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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21-2 (03800) 출간일: 2021년 8월 16일 정가: 17,000원 제본: 무선 쪽수: 340쪽 판형: 130×210mm 분야: 국내도서 > 에세이 > 독서 에세이 국내도서 > 문학 > 세계문학 국내도서 > 고전 > 고전문학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지은이 : 김정선 책 소개 살면서 한번쯤은 누리고 싶은,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시간 무작정 읽기 시작하여 일 년간 야금야금 100권을 읽고 쓰다 세계 문학 전집을 벗 삼아 마음의 터널 통과하기 사는 곳은 대전.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단 둘, 동생과 친구 P. 함께 사는 생명은 연필선인장 ‘연필이’가 유일하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열 문장 쓰는 법』 등을 펴낸 김정선 작가의 ‘근황’이다. 건강 문제로 25년 가까이 해온 교정 교열 일을 그만두게 된 그는 작년 2020년에 서울 살이를 정리하고 대전으로 이사했다. 건강을 추스르기 위해 하루 2시간씩 산책하기로 다짐한 것과 더불어 그가 시작한 일은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것이었다. 서점에 가면 늘 세계 문학 전집 코너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마치 잘사는 이웃집 바라보듯이 선망의 눈길이 되곤 했던 그. 마침 따로 할 일도 없는 차에 그는 죽기 전에 언젠가 나도 한 번 해봤으면 하고 바라던, 세계 문학 전집 읽기에 착수했다. 이 ‘세계 문학 전집 읽기’ 여정은 일 년을 채웠고, 모두 100권(작품 수로는 70편)의 책을 읽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몸무게를 떠받치던 소파가 좋이 10센티미터는 주저앉았다고 한다. 그와 함께 세계 문학 읽기 여정을 떠나보자. 보도자료 따로 할 일이 없어 세계 문학 전집을 읽다 김정선 작가의 신작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이 출간되었다. 김정선 작가는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열 문장 쓰는 법』 등 베스트셀러를 펴내며 뛰어난 교정 교열자로 이름을 알렸는데 그에 비해 덜 알려진 사실. 그는 자기만의 색을 가진 산문가이기도 하다. 김정선 작가다운 산문들을 엮어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오후 네 시의 풍경』 등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오랜 시간 교정 교열자로 일했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현재는 모든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면서 서울 살이를 정리하고 대전으로 이사했다. 2020년 여름, 대전 이사와 더불어 그가 시작한 일은 바로 세계 문학 전집 읽기다. 서점에 가면 늘 세계 문학 전집 코너 앞에 발길을 멈추고 마치 잘사는 이웃집 바라보듯이 선망의 눈길로 책들을 쳐다보곤 했다는 그. 마침 따로 할 일도 없는 차에 그는 죽기 전에 언젠가 나도 한 번 해봤으면 하고 바라던 그 일에 착수했다. 김정선 작가는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이유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붙이거나 그 일의 가치를 확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세계 문학 전집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읽으면 무엇이 좋은지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이 일을 시작한 이유를 전할 뿐이다.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다고. 따로 할 일이 없었다고. 세계 문학 읽기가 나의 본령, 작품들을 벗 삼아 마음의 터널 통과하기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는 25년 가까이 상당한 권수의 문학 작품을 손본 뛰어난 교정 교열자이고 특히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주력하던 일이 바로 세계 문학 작품들의 교정 교열이었다. 그가 비로소 어깨에 짊어져온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되면서 바로 떠올린 일이 세계 문학 읽기인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세계 문학 읽는 일이 자신의 본령인 것처럼 여겨진다고 말한다. 더불어 김정선 작가에게 세계 문학을 읽는 일은 우울감을 버티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 장에 이르러 문득 ‘마음의 터널’에 대해 털어놓는다. 또다시 터널을 통과했다. 마음의 터널. 이번엔 이틀짜리로 짧지 않은 터널이었다.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비교적 짧은 터널을 지날 때도 있고 이삼 일 동안 이어지는 제법 긴 터널을 지날 때도 있다. 때로는 짧은 터널이 연이어 나타날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자칫 출구를 못 찾을지도 모르는 동굴이 아니라 터널을 지날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버티고 있다. - 204쪽 우울의 터널을 통과하는 방법으로써 그는 세계 문학과의 씨름을 선택했다. 아니, 씨름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겠다. 일 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100권의 책을 읽고 이를 기록했으니 작업 강도가 상당했을 텐데 그는 이 일을 그다지 어려워하지 않았다. 우울한 날은 우울한 대로, 친구가 찾아와서 좋은 날은 좋은 기분 그대로, 춥거나 더운 날에는 또 그날의 날씨가 시키는 대로, 그는 세계 문학 작품들과 친구처럼 지내자는 마음으로 한 해를 보냈다. 그 결과로 70편의 글이 쓰였고 마침내 이 책이 만들어졌다. 도서 정보, 작품 한 토막, 줄거리 소개와 김정선의 목소리를 담았다 매 편 원고의 구성은 무척 단순하다. 세계 문학 작품 제목과 지은이, 옮긴이, 출판사, 출간 연도를 표기한 후, 해당 작품에서 고른 인용구 한 토막이 등장한다. 작가의 문체, 작품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한 토막을 고르기도 했고, 핵심 장면이 펼쳐지는 한 토막을 고르기도 했다. 비록 짤막한 글귀이지만 이를 통해 해당 작품과 독자 자신의 궁합이 맞을지 아닐지를 슬며시 판단해볼 수도 있으리라. 그런 다음 김정선 작가의 목소리가 한두 문단을 차지한다. 작가의 일상 등이 담긴 매우 짧은 에세이가 작품 이야기 전에 등장하는 것이다. 짧은 에세이 뒤에는 두어 쪽 분량의 작품 줄거리 소개가 이어진다. 그러고 마지막으로 김정선 작가가 한 번 더 말을 건다. 그렇게 두어 문단의 소감이 적힌 후에 글이 끝난다. 70편 대부분 이와 같은 구성을 따른다. 작품 이야기 전에 실리는 짧은 에세이에서는 김정선의 일상이 엿보인다. 우울감을 겪는 이야기, 약을 끊고 지내보려는 이야기, 약을 다시 복용하는 이야기, 친구를 만난 이야기, 연필선인장과 함께 사는 이야기, 동생과 나눈 대화, 오래 간병한 어머니를 떠올리는 이야기, 스스로 말하는 ‘나’의 이야기 등등. 이 이야기들에는 김정선 작가가 내보이는 ‘마음’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날그날 그의 마음이 읽기로 선택한 작품 이야기가 곧 이어진다. 말했듯이 작품에 대한 두어 쪽 분량의 줄거리 소개가 이어지는데, 교과서에 실릴 듯한 줄거리 요약과는 다르다. 김정선 작가의 관점에서 작품을 독해하기 때문. 그래서 줄거리 소개라고 한 이 대목들은 김정선 작가 방식의 짧은 해제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김정선 작가는 자신의 일상과 세계 문학 작품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이 덕분에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다는, 쉽지만 않은 도전이 어쩐지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로 여겨진다. 문학과 친구가 되는 일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김정선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 문학 전집 읽기의 가장 큰 특징과 매력은 이것이 아닐까. 문학을 벗 삼아 하루를 보내는 모습, 문학과 친구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세계 문학을 읽는 일의 의미를 그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시간을 함께하는 일의 의미를 굳이 설명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까. 야금야금 읽어온 100권, 앞으로 두 권 더 기획 2020년 6월 말부터 2021년 3월 초까지, 일 년이 못 되는 시간(정확히는 8개월 반) 동안, 김정선 작가는 권수로는 1백 권, 작품 수로는 70편을 읽고 그 감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지금은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을 집필 중이다.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는 총 세 권의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다. 다음 책은 2022년 여름 출간 예정이다. 김정선이 읽은 70편의 작품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페스트』, 알베르 카뮈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백 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위대한 개츠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파멜라』, 새뮤얼 리처드슨 『클러리사 할로』, 새뮤얼 리처드슨 『화산 아래서』, 맬컴 라우리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점원』, 버나드 맬러머드 『그린게이블즈의 빨강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테레즈 데케루』, 프랑수아 모리아크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변신』, 프란츠 카프카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나자』, 앙드레 브르통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푸른 꽃』, 노발리스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만연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모렐의 발명』,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전원 교향악』, 앙드레 지드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주홍 글자』, 너새니얼 호손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채털리 부인의 연인』,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로미오와 줄리엣』,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송』, 프란츠 카프카 『성』, 프란츠 카프카 『지킬 박사와 하이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워더링 하이츠』, 에밀리 브론테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 『암흑의 핵심』, 조지프 콘래드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사양』, 다자이 오사무 『미하엘 콜하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악의 꽃』, 샤를 보들레르 『전쟁과 평화』, 레프 톨스토이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모비 딕』, 허먼 멜빌 『마의 산』 , 토마스 만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아Q정전』, 루쉰 『소리와 분노』, 윌리엄 포크너 『한 여인의 초상』, 헨리 제임스 『보이지 않는 인간』, 랠프 앨리슨 『적과 흑』, 스탕달 『목로주점』, 에밀 졸라 『삼대』, 염상섭 지은이 소개 김정선 이십 대 후반부터 오십 대 중반까지 단행본 출판물 교정 교열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오후 네 시의 풍경』 등의 책을 냈다. 지금은 대전에서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끼적이며 산다. 책 속에서 임대인이 전화를 해서는 아무래도 집을 내놓아야겠단다. 날벼락 같은 얘기에 어리둥절했다.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사정사정하는 말을 들어보니 세금이 꽤 많이 나와서 실제 집주인인 언니네 부부가 감당하기 어려워한다는 것. 잘 얘기해서 원래 2년 계약이었던 걸 1년으로 바꾸었다. 집은 마음에 쏙 들었지만 등기상의 집주인과 임대인이 다른 게 영 찜찜하던 차였기에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러고 나니 기운이 쪽 빠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제야 어색하기만 하던 이 집에 비로소 정이 가는 느낌이었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별 탈 없이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면 그걸 누리기보다 외려 어색하고 불안해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그제야 이게 내 삶이지, 하고 안정감을 찾는 심리. 