 차근차근! 쉽고 정확한 안내로 종이책부터 전자책까지! 책을 디자인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어도비(adobe)사의 인디자인(indesign)인데요. 기존에 인디자인 교재가 많이 나와 있지만, 인디자인의 수많은 기능이 빼곡히 망라된 책은 아무래도 초심자로서는 살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 만들기 책>은 인디자인의 많은 도구와 기능 중에서 핵심적인 것을 간추려서 소개합니다. 뿐만 아니라 복잡한 편집 디자인 작업에서 생기기 쉬운 실수나 작업상의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바람직한 작업 과정에 따라 기능들을 소개합니다. 실패하는 일 없이 쉽고 정확하게 작업물을 완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개정판 소개 <책 만들기 책> 초판을 낸 뒤 인디자인 강의를 섭외받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지역을 다니며 여러 분들을 만났어요. 인디자인을 처음 접하는 분, 인디자인으로 간단한 사진 앨범 등을 만들어본 분, 인디자인은 안 해봤지만 포토숍이나 일러스트레이터에는 익숙한 분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나며 책에서 보완하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점들이 있었습니다. 개정판에서는 강의 경험을 토대로 보다 정확한 설명을 적었습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는 작업 설명이 부족하거나 애매한 곳들을 손봤고요. 이에 더해 특별히 세 가지 부분에서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1. 전자책 편 전면 개정 <책 만들기 책> 1쇄 말미에 전자책 만들기 내용을 담았는데, 아주 간단한 전자책 제작에는 유용했으나 스타일시트로 서체를 적용하는 등의 기능 및 완성한 전자책을 유통하는 방법 같은 소개가 없어서 아쉽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개정판에서는 전자책 편 집필을 위해 공동필자 분을 모셨습니다. <시작은 전자책>이라는 타이틀로 전자책 입문서를 출간한 김민희 님입니다. 김민희 님 덕분에 전자책 편 내용이 두 배로 알차졌어요! 2. 설명 화면 : CS6 → CC 기존 1쇄에서는 튜토리얼 이미지(작업 설명 화면)가 CS6 버전의 화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인디자인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분들은 대부분 CC 버전으로 시작하시지요. 그래서 <책 만들기 책> 개정판에서는 튜토리얼 이미지를 모두 CC 버전으로 수정했습니다. CC 버전을 사용하시는 분들은 훨씬 보시기 편하겠지요? (참고로, 버전이 바뀌면서 설명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 기존 CS6 이하 버전을 쓰시더라도 책 활용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3. GREP 활용법 추가 작업하다 보면 간혹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 문단 끝줄에 한 글자가 딱 보기 안 좋게 넘치는 경우를 한번에 정리할 수 없을까. - 각주가 많이 달린 원고인데, 각주 첨자 스타일을 일괄 조정할 수 없을까. - 영문 병기, 한자 병기 단어들의 스타일을 본문과 다르게 조정하는 쉬운 방법 없을까. - 한글 문서 프로그램에서 작성한 원고에 이탤릭체, 볼드체 등을 표시했는데 인디자인으로 '가져오기'한 후 빠짐없이 표시를 되살리는 방법은 무얼까. 등등. 이런 내용들은 어쩌면 입문 수준 이상일 수 있어서 초판에는 넣지 않았는데, 문의를 받는 일이 종종 있어서 개정판에는 위와 같은 작업을 쉽게 하는 방법을 실었습니다. GREP을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분량이 있는 책을 만드시는 분들에게 유용한 팁이 될 거예요! 차례 서문 시작하기 전에 step 1_ 얇은 책(중철제본) step 2_ 두꺼운 책(무선제본) step 3_ 리플릿 / 웹자보 step 4_ 전자책 지은이 소개 최진규 충북 옥천에서 포도밭출판사를 운영하고 책을 펴낸다. 편집자로 출판일을 시작했고, 책 디자인을 같이한 지는 6년째다.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조합원으로 활동하며 출판물 및 웹사이트 디자인을 협업하고, 인디자인 배움 강좌를 진행한다. 지은 책으로 『출판, 노동, 목소리』(공저)가 있다. 김민희 잠 자고 남는 시간에 책 만드는 자유 일꾼. ‘유머는 여자의 무기’를 모토로 여성 코미디언의 에세이를 코믹 릴리프 시리즈로 펴내고 있다. 옮기고 만든 책으로 『미란다처럼』 『예스 플리즈』가 있고 지은 책으로는 『시작은 전자책』(전자책)이 있다. 잡기술 익히기를 좋아해서 뭐든 몸으로 직접 때우다 보니 전자책도 만들게 되었고, 가끔씩 강의도 하고 있다. 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이 된 후 책과 사람 사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브런치에서 위클리 매거진 ‘이것도 출판이라고’를 연재했다. 브런치 : https://brunch.co.kr/@ brunch8m3s 한정수량 사은품 <핵심 과정 한눈에 보기> 크기 : 340×240mm 작업하다 보면 간혹 저조차도 정확한 방법을 확인하기 위해 책을 다시 펼칠 때가 있습니다. 아래한글 프로그램 문서를 가져오기가 가능한 문서 형식으로 변환할 때나 중첩 스타일 입력 사항이 헷갈릴 때 등이죠. 그럴 때마다 작업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강의를 다니면서는 그러한 필요를 더욱 느꼈죠. 수업을 들으시는 분들이 과정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눈이 책과 컴퓨터 화면을 바쁘게 오가다 보면 순간 길을 잃기가 쉽습니다. 어디까지 했더라, 무엇할 차례더라, 이렇게 헤매기 쉽죠. 그럴 때 위와 같은 표가 있으면 자신의 작업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잘 알 수 있지요.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간단한 종이책 한 권 만들기 작업의 시작부터 pdf 만들기, 마지막으로 패키지 파일로 백업하기까지. 핵심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물론 전자책 만들기 내용도 수록했습니다.
- 정치의 약속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08-3 (03340) 출간일: 2019년 6월 28일 정가: 14,000원 제본: 무선 쪽수: 232쪽 판형: 130×210mm 분야: 사회과학 > 사회운동 / 정치학 정치의 약속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으려)는 당신에게 지은이: 하승우 책소개 “괜히 힘 빼지 마, 너만 다쳐” 냉소와 체념이 압도하는 시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치학 기울어진 정치사회 현실과 가파른 일상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책. 열정을 빼앗고 냉소와 체념만 주는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대로 더 빨리 소멸할 것인가? 시간을 벌며 전환의 기회를 잡을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닥친 지금, ‘뭐라도 해보려는 이들’에게 공존의 신호를 보내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치의 무대’로 초대한다. 아나키스트 정치학자였다가 2년여 녹색당에서 당직자로 일하고 다시 연구활동가의 자리로 돌아오며 ‘숙성의 시간’을 보낸 저자. 원외정당의 자리에서 바라본 기성정치제도의 한계와 전환의 기회를 열기 위해 우리가 꼭 풀어야 할 정치적 의제들을 꼼꼼히 짚어냈다. 보도자료 “오늘 이렇게 소진돼버리면 내일 깨어날 수 있을까?” 요새는 아침에 눈떠 미세먼지 농도부터 체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진, 태풍 같은 자연재해나 대형 재난사고도 먼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전 세계 어디나 사회 불평등은 심화되어가고, 버는 돈은 그대로인데 나날이 지출하는 생활비용은 오르기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 문자가 날아올까 봐 두렵고, 성폭력이나 몰카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여전하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기분이다. ‘생존’을 염려하며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덜컥 ‘내일 깨어날 수 있을까’ 싶다. 해법을 찾아야 할 정치는 자기들 기득권을 키우는 데만 열중한다. 심지어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위기’가 밀려오건만, 지금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을 죄다 낡은 시대의 정치인들이다. ‘나’와 세계관도 이해도 다른 저들이 과연 도움이 될까. 지금 사회가 닥친 위기들을 몸소 겪어야 할 당사자는 ‘나’인데, 정작 나에게는 아무 권력도 주어지지 않고, 낡은 정치인들만 권력을 고수한다. 뭐라도 해보려고 나서고 싶지만, 주변 반응은 무관심보다 더 심한 냉소가 대다수다. 이 절망을 어찌할 것인가. “당직자로 활동한 2년의 시간을 통해 누적된 고민들” 『정치의 약속』의 저자 하승우는 '풀뿌리 공론장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2006년부터 대학에서 정치학 강의를 하다가 돌연 '학교를 관두고' 자치와 자립, 시민정치, 아나키즘, 공공성 등을 주제로 독립적인 공부모임을 만들어 활동했다. 아나키스트 정치학자로 불린 것도 이즈음. 2014년에는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기획하고 수도권을 떠나 충북 옥천으로 집을 옮겼다. 2016년에는 ‘덜컥’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을 맡으며 당직자가 되었다. 정당정치 연구자였다면 조금은 자연스러울 수 있었겠으나 풀뿌리운동, 아나키즘을 연구한 이력에 비춰보면 그의 정당정치 입문은 다소 의외이기도 했다. ‘우연찮게’ 당직을 맡아 2년을 보내고 다시 연구활동가의 자리로 돌아온 그는 ‘숙성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정당은 정치의 중요한 매개임을 확인하는 한편, 원외정당이라는 변경에서 기성정치의 한계를, 그리고 한국 정치제도의 온갖 문제점을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까닭이다. “기득권 정치세력이 이길 수밖에 없도록 승패가 정해진 경기장” 흔히 한국사회의 불공평함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저자는 그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이며 아예 ‘승패가 정해진 경기장’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정치의 약속』 1부에서는 철저하게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보장해주면서 공정하다고 우기는 것이 실상인 정치 관련 법제도의 문제를 꼼꼼히 따진다. 1부에서는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 기득권에게만 유리하게 맞춰진 선거운동법, 근거 없는 선거연령 제한, 착복이 심각한 특수활동비/업무추진비, 불공정한 정치자금과 재정민주주의 훼손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지적한다. 소위 힘 있고 빽 있으면 모든 게 쉽고 그 반대면 세상이 내게 등을 돌렸다고 느껴질 만큼 야박한 현실은 이토록 뒤틀린 정치사회 제도들로부터 기인한다. 이 부당한 현실은 우리에게 냉소와 체념을 주고, 정당한 열정마저 빼앗는다. “위기의 징후를 간파하라”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간 틈”이라고. 당최 틈이 없다고 믿기 쉽지만, 결국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틈을 내고 틈을 바꾸는 전략’이 더욱 중요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틈’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다. 지금을 사는 우리를 위한 전략과, 사회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의제들을 정리한 것이 『정치의 약속』의 2부이다. 2부에서는 탈토건, 탈부패, 탈미세먼지, 탈핵, 안전한 노동, 자기결정권, 탈성장, 성평등, 기본소득, 식량주권, 1인 가구, 공공성 등 21세기의 새로운 상황과 조건에서 우리가 꼭 풀어야 할 의제들을 제시하고 설명한다. 이들 각각의 의제도 중요하지만 하나씩 떼놓고 접근하다 보면 추상적으로만 느껴질 수 있기에, 구체적인 일상의 문제로 실감하도록 의제들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의제 간의 연관성을 밝히다 보면 현 문재인 정부 정책의 문제점도 선명해진다. 차별은 반대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시기상조라 하고, 탈핵은 하지만 핵발전소는 수출하겠다고 하고, 성평등은 지지하지만 낙태죄는 폐지하지 않겠다고 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지만 경제성장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등의 정책 기조가 얼마나 ‘모순’인지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이 ‘갈팡질팡’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성장주의, 승자독식주의를 뒤집을 탄소제로 녹색공존 전략” 「나오는 글」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계획’ 내용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저자는 정부의 균형발전 계획에 대해 “균형은 거들 뿐 여전히 개발, 발전, 성장이 전략의 중심에 있다”고 비판한다. 선거 때만 되면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퍼지는 ‘균형발전’이라는 말. 대부분이 시설 확충이나 지원 같은 개발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인데 이를 ‘균형발전’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지금이 시설을 늘이고 확충하는 것만 필요한 때인가? 시설이 아닌 사람에게 혜택이 가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균형 발전은 고사하고 일단 안전하고 평온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일갈한다. 이 목표를 위해서는 정치사회적 전환이 필요하다. 『정치의 약속』은 ‘탄소제로 녹색공존 전략’을 제시하며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한다. 이는 지금껏 ‘발전’에만 초점을 맞춘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논의이자,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으려)는 당신에게” 생존이 버겁고 사회마저 냉소와 체념을 떠안기는 탓에 우리의 일상이 가파르기만 한 것은 사실이다. 정치는 청와대나 국회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 학교, 직장 같은 생활 속에서 더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정치는 강자보다 약자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끼지만, 현실에서 용기를 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치의 무대는 점차 사라진다. 정치가 사라진 세계에서 다시 정치의 토대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는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세계에 함께 살고 있다는 인식, ‘정치의 무대’ 위에서 서로를 동등한 배우로 인정하는 인식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더 다양한 ‘정치적 연습’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뭐라도 해보자’는 것은 어렵지만 용기를 내보자는 말인 동시에 ‘한걸음’씩 내딛다 보면 그 한걸음 덕분에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역설하는 ‘정치의 약속’이며, 독자에게 보내는 열망의 신호이다. 