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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11-3 (03800) 출간일: 2020년 7월 10일 정가: 20,000원 제본: 무선 쪽수: 420쪽 판형: 128×188mm 분야: - 문학 > 장르소설/여성소설/과학소설(SF) - 문학 > 비평/창작/이론 - 인문학 > 영미문화론 - 인문학 > 인문비평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지은이: 조애나 러스 옮긴이: 나현영 “조애나 러스의 글들은 어처구니없는 관습과 편견에 맞선 20세기 장르 문학사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유효한 현재형의 질문이자 선언이다” - 듀나 (SF 작가) “조애나 러스는 어째서 여성이 SF를 사랑하는가를 거침없이 말한다. 여성은 SF라는 매개체를 통해 실재하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어느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는 세상을. 모든 규칙이 달라진 세상을.” - 김보영 (SF 작가) 책소개 SF 작가이자 비평가,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조애나 러스의 SF 비평집. SF 장르를 새롭게 정의했으며, 현대 문명과 페미니즘, 여성의 글쓰기와 같은 주제를 SF 장르를 통해 사유한 조애나 러스의 대표적인 글들을 모았다. 거침없는 분석들이 주는 깨달음과 즐거움, 그 속에 가득한 위트와 유머가 독보적이다. 러스는 SF가 젠더 역할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억압과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 그리고 SF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모든 SF 작가와 독자 들에게 남겨진 귀중한 유산이다. 보도자료 낡은 관념들을 박살내는 ‘환상적인 분노’의 통쾌함 “당신의 분노에서는 혁명의 냄새가 납니다. 아니, 아주 오래 묻혀 있다가 막 폭발하려고 부글거리는 화산의 냄새가 나요.” ― 1973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조애나 러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조애나 러스가 SF 장르에, 특히 페미니스트로서 SF 장르에 기여한 바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뉴욕 타임스》는 2011년의 부고 기사에서 그를 “SF의 가장 낯선 외계 생명체, 즉 여성에게 SF를 전달해 준 작가”라고 칭했다. 러스는 페미니즘 SF의 선구자이며 1970년대에 꽃 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자신의 소설과 비평을 통해 SF 장르를 새롭게 정의했으며, 현대 문명과 페미니즘, 여성의 글쓰기와 같은 주제를 SF라는 양식을 통해 사유했다. 조애나 러스의 문장은 명징하다. 그리고 명징한 문장은 명징한 사고와 짝을 이룬다. 그는 난독을 부르는 애매모호함을 경멸하며 이 애매모호함이 결국은 남성 연대와 남성 신화를 강화하는 신비화의 전략임을 폭로한다. 러스는 예리하고 엄밀한 분석으로 이 신비화된 낡은 신화들을 해체하는 데 열정을 쏟는다. 러스의 작업은 독자에게 깨달음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안긴다. 거침없는 분석들이 주는 깨달음과 즐거움, 그 속에 가득한 위트와 유머는 조애나 러스의 비평이 가진 독보적인 성격이다. 또 우리는 러스로부터 특별한 열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앎과 삶을 연결시키려는 열정이다.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기’, 경험한 세상을 ‘다시 보기’, 그리고 이렇게 인지하게 된 현실을 명징한 언어를 통해 표현하기. 이는 러스가 자신의 비평에서 실천해 온 것들이다. 러스는 이 작업을 하면서 드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고 또 당연히 분노해야 함을 일깨웠다. SF를 비평하면서 각종 차별과 배제들,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신비화, 젠더 고정관념과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남성 신화들에 분노하고 저항한 것은 러스에게 있어 SF 장르 역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실천들의 장이었던 까닭이다. 미래를 바라보는 양식으로서의 SF가 과거의 억압과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이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은 러스가 여성들에게, 그리고 SF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모든 SF 작가와 독자 들에게 남긴 귀중한 유산이다. SF를 무대로 일어난 1970년대의 성 전쟁 노출증 환자들의 승리 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성차별주의적인 이야기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모두 베텔게우스계 행성에 사는 결정형 생명체라 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인간이 아니더라도 작가와 독자는 인간이니까요.” - 페미니즘 계간지 《퀘스트(Quest)》와의 1975년 인터뷰에서 페미니즘 SF 비평은 본격적으로 조애나 러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러스 이전에도 작가 개인이나 SF 전반의 성차별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는 남성 비평가들은 있었으나 이들은 1970년대부터 어슐러 K. 르 귄과 조애나 러스, 마지 피어시 등이 불을 댕긴 긴급한 문학적 변화들을 당대의 혁명적 언어인 페미니즘으로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러스는 제아무리 먼 미래와 먼 은하를 배경으로 경이로운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펼쳐 보이는 SF라도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있어서는 교외에 사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젠더 고정관념을 답습함을 비판하면서, 이를 SF적 상상력의 ‘실패’로 규정한다.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의 충돌은 SF 공동체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당시에는 남성 작가로 알려져 있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을 제외하고) 안티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성 전쟁을 다룬 10편의 작품을 비판하는 “4장 사랑은 여자를 정복한다: SF에서 일어난 성 전쟁”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활화산 같은 러스의 분노가 이 어리석은 ‘부족’들을 활활 태우는 현장을 보게 된다. 여성이 지배하는 부패하고 무능력한 세계에서 남성 성기라는 ‘성물’의 소유자들이 ‘자연의 승리’를 하게 되어 있는 이 작품들에 러스는 ‘성기 노출증 환자들의 소설’이라는 절묘한 이름을 붙인다. “10장 최근 유행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하여”에서는 같은 성 전쟁을 다루면서도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모니크 위티그의 《게릴라들》,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 마지 피어시의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와 같은 이 작품들은 새뮤얼 딜레이니의 《트리톤》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 작가가 썼으며, 계급과 정부가 없고, 생태주의적이며 동성애, 이성애, 난혼, 한 여성이 다른 여성과 함께 아기를 갖게 하는 재생산 기술 등 다양한 출산과 양육의 방식이 있는 사회를 보여 준다. 러스는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SF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며, 유토피아를 향한 충동 뒤에는 누군가의 고통이 감춰져 있다고 말한다. 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의 주인공들은 계급과 성, 인종차별을 포함하는 현실의 고통과 대면하며 저항한다.