왜 이 모양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1911~2002)가 1950년에 펴낸 소설 『삶의 한가운데』를 펼쳤다. - 70~71쪽, 「누구나 언제든 삶의 한가운데를 산다」 중에서 대전에서 새로 만난 의사는 여성분인데 환자들이 많아서 시간에 쫓길 법한데도 대화를 유도하려 애써주고 약도 줄여주겠노라고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종국에는 약을 먹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고마웠다. 나 또한 어쨌든 과거는 우당탕탕 지나버렸고 지금이 내 평생 가장 편안한 시간인데 이렇게 약에 의존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노라고 답했다. 사실이다. 젊은 날로는 단 일 초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지금의 내가 좋으니까. 독일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1774년에 펴낸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다. - 75쪽, 「우당탕탕 지나가 버린 젊은 시절」 중에서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특별한 행동을 곧잘 흉내 내곤 했다. 친구들 앞에 뽐내듯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식의 흉내였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닮고 싶은 상대의 습관을 모방했으리라. 아니면 닮고 싶은 사람은 아니지만 특정한 행동이 나도 모르게 배어들 듯 옮겨 왔을 수도 있고. 그렇다 보니 과연 이게 내 것인가 싶어질 때도 많았다. 말투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심지어는 걸음걸이까지. 아, 방금 이 행동은 예전에 아무개의 행동이랑 비슷한데, 하고 불현듯 떠오를 때면 내가 여러 사람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가 1605년에 펴낸 소설 『돈키호테』를 읽고 있다. - 78쪽, 「흉내 내기」 중에서 의사에게 약을 먹어도 자꾸 증세가 반복된다고 전하면서 마치 어느 외진 곳에서 장기 투숙자로 살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내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의사는 증세가 나타날 때의 심리 상태를 꼬치꼬치 묻고는 약을 추가해 주었다. 계속 줄여 나갈 줄 알았는데 다시 약이 늘고 말았다.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1885~1970)가 1927년에 펴낸 소설 『테레즈 데케루』를 읽는다. - 98쪽, 「외진 곳에 불시착한 영혼」 중에서 서울 자취방으로 나와 살기 전엔 부천에서 13년 가까이 어머니 간병을 하며 지냈다. 집안 살림도 하고 어머니와 같이 병원 생활도 하고 훈련도 시켜드리고. 몸의 반쪽을 쓰지 못하게 된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는 게 내 목표였다. 간병이 길어지면 간병하는 사람의 고생은 점점 부각되고 간병을 받는 사람의 고달픔은 잊히게 된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게 된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따로 나와 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동안 알게 되었다. 다시 그 시간만큼 누군가를 간병하는 것과 누군가에게 간병을 받는 것 중 택하라면, 다시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전자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아무튼 고령의 아버지에게 맡기고 나온 터라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몰라 서울에서는 변변한 가구도 없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1년만이라도 이렇게 지내보자 했던 게 어느새 4년이 되어버렸다.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가 1984년에 펴낸 소설 『연인』을 읽는다. - 132쪽, 「내 연인은 슬픔」 중에서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도 없고 그만큼 증오해 본 적도 없다. 무엇보다 내가 품는 그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믿지 못한다. 얼마나 오래갈지도 모르겠고. 약을 먹게 된 뒤로는 더더욱 그렇다. 이 책에 쓸데없이 줄거리를 요약해 나열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나를 못 믿겠어서. 다 읽고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랄까. 그러니 확인이 필요하다. 물론 되도록 짧게 정리하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이 1850년에 펴낸 소설 『주홍 글자』를 읽는다. - 162쪽, 「사랑과 증오의 세 꼭짓점」 중에서 또다시 터널을 통과했다. 마음의 터널. 이번엔 이틀짜리로 짧지 않은 터널이었다.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비교적 짧은 터널을 지날 때도 있고 이삼 일 동안 이어지는 제법 긴 터널을 지날 때도 있다. 때로는 짧은 터널이 연이어 나타날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자칫 출구를 못 찾을지도 모르는 동굴이 아니라 터널을 지날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버티고 있다. 다행히 아직은 잠을 잘 자는지라 터널일 뿐이라는 믿음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식욕도 되찾고 난 뒤에 터널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읽던 책을 마저 읽고 한 번 더 읽었다. 독일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가 1910년에 펴낸 소설 『말테의 수기』다. - 204쪽, 「나는 나를 보았을까?」 중에서 계절이 바뀌었고, ‘코로나 19’는 3차 대유행을 맞았다. 그 와중에도 연필선인장은 열다섯 개의 새로운 마디를 틔워냈다. 동생은 오르내리면서도 잘 버티고 있고, 나는 몇 번의 터널을 더 지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병원에 가서 비상약을 받아왔다. 그리고 태어난 해를 포함해서 쉰다섯 번째 생일을 ‘연필이’와 함께 보냈다. ‘연필이’는 내가 지어준 연필선인장의 이름이다. 가끔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말을 걸기도 한다. “너나 나나 이번 겨울을 잘 나야 할 텐데.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가 1948년에 펴낸 소설 『인간 실격』을 읽는다. - 222쪽, 「출구 없는 세상에 갇힌 아들」 중에서 도시 생활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것 아닐까. 도시 생활의 매력이기도 하고 맹점이기도 하다. 또 하나가 있다면 아마도 시간이지 싶다. 도시인들이 발명한 도시의 시간. 절기에 따라 생활과 풍경을 변화시키지만 결국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농촌의 시간이 아니라, 깎이고 잘리고 덧붙여지고 치솟고 무너지고 흐르다가 고여서 썩으면서도 원래의 모습 같은 건 간직하고 있지 않은 도시의 시간. 도시의 익명성과 도시만의 시간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발명품이 바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도시에 살면서 도시인의 발명품인 소설 읽기를 즐기는 나는 도시인이 맞지 싶다. 프랑스 시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1821~1867)가 1857년에 펴낸 시집 『악의 꽃』을 읽는다. - 245쪽, 「도시와 시간」 중에서 차례 들어가며 : 살면서 한번쯤은 누리고 싶은,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시간 2020, 여름 노인과 소년 :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스크는 언제 벗을 수 있을까? : 『페스트』, 알베르 카뮈 긴 장마처럼 : 『콜레라 시대의 사랑』 1·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니야, 결코 가볍지 않아!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순전히 얼음 때문에 : 『백 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북북서로 미쳤다고? :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 무슨 호사인가 : 『위대한 개츠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외진 곳의 장기 투숙자 :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직 편지글로만 : 『파멜라』 1·2, 새뮤얼 리처드슨 재난지원금 덕분에 : 『클러리사 할로』 Ⅰ~Ⅷ, 새뮤얼 리처드슨 술 냄새와 책 냄새 진동하는 소설 : 『화산 아래서』, 맬컴 라우리 현명해져야 하는 건 리어일까 나일까? :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가면의 진실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걸까? :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누구나 언제든 삶의 한가운데를 산다 :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우당탕탕 지나가 버린 젊은 시절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흉내 내기 :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성공한 속편은 없는 걸까? : 『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2020, 가을 가을의 문턱에서 만난 도스토옙스키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을 다시 쓴다면? : 『점원』, 버나드 맬러머드 도와줘요, 빨강머리 앤! : 『그린게이블즈의 빨강머리 앤』 1~10, 루시 모드 몽고메리 외진 곳에 불시착한 영혼 : 『테레즈 데케루』, 프랑수아 모리아크 집에 돌아가는 길 :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합의와 치욕 : 『변신』, 프란츠 카프카 쓸쓸하다 :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세상이 너무 지겨워! :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세상의 모든 하루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발작적인 아름다움 : 『나자』, 앙드레 브르통 무서워라!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세계와 나 : 『푸른 꽃』, 노발리스 내 연인은 슬픔 :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크로머는 어떻게 살았을까? : 『데미안』, 헤르만 헤세 청춘의 비가(悲歌) :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정신의 과장된 삶 : 『만연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권력과 반역은 한 쌍이다 :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기계와 불멸 : 『모렐의 발명』,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기만 없는 사랑이 가능할까? : 『전원 교향악』, 앙드레 지드 비겁한 사랑 :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사랑과 증오의 세 꼭짓점 : 『주홍 글자』, 너새니얼 호손 고(故) 박지선 씨를 기억하며 :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어떤 섹스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채털리 부인의 연인』 1·2,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철없는 사랑과 공동체의 운명 : 『로미오와 줄리엣』, 윌리엄 셰익스피어 “개 같군!” : 『소송』, 프란츠 카프카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뭘까? : 『성』, 프란츠 카프카 악을 품은 선과 선을 품은 악 : 『지킬 박사와 하이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연필선인장과 히스 : 『워더링 하이츠』, 에밀리 브론테 나는 나를 보았을까? :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제인 에어와 다락방의 여인 :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 2020, 겨울 이야기의 핵심에 감추어진 것 : 『암흑의 핵심』, 조지프 콘래드 출구 없는 세상에 갇힌 아들 :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출구 없는 세상에서 자기 혁명을 꿈꾸는 딸 : 『사양』, 다자이 오사무 자비 없는 냉담한 서술자 : 『미하엘 콜하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창조주여, 나는 네 주인이다. 순종하라!” :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도시와 시간 : 『악의 꽃』, 샤를 보들레르 근대 소설의 최대치 : 『전쟁과 평화』 1~4, 레프 톨스토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아무래도 소설 같지 않은 : 『모비 딕』, 허먼 멜빌 이야기의 보수성 : 『마의 산』 상·하, 토마스 만 탁월한 서술자와 완벽한 구성 :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의 그늘 아래서 :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천박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 『위대한 유산』 1·2, 찰스 디킨스 행복은 정말 다른 곳에 있는 걸까? :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미리 만나 보는 현대 소설 :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독자를 만들어야 하는 작가의 운명 : 『아Q정전』, 루쉰 포크너, 포크너! : 『소리와 분노』, 윌리엄 포크너 고급 심리소설의 초상 : 『한 여인의 초상』 1·2, 헨리 제임스 문학이란 무엇인가 : 『보이지 않는 인간』 1·2, 랠프 앨리슨 쥘리엥 소렐은 뫼르소의 모델일까? : 『적과 흑』 1·2, 스탕달 ‘빈곤 포르노’ 속에 버려진 인물들 : 『목로주점』 1·2, 에밀 졸라 소설가 염상섭 : 『삼대』, 염상섭 보도자료 다운 받기