지은이 소개 하승우 정치를 배우고 실천하는 연구활동가. 세상의 변화에 비관적이지만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의 열정에 기대어 낙관을 보충해왔다. 쉬운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했고, 선수들의 속도전보다 평범한 시민들의 느린 변화에 희망을 거는 편이다. 그렇지만 기후위기나 경제위기를 방치하고 초래해온 기득권 세력에게는 강력한 압박과 공격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정치의 장을 넓히고 활성화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땡땡책협동조합 공동대표, 더 이음 연구위원 등의 직책을 맡아왔다. 지은 책으로 『최저임금 쫌 아는 10대』, 『시민에게 권력을』, 『민주주의에 反하다』, 『내가 낸 세금, 다 어디로 갔을까?』(공저), 『껍데기 민주주의』(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없는 사회』, 『아나키스트의 초상』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틈이다.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한걸음씩 걸어가는 것이다. 정치의 약속은 그 걸음을 함께할 사람이 조금 떨어진 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 그 타자를 통해 나와 우리를 인식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이 세계가 조금 더 지속할 수 있다는 신호이다. -10쪽 즉 만 25세 이상이 아닌 사람은 어떤 선거에서도 후보로 나올 수 없다. 왜 정치에 나이가 중요한 걸까? 나이를 먹어야 연륜이 쌓이고 정치적인 감각이 생긴다는 얘기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게 하다 보면 연줄이 생기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져 부패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오류를 범하기 쉬운 시대이다. 그만큼 새로운 윤리,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져야 하고, 그런 일은 당사자들이 주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젊은 정치가 출현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37쪽 문재인 정부를 믿어야 한다고만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답답함은 정책을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책결정과정에 개입된 수많은 요인들을 보지 않고 특정 개인에 대한 신뢰로 정치과정을 환원시키는 건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72쪽 근본적으로 토건국가는 더 많은 건설을 위한 에너지 중독사회, 자연과 약자를 희생시키는 끊임없는 성장중독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토건국가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고 타자와 약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정서를 형성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제는 토건과 부패냐, 깨끗하고 숨통이 트이는 삶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탈토건을 통해서만 우리는 다른 사회로 이행할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다. -116쪽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최대한 싼 비용으로 무조건 빨리 빨리’라는 기업 경영과 ‘너희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아’라는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대한 무시가 이런 비극을 부른다. 이런 논리는 핵발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대한 싼 비용으로 무조건 많이’라는 핵발전의 논리와 ‘알아서 잘 대처하라’는 안전불감증이 비극을 부를 수 있다. 핵발전소의 문만 닫는다고 이런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핵발전소이고 외주화된 위험들로 터지기 일보직전인 원자로이다. -133쪽 가치로는 자족이나 절제를 생각했을지언정 경제적인 삶으로는 한 번도 성장을 포기한 적이 없는 한국사회가 탈성장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까? 무척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는 탈성장이 경제보다 환경보호나 생태학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러나 경제학(economy)과 생태학(ecology)의 어원은 eco, 희랍어로는 oikos로 동일하고, 둘 모두 우리가 생활하는 가계/세계를 다룬다. 생태학과 환경운동이 탈성장 ‘운동’의 추진력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탈성장은 사실 자본주의 경제에 관한 이론이기도 하다. -155~156쪽 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성장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군대식 ‘재건’ 이데올로기이기도 했다. 5·16 쿠데타 이후 군사혁명위원회가 내세운 6개의 혁명공약 중 하나는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였다.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민생고는 가상의 상황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관료나 기업주의 부패와 맞물린 ‘근본적인 빈곤’은 사람들의 마음에 무조건적인 성장에 대한 욕구를, 그런 발전이 강력하고 일사불란한 조직을 통해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깊이 심어놓았다. -160쪽 낙태죄 폐지 요구는 낙태를 권하는 게 아니라 낙태를 처벌하는 것에 대한 반대이고 여성을 신체의 권리주체로 보는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낙태죄는 낙태의 문제를 여성에게만 죄로써 묻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가 아닌 자유로운 주체로 본다면, 체외수정기술을 비롯한 보조생식기술의 발달로 확장되는 재생산권을 고려하면, 그와 관련된 정보들이 제공되고 시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을 보장해야 한다. 죄로 규정되면서 불법으로 임신중단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시민의 권리와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177쪽 2019년 6월 6일, 제주도의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이 모임을 만들고 제주 제2공항과 동물테마파크 등 대형개발사업을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도지사와의 면담을 공개 신청하며 일주일에 한 번 등교 거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는 그저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갈 제주를 지키고 싶은 청소년”이라 소개하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숨죽이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모아 행동에 나설 것”이라 선언했다.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비관하거나 냉소하기에 앞서 이 선언에 응답부터 하자. 이미 누가 나섰지 않은가. -231쪽 차례 들어가는 글_ 미래를 여는 투쟁으로서의 정치 1부 냉소와 체념을 주는 것들 1. 정치판인가, 도박판인가? 이상한 선거제도 2. 공정인가, 밀어주기인가? 기득권에게만 유리한 선거운동 3. 보통인가, 곱빼기인가? 요상한 선거연령 4. 세금인가, 쌈짓돈인가? 어둠의 특수활동비/업무추진비 5. 정치의 발전인가, 퇴보인가? 불공정한 정치자금 6. 자유인가, 관리인가? 무척이나 어려운 정당 만들기 7. 권력인가, 사유물인가? 부당한 정책결정 8. 정부인가, 기업인가? 팔려나가는 공공성 2부 세상이 나아지려면 1. 탈탈탈(탈토건 - 탈부패 - 탈미세먼지) 털어내자! 2. 탈핵 - 안전한 노동 - 자기결정권 3. 탈성장 - 성평등 - 기본소득 4. 식량주권 - 1인 가구 - 공공성 나오는 글_ 고탄소 균형발전에서 탄소제로 녹색공존으로 마치며_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으려)는 당신에게
- 요리 활동 | 포도밭출판사
2016. 3. 31 출간 / 121×188mm / 192쪽 / 12,000원 / ISBN 979-11-952770-5-6 (03810) 요리 활동 어떤 싸움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일상이 중요하니까 지은이: 박영길 보도자료 “자, 식사부터 하세요” 살 만한 세상, 좋은 일상을 향한 우리의 싸움이 더 오래가도록! 지치지 않는 일상을 만들어가는 ‘공생의 요리’를 선보인다 쿡방의 시대, 쿡방에 없는 ‘공생의 요리’를 선보인다 요새 방송 프로그램의 대세는 ‘쿡방’ 즉, 요리 방송이라고 한다. 하얀 두건을 쓴 셰프가 앞치마를 휘날리며 현란한 칼질을 뽐내는 장면은 이제 흔한 이미지다. 그들이 만들어낸 요리는 고급스럽고 까다로운 입맛을 자랑하는 평가자의 입에 들어가 결국 그들의 값비싼 탄성과 함께 완성된다. 그런데 요리의 세계가 꼭 이런 것일까. 『요리 활동』은 값비싼 메뉴를 혼자서 음미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요리의 행복을 선보인다. 저자 박영길은 고된 하루의 활동을 마친 이웃들과 든든한 일상을 나누고자 ‘공생의 요리’를 만든다. 이 책은 돈이 없어도 풍족하게 즐기는 요리들, 험난한 하루의 끝에서도 깊은 위로를 주는 박영길의 요리들을 소개한다. 요리사가 아닌 ‘활동가’의 반자본주의적(?) 요리책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265-17번지. 이곳에는 지역의 활동 단체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 운영하는 공간인 ‘마을카페 이따’가 있다.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은 6년 전, 지역의 공부방 교사들이 뜻을 합쳐 만든 단체다(공룡은 ‘공부해서 용 되자’의 줄임말이다). 공룡의 활동 모토는 ‘반자본주의, 일상성, 공동체성’이다. 첫째, 돈과 효율성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살아보자. 둘째, 혼자 할 수 없는 일은 함께하자. 셋째, 활동과 삶이 괴리되지 않도록 서로의 일상을 돌보자는 것이 이곳이 만들어진 동기이자 목표다. 공룡 활동가들은 이 세 가지를 중요한 가치로 삼으면서 지역과 마을을 중심으로 삶과 작업, 일상과 교육을 연결하는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요리 활동』의 저자 박영길은 바로 이곳 공룡을 만든 활동가 중 하나다. 그는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맞서 힘든 싸움을 하는 지역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을 마을카페 이따로 초대하거나 때로는 현장에 찾아가 요리를 선사한다. 지역 공부방 활동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지역 청소년들도 이곳에서 밥과 요리를 나눈다. 이곳은 카페일 뿐만 아니라 ‘지역 꼬뮌학교 동동’이라는 인문학 수업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공룡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이 거점 공간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지미스 홀>에 나오는 마을 공간처럼, 지역의 ‘래디컬 스페이스’로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자격증이 있는 요리사가 아니다. 당연히 식당 혹은 주방을 가진 셰프도 아니다. 하지만 이웃들과 연대하는 노동자 및 활동가 들에게 그는 그 어떤 유명 셰프보다 귀한 요리사다. 『요리 활동』에는 저자가 그들과 나눈 요리들,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들의 기록이 담겨 있다. 요리를 통해 기억하는 가난해도 기꺼운 삶의 풍경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에게 ‘요리는 무엇일까?’를 자문해본다. 그 대답의 하나는 저자에게 있어 요리란 부모와 함께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기억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의 요리 이야기 중 절반 이상에 부모와의 추억들이 스며 있다. 이제 70대 노인이 되어버린 부모, 그래서 그분들의 하루하루가 곧 멈출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는 나에게, 요리는 부모를 기억하고 내 몸에 그들의 삶을 각인시키는 훈련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머니의 조리법들, 아버지가 해주던 음식들… 가난하던 그 옛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었던 어떤 음식에 대한 기억들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재현하는 도구로 내게 요리만 한 것이 없는 듯하다. <들어가며 –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9쪽 그리고 요리를 통해 저 시간들을 되살리면서 확인하는 것은, 비록 가난했지만 그 가난을 행복하게 ‘요리’하며 살았던 저분들의 힘과 지혜다. 그 덕분에 저자는 어린 시절의 가난을 불행으로 떠올리는 게 아니라 반대로 ‘행복감의 원천’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확인한다. “그 가난하던 시절에 뚝딱뚝딱 맛있는 걸 만들어주시던 어머니가 선물해준 행복한 세계가 지금 나에게도 여전히 힘을 북돋워준다. 나는 비록 돈이 없어도, 함께 활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 나누어 먹는 즐거움이 있는 한 내 삶 역시 지속될 수 있다고 강하게 믿는다. 나는 그런 믿음을 부모님의 삶에서 배운 것 같다.” 험난한 세상, 무너지는 일상 하지만 잘 먹고 잘 싸우자 세상이 험난해도 그것을 버틸 수 있는 힘은 다시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나온다. 저자는 요리가 비록 소소하지만 일상을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버팀목이라고 믿는다. 요리를 통해 일상이 무너지려는 순간을 버티고, 나아가 일상생활을 살 만한 것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저자가 부모로부터 배운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소소한 일상을 지키고,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들을 잘 ‘요리’하는 일은 어쩌면 거대한 이데올로기 투쟁만큼 강력할 수 있다. 요리는 언제나 일상이다. 어머니가 식당 찬모로 생계를 꾸리는 모습을 보며 자란 어린 시절부터, 각자 활동을 하다가 저녁이면 공룡에 모여 저녁 한 끼를 해결하는 공룡 활동가들을 위해 뜨끈한 국과 맛있는 술안주 하나 만들어놓고 밤 직장에 출근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요리는 언제나 일상생활의 소소한 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작은 한 부분이라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버티며 살아가는 것, 나는 이러한 태도가 일상성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지극히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 거대한 시스템과 싸우면서도 작은 일상들을 무시하지 않고, 거기에서부터 어울리고 연대하며 새로운 것들을 꿈꾸는 생성의 장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 이것이 내가 공룡 활동가들과 요리를 함께 만들고 먹는 일에 욕심을 부리는 이유이다. 