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것은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평행진화해 급진적 유토피아주의로 폭발한 여성 문화의 진수다. 문화의 성은 남성이다. 낡은 신화를 이용하는 한 여자는 쓸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신화라면? “그것은 내 무게 중심을 ‘그(Him)’에게서 ‘나(Me)’로 옮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이것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인 당신이 여성이라면 말이에요.” - 페미니즘 계간지 《퀘스트(Quest)》와의 1975년 인터뷰에서 1부가 주로 SF와 관련된 비평들을 담고 있다면 2부에서는 여성의 글쓰기를 주제로 SF와 모던 고딕이라는 여성 로맨스 장르, 윌라 캐더와 샬럿 퍼킨스 길먼 같은 여성 작가들을 다룬다. “7장 여주인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여자는 왜 글을 쓸 수 없는가”에서 러스는 서구 문학의 플롯은 사실 거의 모두 남자 주인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나운 짐승을 때려눕히고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이야기, 영웅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는 이야기, 순진한 여자를 유혹해 임신을 시키는 나쁜 남자의 이야기,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으나 술독에 빠져 지내다 요절한 전설이 되고 마는 시인의 이야기는 모두 남성의 신화다. 즉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문화의 남자와 여자는 단일한 관점에서 문화를 상상한다. 바로 남성의 관점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 페이, 헤밍웨이의 소설 〈프랜시스 매컴버의 짧았던 행복〉에 등장하는 매컴버의 아내, “6장 소년과 개: 최종 해결”에서 할란 엘리슨 원작의 동명의 영화에 등장하는 퀼라 준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여자 주인공들은 결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잡년 여신’이 아니면 처녀 희생자로 이분되는 이 여주인공들에게는 어떤 내면도, 동기도 없는데, 이는 이들이 실은 인격이 아니라 투사된 소망이나 두려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남성 신화를 이용하기를 거부한 여성 작가들은 어떤 소설을 쓸 수 있는가? 러스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플롯 없이 서정적인 구조를 쌓아올리거나 샬럿 브론테의 《빌레트》처럼 자기 삶에서 길어 올린 구조를 모델로 삼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여성 작가들은 “11장 ‘여자처럼’ 글쓰기”의 윌라 캐더처럼 자신의 주인공에게 남성의 ‘가면’을 씌우는 전략을 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9장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에서 우리는 여성 작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약속하는 신화가 태어나는 순간을 목격한다. 메리 셸리는 견딜 수 없는 현실에서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도피자였기에 지금 여기를 담을 수 없거나 담으려 하지 않는 감수성의 통로를 찾아 헤맸다. 바로 《프랑켄슈타인》과 《최후의 인간》의 세계, 오늘날의 우리가 SF라 부르는 사변적이고 미래적인 세계로 이동하는 통로다. 그래서 메리 셸리는 ‘비유기체적 생명체의 탄생’과 ‘자연스러운 파국으로 상상된 세계의 종말’이라는 현대 산업화 시대의 거대한 두 신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러스의 말처럼 “SF에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있었던 셈”이다. 러스의 글에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 작가들이 쓴 SF가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SF는 “남자로서의 남자, 여자로서의 여자를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지능과 적응 능력을 다루는 신화”이며, 젠더 역할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소개 조애나 러스 Joanna Russ SF 작가이자 비평가,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조애나 러스는 1937년 뉴욕에서 태어나 10대 때부터 SF와 공포소설을 즐겨 읽으며 장르 소설에 담긴 자유와 상상력을 흡수했다. 코넬 대학교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제자로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고 예일 대학교 드라마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워싱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영문학을 가르쳤다. 러스가 막 활동을 시작했던 1960년대에 SF는 소위 ‘백인 이성애자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제2의 물결 페미니즘의 태동으로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전복하고 남성이 규정한 여성성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들에게 기성 문학의 규범에서 벗어난 SF는 자신들의 상상력을 실험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로 여겨졌다. 러스는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1972), 《알릭스》(1976), 그녀의 가장 큰 문제작인 《여자남성》(1975) 등을 통해 젠더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어슐러 K. 르 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마지 피어시 등과 함께 1970년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부흥을 이끌었다. 러스는 페미니즘과 영문학, SF, 퀴어 비평까지를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서 소설만큼이나 도발적이고 문제적인 이론서들을 다수 발표했다. 〈SF 속 여성의 이미지〉(1971)에서는 미래나 우주를 무대로 한 실험적인 작품에서마저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고정관념을 답습하는 남성 SF 작가들을 비판했고, 《여성의 글쓰기를 억압하는 법》(1983)에서는 여성의 글쓰기를 무시하고 예외적으로 취급해 온 영문학의 역사를 비판했다.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1995)는 러스가 SF와 여성의 글쓰기를 주제로 쓴 대표적인 글들을 모은 비평집으로 SF 작가로서 그의 목소리가 가장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분노는 그녀가 글을 쓰고 대중 앞에 나서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지만 말년에는 만성 피로 증후군과 심한 요통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2011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옮긴이 소개 나현영 매주 수요일 연남동 카페 본주르에서 ‘여성 작가가 쓴 SF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조애나 러스의 책을 시작으로 포도밭출판사의 나선형 시리즈에서 SF, 퀴어, 페미니즘 등에 관한 다양한 책을 기획하고 소개할 예정이다. 옮긴 책으로 《유토피아 실험》, 《무정한 빛》,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사일런스: 존 케이지의 강연과 글》, 《낭만주의의 뿌리》(공역)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전적으로 낯선 이야기를 만들어 낸 SF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전적으로 친숙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SF는 SF가 아니다. 