- 먼지의 말 | 포도밭출판사
지은이: 채효정 ISBN: 979-11-88501-22-9 (03300) 출간일: 2021년 9월 17일 정가: 16,000원 제본: 무선 쪽수: 272쪽 판형: 130×210mm 분야: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먼지의 말 지은이 : 채효정 책 소개 정치학자 채효정, 먼지로서 먼지에게 쓰다 이 책은 정치학자 채효정이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주로 페이스북에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채효정은 ‘마음이 견디지 못해, 가슴에서 돌멩이 하나를 빼내듯이’ 썼다고 말한다. 슬픔으로 쓴 글이 있고, 분노로 쓴 글이 있고, 함께 웃기 위해 쓴 글이 있다. 먼지로서 먼지에게 쓴 글들이다. 먼지란 ‘없지 않은 존재’를 일컫는다. 먼지는 ‘도래할 주체’들의 태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먼지의 말』은 없지 않은 존재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보도자료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 채효정은 학교로부터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이후 채효정은 부당한 해고에 항의하며 잔디밭에서 강의를 이어갔다. 나는 2016년 12월 겨울날,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잔디밭 강의의 청강생이 되고자 그의 강의실(경희대학교 노천극장, 대운동장, 잔디밭 등지에서 강의가 이뤄졌다)을 찾아갔다. 추운 날이었지만 나와 같은 청강생이 제법 있었다. 채효정은 털장갑을 끼고, 털모자를 눌러 쓰고, 확성기를 얼굴에 바싹 붙이고 소리를 높여 강의했다. 그는 우리의 ‘빼앗긴 말’들을 주제로 강의했다. 2019년 소위 ‘조국 사태’ 초반에, 평소 정치사회 문제에 자주 의견을 내던 사람들도 왠지 말을 아꼈다. 신중함은 보통은 미덕이지만 이때의 신중함에는 껄끄러운 점이 있었다. 그들은 지켜보자고 했고, 조국을 아주 옹호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아직은 판단을 유보할 때라고도 했다.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기가 매우 답답했고 어느 지점에서는 몸서리가 쳐졌다. 그때 내가 찾아 읽던 글 중에서 단연 선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며 조국 사태가 주는 무참함을 말하고, 조국 옹호 세력을 비판하는 글을 쓰던 사람이 채효정이었다. 중국의 탄압에 맞서며 홍콩 이공대에서 투쟁이 일어났을 때, 이공대에게 벌어지는 일을 상세히 보도하는 채널은 드물었다. 채효정은 역시 날마다 긴 글로 투쟁의 안팎을 전했고, 연대의 필요성을 일깨웠고, 당장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알려주었다. 돼지 ‘살처분’이 벌어질 때, 나는 여러 가지 입장들을 읽었다. 방역의 입장, 축산 농가의 입장, 산업의 입장… 돼지의 비명 소리가 꿈에서 들리는 괴로움 속에서도, 나는 내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어떠한 ‘입장’들을 생각했다. 그때 채효정이 돼지의 입장을 써주었다. 나는 내가 돼지라는 걸 깨달았다. 돼지의 입장이 내 입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돼지인데, 누구의 입장을 걱정한단 말인가. 삼성 해고자 김용희를,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박문진, 송영숙을 알리는 사람이 채효정이었다. 제주 청년 노민규의 제주 제2공항 반대 단식시위를, 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시위를, 경동 도시가스 가스 안전 점검원들의 시위를 알리는 사람이 채효정이었다. 나는 채효정의 글을 읽으며 훅 하고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채효정의 글을 읽고서야 푹 하고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채효정이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마음이 견디지 못해, 가슴에서 돌멩이 하나 빼내듯이’ 썼다는 이 글들을 페이스북에서 찾아 그러모았다. 처음에 200여 편을 모았는데, 그중 82편을 추렸다. 『먼지의 말』은 정치학자 채효정이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주로 페이스북에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슬픔으로 쓴 글이 있고, 분노로 쓴 글이 있고, 함께 웃기 위해 쓴 글이 있다. 채효정은 먼지로서 먼지에게 이 글들을 썼다. ‘먼지’는 무엇을 일컫는 말인가. 먼지는 ‘없지 않은 존재’이다. 그리고 먼지는 ‘도래할 주체’들의 태명 같은 것이다. 채효정은 서문 「왜 쓰는가」에서 왜 이 글들을 썼는지 돌아본다. 그는 무척 무거운 마음으로 자신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를 살펴본다.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한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무겁고 두려운 마음이지만, 간절했기에 썼다고 밝힌다. “여기 적힌 간절한 말들이 간절한 사람들에게 닿기를,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말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전한다. 이 책에서 듣게 될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알려드린다. 목소리의 주인공이라 하면 인간만 떠올리기 십상인데, 이 목록에는 아래와 같이 물건도 있고 건물도 있고 동식물도 있다. 이들에게도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류센터 노동자 / 아파트 외벽 도색 노동자 / 돌봄 노동자 / 남극 세종기지 / 바이러스 / 빙하 / 녹색당 / 벌레 / 땅 / 나무 / 고양이 / 뱀 / 택배 노동자 / '근로자 A씨' / 이주 노동자 / 화재로 숨진 망원동 쌍둥이 형제 / 탄소 / 배달 노동자 / 간호사 / 콜센터 노동자 / 코로나 / 학생 / 비정규직 노동자 / 김용희 / 김용균 / 블루베리 / 간병인 / 청도 대남병원 / 김선일 / 김정희 / 하청 노동자 / 청소년 / 딜란 크루스 / 홍콩 이공대 시위대 / 자살자 / 광주 / 노민규 / 마을 / 안전로프 / 프롤레타리아 / 먼지 / 마트 노동자 / 쪽방촌 김씨 / 톨게이트 투쟁 노동자 / 돼지 / 박문진 / 송영숙 / 화물 트럭 노동자 / 할머니 / 청소 노동자 / 해고 강사 / 4월 16일 / 개 / 노란 조끼 등등. 지은이 소개 채효정 정치학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해직강사로 대학의 기업화와 비민주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수요집회와 잔디밭 강의 등 학내투쟁과 강사투쟁을 했고 그 경험을 기록하여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를 펴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이자 발행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으로 잘못된 교육 시스템과 한국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써왔다. 2018년부터 월간 『워커스』에 노동, 정치, 교육, 돌봄, 기후위기 등 다양한 현안에 섬세한 고민과 물음을 던지며 ‘워커스 사전’을 연재하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능력주의와 불평등』,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상상하라 다른 교육』, 『교육 불가능의 시대』 등이 있다. 현재 강원도 인제에서 글 노동자, 들 노동자로 산다. 지배하는 이들이 아니라 지배당하는 이들, 저항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연구자이자 함께 싸우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책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나는 이 세계에 지분이 없다.” - 「딜란 크루스」, 122쪽 ‘근로자’ 1명 이름은 ‘A씨’ ‘끝내 숨져’ 이름 없는 노동자가 혼자 작업하다 사고를 당하고 끝내 숨졌다는 소식 이 소식은 왜 날짜와 장소만 바뀐 채 늘 똑같은 문장으로 전송되는가 - 「근로자 1명 끝내 숨져」, 59쪽 ‘죽음의 외주화’란 그 말이다. 죽어라, 내가 안 보는 곳에서.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너의 불행한 죽음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게 사회의 도덕률이 되어버렸다. 안 보이는 곳에서 죽도록 일하고 안 보이는 곳에서 죽어라. - 「죽어라, 내가 안 보는 곳에서」, 254쪽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은 144명)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 「조용히」, 151쪽 “나쁜 짓을 안 하믄…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큰 돈을 모은대?” - 「민도」, 208쪽 질문은 ‘10년 후에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였다. 한 사람은 ‘먼지’라고 대답했다. 먼지… 갑자기 가슴이 쿵하면서 머리가 멍해졌다. “먼지라고요? 이 질문을 한 이후로 이렇게 시적인 대답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하니까 씩 웃는데, 그 웃는 모습이 참 좋았다. 다행히도. 친구들이 옆에서 “아, 뭐래” 하고 퉁을 줘도 의연하게 “왜 먼지가 어때서?”라고 되물었다. “너희들은 먼지가 안 될 것 같냐?”라고 하면서. 또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있을 것 같다고 했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니… 또 친구들은 옆에서 우와 그게 말이 되냐고 웃으면서 떠든다. - 「먼지의 말」, 156쪽 추석 연휴 전날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해 한 노동자가 아파트 옥상 위로 올라갔다. 거의 완공된 아파트는 외벽 도색을 앞두고 있다. 하얗게 밑칠을 마친 외벽을 타고 내려오며 로프에 매달린 노동자는 한 자씩 글자를 써내려갔다 제 몸보다 큰 붉은 글씨를 한 자 한 자 읽어본다. 사 기 꾼 시 공 업 (체) 시 행 사 는 더 사 기 꾼 노 임 주 라 개 자 식 그는 로프를 알고, 칠을 아는 사람 추석 연휴 전날까지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는 자신이 쓸 수 있는 유일한 공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저 말을 쓰고 내려와 경찰에 ‘입건’되었다. - 「임금 주라」, 26쪽 숙련 택배 노동자의 한달 평균 택배 물량은 7,000~8,000개 지난 3개월간 10년차 택배기사인 정씨가 배송한 택배 상자는, 2월에 9,960개 3월에는 1만 1330개 4월에는 1만 288개 오전 6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휴식시간도 없이 하루 15시간 중노동 근무 어린이날 앞두고, 심정지로 돌연사 - 「돌연사」, 58쪽 “우리는 당신들이 미처 죽이지 못한 노동자의 자식들이다.” -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125쪽 숫자, 순위, 평균, 생략으로 ‘노동자의 삶’과 ‘노동의 현실’을 전하는, 뉴스. 그런데 그렇게 해도 너무나 끔찍한, 뉴스. - 「3,400명」, 184쪽 “싸움은 물러설 수 없는 곳에서 하는 것 같아요.” - 「물러설 수 없는 자리」, 258쪽 도살된 4,700여 마리의 돼지. 해고된 1,500여 명의 톨게이트 노동자. 24년 동안 사회적 죽임을 당한 채로 살아있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올 1학기 해고당한 대학 강사는 7,834명. 그 외에도 또 어디서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삶의 벼랑 끝에서 떠밀려 내던져졌는지 모른다. 그 속에 나도 있다. ‘최소 비용, 최대 이익’을 위해 산 채로 매장되는 존재들. 살처분이나 해고나 생매장이긴 마찬가지다. 어느 날 홀연히 자기가 살던 사회에서 쫓겨나 산 채로 어둠 속에 사라진다. 존재를 부정당한 그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려고 날마다 안간힘을 쓴다. - 「돼지들이 죽던 날」, 201쪽 안전로프(구명줄)가 없었다. 엊그제 유리창 외벽 청소 중에 추락 사망한 노동자. 안전로프가 없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건 떨어지면 끝이라는 것.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이고 누군가의 소중한 이였을 사람 누군가의 안전로프가 되었을 사람.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을 고용한 자기 자신의 사장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조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 안전로프가 없었는지, 그걸 물어봐야만 하는데. - 「안전로프 없는 사회」, 148~149쪽 “거기서 잘렸으니, 거기로 돌아가야죠….” - 「물러설 수 없는 자리」, 258쪽 차례 서문_ 왜 쓰는가 이상한 점 죽었다 아니 죽였다 임금 주라 취향의 정치와 혐오의 정치 돌봄노동과 기후위기 에코 포르노그래피 자본주의에 반대하지 않는 그린 뉴딜이라니 수업료 땅 선생님과 나무 선생님 뉴딜의 한계 작은 평화 밭에서 돌연사 근로자 1명 끝내 숨져 산재는 막지 못한다고 우리들의 죽음 그린 뉴딜, 좋은 포장지 나중에 이윤보다 생명을 위기 이후 조용한 독재자 루카스 플랜 이 차이는 어디서 왔는가 그 사람이 점점 투명해진다 땅 병은 가난한 사람들부터 낚아챈다 탈노동 김선일을 기억하라 사람이 죽었다 다시는 로봇은 비싸고, 인간은 싸니까요 2명이 100명을 대표하는 세상 싸우는 청소년들 딜란 크루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살아있어요 어떤 사람들의 전쟁 폭력에 지지 않는 사람들 성난 목소리 착시현상 ‘모두의 것’을 되찾는 일부터 안전로프 없는 사회 죽음의 사회적 전형 조용히 보이지 않는 사람들 먼지의 말 누가 돈을 가져가는가 힘의 기울기 쪽방촌 김씨 조국 이후 계급의 눈으로 촛불 다음 날 여성을 교환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 3,400명 숨을 못 쉬겠다 천만이 모여도 옳지 않다 노동자 숨져 다들 트라시마코스가 되기로 하였소? 돼지들이 죽던 날 고공으로 올라간다 졸면 죽음 『한겨레』 평기자 성명을 읽으며 민도 식자들 아무도 책임이 없다 역사 부르주아화와 관제 민족주의에 맞서 애국 ‘사라졌다’고 한다 구제 우리가 소멸하지 않겠다면? 강사법과 대학의 미래 원하는 것을 요구하자 4월 16일 밤 나는 후마니타스칼리지 해고 강사다 대학의 죽음 상상 이상의 대학 한 사람 죽어라, 내가 안 보는 곳에서 개를 버리는 방법 물러설 수 없는 자리 인간의 길 2018학년도 신입생 입학식 환영인사 편집자의 말 보도자료 다운 받기