요리는 언제나 일상이다. 그리고 날마다의 일상을 재구성하고자 나는 오늘도 요리를 한다. <들어가며 –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10-11쪽 재료가 부족해도 좋다, 정통이 아니어도 좋다 음식이 품고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다 〈치킨 가라아게〉 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적 서울 사는 외사촌들이 놀러오자 저자의 어머니는 호기롭게 닭을 튀겨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만든 것은 토막낸 닭에 치킨 파우더를 묻혀 튀긴 ‘치킨’이 아니라 시골 식으로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긴 ‘통닭’이었다. 당연히 외사촌들은 실망스러워했고, 어머니는 “서울 것들이라서 참 까탈스럽네” 하고 볼멘소리를 뱉으신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외식은 못 시켜도 무엇이든 손수 만들어 먹일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어머니는 곧 어머니식의 ‘치킨’을 개발해 자식들을 먹인다. “이게 도시에서 먹는 치킨이라는 거야.” 귀여운 허세도 빼놓지 않으신다. 이 글의 저자 역시 종종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의 심지어 먹어보지도 못한 요리를 만든다. 흔히 본고장에서 그곳의 맛과 문화를 배우고 돌아와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는 정통파 입장에서 ‘야매’도 이런 야매가 없다. 저자는 자신이 ‘가라아게(전분을 살짝 묻혀 튀기는 요리)’라 부르며 만들던 일본식 닭튀김 요리가 실은 ‘고로모아게(튀김옷을 입혀 튀기는 요리)’에 가까움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 친구에게 ‘아게다시도후’라는 일본 요리를 해준 뒤 ‘일본의 아게다시도후와 다르지만 더 맛있다’는 다행스러운(?) 평가를 듣고 마음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저자는 왜 자꾸 이런 요리들을 만드는 걸까? 저자가 농담처럼 말하듯이 단순히 허세 때문일까?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정통 현지 음식을 먹어보고 거꾸로 정통을 너무 의식하지 말자는 깨달음을 얻는다. 정통보다 소중한 것은 결국 그 음식이 품고 있는 삶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정통이라는 요리들도 결국 각 동네에 흔한 재료들로 대충 만들다보니 정통이 된 게 아닐까 싶다. (…) 결국 이탈리아에 가서 현지 음식을 먹어 보고 느낀 것은, 요리를 할 때 정통 방식이라는 것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있는 재료들을 써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요리법으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굳이 어딘가의 혹은 누구의 정통 방식을 따라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부러워해야 하는 건 요리 비법도 아니고 세계적인 메뉴들도 아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자산들 즉, 동네 치즈, 동네 와인, 동네 수제햄 같은 자산이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식생활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이 바로 우리가 부러워하고 본받아야 하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토르텔리니>, 95~96쪽 차례 들어가며 _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1장 _ 나, 식당 찬모의 아들 칼국수 돼지고기 두루치기 무쌈만두 굴국밥과 굴전 짜장 붕어찜 김치 볶음밥 김치 요리 개떡 된장국 수육 두루치기 스키야키 단호박 해물찜 콩나물국 치킨 가라아게 약밥과 약식빵 오삼 불고기 2장 _ 너와 나의 무너지지 않는 일상을 위하여 물 마리니에르 아쿠아파자 토르텔리니 크림 파스타 어향동구 돼지고기 부추 숙주 볶음 애호박찜 짬뽕 돼지족발 아게다시도후 3장 _ 뜨끈한 양식, 뜨거운 연대 묵밥과 연잎밥 고갈비 여주 볶음 ① 여주 볶음 ② 볶음 고추장 곱창구이 고로케 부야베스 깐풍기 수삼 튀김과 송사리 튀김 짜조 4장 _ 오늘도 내일도, 우리가 함께 요리를 먹는다는 것 무밥 꼬꼬뱅 매생이 굴국밥 사천식 해물 파스타 유린기 토마토 치킨 커리 계란찜과 계란말이 꼬치구이 꽃게 저자 소개 박영길 서울에서 품팔이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와 식당 찬모로 일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없는 살림에 먹고는 살아야 해서 아버지 고향 동네로 이사했다. 그 덕분에 가난한 소작농 자식으로 무탈하게 살아왔다.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어릴 때부터 가내 농업에 동원되었다. 농사일로 항상 바쁜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내게 자기가 먹을 음식은 자기가 직접 해먹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고등학생 때부터 자취를 하면서 혼자 밥 해먹는 일에 더욱 익숙해졌다. 충북 청주에서 사람들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방 일에 재미를 붙였다. 정성을 듬뿍 쏟은 요리보다는 뚝딱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먹고 즐기는 주점 요리가 편하다. 한마디로 소중한 한 명을 위한 요리보다는 여럿이 나누는 요리가 더 편한, 묘한 습성이 생겨버렸다. 요리하길 좋아하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내가 식당 찬모였던 자신의 손맛을 이었다고 좋아하시는데 아버지는 내가 하는 요리가 하나같이 근본 없는 요리라며 싫어하신다. 현재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서류상 대표이자 주방 담당이다. 청소년 인문학 수업을 맡고 있으며 ‘지역 꼬뮌학교 동동’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낮에는 앞에 적은 일들을 하고, 밤에는 사회적기업 ‘삶과 환경’의 수거원으로 일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충북평등지부 삶과환경 분회 사무장을 맡고 있다. 땡땡책협동조합의 이사로도 일한다. 공저로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삶창)가 있다. 책 속에서 우리들을 과연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를 오래 고민하면서, 특히 일상의 재구성이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소위 공동체를 표방하며 일상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결국 의식주의 문제에서부터 어떤 일상들을 함께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공동체적인 성격을 강화하고자 선택한 것이 바로 ‘식사 공동체’였다. 애초에는 공룡을 ‘활동가 네트워크’ 형태의 공동체로 생각했었기에 처음부터 주거 공동체 수준의 실험을 하기는 부담스러웠고, 각자 자신의 활동 영역도 명확한 터라 일종의 생산/소비 공동체의 성격을 부여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보다 구체적인 일상의 경험으로써 함께 요리하고 먹는 경험을 나누는 ‘식사 공동체’의 성격을 만드는 것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릴 때부터 해오던 요리라는 행위가 어쩌면 특별한 무엇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요리를 하면서 요리가 몸에 익듯이 요리를 통한 생각들도 익어온 듯싶다. <들어가며 –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6쪽 요즘 들어 요리사라는 직업군이 각광받는 듯하다. 하얀 앞치마와 흰 두건을 두른 요리사가 온갖 감각을 자극하는 화려한 음식들을 화면 가득 선보이면 사람들은 요리가 근사한 로맨스라도 되는 것처럼 흥분한다. 그러면서 요리사라는 직업도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스타 요리사들은 근사해 보인다. 연예인처럼 동경의 대상이 된 그들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를 보고 있자면 요리도 마냥 근사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느 식당에도 그런 근사한 요리사는 없다. 있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나는 그런 요리사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아주 유명한 요리사가 운영하는 맛집을 갔다 해도 말이다. 그 식당 주방에서 실제 요리를 하는 사람은 근사한 요리사가 아니라 피곤에 절어 바삐 움직이는 주방 아주머니 혹은 소위 찬모다. 그이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요리를 해서 누군가와 맛있게 먹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떠올리는 걸 좋아한다. 아니, 어머니를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는 건지도, 아니면 식당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머니에게 괜히 짜증을 냈던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온종일 식당 일에 지친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만들어주면서 미소짓던 짧은 순간, 그 모습을 절대 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언젠가부터 요리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요리사의 아들이 아니라 식당 찬모의 아들이다. <1장 – 나, 식당 찬모의 아들>, 19~22쪽 “너 밥은 해먹고 다니냐?“ “매번 해먹는데 오늘만 바빠서 건너 뛴 거에요” “도대체 무얼 먹고 사는데?” “김치 먹고 살지. 왜요?” “이놈 새끼가. 그러니까 김치로 뭘 해먹고 사냐고?” “볶아 먹거나 그냥 먹거나 하지. 왜요?” “그러니까 김치가 있는데 왜 그지같이 살아? 용돈은 다 뭐하고? 응?” “그러니까 김치만 줬는데 뭘 더 해먹어요. 도대체!” “에휴. 내가 못 살아. 에휴.” 이런 대화 후에 어머니는 그야말로 김치 요리를 했다. 어머니의 김치 요리란 이런 식이다. 김치에 닭 넣고 끝. <김치 요리>, 46~47쪽 “영길아… 그래서 요즘 뭐 읽냐?” “요즘 키에르케고르 읽어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뭐?” “아, 그러니까 철학책 읽는다고요.” “그런데 왜 죽는 병이야?” “죽는 병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병…. 그냥… 절망에 대한 책이에요.” “너 요즘 힘드냐? 집이 요모양 요꼴이라 쪽팔리냐? 응? 그래서 힘들어?” “아, 뭔소리야…. 그냥 읽는 책이라고요.” “에휴, 가난이 웬수지… 에휴….”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누구나 다 읽는 책이야, 내 나이 땐… 엄마도 참 내.” “그러니까 이놈아. 가난한 집 자식이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면 겉멋에 빠져 사는겨. 알어?” 조개찜이 그렇다. 조개찜 만드는 법은 그냥 조개를 푹 삶는 게 다다. 만드는 법에 전혀 특별할 게 없지만 엄청 맛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개찜 요리는 여기에 청양고추를 한 개 정도만 넣어서 삶듯이 쪄내는 조개찜이다. 그런데 물론 이렇게만 먹어도 맛있지만 손님 대접용으로는 조금 밋밋하달까? 이왕 요리를 했으면 뽐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뭔가 아쉽달까? 어머니 말씀대로 그것이 겉멋이고 쓸데없는 짓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괜히 겉멋을 부리고 싶을 때면 이 간단한 조개찜을 엄청난 요리로 부풀려서 해보곤 한다. <아쿠아파자>, 90~91쪽 커리는 재료만 제대로 갖추면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서 맛이 크게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요리다. 커리의 강한 맛 때문에 융통성이 많지 않다는 뜻인데, 한편으로는 그만큼 실패할 확률도 적음을 의미한다. 오일 두른 솥에 마늘을 넣고 살짝 볶다가 양파와 피망을 넣고 볶은 후 토막 낸 닭을 넣고 볶는다. 이때 고춧가루를 넣어서 함께 볶으면 닭에 매운 맛이 배는데, 그렇다고 너무 많이 넣으면 맛이 탁해지니 대신 고추기름을 조금 넣어서 매운 풍미를 돋운다. 그러고 닭이 어느 정도 익을 때까지 볶다가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는다. 원래 생토마토를 넣으면 좋지만 재료값이 비싸니 토마토 페이스트를 한 병정도 넣고 생토마토는 5개 정도 조각 내서 넣으면 적당하다. 그런 후에 타지 않을 정도로 물을 조금 넣고 닭이 익을 때까지 끓이다가 마지막에 커리가루를 넣어 맛과 농도를 조절하면 된다. 토마토 치킨 커리에서 중요한 건, 토마토 페이스트 맛이 강해서 커리의 매운 맛이 죽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닭과 야채를 볶을 때 매운 맛이 잘 배도록 고추기름을 충분히 넣어 잘 볶는 게 팁이라면 팁이다. <토마토 치킨 커리>, 178~179쪽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그렇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다들 제대로 된 삶이란 엄청난 것들로 이뤄지고, 그런 엄청난 것들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와서가 아닐까. 그러니 당연하게도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들은 별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노력하지 않고 뭔가를 얻는 건 죄스럽고, 그런 걸 좋아하면 나쁜 사람이라도 된 듯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엄청난 것들만 바라보며 살다가는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아예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걸 노력하다가 망쳐버리기가 일쑤다. 언젠가 보선이 계란프라이를 예술적으로 반숙하는 방법을 묻길래 나는 아주 단순하게 일러줬다. “덜 익었을 때 불을 꺼.” (…) 이게 뭐가 대단한 거라고 노력에 노력을 더할까 싶다. <계란찜과 계란말이>, 181~183쪽