다시 말해, 어떤 작품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참조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과 연결된 모든 참조점이 지나치게 분명하고 직접적일 때, SF적인 특성을 잃은 이 작품은 불신의 유예가 끝난 ‘정직한’ 소설이 되고 말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렇다. “SF는 불가능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아야 한다.” -70~71쪽 〈스타워즈〉에서 욕구는 자부심과 쾌락이다(나는 이것이야말로 ‘재미’가 상징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은 거칠게 말해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경쟁과 마초적 특권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특권은 바로 〈스타워즈〉의 관객 대부분이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세계, 자신들이 욕구하는 흥분과 쾌락에 접근하지 못하는 세계를 만들고 있는 주범이다. -89쪽 여기서 ‘광기’라는 말의 의미는 사람들의 삶의 구체적 조건으로부터 유리된 추상적 개념만을 곱씹는 태도를 말한다. ‘광인’들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 다른 사람들이 그를 위해 노동해 주는 덕분에 자기 삶의 견고하고 실천적인 세부사항들로부터 격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삶에 대해 생각할 때 이런 실천적인 세부사항을 생략하거나 사소하다고 전제하며 시작한다. 웨스트는 이에 대응하는 여성적 결점을 ‘어리석음’이라 불렀다. 어리석음은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넘어 더 큰 패턴을 보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다. 어리석음은 양말을 깁고, 변기를 닦고, 들판에서 일하는 것이 하늘이 부여한 네 천직이고, 어쨌든 아무도 네가 진짜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어 온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92~93쪽 테크노필리아와 테크노포비아는 둘 다 가진 자의 태도다. 테크노필리아의 경우 자신이 권력을 갖고 있거나 권력자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크노포비아의 경우 비록 권력을 잃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어쨌든 자신에겐 권력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 스스로 무력하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이들―여성, 비백인, 빈곤층―은 테크노필리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테크노포비아도 되지 않는다. -98쪽 여기서 논의되는 모든 이야기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다〉를 제외하고) 남성 성기를 자신들의 성물로 삼는다. 이것을 소유한 자에겐 성 전쟁에서의 승리가 보장된다. 따라서 이 승리는 자연의 승리이며, 지성, 성격, 인간성, 겸손, 통찰력, 용기, 계획, 감각, 기술, 심지어 책임감마저 없이 전쟁에 승리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111~112쪽 그리고 공포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리치의 말처럼) 누군가 여기까지 와 본 적이 있으며, 넌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파괴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 섬뜩하고 악마적인 것들을 한사코 부정하는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는 중요한 메시지죠. -154쪽 영화에서 퀼라 준이 사악한 인물로 보인다면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빅의 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부드러워 쓰다듬어 주고 싶은 여자라는 생물의 애호가들을 기다리는 무시무시한 소식은 여자가 남자의 의견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있으며, 섹스를 이용해 남자를 지배할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퀼라의 의존성은 개가 사람에게 의존하는 모습의 패러디다. 퀼라는 빅에게 충성을 바치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교활하고 기만적이기만 하다. -183쪽 문화의 성은 남성이다. -193쪽 가부장제는 남성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상상하고 그린다. 여성의 문화가 있지만 그것은 지하에 있는 비공식적인 소수 문화로, 우리가 공식적으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 생각하는 것의 작은 구석을 차지한다. 우리 문화의 남자와 여자는 단일한 관점에서 문화를 상상한다. 바로 남성의 관점이다. -194쪽 “…… 소름 끼치는 한 남자의 환영이 누워 있다가 어떤 강력한 기관의 작동으로 생명의 징후를 보이더니 불안정하지만 반쯤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친다.” 《10억 년의 잔치》에서 (그 역시 SF 작가인) 브라이언 올디스는 위 구절을 인용하며 덧붙인다. “요동치던 것은 바로 SF라는 장르 그 자체였다.” -296쪽 추천사 1960년대와 70년대의 격동기를 거치며 영어권 장르 문학 안팎에서 맹렬하게 투쟁한 페미니스트 작가와 비평가 들의 당시 속내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조애나 러스의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만큼 좋은 책은 찾기 어렵다. 어떠한 외교적 제스처 없이 정당하기 짝이 없는 날것의 분노를 날카로운 위트에 섞어 기관총처럼 쏘아 대는 러스의 글들은 어처구니없는 관습과 편견과 맞선 20세기 장르 문학사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유효한 현재형의 질문이자 선언이기도 하다. ― 듀나 (SF 작가) 조애나 러스는 SF 장르를 특정 성별만이 즐긴다는 통념에 명쾌하게 반박하며, 어째서 여성이 SF 장르를 사랑하는가를 거침없이 말한다. 편견과 차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달리, 여성은 SF라는 매개체를 통해 실재하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어느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는 세상을. 모든 규칙이 달라진 세상을. 꿈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조하며 선언한다. 우리가 아는 모든 현실은 변할 수 있고 또한 변해야 한다고. 그 세계는 바로 이렇게 손에 잡히는 곳에 있다고. 러스는 서문에서 분명하게 선언한다. ‘내가 SF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SF가 현실을 바꿈으로써 현실을 분석하기’ 때문이라고.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을, SF의 세계가 비유나 은유가 아닌 점을 확실히 말한다. SF의 세계는 ‘문자 그대로 변화한 세상’이며,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진실한 세계라는 것을. 이곳은 과거에 없어진 세상도 아니며 현실에 천착하는 세상도 아니다. 여성은 바로 그렇기에 이 세계를 사랑하노라고. ‘문화의 성은 남성’이며 ‘모든 오래된 플롯은 남성적이기에’, 여성은 자신만의 완전히 새로운 플롯을 만들기 위해 SF의 세계로 떠난다. 새로운 사회구조를 향해, 고리타분한 전통과 가치와 문화가 사라지고 바닥부터 새로 창조된 세계를 향해, 때로는 현존하는 젠더 역할이 모두 변화된 세계를 향해. 1930년대에 태어난 작가가 1970년대에 주로 쓴 비평집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의 여러 관점이 현대 한국에 얼마나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가를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SF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영문학과 교수만 빼고.’, 혹은 ‘성차별주의적인 문학의 여성은 오직 불필요하거나 의도적인 행동만을 한다’는 포복절도할 비판은 현대 한국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러스가 분노하며 비판한 각종 성차별적인 판타지를 극단적으로 드러낸 SF들은 지금 현대 한국에서도 계속 경계하며 싸워야 할 것들이기도 하다. 