- 소개 | 포도밭출판사
포도밭출판사 소개입니다 포도밭출판사는 충북 옥천에 있는 작은 출판사입니다. 2014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옥천에 포도 농가가 많아서 저희 이름도 ‘포도밭출판사’라고 지었습니다. 인문, 사회과학, 인류학, 문학, 예술 분야의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선형’ 시리즈를 통해서 SF 작품을 꾸준히 펴낼 계획입니다. 한여름 포도밭의 이랑을 걷다 보면 포도송이에 알이 빽빽하게 찬 게 보이지요. 송이에 든 알이 너무 빽빽하면 한 알 두 알 빼내어 알이 골고루 넉넉하게 크도록 솎는데, 그런 식으로 포도송이를 살피고 매만지며 이랑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는 포도밭의 노동이 종이에 빼곡히 적힌 글자들을 훑고 다듬어 책으로 내놓는 출판사의 노동과 닮은 데가 있다고 믿으며, 그래서 포도밭출판사라는 이름을 좋아합니다. 포도밭출판사 / 나선형 Podobat Publishing Company / Spiral 29049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성신로 16, 필성주택 202호 Unit 202, 16 Seongsin-ro, Okcheon-eup, Ogcheon, Chungcheongbuk-do, Korea 전화. 070-7590-6708 팩스. 0303-3445-5184 이메일. podobatpub@gmail.com 홈페이지. podobat.co.kr
- 대학공간에서의인권 | 포도밭출판사
엮은곳: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지은이: 아드리안 홉킨스, 치사토 키타나카, 데이비드 카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 구미영, 김엘림, 신윤진, 이성용, 이주영, 주윤정 ISBN: 979-11-88501-31-1 (03300) 출간일: 2022년 9월 30일 정가: 15,000원 제본: 무선 쪽수: 216쪽 판형: 130×210mm 분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사회문제 일반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사회과학계열 > 사회학 대학 공간에서의 인권 엮은곳: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지은이: 아드리안 홉킨스, 치사토 키타나카, 데이비드 카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 구미영, 김엘림, 신윤진, 이성용, 이주영, 주윤정 책 소개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하기 대학 공간에서 인권이 제대로 존중되고 보호되려면, 나아가 대학이 인권의식을 갖춘 구성원을 양성할 수 있으려면,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바탕이 마련되어야 대학 구성원들이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할 수 있고, 인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로 인한 피해를 보다 잘 파악할 수 있으며,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들을 쌓아나갈 수 있다. 이 책은 2022년 1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개최한 네 번의 웨비나에서 발표·토론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학문연구, 교육, 업무 등이 이루어지는 대학 공간 곳곳에 인권의 가치가 스며들기를, 그 효과로 실질적 변화들이 대학 공간에서 이뤄지기를 바라며 이 책을 출간한다. 보도자료 2022년 3월부터 모든 대학이 인권센터를 반드시 두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학내 구성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인권센터나 성평등센터와 같은 기구를 운영하는 대학들이 있었지만, 2021년 2월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이제 인권센터 설치는 모든 대학에 의무사항이 되었습니다. 대학이 구성원의 인권 보호를 위한 전담기구를 필수적으로 두게 된 것은 고무적입니다. 성희롱·성폭력이나 부당한 업무지시, 차별, 괴롭힘과 같은 인권침해를 겪는 구성원들이 찾아 도움을 요청하고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기구가 마련되고, 이미 인권센터가 있는 대학의 경우 더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개선을 촉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인권이 제대로 존중·보호되고 인권의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수 있으려면, 대학 인권센터 설치·운영 이상의 것이 요구됩니다. 즉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바탕이 마련되어야, 대학 구성원들이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인권 문제가 발생할 때 그로 인한 피해가 무엇인지를 더 잘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피해자를 보호·지원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들을 쌓아나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2022년 1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개최했던 네 번의 웨비나에서 발표·토론되었던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아드리안 홉킨스, 일본 히로시마 대학 하라스먼트 상담실의 치사토 키타나카,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 리더십 및 교육과학 대학의 데이비드 카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로스쿨 데보라 투르크하이머를 발표자로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고, 각 세미나별로 국내 여러 연구자들이 대담자로 참여해 한국 사회 및 대학에 가지는 시사점을 짚으며 토론해 주셨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구미영 연구위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김엘림 교수,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국립평화분쟁연구소의 이성용 교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윤진 교수,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의 이주영 교수,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주윤정 교수 등입니다. 이 책을 통해 대학에서 어떻게 하면 인권을 더 잘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리의 사유와 행동의 지평이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대학의 인권센터나 다양성·포용성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매일 인권, 평등,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책이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대학이 더욱 인권친화적이고 포용적인 방식으로 학문연구, 교육, 업무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를 바라는 모든 분들에게 생각거리를 주기를 기대합니다. 대학 인권센터의 법적 제도화가 단순히 형식적 발전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대학 내 구성원들의 관계가 변화하고 학문연구와 교육의 과정에 인권의 가치가 스며들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합니다.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법적 잣대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판단하는 데에만 치중하기보다, 피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피해자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로 잘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닦는 일에도 인력과 자원이 배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서의 대화와 토론이 그러한 과정에서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1. 평등, 다양성, 포용성의 추구 아드리안 홉킨스의 「평등, 다양성, 포용성의 추구」는 대학이 교육, 연구, 교·직원 인사, 학생 선발을 포함한 대학 운영 전반에서 인권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우리의 사유의 폭을 넓혀줍니다. 홉킨스는 대학 내에서 평등, 다양성, 포용성을 어떻게 실현하려고 노력하는지, 그것이 탁월한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 본연의 목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경험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평등은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다양성은 사람들이 지닌 차이가 존중되고 그 가치가 인정되고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 포용성은 공동체 내 기회와 자원을 동등하게 누리며 그 공동체에 소속감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대학 내 하라스먼트 개념과 대응 치사토 키타나카는 「대학 내 하라스먼트 개념과 대응」에서 대학 자치가 마치 강의실이나 연구실에 관한 한 전적으로 교수에게 재량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곤 하는 일본 대학에서 어떻게 그러한 인식의 장벽을 넘어 캠퍼스 내 하라스먼트에 대한 대응이 발전해 왔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소개합니다. 키타나카는 대학 차원의 하라스먼트 대응을 요구하고 변화를 관찰해 온 젠더사회학자로서, 하라스먼트 상담 조직을 만들고 사건조사를 해서 끝내는 것으로는 하라스먼트 대책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키타나카는 피해가 지속되거나 악화되지 않도록 조기에 소속 학과나 기관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3. 회복적 정의와 대학 데이비드 카프는 「회복적 정의와 대학」에서 대학 구성원들이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고 타인의 관점과 경험을 생각하면서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관계를 강화하고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회복적 정의를 대학에 적용하는 데 필요한 1차적 단계라고 제시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인권친화적인 대학 만들기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카프는 사람들을 같이 대화하고 배울 수 있는 존재로 대하면서, 중요하지만 어려운 도덕적 쟁점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도덕적 능력을 갖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4. 신빙성의 불균등한 배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는 「신빙성의 불균등한 배분」에서 여성, 유색인, 장애인, 성소수자, 이민자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발언이 자주 무시되고 진실성이 부정당하는 ‘신뢰성 폄하 현상’을 성폭력 피해자의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피해자들은 어떤 일이 발생했고, 그 일은 옳지 않고, 가벼이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처럼 피해자들의 말이 부당하게 무시되거나 평가절하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피해자의 말이 항상 진실인 것만은 아니지만, 투르크하이머는 피해자의 말에 진실한 증거로서의 효력을 전혀 부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어떤 사건을 판단해야 할 때,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는 입증 원칙’, ‘증거의 우월성 원칙’,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의 원칙’ 등 제도와 맥락에 따라 요구되는 확신의 수준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에서 형사절차상의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는 입증 원칙’이 요구되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투르크하이머는 지적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대학에서도 일어납니다. 