- 뒷자리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37-3 (03300) 출간일: 2024년 1월 31일 정가: 16,000원 제본: 무선 쪽수: 240쪽 판형: 140×210mm 분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노동문제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뒷자리 : 어떤 일을 한 뒤의 흔적 지은이 : 희정 책 소개 싸움의 앞자리가 아닌 뒷자리를 기록한 책 사건의 지난 흔적을 되짚는 기록이자 세상의 뒷자리에서 삶의 뒷자리를 더듬는 기록 기록노동자 희정이 쓴 『뒷자리: 어떤 일을 한 뒤의 흔적』이 출간되었다. 싸움의 앞자리가 아닌 뒷자리를 기록한 책이다. 사건의 지난 흔적을 되짚는 기록이자 세상의 뒷자리에서 삶의 뒷자리를 더듬는 기록. 그래서 책 제목이 『뒷자리』이다. 저자 희정이 만난 사람들은 이렇다. 모두들 싸움이 다 끝났다고 선언하고 떠나는 곳에 여전히 남아 문제와 맞서고 있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뒷자리에서도 더욱 그늘진 자리에서 보다 치열하게 싸운 사람들, 목소리는 묵살당하고 꼭 그림자처럼 대우받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1부, 2부, 3부에 담았다. 1부는 ‘여전히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송전탑이 세워진 밀양, 무려 50년간 미공군의 폭격 훈련장으로 쓰이다가 반환된 매향리, 월성원전과 거의 닿아 있어 방사능 피폭과 원전 사고의 위험을 안고 사는 마을인 나아리. 희정은 이곳들을 찾아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싸움 이후’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리고 그들이 과연 무엇을 지키고 이루려 하는지 살펴본다. 2부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숨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지만, 누군가 그들의 존재를 지우고 감추고 잊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약하다’며 지워지고 ‘덜 중요하다’며 감춰지고 ‘사소하다’며 잊힌 이들, 그리고 이들의 싸움. 2000년 롯데호텔 직장 내 성희롱 집단소송 투쟁과 2018년 용화여고 창문에 커다랗게 ‘ME TOO’라고 적으면서 교사의 성희롱과 성폭력을 세상에 알린 학생들의 투쟁을 지금 다시 기록하는 것은 이 싸움들이 여전히 우리 눈앞에 더 드러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치열하게) 싸운 건 아무도 몰라”라고 말하는 114 번호 안내원들의 산재 투쟁도 다시 기록했다. 114 번호 안내원들의 투쟁을 기록한 뒤에는 당연하게도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이들의 투쟁 사이에는 2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이어져 있다. 3부는 ‘그늘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희정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는 미적지근하게 취급받는 일들이 있다. ‘노년노동’이 그렇고, ‘이주노동’이 그렇고, ‘여자노동’이 그렇다. 중심이 아닌 소위 주변으로 밀려난 생애를 세상은 미적지근하게 취급한다. 그리고 되도록 눈에 띄지 않도록 장막으로 덮어두려 한다. 희정은 그 장막을 들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공단의 높은 담벼락 아래에서 일하는 노년 노동자들을 만나고, 변두리 공단의 저임금 인력으로 유배된 고려인들을 만나고, 경영에 반드시 필요한 전문적 업무를 맡으면서도 ‘잡일 노동’ ‘아가씨 노동’으로 함부로 취급당하는 경리 노동자들을 만났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바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차 하청업체의 경리 노동자 출신 강미희가 전하는 말이다. 부당 해고에 맞선 복직 투쟁을 하는 동안 티셔츠에 “경리는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입고 다녔던 강미희의 말. “설사 승리를 못하더라도, 아무것도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뭐든 다 해봤어요. 저는 제가 기특해요. 잘했어. 기특해. 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지은이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저서로는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2011), 『노동자, 쓰러지다』(2014), 『아름다운 한 생이다』(2016),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2019), 『여기, 우리, 함께』(2020), 『두 번째 글쓰기』(2021),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2022), 『일할 자격』(2023), 『베테랑의 몸』(2023)이 있다. 그리고 『밀양을 살다』(2014), 『섬과 섬을 잇다』(2014), 『기록되지 않은 노동』(2016), 『416 단원고 약전』(2016), 『재난을 묻다』(2017), 『회사가 사라졌다』(2020), 『숨을 참다』(2022),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2022),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2023),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2023)을 함께 썼다. 책 속에서 후회 없이 살고 싶다. 이 말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살면서 깨닫는다. 후회 없이 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우리는 후회를 예감하며 한 발을 내딛고 자신이 감당할 만한 후회를 삼키며 살아간다. 어떤 일을 겪어낸 이들에게서 내가 본 의지와 끈기 같은 것, 그러니까 저력이라 불렀던 것은 숱한 후회를 감수하면서도 발을 내딛는 사람들의 마음이자, 후회를 뒤로 감춘 채 내주는 품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건의 뒷자리에서도 여전하다. 어떤 흔적을 뒤적여도, 아무리 오래된 사건과 만나도, 여전히 움직이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움직였기에 나 또한 아주 천천히 몸을 틀 수 있었다. 공단 담벼락 안에 가두어도 “우리에게 봄이 올까요?” 묻는 이들이 있다. 머나먼 여정 끝에 낯선 땅에 와서도 지치지 않고 도시로 가고 싶다는 이가 있다. 건전지처럼 갈아 끼워지면서도 자신들의 일이 귀하게 대우받는 날이 올 때 그 자리에 있고 싶다고 하는 이가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싸움을 했지만 “우리 그때 정말 잘 싸웠지?”라고 신명나게 말하는 이가 있다. 나는 그저 지나간 일의 흔적을 좇으려 했을 뿐인데, 이들은 그곳에서도 크고 작은 것을 감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을 책에 담았다. 이것은 사건이 지나간 후, 그 뒷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이다. - 9~10쪽 나는 누군가 악을 쓰며 싸우는 소리를 느지막이 듣는 사람이다. 귀 밝은 이들이 앞서 달려간 곳을 더디게 따라가면, 그곳에는 무언가를 막아내기 위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제야 나도 자리를 잡고 기록을 한다. 그러는 사이 싸움이 끝나, 이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들은 ‘이겨서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돌아가는 길목에 늘 승리가 있는 건 아니다. 이긴다… 그것이 과연 이뤄질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고 나면 ‘이긴다’는 행위는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진다. 온전히 외쳐지는 요구도 없거니와 온갖 상흔과 감정이 쌓이는 까닭에 승리의 의미는 굴곡지거나 그 속을 채우는 내용이 달라진다. 누구든 싸움판으로 첫발을 디딜 때는 많은 다짐과 결심, (희망과 단념을 동시에 품는) 계산과 예측을 하지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면 처음 예상한 것이 무엇이든 그 마음만으로는 버틸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보면 분명 무언가 있다. 나는 그 무언가를 좇는 사람이지만, 때로 싸움이 지나고 난 자리를 생각한다. 싸움이 끝났다고 말하는 자리에 여전히 남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 15~16쪽 송전탑이 완공된 지 3년이 지나 기사 하나를 보았다. 3년이면 기억이 잊힐 만한 시간이다. 사건이 잠잠해질 시간이다. 그런데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지금이 제일 힘들다〉 - 19쪽 국가는 소박한 삶들로부터 승리했다. 밀양은 국책사업 의지를 천명하는 장이 됐다. 산업의 기반인 전기가 전 국토에 깔려야 한다고 했다. 산업발전 앞에 다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불가피한’ 희생에서 비롯하는 저항은 돈으로 메웠다. 비용은 적을수록 좋았다. 정당한 보상과 민주적 합의에는 큰 비용이 든다. 선로를 변경하는 일에도, 다른 대안을 찾는 일에도 돈이 든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지역민들이 입은 정신적·신체적 피해는 조사되지 않았다. 피해는 몇 푼의 보상금으로 영구 은폐됐다. 덕분에 우리의 전기는 밝고 저렴했다. - 28쪽 “포탄이 하루 몇 개 떨어지는지 아세요? 적게는 400개 많게는 700개. 진짜 실탄이 떨어졌으면 몇 번 만에 섬이 다 폭발했을 텐데. 훈련용이라 그나마 남아 있는 거예요. 옆에 섬 하나를 완전히 없애고, 2000년에 폭격이 멈춰 농섬은 살아남은 거예요.” 마을 주민이 들려준 이야기. 전투기와 공격용 헬기가 매향리 인근을 저공 비행하다 인근 섬들(농섬, 웃섬, 구비섬 등)을 목표물로 삼아 폭격을 가한다. 폭격장의 면적은 700만 평. 평일이면 아침부터 밤늦도록 총성과 포탄 떨어지는 굉음이 이어졌다. - 49쪽 나아리 주민 황분희 씨는 “여긴 모든 게 오염된 거라. 사람마저도.” 하며 자신의 가슴께를 가리켰다. 하지만 한수원의 말은 다르다. “우리 손녀가 학교 갔다 와서 그러는 거라. ‘반 친구가 그러는데 원자력은 절대 사고 안 난다고 해요’ 내가 ‘그래, 그 친구가 어디 사는 친구냐’ 하고 물으니까. 한수원 사택에 사는 친구라고. 그러면 그럴 수 있다. 다음에 그 친구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후쿠시마는? 일본 사고는 어떻게 일어났냐’ 하고 물어봐라 그랬어요.” - 76쪽 “요즘 산란기야? 왜 이렇게들 임신을 해.” 모 임원이 임신한 여성 직원들을 가리켜 한 말이라고 했다. 가해자의 인성뿐 아니라 일터가 임신부 노동자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농담’이라 했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이니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말이 문제로 인식된 것은 한참 뒤였다. 롯데호텔 파업이 없었다면, 평생 오지 않을 순간이었다. - 108~109쪽 아무리 입을 막아도 말하는 여성들이 있고, 아무리 내보내려 해도 나가지 않는 여성들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어느 직장이건, 임신해도 그만두지 않던 선배를 원망하다가 본인이 임신을 하면 저 선배가 ‘눈칫밥’ 먹으며 버텨준 덕에 자신도 다닐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나둘이 남아 여럿이 되면, 임신부에 관한 매뉴얼이나 사내규칙이 변경됐다. “그때는 몰랐는데.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한 거였어요. 임신하고도 회사를 계속 다니고 그런 것이, 나중에 보니.” - 118쪽 교육부의 변명이겠지만, 학교장들이야 당연하고 교직원들도 전수조사를 불편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사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내가 롯데호텔 사건에서 용화여고 미투 사건을 떠올린 것은, 단지 무언가를 써서 붙인다는 행위 때문이 아니었다. 롯데호텔에서 ‘재계약은 없다’며 엄포를 놓던 관리자와 “생활기록부를 쥔 채로 미래를 망쳐주겠다고 엄포를 놓던” 교사의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모든 교사가 가해자라는 말이 아니라, 교사가 지닌 위력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 136쪽 성폭력 사건에는 가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만 있지 않다. ‘모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20년 전으로 돌아가면, 롯데호텔에도 가해자 그룹이 섬처럼 따로 있던 것이 아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일상적으로 이뤄졌고, 그 일상을 모른 척하던 이들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정말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텐데, 눈을 돌리지 않으면 모르고 사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기수가 탄 말처럼 앞만 바라보고 가는 생활이 이어진다. - 137쪽 늦가을이 되어서야 조계사 농성은 마무리 되고, 114 노동자들은 일터로 복귀했다. 산재 대상자들을 향한 퇴사 종용을 멈추고, 개인이 원할 시 타부서로 재배치한다는 약속을 회사로부터 받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골병이었으나, 이들은 싸움 끝에 성과를 만들어냈다. 자신들의 싸움을 누가 알려나 하지만, 그 투쟁을 뚜렷이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그녀들 자신이다. “우리 정말 잘 싸웠다”라는 말이, 그 시절을 증명했다. 하지만 농성을 마무리하고 일터로 돌아갔을 때, 이들을 기다린 것은 익숙하고도 새로운 위기였다. 그들의 노동을 ‘잉여’ 취급하는 일터는 바뀌지 않았다. - 156쪽 기록을 보니, 관리자가 야간 근무 조회 시간에 여성 직원들에게 “참아보자! 참아보자!”라는 구호를 외치게도 했다. 그때는 드러내면 안 되고, 참아 넘겨야 하는 일로 여겨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그가 일했던 일터인 KT 114는 첫 멘트로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말하게 했다. 그게 진상과 성희롱 고객이 흘러들어오는 입구가 되었고, 몇 년 후에는 콜센터로 전화를 하면 수화기 너머에서 이런 멘트가 흘러나왔다.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폭언, 성희롱 시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 177쪽 “내가 없으면 회사가 일을 못 합니다. 작년에 고무호스를 끼우다가 산재가 났는데. 한 달 회사를 못 갔어요. 내 없을 때 회사에서는 이 사람도 넣어보고 저 사람도 넣어보고. 못해요. 고무 모형이 10개 20개가 아니고, 1,000개가 넘어요. 그만큼 다양하게 있다는 겁니다. 저도 다 몰라도 800개 정도는 아는데. 며칠 와서 일하는 사람이 그걸 다 기억할 수가 없어요. 내가 없으면 안 된단 말이에요. 회사도 알고는 있는데, 그래도….” 회사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인정하지 않는다. 저렴하기에 사용하는 노동력이다. 그 노동을 인정하는 순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없어진다. - 192~193쪽 남편을 따라 광주 고려인 마을에 온 이는 안산으로 가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여기를 떠나고 싶어요?”라고 묻자 일자리 이야기를 한다. “여기는 일이 없어요.” 생산직 일자리만 만연한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댁 이야기도 슬쩍 한다. 가족이 많은 것이 갑갑하다고 했다. 한국인들로부터 고려인은 가족이 소중하다는 이야기만 들어온 터라, 그렇게 감정을 털어놓는 이가 반가우면서도 반가운 기색이 드러날까 봐 조심스러웠다. 한국에 처음 와선 안산 고려인 식당에서 홀서빙을 보았다고 했다. 그때를 그리워한다. 지역을 떠나고 도시로 가고 싶은 욕망이 한국 지역사회 여성들의 서울 이주 욕망과 겹쳐 보여, 나는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듣는다. 이주라는 조건 속에서도 저마다의 결대로 뿌리를 내린다. 이들이 한민족이라 이 땅에 뿌리는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어디서 누구로 단 한 순간을 살아도 뿌리를 땅에 박아야 하는 것이 삶일 뿐이다. - 217~218쪽 ‘여직원’ ‘아줌마’ 이들은 인터뷰 내내 자신을 이렇게 불렀다.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가씨 자리’. 아가씨 자리에서 일하는 아줌마라. 다른 명칭도 나왔다. “제일 싫어하는 말인데, 우리는 잡부였어요. 오만 잡일 다 하는.” 이들의 직업은, 경리다. 명함 한 장이 없다. 명함이 있다 해도 새길 직책이 없다. 사람들은 사무실로 전화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가씨, 남자 바꿔.” - 219쪽 신자유주의 운명의 수레바퀴는 잔혹도 하다. 수레바퀴의 가속을 저지하는 방법을 애써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너랑 나랑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늙은 노동자의 말일 수도 있겠다. “빗길에 미끄러지며 일하는 주차관리 요원”을 돌아보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 차이를 두어 일하는 사람을 쪼개고 나누려는, 결국은 버려지는 속도만 다른 소모품으로 만들려는 기업에 대응하는 길에 무엇이 따로 있을까. 나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 소모품이 아니라 우리로 살려고 애쓰는 일. 법의 편리와 기업의 필요에 의해 나뉘고 쪼개진 자신들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그녀’들의 싸움을 응원했다. 아니 응원한다. “설사 승리 못 하더라도, 아무것도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뭐든 다 해봤어요. 저는 제가 기특해요. 잘했어. 기특해. 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강미희) - 236쪽 차례 들어가며 1부. 여전히 남은 사람들 1. 송전탑이 세워져도 마을의 시간은 가고 밀양을 기억한다는 것은 2023년. 남어진과의 대화 2. 평화란 “아침까지 푹 잘 수 있는 것” 미공군 폭격장 반환 이후, 매향리를 가다 2023년. 전만규와의 대화 3. 방사능 피폭 위험지대에 들어오셨습니다 월성원전 최인접 마을에 가다 2023년. 황분희와의 대화 2부. 우리 싸움은 누가 기억하지? 1. 우리가 구호를 외쳤잖아요 롯데호텔 파업과 성희롱 집단 소송 사건 20년 후. 스쿨미투 끝나지 않는 이야기 2. 통증에도 위계가 있어 114 한국통신 안내원들의 근골격계 투쟁 20년 후. 10명 중 7명이 나가는 곳에서 3부. 들리지 않아도 목소리는 존재한다 1. 봄이 올까요 공단에 숨겨진 노년 노동자의 꿈 2. 뿌리내리는 이들을 만나다 고려인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3. 가장 늦게 잘리는 자, 경리 아가씨 노동의 실체를 보다 참고도서 및 참고자료 보도자료 다운 받기