단지 이런 소설들은 한국에서는 SF 유행이 다소 늦어진 덕에 출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계속 물밑에서만 머물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해 본다. 러스가 레즈비언으로서 말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또한 지극히 현재적이다. 러스는 내가, 내 성별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부터, 이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인지하기도 전부터, 어째서 이 세계에 이토록 매혹되었는지를 격렬하게 일깨워준다. SF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모든 불합리와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순간에, 어딘가 다른 세상이 있으며, 그 세계는 문학적인 은유나 상징 따위가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현실이 안락해 마지않은 사람들이 이 세계를 허무맹랑하다며 조롱하기 바쁠 때에 누군가는 그 모든 책에서 매양 세계의 변혁을 꿈꾸었노라고. ― 김보영 (SF 작가) 차례 세라 레퍼뉴의 서문 저자 서문 1부 1장 SF의 미학에 관해 2장 사변: SF에서 가정이란 무엇인가 3장 신비화로서의 SF와 테크놀로지 4장 사랑은 여자를 정복한다(Amor Vincit Foeminam) : SF에서 일어난 성 전쟁 5장 공포소설의 매혹, 러브크래프트 6장 소년과 개: 최종 해결 2부 7장 여주인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여자는 왜 글을 쓸 수 없는가? 8장 누군가 날 죽이려 하는데 그게 아무래도 내 남편인 것 같아 : 모던 고딕 9장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 10장 최근 유행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하여 11장 ‘여자처럼’ 글쓰기 : 윌라 캐더 작품에서 정체성은 어떻게 변형되는가 12장 〈누런 벽지〉에 대하여 13장 여학생들끼리의 사랑은 성애적인가? 14장 수전 코플먼에게 보내는 편지 미주 찾아보기

  • 광장이 되는 시간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09-0 (03300) 출간일: 2019년 7월 19일 정가: 15,000원 제본: 무선 쪽수: 268쪽 판형: 128×205mm 분야: 1. 인문학 > 인문에세이/인문비평 2. 인문 > 인문일반 3. 에세이 > 한국에세이 4. 사회과학 > 사회운동 광장이 되는 시간 천막촌의 목소리로 쓴 오십 편의 단장 지은이: 윤여일 책소개 운동의 현장이 사고의 광장으로 ‘도청앞 천막촌’은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막아내고자 제주도청 맞은편 길가에 천막을 치고 모여든 사람들의 마을이다. 사회학자이자 동아시아사상사 연구자인 저자 윤여일은 ‘연구자 공방’ 천막을 세우며 ‘천막촌 사람들’이 되었다. 이 책은 천막촌 살이의 기록이자 천막촌 운동의 고민, 난관, 모색, 성장에 관한 에세이다. 그로써 독자와 함께 천막촌을 정신적으로 체험하고자 한다. 이 책의 부제는 ‘천막촌의 목소리로 쓴 오십 편의 단장’이다. 각 단장은 저자가 천막촌에서 접한 누군가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저자는 천막촌에서 다가온 목소리들로 독자가 들어올 사고의 광장을 마련한다. 천막촌이라는 제주의 운동 현장에서 한국의 사회현실을 바라보는 일종의 좌표를 만들어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보도자료 제주가 지금 모습이길 바라는 당신이 알아야 할 이야기 제주가 앓고 있다. 화산활동이 만든 오름과 신비로운 동굴, 수백 년 우거진 숲, 푸르른 바다 그리고 소중한 생명들이 앓고 있다. 지난 십 년 간 제주의 자연생태는 난개발과 과잉관광으로 도처에서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이런 제주에 국토부는 훨씬 많은 관광객을 받기 위해 두 번째 공항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민주적인 의사수렴, 최소한의 알 권리도 무시되었다. 공항 예정부지 주민들은 자신의 집과 고향이 사라지고 그 위로 활주로가 깔린다는 통고를 언론보도로 들었다. 더구나 강정에 만들어진 해군기지에 이어 제2공항은 공군기지로 전용될 가능성이 크다. 제주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제주는 섬이다. 섬의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환경수용력이 관건이다. 현재 제주는 하수처리능력이 포화상태로 일부 하수를 그대로 바다로 방류하고 있다. 쓰레기처리능력도 한계에 달해 압축 쓰레기를 몰래 필리핀으로 보냈다가 반입을 금지당했다. 공항이 하나 더 생겨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들어온다면 어찌될 것인가. 얼마나 많은 난개발이 이어질 것인가. 섬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시설 하나를 짓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공항은 개발들의 첨병이다. 현재 제주의 도민들 사이에서는 국토부의 제2공항 건설사업에 절차적 하자가 크다, 제2공항 건설 이전에 현공항의 활용가능성을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 제2공항 건설 여부를 도민의 의견수렴을 거쳐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다. 하지만 국토부는 제2공항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일단 시작된 국책사업은 자기정당화의 논리로 무장한 채 자기관성에 따라 진행 중이다. 개발과 갈등의 섬. 이것이 제주의 현주소다. 제주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운동의 운동 그래서 제2공항 사업을 막기 위해 예정부지의 주민만이 아닌 여러 시민이 모여들어 천막촌이 형성되었고 모인 이들은 천막촌 사람들이 되었다. 천막촌은 예정부지 주민의 단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를 지키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또한 다른 단식자가 생겨났다. 천막촌 사람들은 고민이 많았다. 단식자가 쓰러지기 전에 단식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했다. 또한 운동을 긴 호흡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너무 큰 희생을 짊어지지 않고, 더 희생되지 않고, 힘을 내는 사람이 힘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운동을 운동시켜야 했다. 운동의 실험이 일어났다. 천막촌 사람들은 국토부와 제주도정이 요식적 행정절차로 진행하는 설명회나 보고회에 난입하고 이를 저지했을 뿐 아니라 ‘공항 말고 장터’, ‘공항 말고 백배’, ‘공항 말고 합창’, ‘공항 말고 광장’, ‘공항 말고 바당’을 마련해 시민 참여의 장을 만들었다. 촛불 집회 때도 사람들이 모일 곳 없던 제주에서 천막촌은 정치의 광장으로 진화했다. 운동들의 운동, 운동들을 위한 운동 천막촌은 제주에서 전례 없던 것이나 고립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외롭지 않다. 천막촌은 국책사업 반대운동이자 점거운동이자 지킴이운동이다. 대추리, 새만금, 용산, 두물머리, 강정, 밀양. 천막촌은 지난 많은 운동을 앞에 두고 있으며, 그것들을 참고하고 계승한다. 과거의 운동은 천막촌에게 침전된 가능성이고 실천의 참조점이고 못 이룬 약속이다. 천막촌은 그 과거들을 여기저기서 불러들이며 새로운 미래를 산출하고자 한다. 그로써 과거 운동은 현재 운동 속에서 되살아난다. 서사로서 방법으로서 감정으로서 물음으로서. 현재 운동은 과거 운동들을 구제하는 속성을 지닌다. 이것은 시대순으로 기록되는 운동사와는 다른, 운동의 역사. 이처럼 여러 운동을 계승하고 그 운동들을 다시금 운동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천막촌은 운동들의 운동이며, 천막촌 역시 미래에 도래할 여러 운동에게 그렇게 쓰이고자 하기에 운동들을 위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마을, 다른 생활 그리고 천막촌은 마을이다. 