투르크하이머는 우리의 인식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법과 문화에 성차별과 권력불균형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은이 소개 아드리안 홉킨스(Adrienne Hopkins) 아드리안 홉킨스는 12년간 영국 옥스팜Oxfam에서 국제개발 경력을 쌓은 후 2012년 성평등 전문위원으로 옥스퍼드 대학의 평등과 다양성 팀The Equality and Diversity Unit에 합류하여 2019년부터 동 기관의 수장으로 재직 중이다. 치사토 키타나카(Chisato Kitanaka) 치사토 키타나카는 일본 히로시마 대학의 하라스먼트 상담실 준교수로 하라스먼트 피해자를 상담하고 문제해결을 지원한다. 사회학자로서 주요 연구 주제는 사회학적 젠더 이론, 여성 폭력, 학내 괴롭힘 등이다. 2017년 『아카데믹 하라스먼트 해결: 대학의 상식을 다시 묻기アカデミック・ハラスメントの解決: 大学の常識を問い直す』를 출간했다. 데이비드 카프(David Karp) 데이비드 카프는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 리더십 및 교육과학 대학의 교수로 『대학을 위한 회복적 사법 소책자 The Little Book of Restorative Justice for Colleges and Universities』를 포함하여 공동체의 신뢰 회복과 학내에서의 회복적 사법 등의 연구 주제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학술논문을 출판했다. 샌디에이고 대학의 회복적 사법 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 데보라 투르크하이머(Deborah Tuerkheimer) 데보라 투르크하이머는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로스쿨 교수로 형사법과 증거법, 페미니스트 법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뉴욕 지방검찰청에서 5년간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사건 전담 검사로 재직하였으며, 2021년 『신빙성: 왜 우리는 피해자를 의심하고 가해자를 보호하는가Credible: Why We Doubt Accusers and Protect Abusers』를 출간했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노동법, 젠더법을 연구한다.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젠더법학의 연구, 교육, 실행에 주력한다. 신윤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국제인권규범과 헌법 및 초국경적 인권문제를 연구한다. 이성용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국립평화분쟁연구소 교수. 분쟁 해결, 협상 중재, 전후 복구, 평화구축 관련 주제들을 연구한다. 이주영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 부교수. 국제인권규범, 인권이론 및 사회권, 평등을 연구한다.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조교수. 인권사회학, 소수자/장애, 생태평화를 연구한다. 차례 발간사 서문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하기 평등, 다양성, 포용성의 추구 [아드리안 홉킨스 / 토론 구미영·이주영·주윤정] 대학 내 하라스먼트 개념과 대응: 일본 대학의 사례 [치사토 키타나카 / 토론 김엘림·이주영·주윤정] 회복적 정의와 대학 [데이비드 카프 / 토론 이성용·이주영·주윤정] 신빙성의 불균등한 배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 / 토론 신윤진·이주영·주윤정] 보도자료 다운 받기
- 광장이 되는 시간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09-0 (03300) 출간일: 2019년 7월 19일 정가: 15,000원 제본: 무선 쪽수: 268쪽 판형: 128×205mm 분야: 1. 인문학 > 인문에세이/인문비평 2. 인문 > 인문일반 3. 에세이 > 한국에세이 4. 사회과학 > 사회운동 광장이 되는 시간 천막촌의 목소리로 쓴 오십 편의 단장 지은이: 윤여일 책소개 운동의 현장이 사고의 광장으로 ‘도청앞 천막촌’은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막아내고자 제주도청 맞은편 길가에 천막을 치고 모여든 사람들의 마을이다. 사회학자이자 동아시아사상사 연구자인 저자 윤여일은 ‘연구자 공방’ 천막을 세우며 ‘천막촌 사람들’이 되었다. 이 책은 천막촌 살이의 기록이자 천막촌 운동의 고민, 난관, 모색, 성장에 관한 에세이다. 그로써 독자와 함께 천막촌을 정신적으로 체험하고자 한다. 이 책의 부제는 ‘천막촌의 목소리로 쓴 오십 편의 단장’이다. 각 단장은 저자가 천막촌에서 접한 누군가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저자는 천막촌에서 다가온 목소리들로 독자가 들어올 사고의 광장을 마련한다. 천막촌이라는 제주의 운동 현장에서 한국의 사회현실을 바라보는 일종의 좌표를 만들어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보도자료 제주가 지금 모습이길 바라는 당신이 알아야 할 이야기 제주가 앓고 있다. 화산활동이 만든 오름과 신비로운 동굴, 수백 년 우거진 숲, 푸르른 바다 그리고 소중한 생명들이 앓고 있다. 지난 십 년 간 제주의 자연생태는 난개발과 과잉관광으로 도처에서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이런 제주에 국토부는 훨씬 많은 관광객을 받기 위해 두 번째 공항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민주적인 의사수렴, 최소한의 알 권리도 무시되었다. 공항 예정부지 주민들은 자신의 집과 고향이 사라지고 그 위로 활주로가 깔린다는 통고를 언론보도로 들었다. 더구나 강정에 만들어진 해군기지에 이어 제2공항은 공군기지로 전용될 가능성이 크다. 제주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제주는 섬이다. 섬의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환경수용력이 관건이다. 현재 제주는 하수처리능력이 포화상태로 일부 하수를 그대로 바다로 방류하고 있다. 쓰레기처리능력도 한계에 달해 압축 쓰레기를 몰래 필리핀으로 보냈다가 반입을 금지당했다. 공항이 하나 더 생겨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들어온다면 어찌될 것인가. 얼마나 많은 난개발이 이어질 것인가. 섬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시설 하나를 짓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공항은 개발들의 첨병이다. 현재 제주의 도민들 사이에서는 국토부의 제2공항 건설사업에 절차적 하자가 크다, 제2공항 건설 이전에 현공항의 활용가능성을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 제2공항 건설 여부를 도민의 의견수렴을 거쳐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다. 하지만 국토부는 제2공항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일단 시작된 국책사업은 자기정당화의 논리로 무장한 채 자기관성에 따라 진행 중이다. 개발과 갈등의 섬. 이것이 제주의 현주소다. 제주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운동의 운동 그래서 제2공항 사업을 막기 위해 예정부지의 주민만이 아닌 여러 시민이 모여들어 천막촌이 형성되었고 모인 이들은 천막촌 사람들이 되었다. 천막촌은 예정부지 주민의 단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를 지키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또한 다른 단식자가 생겨났다. 천막촌 사람들은 고민이 많았다. 단식자가 쓰러지기 전에 단식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했다. 또한 운동을 긴 호흡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너무 큰 희생을 짊어지지 않고, 더 희생되지 않고, 힘을 내는 사람이 힘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운동을 운동시켜야 했다. 운동의 실험이 일어났다. 천막촌 사람들은 국토부와 제주도정이 요식적 행정절차로 진행하는 설명회나 보고회에 난입하고 이를 저지했을 뿐 아니라 ‘공항 말고 장터’, ‘공항 말고 백배’, ‘공항 말고 합창’, ‘공항 말고 광장’, ‘공항 말고 바당’을 마련해 시민 참여의 장을 만들었다. 촛불 집회 때도 사람들이 모일 곳 없던 제주에서 천막촌은 정치의 광장으로 진화했다. 운동들의 운동, 운동들을 위한 운동 천막촌은 제주에서 전례 없던 것이나 고립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외롭지 않다. 천막촌은 국책사업 반대운동이자 점거운동이자 지킴이운동이다. 대추리, 새만금, 용산, 두물머리, 강정, 밀양. 천막촌은 지난 많은 운동을 앞에 두고 있으며, 그것들을 참고하고 계승한다. 과거의 운동은 천막촌에게 침전된 가능성이고 실천의 참조점이고 못 이룬 약속이다. 천막촌은 그 과거들을 여기저기서 불러들이며 새로운 미래를 산출하고자 한다. 그로써 과거 운동은 현재 운동 속에서 되살아난다. 서사로서 방법으로서 감정으로서 물음으로서. 현재 운동은 과거 운동들을 구제하는 속성을 지닌다. 이것은 시대순으로 기록되는 운동사와는 다른, 운동의 역사. 이처럼 여러 운동을 계승하고 그 운동들을 다시금 운동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천막촌은 운동들의 운동이며, 천막촌 역시 미래에 도래할 여러 운동에게 그렇게 쓰이고자 하기에 운동들을 위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마을, 다른 생활 그리고 천막촌은 마을이다. 볼록 솟은 천막은 그릇이 뒤집어진 형상이다. 사람들이 사연과 의지, 그리고 저마다의 방식과 기술을 가지고 흘러들어와 이 안에서 함께 차오르고 있다. 이곳을 천막촌, 즉 천막들의 마을로 부르는 것은 단지 천막이 여러 개여서가 아니라 집이 아닌 천막에서 지내며 전에 없던 마을을 살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천막촌은 자격과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자들이 자유를 살며 집단의 삶을 가꾸는 실험적 마을이다. 자격과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자들이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합의과정에서 배제된 자들이 새로운 공공영역을 만들어내고자 하고 있다. 여기, 새로운 마을과 다른 생활이 있다. 생성되는 관계가 있다. 의지가 있다. 긴 약속과 결심이 있다. 분노가 있다. 분노는 절규로 고립되지 않고 공분으로 승한다. 놀람이 있다. 자신 그리고 타인에게서 새로운 발견이 일어난다. 성장이 있다. 사고와 행동과 언어가 자라난다. 상상력이 있다. 상상력이 향하는 미래가 있다. 시도가 있다. 시도가 수놓는 역사가 있다. 이러한 ‘있음’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마을에서 ‘산다’는 흔들리며 많은 동사를 짊어진다. 이 마을은 삶의 새로운 실존 형식을 실험 중이다. 천막촌에서 만난 목소리들 이 마을에 이런 목소리들이 있다. “결국 그 밤 천막을 다시 세웠고 천막이 늘어났습니다. 천막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껏 참아온 분노가 축적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 서 있었다. 왜 이러고 있느냐고 당신들이 한 번이라도 물었다면. 우리는 질문 받기 위해 굶었고 마주치기 위해 서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의 규정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으로 싸웁니다. 우리는 아직 없는 이름들입니다. 한 번도 호명된 적 없는 주체들입니다.” “우리는 부당한 공권력 앞에 분노한 얼굴들입니다. 폭력에 저항하는 인간입니다. 이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학살의 당사자입니다.” “당신은 누구냐고 묻길래, 우리는 겁쟁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더 참혹한 미래를 만날 자신이 없어 지금 여기서 싸운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은 싸우는 모습을 가시화하지 않으면 운동의 성과를 잃곤 한다.” “경찰 정보과가 협상하겠다고 왔다. 대표 보고 나오라고 했지만 나갈 대표가 없었다.” “현재는 과거에서 오는 어떤 결과라기보다 미래 때문에 일어나는 시도인지 모른다.” “기만에 속아온 세월들, 이제는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 “나도 모르게 나를 가두는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저 계단에서 제주의 새로운 정치 언어가 나올 것이다.” “나무는 나예요. 나는 나무처럼 싸울 거예요.” “천막촌에 오면 할 일, 자기 위치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설거지를 하겠다.” “이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민으로서 지내는 것이다.”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겠다.” “저지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가보고 싶다. 운동이 이렇게 궁금하고 흥미로운 적이 없다. 여기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같이 있어 더 먼 곳을 보고 먼 곳까지 가려는 시간을 겪어왔다.” “내가 세상을 못 바꾸더라도 이렇게 부딪치면 세상은 나를 바꾸지 못하겠구나.” “질 때 지더라도 잘 지고 싶다.” 운동의 천막을 펼쳐 사고의 광장으로 함께 살아가기가 아닌 홀로 살아남기를 요구받는 사회, 존재가 거처와 관계를 잃고 홀로 배회하는 시대에서 천막촌의 생활은 사건적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운동을 일으키고 일상을 가꾸는 집단의 실험이 발생하고 있다. 