- 무명의 말들 | 포도밭출판사
2018-12-21 출간 | 정가 13,000원 무선 | 216쪽 | 130*210mm | ISBN 979-11-88501-06-9(03300) 무명의 말들 지은이: 후지이 다케시 책소개 이 책의 글들은 후지이 다케시가 2014년 여름부터 시작해 2017년 겨울까지 3년여 동안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 44편과 사진집에 실은 해설 1편, 문학지에 실은 글 1편을 엮은 것이다. 『무명의 말들』은 그가 6년 만에 펴내는 단독 저작이다. 후지이 다케시의 글을 ‘빛나는 성찰과 날카로운 문체’ 정도로만 소개한다면 표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의 글은 다만 잘 쓴 글이 아니라, 힘이 느껴지는 글이고, 읽는 이를 각성하게 만드는 글이다. 문장을 이렇게 벼려서 쓸 수 있구나, 싶게 그는 글을 썼다. 그는 어설프게 쓰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길게는 4년 전에 적힌 글을 지금 읽어도 무딘 느낌을 조금도 찾을 수가 없다. 책의 서문을 펼쳐본 독자는 깜짝 놀랄 것이다. 서문의 첫 문장에 “이 책은 유고집이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유고집’인 까닭은 ‘글쓴이 후지이 다케시’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을 버리고 ‘무명’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다른 이름으로 건너가는 길에 남은 흔적이다. 『무명의 말들』은 무엇보다 끝나지 않을 듯한 ‘흐린 날’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또각또각 새겨진 듯한, 그가 남긴 글들은 더없이 탁월하고, 또 감동적인 동행이 될 것이다. 보도자료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의 6년 만의 단독 저작이자 ‘유고집’ 이 책의 글들은 후지이 다케시가 2014년 여름부터 시작해 2017년 겨울까지 3년여 동안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 44편과 사진집에 실은 해설 1편, 문학지에 실은 글 1편을 엮은 것이다. 책의 서문을 펼쳐본 독자는 깜짝 놀랄 것이다. 서문의 첫 문장에 “이 책은 유고집이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유고집’인 까닭은 ‘글쓴이 후지이 다케시’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을 버리고 아직은 모르는 이름을 새로이 짓기 위해서 ‘무명’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다른 이름으로 건너가는 길에 남은 흔적이다. 2000년 2월부터 올해 2018년까지 서울에서 살며 여러 연구와 집필, 연대 활동을 하다가 얼마 전 일본으로 떠난 후지이 다케시는,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을 역임했다. 그사이 꾸준히 집필 활동을 했지만 단독 저작은 이승만 정권 초기, 해방 8년의 정치공간을 해부한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역사비평사, 2012) 단 한 권만을 펴냈다. 『무명의 말들』은 그가 6년 만에 펴내는 단독 저작이다. 이제 ‘글쓴이 후지이 다케시’가 펴내는 책은 이것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다른 곳이 아닌 ‘무명’의 자리로 돌아갔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기대가 되는 면도 있다. 그는 자신의 글(「무명으로 돌아가기」)에서처럼 ‘아직 없는 이름’을 짓고 ‘아직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을 자신의 자리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훗날 그가 알려줄 새로운 ‘구호’가 벌써 궁금하다. 『무명의 말들』은 무엇보다 끝나지 않을 듯한 ‘흐린 날’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또각또각 새겨진 듯한, 그가 남긴 글들은 더없이 탁월하고, 또 감동적인 동행이 될 것이다. 힘이 느껴지는 그의 글 그의 글을 ‘빛나는 성찰과 날카로운 문체’ 정도로만 소개한다면 표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한겨레>에 칼럼을 연재하는 동안 어느 비평가는 그를 두고 ‘칼럼 장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의 글은 다만 잘 쓴 글이 아니라, 힘이 느껴지는 글이고, 읽는 이를 각성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문장을 이렇게 벼려서 쓸 수 있구나, 싶게 그는 글을 썼다. 그는 어설프게 쓰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길게는 4년 전에 적힌 글을 지금 읽어도 무딘 느낌을 조금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가 벼린 것은 문체만이 아니었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과 관계들에 대한 인식,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말하는가 등의 문제의식에 있어서도 그는 무딘 구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자신을 벼렸고, 그 날카로운 말들로 안락에 젖은 인식을 흔들어놓곤 했다. 『무명의 말들』에는 그가 쓴 칼럼들을 모두 모았다. 4·16 이후의 삶과 생각 칼럼 연재를 시작한 때는 2014년 6월 1일이다.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하고 한 달 반이 지난 때다. 우리를 하루 빨리 ‘일상’으로 복귀시키려는 권력의 의도가 4·16의 기억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내려는 것, 즉 망각을 요구하는 것임을 말하는 「멈춘 세월, 흐르는 시간」이 첫 글이다. 이후로도 후지이 다케시는 「진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명복을 빌지 마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으로 4·16를 말한다. 4·16을 겪으며 우리가 느낀 붕괴감이 쉽게 치유돼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그리고 저 암담한 심정, 슬픔, 분노를 ‘망각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죽였고 그들을 구하지 않았기에” 모두 4·16의 가해자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되기에 이 책 전체에는 저 ‘가해 경험’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가해 당사자’로서의 인식이 깔려 있다.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자’의 시선 후지이 다케시는 매번 소수자의 시선으로 시대를 해석하고 논쟁하는 글을 발표했다. 특히 단지 ‘소수자’가 아닌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자’(극소수자)의 입장을 드러내며 안일한 인식을 흔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들. 2015년 6월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퀴어 반대집회가 서울시청 앞에서 열렸을 때, 그가 바라본 것은 무대에서 북을 치고 춤을 추는 여성들이다. 퀴어축제보다 더 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반대집회 측에서 ‘동원’한 여성들. 저자는 이곳에서 여성들을 무대 위로 올려 보내고 그것을 ‘방역선’ 삼아 뒤로 빠지는 태극기 남성들의 치졸함을 본다. 그리고 퀴어축제와 반대집회에 동시에 거리를 두면서 ‘제3자적’ 입장에서 평론하는 이들도 저 ‘치졸한 남성들’과 다를 바 없다고 평한다. (「폐를 끼치며 살기」)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자’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은 옥바라지골목 철거 강제집행에 대한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순국선열’들이 ‘영웅적인 투쟁’ 끝에 감옥에서 죽어갈 때, 형무소 근처에 머물며 그들을 옥바라지한 이들의 노고가 새겨져 있는 곳이 바로 옥바라지골목. 수감자들이 형무소 안에서 탄압을 받는 동안 담장 밖에서 그들을 옥바라지한 이들도 수감자의 옥중투쟁을 지키면서 함께 압제에 맞섰다. 때문에 저항하는 삶의 기억은 형무소보다 옥바라지골목에 더욱 많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후지이 다케시는 일깨운다. (「옥바라지 기억하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후지이 다케시는 외국인으로서의 소외감을 고백한다. 시위에 참여한 주체를 번번이 ‘국민’이라고 호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는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실제 광장에 모여 이 사회를 바꾸려고 싸우고 있는 것은 비단 국민뿐인가?” 그리고 민주노총 총파업대회에 참여한 이주노동자들을 떠올린다. 한국 자본주의의 밑바탕에서 그 혹독한 현실을 몸소 겪고 있는 이들. 이들을 포함해 세상을 바꾸려는 열망을 가진 이들이 어느 날 하나의 광장에 모였을 때, 그들을 움직이게 한 열망은 결코 균질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다양한 열망을 담기에 ‘국민’이라는 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누가 싸우고 있는가」) 낯설고 불편한 말들 칼럼을 연재한 3년여 동안 한국 사회에는 숱한 사건들이 있었다. 416,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메르스 사태, 국정 교과서 논쟁, 최순실 사태, 촛불집회, 박근혜 탄핵, ‘메갈’ 논쟁, 문재인 대통령 당선 등이 모두 3년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이다. 이 변화무쌍한 기간에 후지이 다케시는 계속 ‘낯설고 불편한’ 글들을 발표했다. 그는 불편한 말들을 통해 안락한 인식에 머물고자 하는 이들을 매번 흔들어놓았다. ‘헌법질서 수호’라는 논리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지적하고(「헌법재판소가 지키려는 것」), 학생들이 학교에 학비를 낼 게 아니라 임금을 요구하라고 말하며(「학생에게 임금을!」),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 씨 사건에서는 “내가 김기종이다”라고 외치고(「내가 김기종이다」), 416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지 마라”고 외치며(「명복을 빌지 마라」). 선거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지적한다(「선거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후지이 다케시는 “안전하지 않은 것이 안전하다”고 알려준다. 권력자들의 ‘안전’과 ‘우리’의 안전은 다르기에. 그래서 오히려 불편하길 선택하고 흔들리길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일깨운다. 저항과 해방 저항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편해야 함을 후지이 다케시는 강조한다. 「폐를 끼치며 살기」에는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푸른 잔디 모임’이라는 뇌성마비자단체를 소개하는데, 그들의 행동강령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문제 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이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타협의 출발이 되는지 몸소 느껴왔다. 우리는 계속 문제제기를 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운동이라 믿고 행동한다.” 저 강령에 따라 단체가 벌인 행동 가운데 하나가 기차역 등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은 혼자서도 이동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정상인’들과 장애인들의 ‘만남’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저항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관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예다. 그리고 이런 저항의 순간은 다름 아닌 해방의 순간이다. “해방의 순간이란 움직일 수 없는 자연법칙처럼 보였던 사회질서가 사실은 자의적이고 인위적인 것임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다시 말해, 그 순간부터 사물 같았던 질서가 사람들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_「시장에는 해방이 없다」 이양지와 김시종, 기억해야 할 재일조선인 문인들 후지이 다케시는 과거 <퍼슨웹>과 가진 인터뷰에서 90년대 일본에 있을 때 재일조선인 운동에 참여한 이야기를 했다. 당시 재일조선인 문학을 많이 읽었음을 고백하며,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문인으로 이양지 소설가와 김시종 시인을 언급한다. 그리고 칼럼에서도 그들을 새로이 소개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에서 후지이 다케시가 주목하는 것은 무엇일까. 재일조선인들은 ‘한국인’이라는 규범을 혼란시키기에 불편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양지의 대표작 『유희』는 그러한 혼란을 의도적으로 추구한 작품이라고 후지이 다케시는 평한다. ‘다수자’를 공격하는 ‘소수자’. 그들은 ‘다수자’를 공격하면서 ‘다수자’의 틀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바깥세상의 존재를 일깨운다. (「‘유희’를 떠올리며」) 그리고 일본에 대한 복수로서 날카로운 일본어를 구사한 시인 김시종의 시 역시 칼럼에 등장한다. 「명복을 빌지 마라」의 제목은 바로 김시종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작품들이 다시 한 번 읽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면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새로운 ‘우리’를 만들기 위하여 후지이 다케시의 글에는 따옴표로 묶인 ‘우리’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따옴표로 강조된 이 단어는 무엇을 말할까. 