볼록 솟은 천막은 그릇이 뒤집어진 형상이다. 사람들이 사연과 의지, 그리고 저마다의 방식과 기술을 가지고 흘러들어와 이 안에서 함께 차오르고 있다. 이곳을 천막촌, 즉 천막들의 마을로 부르는 것은 단지 천막이 여러 개여서가 아니라 집이 아닌 천막에서 지내며 전에 없던 마을을 살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천막촌은 자격과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자들이 자유를 살며 집단의 삶을 가꾸는 실험적 마을이다. 자격과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자들이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합의과정에서 배제된 자들이 새로운 공공영역을 만들어내고자 하고 있다. 여기, 새로운 마을과 다른 생활이 있다. 생성되는 관계가 있다. 의지가 있다. 긴 약속과 결심이 있다. 분노가 있다. 분노는 절규로 고립되지 않고 공분으로 승한다. 놀람이 있다. 자신 그리고 타인에게서 새로운 발견이 일어난다. 성장이 있다. 사고와 행동과 언어가 자라난다. 상상력이 있다. 상상력이 향하는 미래가 있다. 시도가 있다. 시도가 수놓는 역사가 있다. 이러한 ‘있음’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마을에서 ‘산다’는 흔들리며 많은 동사를 짊어진다. 이 마을은 삶의 새로운 실존 형식을 실험 중이다. 천막촌에서 만난 목소리들 이 마을에 이런 목소리들이 있다. “결국 그 밤 천막을 다시 세웠고 천막이 늘어났습니다. 천막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껏 참아온 분노가 축적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 서 있었다. 왜 이러고 있느냐고 당신들이 한 번이라도 물었다면. 우리는 질문 받기 위해 굶었고 마주치기 위해 서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의 규정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으로 싸웁니다. 우리는 아직 없는 이름들입니다. 한 번도 호명된 적 없는 주체들입니다.” “우리는 부당한 공권력 앞에 분노한 얼굴들입니다. 폭력에 저항하는 인간입니다. 이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학살의 당사자입니다.” “당신은 누구냐고 묻길래, 우리는 겁쟁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더 참혹한 미래를 만날 자신이 없어 지금 여기서 싸운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은 싸우는 모습을 가시화하지 않으면 운동의 성과를 잃곤 한다.” “경찰 정보과가 협상하겠다고 왔다. 대표 보고 나오라고 했지만 나갈 대표가 없었다.” “현재는 과거에서 오는 어떤 결과라기보다 미래 때문에 일어나는 시도인지 모른다.” “기만에 속아온 세월들, 이제는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 “나도 모르게 나를 가두는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저 계단에서 제주의 새로운 정치 언어가 나올 것이다.” “나무는 나예요. 나는 나무처럼 싸울 거예요.” “천막촌에 오면 할 일, 자기 위치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설거지를 하겠다.” “이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민으로서 지내는 것이다.”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겠다.” “저지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가보고 싶다. 운동이 이렇게 궁금하고 흥미로운 적이 없다. 여기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같이 있어 더 먼 곳을 보고 먼 곳까지 가려는 시간을 겪어왔다.” “내가 세상을 못 바꾸더라도 이렇게 부딪치면 세상은 나를 바꾸지 못하겠구나.” “질 때 지더라도 잘 지고 싶다.” 운동의 천막을 펼쳐 사고의 광장으로 함께 살아가기가 아닌 홀로 살아남기를 요구받는 사회, 존재가 거처와 관계를 잃고 홀로 배회하는 시대에서 천막촌의 생활은 사건적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운동을 일으키고 일상을 가꾸는 집단의 실험이 발생하고 있다. 사실 천막촌 같은 운동의 현장은 정치적 광장이 되고자 하나 현실적 제약에 가로막히고 성과보다 한계가 드러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제약과 한계야말로 사고가 깊어지고 행동의 모험이 요구되는 계기다. 그 제약은 사고가 얽혀들 자리이며, 그 한계는 여기까지 행동했기에 맞닥뜨릴 수 있다. 천막촌 사람들은 제약과 한계들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려 부단히 고민하고 행동하고 있다. 천막촌은 세상이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불안해하는 사람들, 지금을 어떻게든 바꿔내야 한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의 예시이며 원형이다. 따라서 저자는 천막촌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닌 바깥의 누군가를 위해서도 천막촌을 기록하고 천막촌의 사고를 가다듬고자 했다. 천막촌에서 찾아온 목소리를 단장으로 키워내 타인에게, 미래에 건네고자 했다. 운동, 일상, 현장, 정황, 승리, 패배, 성취, 시련, 성장, 개발, 자본, 국가, 식민, 주권, 주변, 광장, 약속, 체념, 무력, 미력, 행복, 기쁨, 예감, 예언, 절망, 희망, 심연, 도약, 개체, 집단, 연루, 공명, 감응, 마을, 이주, 돌봄, 지위, 경계, 자격, 권리, 통치, 정치, 난민, 인민, 호명, 배제, 평등, 대등, 위계, 다수, 합의, 결행, 곡절, 사연, 실험, 관계, 세계, 여성, 남성, 배움, 미래, 과거, 상황, 기록, 기억, 계승, 급진, 생태, 언어, 물음, 이름, 문체, 사상 저자가 천막촌을 기술하기 위해 다시 음미해야 했던 단어들이다. 이 책은 멀리 있는 타인, 훗날을 위한 기록이자 사색이다. 당신과 미래는 우리의 지금과 닿아 있다고 믿기에. 지은이 소개 윤여일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십 년간 수유너머의 일원이었다.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로 베이징에서, 도시샤대학 객원연구원으로 교토에서 체류했으며, 현재 제주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 제주에서 지내고 있다. 2019년 1월 동료들과 연구자공방 천막을 세우며 천막촌 사람들이 되었다.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동아시아 담론』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상황적 사고』 『여행의 사고』(하나·둘·셋)를 쓰고, 대담집 『사상을 잇다』를 펴냈다. 책 속에서 이 책은 오십 편의 단장短章들로 짜인다. 그리고 운동을 담으려면 문장 또한 운동해야 한다고 여겨 분석적이기보다 함축적인 문체를 취한다. 당신의 머리와 마음 속에서 운동하는 문장이기를 바란다. - 단장 1. 단장과 광장 이 지점에서 천막촌이 촛불에 던지는 물음은 우리가 선한 목자를 골랐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양떼인가이다. 즉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다. - 단장 9. 촛불 이후 천막들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끝 너머를 의식하고 사라짐 이후를 바라본다. 언젠가 사라질 이곳에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알게 된다. - 단장 10. 긴급의 공간 겁쟁이들은 희망하기를 희망한다. 희망希望. 희希는 바라다는 뜻과 함께 드물다는 뜻도 담고 있다. 바랄 수 있는 게 끊긴 상태가 절망이라면 희망은 드물게나마 무언가가 있다는 것. 절망은 희망의 반대말이 아니라 희망을 구해 나서야 할 토양. 겁쟁이들은 희망해야 하기에 희망하기를 희망한다. - 단장 15. 예견하는 겁쟁이 우리는 미력하다. 하지만 함께하기에 무력하지 않다. 미력은 힘의 시작이다. - 단장 16. 미력과 무력 내몰린 그 자리가 자유가 시작되는 곳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예속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예속 속에서 활로를 개척하는 활동이다. 자유롭게 산다기보다 자유를 사는 것이다. - 단장 18. 내몰림과 자유 떠밀림과 떠맡음. 