사실 천막촌 같은 운동의 현장은 정치적 광장이 되고자 하나 현실적 제약에 가로막히고 성과보다 한계가 드러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제약과 한계야말로 사고가 깊어지고 행동의 모험이 요구되는 계기다. 그 제약은 사고가 얽혀들 자리이며, 그 한계는 여기까지 행동했기에 맞닥뜨릴 수 있다. 천막촌 사람들은 제약과 한계들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려 부단히 고민하고 행동하고 있다. 천막촌은 세상이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불안해하는 사람들, 지금을 어떻게든 바꿔내야 한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의 예시이며 원형이다. 따라서 저자는 천막촌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닌 바깥의 누군가를 위해서도 천막촌을 기록하고 천막촌의 사고를 가다듬고자 했다. 천막촌에서 찾아온 목소리를 단장으로 키워내 타인에게, 미래에 건네고자 했다. 운동, 일상, 현장, 정황, 승리, 패배, 성취, 시련, 성장, 개발, 자본, 국가, 식민, 주권, 주변, 광장, 약속, 체념, 무력, 미력, 행복, 기쁨, 예감, 예언, 절망, 희망, 심연, 도약, 개체, 집단, 연루, 공명, 감응, 마을, 이주, 돌봄, 지위, 경계, 자격, 권리, 통치, 정치, 난민, 인민, 호명, 배제, 평등, 대등, 위계, 다수, 합의, 결행, 곡절, 사연, 실험, 관계, 세계, 여성, 남성, 배움, 미래, 과거, 상황, 기록, 기억, 계승, 급진, 생태, 언어, 물음, 이름, 문체, 사상 저자가 천막촌을 기술하기 위해 다시 음미해야 했던 단어들이다. 이 책은 멀리 있는 타인, 훗날을 위한 기록이자 사색이다. 당신과 미래는 우리의 지금과 닿아 있다고 믿기에. 지은이 소개 윤여일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십 년간 수유너머의 일원이었다.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로 베이징에서, 도시샤대학 객원연구원으로 교토에서 체류했으며, 현재 제주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 제주에서 지내고 있다. 2019년 1월 동료들과 연구자공방 천막을 세우며 천막촌 사람들이 되었다.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동아시아 담론』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상황적 사고』 『여행의 사고』(하나·둘·셋)를 쓰고, 대담집 『사상을 잇다』를 펴냈다. 책 속에서 이 책은 오십 편의 단장短章들로 짜인다. 그리고 운동을 담으려면 문장 또한 운동해야 한다고 여겨 분석적이기보다 함축적인 문체를 취한다. 당신의 머리와 마음 속에서 운동하는 문장이기를 바란다. - 단장 1. 단장과 광장 이 지점에서 천막촌이 촛불에 던지는 물음은 우리가 선한 목자를 골랐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양떼인가이다. 즉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다. - 단장 9. 촛불 이후 천막들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끝 너머를 의식하고 사라짐 이후를 바라본다. 언젠가 사라질 이곳에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알게 된다. - 단장 10. 긴급의 공간 겁쟁이들은 희망하기를 희망한다. 희망希望. 희希는 바라다는 뜻과 함께 드물다는 뜻도 담고 있다. 바랄 수 있는 게 끊긴 상태가 절망이라면 희망은 드물게나마 무언가가 있다는 것. 절망은 희망의 반대말이 아니라 희망을 구해 나서야 할 토양. 겁쟁이들은 희망해야 하기에 희망하기를 희망한다. - 단장 15. 예견하는 겁쟁이 우리는 미력하다. 하지만 함께하기에 무력하지 않다. 미력은 힘의 시작이다. - 단장 16. 미력과 무력 내몰린 그 자리가 자유가 시작되는 곳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예속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예속 속에서 활로를 개척하는 활동이다. 자유롭게 산다기보다 자유를 사는 것이다. - 단장 18. 내몰림과 자유 떠밀림과 떠맡음. 수동성과 능동성이 중첩되는 그 자리를 우리는 사고의 거처로 삼는다. 현실의 제약은 그 현실을 뚫고 나아가려는 사고에게 가능성의 조건이기도 하다. 사고는 이곳에서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 단장 19. 앎은 운동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와 함께 알아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와 함께일 때 알 수 있는가. - 단장 20. 배움은 일어나는가 천막촌은 공간이자 시간이다. 그 시간은 긴급함을 의미한다. 그 긴급함이란 현재를 인식하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급히 불러들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 단장 22. 아하의 순간 ‘이미-정함’이라는 예정豫定을 ‘어쩌면’이라는 예감으로 바꾸려는 사람들. 예감豫感. 미리 느낌. 그로써 우리에게 현재는 다른 미래의 전조가 되며 다른 미래는 현재에 이미 작용하게 된다. - 단장 23. 다른 미래와 예감 미래를 짊어지려는 이들에게 과거와의 싸움은 미래를 향한 도전, 딱 그만큼 무겁고 버겁다. - 단장 24. 과거와의 싸움 추방되는 자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자 할 때 무얼하는가. 점거한다. 그렇다면 배제된 자들은 자기 자리를 찾고자 할 때 무얼하는가. 난입한다. - 단장 25. 배제와 난입 우리에겐 보다 많은 권리의 형상, 보다 잦은 권리의 사건화가 필요하다. 그것들은 만인이 확보할 권리는 아니겠으나 타인에게 번역될 권리다. - 단장 26. 통치와 정치 제주도청은 무엇 하나 내줄 생각이 없었다.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우리를 내몰아냈다. 하지만 우리도 아직 끝낼 생각이 없다. 길 건너 도청을 보며 무슨 일을 벌일지 궁리 중이다. 시력마저 금지할 수는 없다. 상상은 이미 도청 내부로 난입하고 있다. - 단장 27. 계단을 점거할 권리 평등과 대등. 이곳에서 평등과는 다른 대등을 사고하게 된다. 만약 평등이 자격이나 지위의 동등함이 전제된 관계의 수평성을 뜻한다면 대등은 각각의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성취된다. 같아서가 아니라 달라서 대등할 수 있다. - 단장 37. 평등과 대등 상대는 말을 함부로 부리지만 말이 소중한 우리는 말에 매인다. 상대가 남용해 그 말이 닳을수록 우리의 말은 가난해진다. 상대로 인해 말이 의미를 잃으면 우리가 지고, 말이 부패하면 역시 우리가 지는 불공정한 싸움. - 단장 44. 빼앗긴 언어 친구는 말한다. 볼 때마다 말한다.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 홀로 패배에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내게 그러할 것이듯. 그리고 우리는 패배를 패배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 단장 49. 승리의 시간대 이 책은 아직 운동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동요하며 이곳의 살이와 활동의 시도들을 모아 미래로 전달하고자 한다. 누가 어떠한 상황에서 수신자가 될까. 과연 이 기록이 미래에 쓰임이 있을까. 천막촌은 운동들을 위한 운동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답할 수 없다. 이 물음에 입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지금 당신이다. - 단장 50. 운동들을 위한 운동 차례 앞에 쓰다 천막촌을 기술하기 위해 음미해야 했던 단어들 천막촌의 역사 천막촌이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열 가지 이유 제2공항이 생기면 사라질 성산의 풍경 1. 단장과 광장 2. 현장과 광장 3. 새로운 마을과 다른 생활 4. 천막촌의 시작 5. 어떤 운동을 앞에 두고 있는가 6. 땅의 이름이 운동의 이름이 되는 곳들 7. 점거하는 자들 8. 특이한 지킴이 9. 촛불 이후 10. 긴급의 공간 11. 감전과 충전 12. 이 세계의 윤곽을 듣고 싶다 13. 자신을 알다 14. 타인을 알다 15. 예견하는 겁쟁이 16. 미력과 무력 17. 고苦와 쾌快 18. 내몰림과 자유 19. 앎은 운동하는가 20. 배움은 일어나는가 21. 장이 안다 22. 아하의 순간 23. 다른 미래와 예감 24. 과거와의 싸움 25. 배제와 난입 26. 통치와 정치 27. 계단을 점거할 권리 28. 실존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 29. 이주한 사람들 30. 경계의 존재 31. 마을과 커먼즈 32. 얽혀듦과 휘말림 33. 문제를 일으키는 능력 34. 합의와 입장 35. 결행과 연루 36. 선택하지 않은 것들의 역사 37. 평등과 대등 38. 권력화를 막아 39. 연극정치와 민주주의 40. 단식과 폭동 41. 싸움의 기술들 42. 비자림로 이야기 43. 제주녹색당과 강정에서 온 사람들 44. 빼앗긴 언어 45. 운동하는 말 46. 두 가지 동하다 47. 세계상의 획득 48. 운동의 성취는 직접적이다 49. 승리의 시간대 50. 운동들을 위한 운동 뒤에 적다
- 오늘날의애니미즘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39-7 (93200) 출간일: 2024년 8월 30일 정가: 23,000원 제본: 무선 쪽수: 356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종교문화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생태/환경 오늘날의 애니미즘 지은이: 오쿠노 카츠미, 시미즈 다카시 옮긴이: 차은정, 김수경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점에서 만나는 애니미즘 인류세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늘의 사상으로서 애니미즘을 되살리다 폭넓은 경험과 시야를 가진 인류학자와 경이로울 만큼 명석하고 논리적인 불교학자가 서로의 이야기를 감싸며 새로운 존재론의 지평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흔하디흔한 존재로부터 펼쳐지는 장엄한 만다라 인류의 꽉 막힌 진로를 열기 위한 열쇠가 애니미즘에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저편 세계는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 만약 그 사이를 왕래하는 통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경험될까? 곰, 새, 엘크, 개구리, 풀, 나무 같은 다종의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인간은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인간 아닌 생명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며 무얼 말하고 싶은지, 이를 우리가 섣불리 환원하지 않고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을 살다 문득 온갖 만물과 이어진 ‘신’을 느끼는 일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평의 존재론과 연결될 때, 우리 삶과 세계의 흐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인류세의 특징들을 만든 고정된 이원론을 넘어서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시도는 무엇일까? 애니미즘은 우리가 자력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아님을 일깨우며, 우리를 무시무종의 세계로 이끄는 타력의 바람 속으로 안내한다. 그곳에서는 아주 작고 흔한 사물 혹은 생명에서도 저마다의 만다라가 피어난다. 어떤 존재든 영혼을 통해 여러 세계를 왕복 순환하고, 세상 만물은 저마다 독립해 있으면서도 서로를 포섭하며 잇달아 뒤얽힌다. 그렇게 흔하디흔한 존재로부터 장엄한 만다라의 그물망이 펼쳐진다. 인류는 우리 스스로 세계의 진로를 막아버린 과정을 냉철히 돌아보고 이제 막았던 통로를 열어야만 한다. 인류의 꽉 막힌 진로를 열기 위한 열쇠가 애니미즘에 있다.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 왕복하고 포섭하는 이야기들 『오늘날의 애니미즘』의 저자 오쿠노 카츠미는 인류학자이고 시미즈 다카시는 불교학자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힘을 합쳐 다양한 소재와 방법을 동원하고, 나아가 사유의 방법론 자체를 새로이 고안하면서 애니미즘이라는 거대한 주제와 씨름한다. 오쿠노 카츠미는 ‘존재론의 전환’이라 불리는 인류학 흐름을 연구하는 일본의 인류학자로서, 존재론의 인류학을 책, 잡지, 웹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왕성한 활동과 실력으로 일본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인류학자다. 시미즈 다카시는 불교학자이며 라이프니츠와 미셸 세르 연구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대승불교의 창시자인 나가르주나, 일본 헤이안 시대의 승려 구카이,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 도겐 등의 불교 철학 연구에 몰두한다. 수려하고 묵직한 논리 구사로 정평이 난 학자다. 두 사람은 연구 이력도 성격도 상반되는데, 이 책에서는 이 점이 오히려 논의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오쿠노 카츠미는 현장 연구 경험이 풍부한 인류학자답게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인도네시아의 푸난족, 시베리아의 유카기르족 등의 민족지적 사례를 통해 애니미즘 존재론을 논의한다. 시미즈 다카시는 초기 불교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는 사유 전통 속에서 이항대립 사고를 분석하는데, 특히 라이프니츠, 미셸 세르, 브뤼노 라투르, 그레이엄 하먼 등이 전개한 서양 철학을 분석적으로 끌어오는 한편 복수의 이항대립 조합을 사고하기 위해 ‘삼분법’을 제안한다. 삼분법이란 세 종류의 이항대립을 조합하여 그 연결을 변화시킴으로써 그것들의 이원성을 조정한다는 방법론이다. 