다양한 경계 안에서, 무수한 권력의 작동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후지이 다케시의 글에서 ‘우리’라고 강조된 말의 특징은, 무엇보다 그 안에서 관계가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주어진 이름을 반납하고 무명으로 돌아가는 일이 가능하듯, ‘우리’ 역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이 만들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 아닐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끊임없이 균질적이길 요구하는 답답한 세상에서 다른 ‘우리’를 만들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답답하고 흐린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술은 그런 것 아닐까. 저자는 흐른 날일수록 손을 내밀고, 잡은 손을 좀더 가까이 끌어당기자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흐린 날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손을 내밀고, 잡은 손을 좀더 가까이 끌어당기자.” _「흐린 날에」 * 『무명의 말들』이라는 책 제목은 저자의 칼럼 「무명으로 돌아가기」에 실린 <무명통신> 이야기에서 가져왔다. <무명통신>을 만든 이들은 “자신을 가두는 껍데기”를 스스로 깨기 위해 “주어진 이름을 반납하고 무명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한다. ‘무명’은 아직 없는 이름을 짓기 위해 돌아가는 자리다. 지은이 소개 후지이 다케시 2000년 2월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성균관대 사학과 BK연구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8년 3월 일본으로 떠남. 지은 책으로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역사비평사, 2012), 옮긴 책으로 『번역과 주체』(이산, 2005), 『다미가요 제창』(삼인, 2011) 등이 있다. 책 속에서 4월 중순 이후 우울하게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밑바닥을 드러낸 이 사회 권력층의 ‘꼬라지’도 그 원인이긴 하지만, 단지 ‘저들’이 문제라면 분노하고 욕하면 되는 것이지, 사실 우울해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계속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저들’만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자꾸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이며, 무엇보다도 거기에 나도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_13쪽 스콧이 권장하는 법규 위반은 ‘미래의 그날’을 위한 준비체조로 자리매김되어 있지만, 사실 이런 실천들 자체가 ‘미래의 그날’을 만드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구나 한두 번은 그런 경험이 있을 텐데, 아무리 사소한 법규 위반이라도 자신의 판단으로 의식적으로 저지르게 될 때, 사람은 긴장감 속에서 많은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게 된다. 그때 이미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순간 속에 있다. 이 순간 정치는 시작된다. _39쪽 노동자가 임금을 요구하는 것이 자본가에 대한 구걸이 아니듯이, 노동력 상품 생산자인 학생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비싼 등록금 문제가 무엇보다 학생들을 고립된 ‘개인투자자’로 만들어 배움이 지니는 사회성을 파괴하는 데 있다고 한다면, 학생들이 연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고등교육의 사회성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다. _52쪽 퀴어축제에서 볼 수 있었던 어떤 모습은 불쾌감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쾌감이 우리 몸에 새겨진 감각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 불쾌감은 오히려 새로운 사회관계에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서로 폐를 끼치기에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_74쪽 지옥 속에서 우리는 먼저 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감아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더듬는 손끝에 감각을 집중시킨다. 그 손이 다른 손을 잡을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어떤 문을 찾게 될 것이다._84쪽 차례 서문을 대신하여 멈춘 세월, 흐르는 시간 ‘현재’를 묻는다는 것 진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왜 그들은 기업을 폭파했나 헌법에 따른 역사교육? ‘서북청년단’이 의미하는 것 신호등 안 지키기 헌법재판소가 지키려는 것 시장에는 해방이 없다 학생에게 임금을! 내가 김기종이다 명복을 빌지 마라 선을 지키면 행복해져요? 흐린 날엔 폐를 끼치며 살기 인권에 예외는 없다 증오와 혐오 사이 헬조선의 동맹파업 ‘한-일 화해’는 다가왔다 ‘균형 잡힌’ 역사교육이란? 분서와 학문의 자유 갈대처럼 옥바라지 기억하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패배의 경험 “법대로” 세계 난민의 날에 혐오와 사드 모병제와 국민국가의 종언 공정성은 무엇을 지키는가 박근혜라는 스크린을 넘어 누가 싸우고 있는가 더 많은 광장을! 어리석은 자의 비 “말도 편하게 못하겠다” 무명으로 돌아가기 선거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유희’를 떠올리며 “안보입니다” 차별금지법과 촛불민주주의 민주주의의 국경 후 캔 스피크 조직을 지키는 것과 운동을 지키는 것 누가 국가를 두려워하는가 • 물에 빠진 개는 쳐라 정치적 올바름, 광장을 다스리다?
- 풀뿌리운동, 새로운 복원 | 포도밭출판사
2017-10-13 출간 | 정가 17,000원 | 316쪽 | 135*210mm | ISBN 9791188501007 풀뿌리운동, 새로운 복원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이루는 힘, 풀뿌리운동 이야기 지은이: 이호 책소개 한국 풀뿌리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되살리다! 30여 년간 현장에서 뜨겁게 활약해온 저자의 역작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이루는 동력인 ‘풀뿌리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한국 사회의 풀뿌리운동에 대한 정리 작업이 절실하던 차에 30여 년간 풀뿌리운동 현장에서 뜨겁게 활약해온 저자의 노력으로 책이 출간되었다. 풀뿌리운동이 무엇인지부터 풀뿌리운동의 역사, 원리, 쟁점과 지향에 이르는 내용이 저자의 경험과 하나가 되어 펼쳐진다. 보도자료 풀뿌리운동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세상의 변화는 힘과 권력, 돈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생각과 움직임을 만드는 과정이 결국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다.”(6~7쪽)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생각과 움직임을 만드는 과정’. 이것이 바로 풀뿌리운동의 주요한 개념이다. 그리고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기득권이 아닌 일반의 대중, 즉 민초(民草)들이 사회를 목적의식적인 방향으로 바꾸고자 스스로 벌여나가는 활동들을 풀뿌리운동이라 일컫는다. 권력을 쥐지 않은 평범한 이들의 활동이기에 그 힘이 미미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풀뿌리운동은 근본적인 사회 변화의 동력이다. 『풀뿌리운동, 새로운 복원』은 이를 확인시켜줄 내용들을 담고 있다. 풀뿌리운동의 개념부터 주요 원리, 쟁점들을 밝히다 지난 30여 년 동안의 풀뿌리운동사를 기록하다 『풀뿌리운동, 새로운 복원』의 저자 이호는 현장 활동가로 30여 년을 살아왔다. 그의 활동의 시작은 80, 90년대의 도시빈민지역에 들어가 살며 활동하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주민운동 활동가를 거쳐 지금의 풀뿌리운동 활동가가 되었다. 그가 지나온 30여 년의 궤적은 그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풀뿌리운동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그가 늘 풀뿌리운동의 맥락에서 살아온 까닭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로서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어온 풀뿌리운동사를 촘촘하게 기록하고 있다. 풀뿌리운동사를 정리한 기록이 매우 드물기에 더욱 반가운 작업이다. 역사뿐만이 아니라 ‘주민 참여 조직’ ‘지역사회 네트워크’ ‘지역정치 현장에서의 영향력 강화’ ‘마을(공동체)만들기’ 등 풀뿌리운동의 원리 및 현 풀뿌리운동이 안고 있는 쟁점들도 정리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앞으로의 풀뿌리운동이 지향할 바에 대해 적고 있다. 저자가 ‘특히 마지막 장의 내용을 꼭 쓰고 싶었다’고 밝히는 만큼, 오랜 활동가의 삶 속에서 빚어온 성찰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한국 사회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궈온 무수한 ‘풀뿌리’들을 조명하고 복원하는 작업 〈수도권특수지역선교협의회〉 〈복음자리〉 〈희망의료협동조합〉 〈천주교도시빈민회〉 〈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의회〉 〈서울시철거민협의회〉 〈난곡주민회〉 〈관악주민연대〉 〈관악사회복지〉 〈성동주민연대〉 〈마들주민회〉 〈일꾼두레〉 〈실과바늘〉 〈나눔건설〉 〈등대생협〉 〈겨레사랑주민회〉 〈살기좋은우리구만들기〉 〈과천시민모임〉 〈환경사랑실천모임〉 〈녹색삶을위한여성들의모임〉 … 지금 사회에서는 이곳들을 기억하고 언급하는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곳들은 버거운 삶의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자신과 이웃들이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치열히 활약했고 활약하는(몇몇은 지금도 활동 중이다) ‘풀뿌리’의 거점들이다. 꽤 길게 나열했지만 이조차 그간 활동한 무수한 곳들 중 극소수이고 찾아보면 훨씬 많은 활동의 흔적들이 있다. 『풀뿌리운동, 새로운 복원』은 최대한 그 이름들을 밝히고 당대의 활동을 새로이 조명하고 복원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유력한 방법! ‘나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를 이야기하자 저자는 풀뿌리운동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장에 이르러 이렇게 제안한다. 정작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실종돼가는 것에 맞서 ‘나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에 대한 수다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세상을 표현하고, 그것으로 논쟁하고 합의하며, 합의를 바탕으로 공감대를 확산해나가자고 말한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기에! 지금 사회운동 또는 시민운동이 그 영향력을 잃고 왜소화된 데는 외부적 요인만 있지 않다. 내부적으로 많은 중요한 요인들이 축적돼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중에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중요한 것 하나는 정작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실종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가 실종된 사회운동은 상상할 수 없다. 지금 사회운동의 모습은 이 문제에 봉착해 있다. (…) 그런 점에서 ‘내’가 추구하는 세상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질문하고 논쟁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의 모습이 구체화되고 합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합의된 내용들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그러니 우리는 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필요가 있다. 사회운동은 그러한 수다로부터 시작되고 전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291쪽) 지은이 소개 이호 1988년 도시빈민지역에 들어가 살며 도시빈민운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오늘까지 활동가로 살고 있다. 도시빈민운동 활동가와 주민운동 활동가를 거쳐 지금의 풀뿌리운동 활동가가 되었다. 도시빈민연구소(현 한국도시연구소)에 들어가 현장 활동 지원을 중요한 역할로 삼기 시작했고, 이후에 본격적으로 활동하고자 여러 현장 활동가들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을 만들고 운영했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에서 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더 체인지〉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을 통합한 〈더 이음〉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모이고 떠들고 꿈꾸다』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진정한 세상의 변화는 힘과 권력, 돈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생각과 움직임을 만드는 과정이 결국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 이 책을 쓴 목적은 각자 자기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어서다. (…) 나로부터 수다를 시작하고자 한다. 수다 같은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나눠지고 공유되었으면 한다. 풀뿌리운동은 긴밀한 소통과 대화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수다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가 살고 싶은, 그래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보다 많은 질문과 수다들이 넘쳐나길 바란다. 이 글이 그러한 일에 작은 계기라도 될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겠다. – 서문 6~7쪽 풀뿌리운동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다수 대중이 실천하는 사회운동’이란 의미를 가진다. 또한 풀뿌리운동은 사회를 보다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풀뿌리운동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사회운동의 형태가 아니다. 오랜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통적인 사회운동, 주로 민중운동이라 불리던 것들이 모두 풀뿌리운동인 것이다. 즉 권력을 지닌 소수의 정치 엘리트들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다수 대중들의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 한 전통적 사회운동이 모두 풀뿌리운동이다. 다만 이러한 운동을 우리가 최근까지도 풀뿌리운동이라 칭하지 않았을 뿐이다. 풀뿌리운동이라는 말은 새로울 수 있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내용은 익숙하다. – 본문 19쪽 차례 서문 1장. 풀뿌리운동이란 무엇인가 1. 풀뿌리들이 벌이는 운동 2. 풀뿌리운동이 사회운동의 위기마다 주목받는 이유 3. 풀뿌리운동이란 무엇인가 4.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조건들 2장. 풀뿌리운동의 역사 1. 역사 이야기를 시작하며 2. 1990년대, 풀뿌리운동의 새로운 시작 3. 2000년대, 풀뿌리운동의 확산 4. 2010년대, 풀뿌리운동과 제도권의 본격적 만남 5. 역사 이야기를 마치며 3장. 풀뿌리운동의 원리 1. 주민이 참여하도록 조직하기 2. 지역사회 네트워크 다지기 3. 지역정치 현장에서 영향력 강화하기 4. 마을(공동체) 만들기 4장. 풀뿌리운동의 쟁점들 1. 조직은 수단인가 목적인가 2. 풀뿌리운동은 여성운동인가 3. 풀뿌리운동의 사각지대, 청소녀(년)와 청년 4. 풀뿌리운동과 노동운동 5. 풀뿌리운동과 풀뿌리운동‘단체’ 6. 조직 내부의 세대 갈등 7. 풀뿌리운동과 관변단체 8. 갈등과 마주하기 5장. 풀뿌리운동의 지향 1. 나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2. 서로를 착취하지 않는 세상 3. 자급과 공동체는 폐쇄적인가 4. 관계의 ‘새로운 복원’ 5. 삶의 영성, 운동의 영성