수동성과 능동성이 중첩되는 그 자리를 우리는 사고의 거처로 삼는다. 현실의 제약은 그 현실을 뚫고 나아가려는 사고에게 가능성의 조건이기도 하다. 사고는 이곳에서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 단장 19. 앎은 운동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와 함께 알아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와 함께일 때 알 수 있는가. - 단장 20. 배움은 일어나는가 천막촌은 공간이자 시간이다. 그 시간은 긴급함을 의미한다. 그 긴급함이란 현재를 인식하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급히 불러들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 단장 22. 아하의 순간 ‘이미-정함’이라는 예정豫定을 ‘어쩌면’이라는 예감으로 바꾸려는 사람들. 예감豫感. 미리 느낌. 그로써 우리에게 현재는 다른 미래의 전조가 되며 다른 미래는 현재에 이미 작용하게 된다. - 단장 23. 다른 미래와 예감 미래를 짊어지려는 이들에게 과거와의 싸움은 미래를 향한 도전, 딱 그만큼 무겁고 버겁다. - 단장 24. 과거와의 싸움 추방되는 자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자 할 때 무얼하는가. 점거한다. 그렇다면 배제된 자들은 자기 자리를 찾고자 할 때 무얼하는가. 난입한다. - 단장 25. 배제와 난입 우리에겐 보다 많은 권리의 형상, 보다 잦은 권리의 사건화가 필요하다. 그것들은 만인이 확보할 권리는 아니겠으나 타인에게 번역될 권리다. - 단장 26. 통치와 정치 제주도청은 무엇 하나 내줄 생각이 없었다.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우리를 내몰아냈다. 하지만 우리도 아직 끝낼 생각이 없다. 길 건너 도청을 보며 무슨 일을 벌일지 궁리 중이다. 시력마저 금지할 수는 없다. 상상은 이미 도청 내부로 난입하고 있다. - 단장 27. 계단을 점거할 권리 평등과 대등. 이곳에서 평등과는 다른 대등을 사고하게 된다. 만약 평등이 자격이나 지위의 동등함이 전제된 관계의 수평성을 뜻한다면 대등은 각각의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성취된다. 같아서가 아니라 달라서 대등할 수 있다. - 단장 37. 평등과 대등 상대는 말을 함부로 부리지만 말이 소중한 우리는 말에 매인다. 상대가 남용해 그 말이 닳을수록 우리의 말은 가난해진다. 상대로 인해 말이 의미를 잃으면 우리가 지고, 말이 부패하면 역시 우리가 지는 불공정한 싸움. - 단장 44. 빼앗긴 언어 친구는 말한다. 볼 때마다 말한다.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 홀로 패배에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내게 그러할 것이듯. 그리고 우리는 패배를 패배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 단장 49. 승리의 시간대 이 책은 아직 운동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동요하며 이곳의 살이와 활동의 시도들을 모아 미래로 전달하고자 한다. 누가 어떠한 상황에서 수신자가 될까. 과연 이 기록이 미래에 쓰임이 있을까. 천막촌은 운동들을 위한 운동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답할 수 없다. 이 물음에 입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지금 당신이다. - 단장 50. 운동들을 위한 운동 차례 앞에 쓰다 천막촌을 기술하기 위해 음미해야 했던 단어들 천막촌의 역사 천막촌이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열 가지 이유 제2공항이 생기면 사라질 성산의 풍경 1. 단장과 광장 2. 현장과 광장 3. 새로운 마을과 다른 생활 4. 천막촌의 시작 5. 어떤 운동을 앞에 두고 있는가 6. 땅의 이름이 운동의 이름이 되는 곳들 7. 점거하는 자들 8. 특이한 지킴이 9. 촛불 이후 10. 긴급의 공간 11. 감전과 충전 12. 이 세계의 윤곽을 듣고 싶다 13. 자신을 알다 14. 타인을 알다 15. 예견하는 겁쟁이 16. 미력과 무력 17. 고苦와 쾌快 18. 내몰림과 자유 19. 앎은 운동하는가 20. 배움은 일어나는가 21. 장이 안다 22. 아하의 순간 23. 다른 미래와 예감 24. 과거와의 싸움 25. 배제와 난입 26. 통치와 정치 27. 계단을 점거할 권리 28. 실존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 29. 이주한 사람들 30. 경계의 존재 31. 마을과 커먼즈 32. 얽혀듦과 휘말림 33. 문제를 일으키는 능력 34. 합의와 입장 35. 결행과 연루 36. 선택하지 않은 것들의 역사 37. 평등과 대등 38. 권력화를 막아 39. 연극정치와 민주주의 40. 단식과 폭동 41. 싸움의 기술들 42. 비자림로 이야기 43. 제주녹색당과 강정에서 온 사람들 44. 빼앗긴 언어 45. 운동하는 말 46. 두 가지 동하다 47. 세계상의 획득 48. 운동의 성취는 직접적이다 49. 승리의 시간대 50. 운동들을 위한 운동 뒤에 적다

  • 오늘날의애니미즘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39-7 (93200) 출간일: 2024년 8월 30일 정가: 23,000원 제본: 무선 쪽수: 356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종교문화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생태/환경 오늘날의 애니미즘 지은이: 오쿠노 카츠미, 시미즈 다카시 옮긴이: 차은정, 김수경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점에서 만나는 애니미즘 인류세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늘의 사상으로서 애니미즘을 되살리다 폭넓은 경험과 시야를 가진 인류학자와 경이로울 만큼 명석하고 논리적인 불교학자가 서로의 이야기를 감싸며 새로운 존재론의 지평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흔하디흔한 존재로부터 펼쳐지는 장엄한 만다라 인류의 꽉 막힌 진로를 열기 위한 열쇠가 애니미즘에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저편 세계는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 만약 그 사이를 왕래하는 통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경험될까? 곰, 새, 엘크, 개구리, 풀, 나무 같은 다종의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인간은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인간 아닌 생명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며 무얼 말하고 싶은지, 이를 우리가 섣불리 환원하지 않고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을 살다 문득 온갖 만물과 이어진 ‘신’을 느끼는 일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평의 존재론과 연결될 때, 우리 삶과 세계의 흐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인류세의 특징들을 만든 고정된 이원론을 넘어서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시도는 무엇일까? 애니미즘은 우리가 자력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아님을 일깨우며, 우리를 무시무종의 세계로 이끄는 타력의 바람 속으로 안내한다. 그곳에서는 아주 작고 흔한 사물 혹은 생명에서도 저마다의 만다라가 피어난다. 어떤 존재든 영혼을 통해 여러 세계를 왕복 순환하고, 세상 만물은 저마다 독립해 있으면서도 서로를 포섭하며 잇달아 뒤얽힌다. 그렇게 흔하디흔한 존재로부터 장엄한 만다라의 그물망이 펼쳐진다. 인류는 우리 스스로 세계의 진로를 막아버린 과정을 냉철히 돌아보고 이제 막았던 통로를 열어야만 한다. 인류의 꽉 막힌 진로를 열기 위한 열쇠가 애니미즘에 있다.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 왕복하고 포섭하는 이야기들 『오늘날의 애니미즘』의 저자 오쿠노 카츠미는 인류학자이고 시미즈 다카시는 불교학자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힘을 합쳐 다양한 소재와 방법을 동원하고, 나아가 사유의 방법론 자체를 새로이 고안하면서 애니미즘이라는 거대한 주제와 씨름한다. 오쿠노 카츠미는 ‘존재론의 전환’이라 불리는 인류학 흐름을 연구하는 일본의 인류학자로서, 존재론의 인류학을 책, 잡지, 웹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왕성한 활동과 실력으로 일본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인류학자다. 