초기 불교에서부터 이야기된 사구분별(四句分別)을 제4렘마, 혹은 테트랄레마로 해석하면서 초기 불교와 현대 철학의 교차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4장은 오쿠노 카츠미가, 2장과 5장은 시미즈 다카시가 썼으며, 3장과 6장에는 두 사람의 대담을 실었다. 오쿠노 카츠미가 애니미즘 존재론에서 왕복순환하는 영혼의 차원을 다룬다면, 시미즈 다카시는 상호포섭하는 세계의 차원을 다룬다. 두 사람이 각자 주목한 차원이 교차하며 애니미즘 지평의 구체성과 추상성은 더욱 풍성해진다. 동아시아 존재론으로서 애니미즘 이제 우리가 질문을 풀어갈 차례 이 책에서 불교 철학은 존재론의 위상을 갖는다. 동아시아의 불교 철학이 서양 철학과 동등한 형이상학의 지위를 갖는다는 뜻이다.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 속에서 새로운 인류학적 이론이 생성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우주론’을 논하기 위한 사상적 토대가 제시된다. 역자 차은정은 이 책이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 책은 인류학과 불교의 만남에서 어떤 앎이 생성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서로를 포섭하고 또 포섭당하며 끝없이 펼쳐지는 또 다른 그물망의 세계다. 생성의 인류학이자 존재론의 불교학이다. 이러한 존재론들을 앞으로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가 이 질문을 풀어갈 차례다.” 지은이 소개 오쿠노 카츠미 奥野克巳 일본의 인류학자. 1962년 규슈 북서부의 사가현(佐賀県)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学)에서 「재앙의 설명과 재앙에 대한 대처: 보르네오 섬 카리스 사회에서 정령, 독약, 흑마술(災いの説明と災いへの対処─ボルネオ島カリス社会における精霊, 毒薬, 邪術)」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릿교대학(立教大学) 이문화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 멕시코 원주민 사회를 방문하고, 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멜라네시아, 유럽 등지를 떠돌아다닌 후 방글라데시에서 잠시 승려 생활을 했다. 보르네오 섬의 화전 경작민인 카리스 부족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한 이래 지금까지 카리스 족과 더불어 수렵 채집민인 푸난 족에 관한 현지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는 또한 다자연주의, 다종인류학에 기반한 일본 인류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며 저술, 번역, 대중 세미나, 잡지 발간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에서 존재론적 인류학을 대표하는 인류학자 중 한 사람이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과 동물, 흥정의 민족지(人と動物, 駆け引きの民族誌)』(2011), 『고마움도 미안함도 필요 없는 숲의 사람들과 살아가며 인류학자가 생각한 것(ありがとうもごめんなさいもいらない森の民と暮らして人類学者が考えたこと)』(2018), 『사물도 돌도 죽은 자도 살아있는 세계의 사람들에게 인류학자가 배운 것(モノも石も死者も生きている世界の民から人類学者が教わったこと)』(2020) 등이 있다. 시미즈 다카시 清水高志 일본의 불교학자이자 철학자. 1967년 혼슈 중부의 아이치현(愛知県)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아이치대학(愛知大学)에서 「세르, 창조의 단자: 라이프니츠에서 니시다까지(セール, 創造のモナド─ライプニッツから西田まで)」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도요대학(東洋大学) 종합정보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라이프니츠, 미셸 세르, 브뤼노 라투르 등의 프랑스 철학을 연구했으며 최근에는 대승불교를 확립한 나가르주나(龍樹), 일본 불교의 기틀을 다진 구카이(空海) 등 사상가를 연구하며 불교를 동아시아의 형이상학이자 독자적인 존재론으로서 조명하며 그 논리를 탐구한다. 주요 저서로는 『다가올 사상사: 정보·단자·인문지(来るべき思想史─情報・モナド・人文知』(2009), 『미셸 세르: 보편학에서 행위자 연결망까지(ミシェル・セール─普遍学からアクターネットワークまで)』 (2013), 『밀려드는 실재(実在への殺到)』(2017), 『구카이론/불교론(空海論/仏教論)』(2023) 등이 있다. 옮긴이 소개 차은정 서울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규슈대학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대학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숲은 생각한다』, 『부분적인 연결들』, 『부흥문화론』(공역), 『타자들의 생태학』,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공역),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공역) 등이 있다. 이름 없는 삶의 궤적에 관심을 두고 역사 인류학적 연구를 해왔으며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 일본으로 귀환한 일본인의 기억과 삶’에 관한 연구로 박사 논문을 작성했다. 지금은 해방 이후 한국의 생태 운동사를 좇으며 한반도의 생명 사상에 내재한 종교성을 규명하고 있다. 김수경 서울대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 대학에서 「무덤의 금기와 경계: 부산 비석문화마을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서울생활문화 자료조사 『시흥동: 서울 서남부 전통과 현대의 중심』, 파주 중앙도서관의 역사민속문화 기록화 사업 『파주 DMZ의 오래된 미래, 장단』, 『장파리 마을 이야기』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끼는 다양한 방식들에 관심을 두고 현재는 무덤의 기술과 사자(死者)의 존재론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본문 중에서 애니미즘에는 이쪽과 저쪽 그 어느 쪽도 있을 수 있다는 〈뫼비우스의 띠〉 모양의 연결통로가 있었다. 사람이 곰을 보내주는 의례 속에 곰이 신의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면, 애니미즘이란 단지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보낸 것 자체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32쪽 이와타 케이지는 푸난족(말레이시아 사라왁주 발람 강가에 사는 수렵민)의 한 남자가 바람총을 입에 물고 ‘훗’하고 숨을 불어넣는 모습을 목격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화살이 일직선으로 공중을 날아가 빠른 속도로 과녁에 적중하기를 기대했겠지만, 화살의 종적은 묘연한 채 작은 새가 파닥거리며 땅에 떨어졌다. 이를 본 이와타는 화살이 날아가 탁 하고 작은 새가 떨어진 인과율의 한순간이 아니라 그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42~44쪽 연결통로의 안쪽에는 무인과적 연결의 원리로 성립되는 동시 또는 무시의 기이한 시간이 묻혀 있다. 샤먼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우연한 계기에 그것을 엿보거나 경험한다. 애니미즘이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안팎의 구별이 없는 하나로 이어진 공간상의 무한루프일 뿐만 아니라 저쪽 어딘가에 동시 또는 무시가 잠재해 있다. 그리고 그 연결통로의 어디쯤에서 사람은 느닷없이 충격적인 형태로 신과 만난다. -52쪽 그[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이렇듯 어느 한 이항대립을 우선 상정하고 사태를 그 양극의 어느 쪽으로도 결코 환원하는 일 없이, 그 위에 다양한 이항대립을 조합함으로써 그것들의 대립을 조정하거나 변환한다는 사고는 인류 보편적인 것이다. -64쪽 여러 대립 이항, 예를 들어 인간과 자연, 주체와 대상 등을 분리해서 사고하거나 혹은 그것들의 상호작용이 불가분해서 각각을 독립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한쪽을 다른 한쪽으로 환원하거나 여하간 그것이 오로지 인간과 자연의 문제로만 고찰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나 이원론적으로밖에 사물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애당초 그러한 주제를 단독으로 다루고자 할 때 이미 실제로는 별개의 대립 이항까지 얽혀들어 작용하고 있다. -66~67쪽 ‘과학의 대상을 관계짓고 서술하는 주체가 처음부터 그 주체와 분리된 것으로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지식을 얻어가는 것이 과학’이라는 근대인의 사고는 사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체와 대상, 하나와 여럿의 복잡한 교착 관계를 은폐하고 있으며 실태와는 크게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77쪽 나는 여기서 세 개의 이원성(이항대립)을 논했는데, 그것들을 모두 조합하면 확실히 일즉다 다즉일의 세계관으로 알려진 화엄불교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느껴집니다. 겉보기에 전혀 다른 영역인 과학 및 기술 분야에서 라투르가 분석한 것은 작금에 다다른 과학의 상황론이지만, 세르가 말하듯이 여러 학문이 서로 ‘그물망’ 모양의 총체를 이룬다면 그것 또한 일즉다 다즉일의 세계입니다. -109쪽 오쿠노 씨가 인용한 마츠오 바쇼의 ‘개구리와 파문’ 이야기인데요, 이것도 참 좋은 비유입니다.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나타나고, 그 공간에 구멍이 있어 그곳으로 시간이 스며든다. 시간이 스며든다는 것은 순환한다는 것이지요. 동시성이 있으면서 순환이 있다는 것. 이것들이 교차하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적 사건 모두 마침내 테트랄레마의 세계로 변해간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141쪽 예를 들어 보르네오의 이반(Iban)족은 절구와 절굿공이를 사용해 매일 아침 쌀을 찧어 정미합니다. 사실 그 절구는 바닥에 일종의 장치가 있어 악기가 되기도 하는데, 그들에게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생활의 구심력이 됩니다. 벼의 신도 그 소리를 기뻐하며 구름이나 빗물이 되어 다시 논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쌀을 먹는 것인지 쌀에 먹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그러한 시작도 끝도 없는 세계는 또한 순환의 세계이기도 해서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정미(精米) 소리라는 것이지요. 거기에 사람들과 그 하루하루의 삶이 있습니다. -145쪽 이와타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즐겨 그렸습니다. 수묵화풍의 감귤이 다섯 개 그려진 그림이 나오는데요, 보통 여백은 그림의 하얀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와타는 그림에서 감귤을 오려내면 뻥 뚫린 구멍이 생기고, 그 잘려나간 부분 이외는 전부 여백이라고 합니다. 하얀 부분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누구라도 평면에서 감귤과 그 옆의 공간을 이항적으로 파악한 평면적 시각에서 하얀 부분을 여백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것을 포섭하는 삼차원의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도 감귤이 아닌 부분, 즉 여백이 있다. 전부 연속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게 참 재미있는 사례 같아요. -153~154쪽 애니미즘이란 자신과 자신의 주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를 항상 열어두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물과 생명에 주의를 기울이면 사물과 생명 그리고 세계로부터의 작용에 응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한다. “거대한 ‘타력’을 느끼면서 ‘자력’을 잊지 않는 것, 이렇듯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사상으로서 ‘타력’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여기서 말하는 애니미즘이다. -185~186쪽 이항대립들 사이의 이러한 조합 조작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20세기 후반 인류학계와 철학계를 휩쓴 포스트모던 논의가 어떠했는지를 상기해보면 역으로 한층 더 명확해질 것이다. 서양적 주체와 그 문명, 그와 대비된 외부적 타자라는 이원론적 가치관을 상대화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주창되었는데, 이것은 이미 복수의 이항대립—‘주체/대상’, ‘안/밖’(피포섭과 포섭)—이 무분별하게 결부되는 양상을 보였다. -222쪽 [포스트모던의 상대주의는] 복수의 이항대립 조작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빗나간 서양문명 비판이 행해졌고, 비서양의 문명적 뿌리를 가진 우리까지 그러한 시선에서 서양문명의 상대화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어서 우리 스스로 문명의 독자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225쪽 애니미즘 사상이란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응답이며 부름이기도 한, 표현과 함께 경험되는 다양한 정념과 진배없다. -248쪽 통일된 주체를 획득하기 위해 ‘주체/대상’의 이원론에서 끝까지 대상을 부정하려는 것 혹은 ‘이마고’의 매혹에 끝없이 유인되는 것은 애니미즘의 세계관으로 보면 속임수에 속아서 포획되는 사냥감의 심성이다. 즉, 근대인이라는 의미에서 주체적이고자 하는 것은 유카기르족에서는 오히려 동물인 것, 포획물인 것, 그저 고기인 것이다. -256쪽 결국 나 자신이 삼분법으로 사고하게 된 것은 인류가 정말로 보편적으로 사고해온 문제의 가장 근저에 있는 것은 세계의 다양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지역에는 한정된 하나의 생활방식이 있고, 잠시 잠깐이라도 그것과 모순되지 않는 형태로 풍부한 다양성이 있다는 것. 이것이 인류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애니미즘의 근저에 있는 사고방식이 아닐까요? -282쪽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최초의 근본적인 이원론, 즉 하나와 여럿의 이항대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느 한쪽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양극이 양극을 서로 포섭하는 모델을 생각해야 합니다. -284~285쪽 차례 들어가며 1장 애니미즘, 무한의 왕복 순환과 붕괴하는 벽 2장 삼분법, 선, 애니미즘 3장 대담Ⅰ 4장 타력론의 애니미즘 5장 애니미즘 원론—‘상의성’과 정념의 철학 6장 대담Ⅱ 나오며 역자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보도자료 파일