-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18-2 (03800) 출간일: 2021년 4월 26일 정가: 13,000원 제본: 무선 쪽수: 192쪽 판형: 130×205mm 분야: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국내도서 > 에세이 > 독서에세이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여성학/젠더 > 여성문제 국내도서 > 사회정치 > 여성/젠더 > 페미니즘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지은이: 김예림 책 소개 만 스무 살의 김예림은 스물두 살이 되기까지 2년 동안 자신이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즘을, 세상을, 21세기를, 스무 편의 글로 기록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으로서, 연고도 없는 비수도권 지역에 혼자 살며 일을 시작한 여성으로서, 김예림은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작한 페미니즘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예림은 할 말은 많지만 도무지 입술이 움직여지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이 읽은 스무 권의 책을 소개한다. 그가 책 속에서 만난 과거 여자들의 목소리는 현재에 만나는 바로 곁의 여자들의 목소리와 겹치고 포개진다. 그리고 저절로 입술을 떼고 말문을 열게 한다. 김예림은 이 놀라운 경험을 함께하자고 청한다. 그리고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토록 멋진 날이 왔다’고 외칠 수 있기를 함께 희망하자며 팔을 끌어당긴다. 보도자료 페미니즘이 뭐야? 김예림이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단순했다. 누군가 “페미니즘이 뭐야?”라고 물을 때 대꾸할 나름의 답을 찾고 싶었다. 여성우월주의니, 여자 일베니 하면서 페미니즘을 조롱하는 일이 흔했지만 김예림은 궁금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건 꼭 페미니즘뿐만이 아니었다.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상황을 겪는 순간마다 과연 어찌해야 옳은지 알고 싶었다. 이를 테면 “여자애니까 다리를 오므려야지!” 같은 말을 듣는 순간, 햇볕 아래서 일하다 얼굴이 그을렸는데 누군가 자꾸만 “왜 이렇게 시꺼멓게 탔어?”라고 묻는 순간에는 어찌 해야 좋단 말인가. 모르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즐거운 섹스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쩌다 임신을 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누군가 함부로 나를 만진 기억이 하루가 지나도 떨쳐지지 않을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그래서 김예림은 더 공부하고 싶었다. 만 스무 살의 김예림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충북 옥천에 집을 구해 살며 낮에는 잡지사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밤 시간과 휴일을 이용해 공부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라는 곳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곳이 김예림의 페미니즘 교실이 되었다. 탱자에서는 매주 책을 정해 읽고, 한 달에 한 번씩 에세이를 썼다. 엄마의 가사노동, 몸에 남은 브래지어 자국, 직장에서 겪은 일, 꾸밈노동 등이 글감이 되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여성의 참정권 운동부터 제2물결 페미니즘까지, 여성의 가사노동부터 육식의 성정치까지, 다양한 앎의 파도를 오르내리며 1년을 보냈다. 퇴근 후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아침 해가 떠오르는 날이 잦았다. 내가 선 자리에서 페미니즘 이어 말하기 이 책에 모은 글들은 그런 날들의 기록이다. 대학에 가지 않은, 비수도권에 사는, 여성 청년 노동자로서 김예림은 자기가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즘을, 세상을, 21세기를 기록했다. 그 글들에는 페미니즘 저서들을 통해 생각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김예림이 책 속에서 만난 과거 여자들의 목소리는 현재에서 만나는 바로 곁의 여자들의 목소리와 겹치고 포개진다. ‘앎’의 이야기가 절반, ‘삶’의 이야기가 절반을 이룬다. 김예림의 ‘앎’은 삶의 연료가 된다. 다시 ‘삶’의 시간은 앎을 해석하는 재료가 된다. 시대는 과연 변하고 있을까. 세상은 과연 나아지고 있을까. 어떤 면에서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변화는 무척 더디고 때로는 뒤로 후퇴하는 듯도 하다. 김예림은 너무 늦지 않게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 21세기가 다 가기 전에 새 시대에 꼭 어울리는 언어로 이렇게 외칠 날을 고대한다. “이 멋진 날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왔구나!” 하고. 그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김예림은 계속 공부한다. 앎을 그리고 삶을. 이슬아 작가의 추천사 이것은 책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다. 김예림은 남루한 날에 떠올릴 남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모은다. 과거의 여자들에게서 건져 올린 말과 글을 어젯밤 꿈처럼 기억하고 옮겨 적는다. 지난 역사 속 여자들의 웃음과 눈물이 자신에게 자국으로 남기를 바라서다. 그는 살아본 적 없는 시대의 여자들로부터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안다. 영원해 보이는 조건, 태어난 나라, 인종, 성별, 지역, 계급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고민하며 읽고 쓴다. 그의 집은 오래된 여자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워도 책들이 말을 건다. 그러자 꾹 닫힌 그의 입술이 저절로 열린다. 그렇게 열린 말문으로 이 책이 쓰여졌다. 김예림이라는 작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배움은 그를 주저앉게 하는 동시에 일으키고 헤엄치게 한다. 한국의 비수도권에 사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여성 청년 노동자로서 김예림은 ‘자기만의 방’ 바깥의 이야기를 쓰려 한다. 이토록 멋진 날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왔다고, 너무 늦지 않게 말하기 위해서다. ― 이슬아 (작가, 헤엄 출판사 대표) 김예림이 소개하는 스무 권의 책 1.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2. 『여성의 권리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3.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4.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5.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6. 『맨박스』, 토니 포터 7. 『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8.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9. 『육식의 성정치』, 캐럴 제이 애덤스 10.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11. 『젠더 무법자』, 케이트 본스타인 12. 『거부당한 몸』, 수전 웬델 13. 『일탈』, 게일 루빈 14.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15.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16.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조앤 스콧 17.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마리아 미즈, 베로니카 벤홀트-톰젠 18. 『기록되지 않은 노동』,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19. 『하나이지 않은 성』, 뤼스 이리가레 20. 『페미니즘 탐구생활』, 게일 피트먼 지은이 소개 김예림 1998년에 안산에서 태어났다. 노동자 부모 아래서 가난한 줄도 외로운 줄도 모르고 자랐다. 궁금한 게 많았던 열네 살의 나는 겁 없이 대안학교에 지원했고, 시간이 흘러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자기 깜냥을 깨달은 대안학교 졸업생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는 내 깜냥으로 먹고살아야 했다. 스무 살에 지역 잡지사에서 기자 일을 시작했다. 하루 걸러 웃고 울면서 2년 반을 보냈다. 이렇게 일만 하며 살다가는 고독사하여 바싹 마른 미라로 발견되겠구나 싶었던 어느 날, 숨구멍을 찾았다. 지리산 자락의 ‘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잔뜩 품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곳에 다니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밤이든 낮이든, 더듬더듬, 띄엄띄엄. 나는 늘 그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도착한 이유는 나중에 알아챘다. 내 몸과 생각이 현재와 다른 곳을 향할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했다. 이야기는 늘 먼저 도착해 있었고, 내가 지난 이야기를 알아채는 건 나중 일이었다. 그렇게 만난 이야기들을 앞으로 더 정확히 알아가려고 한다. 책 속에서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은 내 세계를 바꿨다. 이 책은 내가 대학에 갔다면, 서울에 살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쓴 글을 모은 것이다. 페미니즘 에세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선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대안학교를 졸업해 세상에 나서고 보니 세상이 내 생각과 너무 다르게 굴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 자신, 비대학 청년으로서 지역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한 나 자신을 향한 격려다. 이 책에서 만날 여러 저자의 말과 글이 당신에게도 의미 있기를 소망한다. 여기에 곁들인 내 슬픔과 사랑이 당신의 마음 한 구석에 들어앉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당신이 선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을 서둘러 적어두기를 청한다. 언젠가 그 기록을 모아, 먼 훗날 어떤 이들의 말과 글과 행동이 오늘을 만들었는지, 우리가 증언하기로 하자. - 「서문」 중에서, 7쪽. 나를 작아지게 할 것만 같은 도시에서 벗어나 지역으로, 그것도 농촌으로 온 내 상상은 이런 거다. 오래된 집을 빌리고, 집의 낡은 곳을 보수하며 웬만한 기술을 익히고, 야심차게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가 어설프고 게으른 손길로 망쳐버리고, 그럼에도 남겨진 소소한 수확에 기뻐하는 것. 토마토 샐러드와 고사리 파스타를 차려놓고 동네 친구들과 먹고 놀다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내는 것. 글쓰기 모임이든 독서 모임이든 산악회든 뭐가 됐든 주기적으로 만나고 마시고 얘기하다 이 지역에서 우리 목소리를 내보자고 결심하는 것. 함께하는 사람에게 다정하고, 떠나는 사람을 응원하며, 새로운 사람을 환대하는 일상을 보내는 것.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도 우리는 꽤 치열하게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 보여주는 것, 그렇게 다음 시대를 상상하는 것. 『여성의 권리 옹호』를 읽고서 상상해보는, 지역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권리 옹호다. - 「300년 전 여성의 권리 옹호」 중에서, 24~25쪽. 사람은 모두 누군가의 자국이 남아 있는 존재라고 했다. 내 타고난 생김새, 편한 옷을 자주 입는 나, 맨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상태를 좋아하는 나, 특별한 날에는 세련된 옷을 입고 구두를 신는 나, 바쁘고 힘들 때는 곱슬머리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도 개의치 않는 나의 존재에도 누군가의 자국이 남아 있다. 내가 아름답지 않아서 ‘내게 첫눈에 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체념할 때마다 다시 내 겉모습을 사랑하게 하는 것도 탈코르셋이 아닌 누군가의 자국이다. 내가 어떤 자국을 가장 사랑했는지, 어떤 자국을 내 일부로 남겨두었는지 떠올려보면 내가 매일 여성적 아름다움을 장착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주었던 이들의 손길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쉽게 자각한다. -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중에서, 92쪽. 한국의 성별 이분법과 그에 따른 문화 속에서 나는 어디까지 가짜로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늘 경계를 넘나드는 젠더무법자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는 그들이 가까운 미래에 ‘분류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 ‘경계를 유영하는’ 물고기가 되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자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고민하는 대신 물고기처럼 아름답고 자유로운 친구를 사귈 테다. 우리는 함께 해가 질 때까지 강가를 떠나지 않으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을 만큼 오래 헤엄을 칠 테다. - 「너 가짜로 살고 있구나」 중에서, 100쪽. 