시미즈 다카시는 불교학자이며 라이프니츠와 미셸 세르 연구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대승불교의 창시자인 나가르주나, 일본 헤이안 시대의 승려 구카이,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 도겐 등의 불교 철학 연구에 몰두한다. 수려하고 묵직한 논리 구사로 정평이 난 학자다. 두 사람은 연구 이력도 성격도 상반되는데, 이 책에서는 이 점이 오히려 논의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오쿠노 카츠미는 현장 연구 경험이 풍부한 인류학자답게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인도네시아의 푸난족, 시베리아의 유카기르족 등의 민족지적 사례를 통해 애니미즘 존재론을 논의한다. 시미즈 다카시는 초기 불교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는 사유 전통 속에서 이항대립 사고를 분석하는데, 특히 라이프니츠, 미셸 세르, 브뤼노 라투르, 그레이엄 하먼 등이 전개한 서양 철학을 분석적으로 끌어오는 한편 복수의 이항대립 조합을 사고하기 위해 ‘삼분법’을 제안한다. 삼분법이란 세 종류의 이항대립을 조합하여 그 연결을 변화시킴으로써 그것들의 이원성을 조정한다는 방법론이다. 초기 불교에서부터 이야기된 사구분별(四句分別)을 제4렘마, 혹은 테트랄레마로 해석하면서 초기 불교와 현대 철학의 교차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4장은 오쿠노 카츠미가, 2장과 5장은 시미즈 다카시가 썼으며, 3장과 6장에는 두 사람의 대담을 실었다. 오쿠노 카츠미가 애니미즘 존재론에서 왕복순환하는 영혼의 차원을 다룬다면, 시미즈 다카시는 상호포섭하는 세계의 차원을 다룬다. 두 사람이 각자 주목한 차원이 교차하며 애니미즘 지평의 구체성과 추상성은 더욱 풍성해진다. 동아시아 존재론으로서 애니미즘 이제 우리가 질문을 풀어갈 차례 이 책에서 불교 철학은 존재론의 위상을 갖는다. 동아시아의 불교 철학이 서양 철학과 동등한 형이상학의 지위를 갖는다는 뜻이다.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 속에서 새로운 인류학적 이론이 생성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우주론’을 논하기 위한 사상적 토대가 제시된다. 역자 차은정은 이 책이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 책은 인류학과 불교의 만남에서 어떤 앎이 생성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서로를 포섭하고 또 포섭당하며 끝없이 펼쳐지는 또 다른 그물망의 세계다. 생성의 인류학이자 존재론의 불교학이다. 이러한 존재론들을 앞으로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가 이 질문을 풀어갈 차례다.” 지은이 소개 오쿠노 카츠미 奥野克巳 일본의 인류학자. 1962년 규슈 북서부의 사가현(佐賀県)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学)에서 「재앙의 설명과 재앙에 대한 대처: 보르네오 섬 카리스 사회에서 정령, 독약, 흑마술(災いの説明と災いへの対処─ボルネオ島カリス社会における精霊, 毒薬, 邪術)」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릿교대학(立教大学) 이문화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 멕시코 원주민 사회를 방문하고, 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멜라네시아, 유럽 등지를 떠돌아다닌 후 방글라데시에서 잠시 승려 생활을 했다. 보르네오 섬의 화전 경작민인 카리스 부족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한 이래 지금까지 카리스 족과 더불어 수렵 채집민인 푸난 족에 관한 현지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는 또한 다자연주의, 다종인류학에 기반한 일본 인류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며 저술, 번역, 대중 세미나, 잡지 발간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에서 존재론적 인류학을 대표하는 인류학자 중 한 사람이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과 동물, 흥정의 민족지(人と動物, 駆け引きの民族誌)』(2011), 『고마움도 미안함도 필요 없는 숲의 사람들과 살아가며 인류학자가 생각한 것(ありがとうもごめんなさいもいらない森の民と暮らして人類学者が考えたこと)』(2018), 『사물도 돌도 죽은 자도 살아있는 세계의 사람들에게 인류학자가 배운 것(モノも石も死者も生きている世界の民から人類学者が教わったこと)』(2020) 등이 있다. 시미즈 다카시 清水高志 일본의 불교학자이자 철학자. 1967년 혼슈 중부의 아이치현(愛知県)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아이치대학(愛知大学)에서 「세르, 창조의 단자: 라이프니츠에서 니시다까지(セール, 創造のモナド─ライプニッツから西田まで)」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도요대학(東洋大学) 종합정보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라이프니츠, 미셸 세르, 브뤼노 라투르 등의 프랑스 철학을 연구했으며 최근에는 대승불교를 확립한 나가르주나(龍樹), 일본 불교의 기틀을 다진 구카이(空海) 등 사상가를 연구하며 불교를 동아시아의 형이상학이자 독자적인 존재론으로서 조명하며 그 논리를 탐구한다. 주요 저서로는 『다가올 사상사: 정보·단자·인문지(来るべき思想史─情報・モナド・人文知』(2009), 『미셸 세르: 보편학에서 행위자 연결망까지(ミシェル・セール─普遍学からアクターネットワークまで)』 (2013), 『밀려드는 실재(実在への殺到)』(2017), 『구카이론/불교론(空海論/仏教論)』(2023) 등이 있다. 옮긴이 소개 차은정 서울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규슈대학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대학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숲은 생각한다』, 『부분적인 연결들』, 『부흥문화론』(공역), 『타자들의 생태학』,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공역),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공역) 등이 있다. 이름 없는 삶의 궤적에 관심을 두고 역사 인류학적 연구를 해왔으며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 일본으로 귀환한 일본인의 기억과 삶’에 관한 연구로 박사 논문을 작성했다. 지금은 해방 이후 한국의 생태 운동사를 좇으며 한반도의 생명 사상에 내재한 종교성을 규명하고 있다. 김수경 서울대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 대학에서 「무덤의 금기와 경계: 부산 비석문화마을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서울생활문화 자료조사 『시흥동: 서울 서남부 전통과 현대의 중심』, 파주 중앙도서관의 역사민속문화 기록화 사업 『파주 DMZ의 오래된 미래, 장단』, 『장파리 마을 이야기』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끼는 다양한 방식들에 관심을 두고 현재는 무덤의 기술과 사자(死者)의 존재론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본문 중에서 애니미즘에는 이쪽과 저쪽 그 어느 쪽도 있을 수 있다는 〈뫼비우스의 띠〉 모양의 연결통로가 있었다. 사람이 곰을 보내주는 의례 속에 곰이 신의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면, 애니미즘이란 단지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보낸 것 자체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32쪽 이와타 케이지는 푸난족(말레이시아 사라왁주 발람 강가에 사는 수렵민)의 한 남자가 바람총을 입에 물고 ‘훗’하고 숨을 불어넣는 모습을 목격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화살이 일직선으로 공중을 날아가 빠른 속도로 과녁에 적중하기를 기대했겠지만, 화살의 종적은 묘연한 채 작은 새가 파닥거리며 땅에 떨어졌다. 이를 본 이와타는 화살이 날아가 탁 하고 작은 새가 떨어진 인과율의 한순간이 아니라 그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42~44쪽 연결통로의 안쪽에는 무인과적 연결의 원리로 성립되는 동시 또는 무시의 기이한 시간이 묻혀 있다. 샤먼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우연한 계기에 그것을 엿보거나 경험한다. 애니미즘이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안팎의 구별이 없는 하나로 이어진 공간상의 무한루프일 뿐만 아니라 저쪽 어딘가에 동시 또는 무시가 잠재해 있다. 그리고 그 연결통로의 어디쯤에서 사람은 느닷없이 충격적인 형태로 신과 만난다. -52쪽 그[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이렇듯 어느 한 이항대립을 우선 상정하고 사태를 그 양극의 어느 쪽으로도 결코 환원하는 일 없이, 그 위에 다양한 이항대립을 조합함으로써 그것들의 대립을 조정하거나 변환한다는 사고는 인류 보편적인 것이다. -64쪽 여러 대립 이항, 예를 들어 인간과 자연, 주체와 대상 등을 분리해서 사고하거나 혹은 그것들의 상호작용이 불가분해서 각각을 독립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한쪽을 다른 한쪽으로 환원하거나 여하간 그것이 오로지 인간과 자연의 문제로만 고찰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나 이원론적으로밖에 사물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애당초 그러한 주제를 단독으로 다루고자 할 때 이미 실제로는 별개의 대립 이항까지 얽혀들어 작용하고 있다. -66~67쪽 ‘과학의 대상을 관계짓고 서술하는 주체가 처음부터 그 주체와 분리된 것으로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지식을 얻어가는 것이 과학’이라는 근대인의 사고는 사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체와 대상, 하나와 여럿의 복잡한 교착 관계를 은폐하고 있으며 실태와는 크게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77쪽 나는 여기서 세 개의 이원성(이항대립)을 논했는데, 그것들을 모두 조합하면 확실히 일즉다 다즉일의 세계관으로 알려진 화엄불교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느껴집니다. 겉보기에 전혀 다른 영역인 과학 및 기술 분야에서 라투르가 분석한 것은 작금에 다다른 과학의 상황론이지만, 세르가 말하듯이 여러 학문이 서로 ‘그물망’ 모양의 총체를 이룬다면 그것 또한 일즉다 다즉일의 세계입니다. -109쪽 오쿠노 씨가 인용한 마츠오 바쇼의 ‘개구리와 파문’ 이야기인데요, 이것도 참 좋은 비유입니다.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나타나고, 그 공간에 구멍이 있어 그곳으로 시간이 스며든다. 시간이 스며든다는 것은 순환한다는 것이지요. 동시성이 있으면서 순환이 있다는 것. 이것들이 교차하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적 사건 모두 마침내 테트랄레마의 세계로 변해간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141쪽 예를 들어 보르네오의 이반(Iban)족은 절구와 절굿공이를 사용해 매일 아침 쌀을 찧어 정미합니다. 사실 그 절구는 바닥에 일종의 장치가 있어 악기가 되기도 하는데, 그들에게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생활의 구심력이 됩니다. 벼의 신도 그 소리를 기뻐하며 구름이나 빗물이 되어 다시 논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쌀을 먹는 것인지 쌀에 먹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그러한 시작도 끝도 없는 세계는 또한 순환의 세계이기도 해서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정미(精米) 소리라는 것이지요. 거기에 사람들과 그 하루하루의 삶이 있습니다. -145쪽 이와타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즐겨 그렸습니다. 수묵화풍의 감귤이 다섯 개 그려진 그림이 나오는데요, 보통 여백은 그림의 하얀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와타는 그림에서 감귤을 오려내면 뻥 뚫린 구멍이 생기고, 그 잘려나간 부분 이외는 전부 여백이라고 합니다. 하얀 부분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누구라도 평면에서 감귤과 그 옆의 공간을 이항적으로 파악한 평면적 시각에서 하얀 부분을 여백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것을 포섭하는 삼차원의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도 감귤이 아닌 부분, 즉 여백이 있다. 전부 연속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게 참 재미있는 사례 같아요. -153~154쪽 애니미즘이란 자신과 자신의 주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를 항상 열어두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물과 생명에 주의를 기울이면 사물과 생명 그리고 세계로부터의 작용에 응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한다. “거대한 ‘타력’을 느끼면서 ‘자력’을 잊지 않는 것, 이렇듯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사상으로서 ‘타력’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여기서 말하는 애니미즘이다. -185~186쪽 이항대립들 사이의 이러한 조합 조작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20세기 후반 인류학계와 철학계를 휩쓴 포스트모던 논의가 어떠했는지를 상기해보면 역으로 한층 더 명확해질 것이다. 서양적 주체와 그 문명, 그와 대비된 외부적 타자라는 이원론적 가치관을 상대화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주창되었는데, 이것은 이미 복수의 이항대립—‘주체/대상’, ‘안/밖’(피포섭과 포섭)—이 무분별하게 결부되는 양상을 보였다. -222쪽 [포스트모던의 상대주의는] 복수의 이항대립 조작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빗나간 서양문명 비판이 행해졌고, 비서양의 문명적 뿌리를 가진 우리까지 그러한 시선에서 서양문명의 상대화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어서 우리 스스로 문명의 독자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225쪽 애니미즘 사상이란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응답이며 부름이기도 한, 표현과 함께 경험되는 다양한 정념과 진배없다. -248쪽 통일된 주체를 획득하기 위해 ‘주체/대상’의 이원론에서 끝까지 대상을 부정하려는 것 혹은 ‘이마고’의 매혹에 끝없이 유인되는 것은 애니미즘의 세계관으로 보면 속임수에 속아서 포획되는 사냥감의 심성이다. 즉, 근대인이라는 의미에서 주체적이고자 하는 것은 유카기르족에서는 오히려 동물인 것, 포획물인 것, 그저 고기인 것이다. -256쪽 결국 나 자신이 삼분법으로 사고하게 된 것은 인류가 정말로 보편적으로 사고해온 문제의 가장 근저에 있는 것은 세계의 다양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지역에는 한정된 하나의 생활방식이 있고, 잠시 잠깐이라도 그것과 모순되지 않는 형태로 풍부한 다양성이 있다는 것. 이것이 인류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애니미즘의 근저에 있는 사고방식이 아닐까요? -282쪽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최초의 근본적인 이원론, 즉 하나와 여럿의 이항대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느 한쪽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양극이 양극을 서로 포섭하는 모델을 생각해야 합니다. -284~285쪽 차례 들어가며 1장 애니미즘, 무한의 왕복 순환과 붕괴하는 벽 2장 삼분법, 선, 애니미즘 3장 대담Ⅰ 4장 타력론의 애니미즘 5장 애니미즘 원론—‘상의성’과 정념의 철학 6장 대담Ⅱ 나오며 역자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보도자료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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