내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내 노동이 아닌 여행을 떠올린 것은 이제 자기만의 방 바깥의 이야기가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울프가 20세기에 필요한 이야기를 했다면, 나는 21세기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긴 방황을 위한 넉넉한 돈, ‘자기만의 방’을 떠난 여행에서만큼은 주어진 젠더를 인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여전히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서 ‘그건 너무 이른 이야기’라고 타이른다면, 나는 울프의 말을 다시 빌려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나의 제안이 약간 환상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픽션의 형식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좋겠지요.” 적어도 100년 안에 도래할 세상을 그리는 픽션 말입니다. - 「자기만의 방 바깥으로 떠난 여행」 중에서, 136쪽.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어렵고, 무겁게 느껴지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섣불리 내 이름 앞에 붙일 수 없었다. 책으로 수많은 페미니스트를 만나면서도 왜 몰랐을까. 페미니즘은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은 모든 사람을 호명하는 이름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페미니즘에서 도망치는 대신에 페미니즘의 힘을 주장하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해보세요”라는 게일 피트먼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나는 책을 덮고, 눈물을 닦고, 오늘에서야 뒤늦은 선언을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그녀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 「뒤늦은 선언」 중에서, 189쪽. 차례 서문. 책 읽는 내가 선 자리 1. 동굴 밖으로 나와 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2. 300년 전 여성의 권리 옹호 3. 21세기, 행위하는 인간의 조건 4. 나를 위한 게임 5. 낡은 것은 도태하고 새로운 것은 떠오른다 6. 길 잃은 남자를 위한 친절한 이정표 7. 다정함의 기술 8.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 9. 육식인의 전복 10.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11. 너 가짜로 살고 있구나 12. 우리가 앓는 장애 13. 일탈이 일상이 되는 세상을 위하여 14. 이방인의 집 15. 자기만의 방 바깥으로 떠난 여행 16. 혁명의 그늘진 곳을 비추다 17. 자급의 삶을 살고 싶다고요 18. 기록되지 않은 노동자가 고난에 응답하는 법 19. 우리의 입술이 저절로 말할 때 20. 뒤늦은 선언 보도자료 다운 받기
- 국가 없는 사회 | 포도밭출판사
2014-08-15 출간 | 원제 At The Cafe: Conversations on Anarchism | 정가 12,000원 | 반양장본 | 176쪽 | 137*210mm | ISBN : 9791195277025 국가 없는 사회 카페에서 만난 어느 아나키스트와의 대화 지은이: 에리코 말라테스타 옮긴이: 하승우 책소개 지금처럼 국가 혹은 정부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득한 때에, 우리가 바라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실천적인 비전을 담고 있다. 1897년부터 1920년까지, 23년에 걸쳐 이탈리아 아나키스트인 에리코 말라테스타가 수배와 구속을 거듭 겪으며 집필한 원고들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씌어졌으며, 국가폭력의 본질을 고발하며 국가 없는 사회 구상의 비전을 그려낸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분명하다. 인민이 스스로 힘을 기르고, 생활의 수단을 가지고, 사회를 구성하자는 점을 설득하고 그러한 운동을 선전하기 위해서다. 이 목적을 위해 읽기 쉬운 대화 형식으로 글을 썼고,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면서 아나키스트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자 치안판사, 부르주아지, 노동자, 자영업자, 공화주의자, 대학생, 군인 등을 대화 상대로 등장시켜 말을 시키고 있다. 보도자료 지금 근원적으로 되풀이되는 물음, 국가란 무엇인가 한 세기 전의 한 아나키스트가 일깨우는 통렬한 비전 아나키즘 정치 이론에 중대한 공헌을 한 역사적 문헌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23년에 걸쳐 씌어진 대화 아나키스트 조르조가 어느 모퉁이 카페에서 열일곱 밤에 걸쳐 다양한 인물들과 어울려 나누는 국가와 사회에 관한 거침없는 논쟁 “자본주의와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미치는 폭력의 정점에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무엇이 사회의 근본인지를 잘 보여준다” 【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국가의 역할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시민들의 촛불집회 현장에서 “국가가 책임져라”, “누구의 정부인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글귀를 종종 접한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이 질문을 먼저 풀어야 했던 과거 한 아나키스트 선배의 이야기이다. 외국의 이야기로만 들을 수 없다. 봉건제도와 외세에 맞서 농민들이 무기를 들었던 갑오년이 120년을 돌아 지금 우리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당시 무장봉기했던 동학 농민군의 고민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을까? 우리는 당시의 농민들보다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여기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을 헛되이 되풀이하지 않는다. 인민의 삶을,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그것을 구성하고 운영할 방법을 근원적으로 고민하게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만들 수단을 가진 사회’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 『국가 없는 사회』(영어판 『At the Cafe: Conversation on Anarchism』, 2005)는 지금처럼 국가 혹은 정부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득한 때에, 우리가 바라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실천적인 비전을 담고 있다. 이 책은 1897년부터 1920년까지, 23년에 걸쳐 이탈리아 아나키스트인 에리코 말라테스타가 수배와 구속을 거듭 겪으며 집필한 원고들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씌어졌으며, 국가폭력의 본질을 고발하며 국가 없는 사회 구상의 비전을 그려낸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분명하다. 인민이 스스로 힘을 기르고, 생활의 수단을 가지고, 사회를 구성하자는 점을 설득하고 그러한 운동을 선전하기 위해서다. 이 목적을 위해 읽기 쉬운 대화 형식으로 글을 썼고,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면서 아나키스트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자 치안판사, 부르주아지, 노동자, 자영업자, 공화주의자, 대학생, 군인 등을 대화 상대로 등장시켜 말을 시키고 있다. - 에리코 말라테스타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그는 일찍이 학교를 떠나 혁명가의 길을 걸었고 여러 차례 감옥살이를 했으며, 무장봉기를 이끈 지도자, 총파업을 꿈꾸며 인민을 조직한 활동가이면서 평생 일을 멈추지 않은 노동자였다. 바쿠닌, 크로포트킨, 엠마 골드만과 함께 아나키즘 운동을 이끌었고, 사상과 행동, 설교와 실천이 일치하는 혁명가이자 상냥하고 따뜻한 심성의 인간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창 아나키즘 선전과 조직화가 왕성할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레닌’(말라테스타는 자신은 결코 지배자, 폭군이 아니라며 그러한 표현을 거부했다)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이 짧은 책에는 그의 뜨겁고 치열하던 생애가 잘 녹아들어 있다. 말라테스타는 숱한 구속과 수배 생활에도 불구하고 삶의 노선이 굳건했다. 다름 아니라 국가 혹은 정부 권력을 바꾸는 혁명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치받는 욕구들이 자기 힘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원리가 그의 노선이었다. 그리고 그 노선을 평생 일관된 목소리로 선전하고 조직 활동에서 실천했다. 그러한 하나의 사례가 바로 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1897년에 쓰기 시작해, 구속과 수배 및 역사적인 사건들 때문에 중간중간 단절을 겪으며 1920년에야 현재의 구성으로 마무리되었으니 무려 23년 간 집필된 셈이다(그러던 사이 틈틈히 토막 원고들을 자신이 편집하는 잡지나 신문에 싣곤 했다). 앞서 적었듯, 말라테스타는 일생을 쉬지 않는 노동자로 일하면서 동시에 혁명가로 살았다. 크로포트킨과 만났을 때도 말라테스타는 어느 가게 벽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러 망치를 들고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생애는 그의 글과 활동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 말라테스타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단어, 배운 척하는 어려운 단어나 인용구는 피하고 언제나 명확한 표현만을 사용하고자 했다. - ‘국가 없는 사회’라는 비전을 두고 우리가 논쟁을 시작한다면 어떤 대화들이 가능할까. 말라테스타는 이 책에서 우리를 그러한 논쟁으로 한껏 끌어당긴다. 이 책 속에서는 치안판사, 부르주아지, 노동자, 자영업자, 공화주의자, 대학생, 군인 등이 등장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웅변하고 서로 논쟁한다. 여기서 치고받는 ‘질문’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과 행동을 기획할 지점들을 비춰준다. 최근 경찰과 국가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이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데 오히려 한 세기 전의 인물들이 나눈 대화와 통찰들에서 우리는 지금의 문제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원고는 ‘가상 대담’ 형식으로 씌어졌는데, 사실 당시 카페 등에서 실제 벌인 토론의 기록이리라 짐작할 수 있다. 말라테스타는 원고를 집필하던 시기에 사람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이다 다리에 총상을 입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대화로 짐작하는 또다른 이유는, 말라테스타가 언제나 감시를 받던 신분임에도 자주 카페에 나와 토론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그는 바라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은 끊임없이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과 대화하고 설득하여 뜻을 모으는 방법뿐이라고 굳게 믿은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옮긴이의 표현대로 말라테스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민 속으로 파고든 선동가’라고 할 수 있다. - 이 책은 아나키즘 사회, 그리고 ‘자유로운 공산주의’라고도 표현하는 사회 구상을 목표로 삼는다. 책에서도 등장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한 가장 일차적인 반발은 무정부 사회의 무질서 상태를 어떻게 통제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말라테스타가 말하는 비전은 ‘자유로부터 질서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중앙집권화된 국가로 인한 사회 폭력의 정점에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무엇이 사회의 근본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근본적인 전환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참고점들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로 이 책은 새롭게 시작하는 사회 구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그것이 옳고도 가능하다는 점을 믿을 수 있게 해준다. 아나키즘에 궁금증을 가지거나 아나키즘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문헌이다. 차례 영어판 서문 23년에 걸친 대화로 완성한 위대한 팸플릿 5 첫 번째 대화 사회의 악은 왜 생기나 16 두 번째 대화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나 23 세 번째 대화 우리는 왜 가난한가 32 네 번째 대화 가진 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39 다섯 번째 대화 소유란 무엇인가 49 여섯 번째 대화 누가 소유를 독점하나 57 일곱 번째 대화 자유로운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65 여덟 번째 대화 정부가 인민을 대변할 수 있나 77 아홉 번째 대화 자유로운 결사란 무엇인가 85 열 번째 대화 가족은 자유로운가 93 열한 번째 대화 범죄자의 자유도 존중되나 103 열두 번째 대화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110 열세 번째 대화 인민의 의지가 대변될 수 있나 116 열네 번째 대화 정부 없이 혁명이 가능한가 123 열다섯 번째 대화 경찰은 왜 폭력적인가 130 열여섯 번째 대화 애국심은 왜 보수적인가 141 열일곱 번째 대화 누가 평화로운 변화를 가로막는가 151 옮긴이 후기 에리코 말라테스타, 인민 속으로 파고든 선동가 162 에리코 말라테스타 연보 170 저자 소개 에리코 말라테스타 (Errico Malatesta)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일찍이 학교를 떠나 혁명가의 길을 걸었고 여러 차례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인민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평생 일을 멈추지 않은 노동자이자 무장봉기를 이끈 지도자, 총파업을 꿈꾸며 인민을 조직한 활동가였다. 바쿠닌, 크로포트킨, 엠마 골드만과 함께 아나키즘 운동을 이끌다 파시스트의 탄압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사상과 행동, 설교와 실천이 일치하는 혁명가이자 상냥하고 따뜻한 심성의 인간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문과 잡지, 팸플릿 등 출판을 통한 선전에도 힘을 쏟았으며, 잡지 「선동L’Agitazione」, 「생각과 의지Pensiero e Volonta」와 최초의 아나키스트 신문 「신인류Umanita Nova」 등의 발행을 주도했다. 팸플릿 『아나키Anarchy』와 『카페에서Al caffe』를 출간했다. 옮긴이 하승우 녹색당 정책위원장, 더 이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 권력을 바꾸는 일에 관심이 많고, 집요하게 자료를 뒤지는 일이 취미다. 《시민에게 권력을》 《껍데기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반하다》 등을 썼고, 《국가 없는 사회》 등을 번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