-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 | 포도밭출판사
2016. 11. 21 / 145×210mm / 284쪽 / 16,000원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 끝나지 않은 프랑스 현대사상의 모험 지은이: 오카모토 유이치로 옮긴이: 차은정 보도자료 대담한 기획, 최고의 프랑스 현대사상 통사 이 책은 20세기 세계 사상사를 주도한 프랑스 현대사상가들의 이론을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읽도록 안내한다. 레비스트로스에서 라캉, 바르트,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 가타리, 데리다까지, 나아가 장뤽 낭시, 자크 랑시에르, 베르나르 스티글레르까지, 프랑스 주요 사상가들의 이론을 섭렵해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은 누구인가’, ‘사회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같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데 탁월한 길잡이 역할이 되어준다. 이 책은 매우 드물게도 프랑스 현대사상을 통사(通史)로 해설하고 있어서 너른 시야에서 사상의 궤적을 명쾌하게 조감하도록 하는 장점을 가졌다. 일본에서 출간 당시에 “프랑스 현대사상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한 권” “깊은 학식이 뒷받침된 비범한 책” “새로운 시점에서 프랑스 현대사상을 재고하는 역작”이라는 등의 높은 평가를 받은 화제작이다. 이 책은 매우 흥미롭다가도 넌센스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어렵고 모호한 내용들 탓에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프랑스 현대사상을, 맥락과 의미를 짚는 해설을 통해 명쾌하게 이해시키고, 그로부터 근대를 넘어선 포스트근대를 가늠해보도록 이끌어간다. ‘근대’의 문제에 정면 도전한 프랑스 현대사상가들, 이들의 끝나지 않은 모험 레비스트로스, 라캉, 바르트,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 가타리, 데리다 … 한때 이 이름 중 하나라도 언급하지 않고서는 지식인 세계에서 폼(?)을 잡기 어렵던 때가 있었다. 그만큼 프랑스 현대사상의 영향력과 입지는 대단했다. 하지만 프랑스 사상의 주역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두껍고 난해한 철학서를 들춰보는 독서 인구도 줄어들면서 이 이름들이 언급되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소위 ‘위대한 사상의 시대’를 이끌던 프랑스 현대사상은 이제 관심 밖으로 폐기되고 만 것인가? 이 책의 저자 오카모토 유이치로는 책의 서두에서 이런 의문을 던진다. “21세기에 접어든 후 데리다와 레비스트로스가 사망하며 프랑스 현대사상도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지금 왜 프랑스 현대사상사를 써야 하는가? 프랑스 현대사상은 그 역할을 끝냈고 이미 현실성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저자는 이내 의문을 반박하며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 현대사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그 의미가 충분히 이해되지도 않았다. 프랑스 현대사상가들이 질문하고 해명하고자 한 문제는 여전히 현대세계의 중심문제로 자리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프랑스 현대사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파고들며 현대세계의 중심문제를 사상의 무대로 끌고나온다. 프랑스 현대사상 전체를 ‘근대를 비판하며 근대를 넘으려 한 도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랑스 현대사상 전체를 재고한다. 한편 앞서의 지도적 사상가들이 자신의 이론을 마무리 짓고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대부분 한창 이론을 개진하던 중에 떠났기 때문에 계승 작업의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사상가들의 이론이 어느 지점에서 멈춰버렸는지를 꼼꼼히 짚어나간다. 나아가 ‘기호적·언어론적 전회(轉回)’로부터 시작된 프랑스 현대사상이 지금은 ‘기술적·미디어론적 전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지적하며 새로이 전개되는 사상의 흐름으로서 ‘미디올로지’를 소개하고 있다. ‘68년 5월 혁명’ ‘솔제니친 사건’ ‘소칼 사건’ … 사상이 깃든 시대, 시대가 깃든 사상을 읽는다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는 사상 및 철학 이론에 대한 해설서에 그치지 않고 사상이 전개되던 당대의 시대적 맥락까지 상세히 소개한다. 1968년 봄부터 시작해 5월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68년 5월 혁명’과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가 발표되고서 벌어진 유럽 사회의 동요, 그리고 뉴욕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앨런 데이비드 소칼이 벌인 지적 사기를 일컫는 ‘소칼 사건’의 충격 등의 면면히 소개된다. 사상이 시대에 깃들고, 시대에 사상이 깃든다는 관점 하에서 사상과 시대의 맥락을 별개로 떨어뜨리지 않고 하나로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덕분에 저자의 다음과 같은 관찰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 철학 특유의 비유적이고 모호한 언어의 남발, 즉 ‘프랑스 철학은 알고 보면 죄다 말장난 아니냐’는 식의 의문을 낳는 언어에 대해 저자는 이러한 설명을 내놓는다. 프랑스 사상계가 한편으로는 매력이고 한편으로는 반발을 일으키는 특유의 ‘에크리튀르’를 고수하는 까닭은 분석적인 영미 철학과 아카데믹한 독일 철학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전략”(264쪽)이라는 것이다. 갈수록 혼돈이 예고되는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철학적 작업, 도래할 사회를 가늠하기 위한 길잡이로서의 사상사 오카모토 유이치로는 『포스트모던의 사상적 근거: 9·11과 관리사회』를 통해 들뢰즈, 푸코, 데리다의 이론을 통해 현대의 관리사회론을 논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고, 『헤겔과 현대사상의 임계』를 통해서는 ‘매우 독특하고 자극적인 헤겔론을 제시했다’고 상찬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오랫동안 강단에서 영미철학, 독일철학, 프랑스철학 등을 두루 가르친 이력을 바탕으로 현대 철학자들의 다양한 이론적 조류를 전 세계의 사상사적 맥락에 위치시키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깊은 사유를 펼쳐왔다. 갈수록 혼돈이 예고되는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철학적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최근에 펴낸 『지금 세계의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いま世界の哲学者が考えていること)』이 현재 일본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사상 및 철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도 그러한 시대적 요구의 방증이 아닐까 싶다. 차례 시작하며 프롤로그_ 프랑스 현대사상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장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1 구조주의는 어떻게 성립되었나 2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3 구조주의의 범위 2장 구조주의적 사상가들의 흥망_ 라캉, 바르트, 알튀세르 1 프로이트로의 회귀와 구조주의_ 라캉 2 현대의 신화와 텍스트 이론_ 바르트 3 마르크스주의의 구조론적 전회_ 알튀세르 3장 구조주의에서 포스트구조주의로_ 푸코 1 소외론에서 서양 근대이성 비판으로 2 구조 없는 구조주의 3 권력론의 아포리아와 주체·윤리로의 회귀 4장 인간주의와 구조주의의 너머로_ 들뢰즈·가타리 1 ‘안티 오이디푸스적 삶의 방식’ 선언 2 욕망에서 리좀으로 3 관리사회론의 충격 5장 탈구축과 포스트구조주의의 전략_ 데리다 1 탈구축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2 탈구축의 전회와 우편 모델 3 탈구축의 정치화 6장 포스트구조주의 이후의 사상 1 프랑스에서 ‘프랑스 이론’이 퇴조하다 2 정치사상의 재구축을 향하여 3 포스트 ‘포트스구조주의’와 미디어론의 구상 에필로그_ ‘프랑스 현대사상’은 끝난 것인가 끝내며 옮긴이의 말_ 근대 비판의 사상을 통해 근대를 넘어서다 찾아보기 책 속에서 이 책은 프랑스 현대사상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칙적으로 각각의 사상 전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질문하고 나아가 각각의 사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제시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이나 반론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충분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단순한 소개로는 사상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석과 평가가 불가피하며 이것을 뺀 객관적인 기술은 불가능할 것이다. (…) 이 책의 특징은 각각의 사상을 이른바 외부에서 조망하려는 태도 속에 상대화한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각각의 사상가(예를 들어 레비스트로스, 푸코, 데리다 등)에 대한 책은 대체로 그 사상가를 내부에서(즉 그 사상가에 공감하면서) 서술해왔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사상사이면서도 그 누구의 사상에 관여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철저히 외부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6쪽) ‘프랑스 현대사상’이라는 것은 구조주의에서 시작해 포스트구조주의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전개를 포함한다. 이때 공통의 지표가 되는 것은 ‘근대를 다시 묻고 그것과는 다른 가능성을 구상하는 사상’이다. ‘현대사상’이라는 것은 ‘근대 비판의 사상’으로 존재해왔다. ‘프랑스 현대사상’가들은 각각의 연구영역에 따라 다양한 논의를 전개해왔는데, 근대 비판의 사상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258~259쪽) 들뢰즈·가타리에 따르면, 철학의 작업은 개념을 창조하는 것이다. 즉 언제나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것이 철학이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의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칸트의 ‘비판’, 헤겔의 ‘정신’ 등은 그러한 새로운 개념의 창조라고 부를 수 있다. (…) 들뢰즈·가타리가 개념(콘셉트)이라고 부른 것을 여기서는 ‘사상의 렌즈’라 부르기로 한다. 새롭게 창조된 개념에 의해 사고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안경’을 착용함으로써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사상가들은 ‘사상의 렌즈’를 창조하고 ‘이것을 통해 세상을 보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고 말한다. 프랑스 현대사상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발상(콘셉트)의 렌즈를 만들어냈다. 각각의 사상가들은 각각의 독특한 ‘사상의 안경’을 창조하여 그것을 착용해서 세상을 보라고 제창한다. (261쪽) 1960년대 이후 프랑스의 지식계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를 필두로 새로운 지식의 거대한 흐름이 창출되었다. 이 흐름은 라캉, 바르트, 푸코, 들뢰즈, 알튀세르, 데리다를 거쳐 1980년대까지 유럽사회에서 지식의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한국사회에 이 흐름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며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그런데 그 유입 과정을 살펴보면 지식의 계보를 밟아나가기보다 그 시대적 맥락이 사상된 채 개개의 이론을 명제화하는 경향이 강했다. (…) 1990년대 초반 대학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이 차지한 위상이 그러했고 2000년대 초반 ‘노마디즘’으로 ‘각색’되어 지식계에 회자된 들뢰즈의 이론에 대한 인식이 그러했다. 이 속에서 우리의 질문은 왜 그들이 그러한 이론을 주장했는가에 있지 않았고 어떻게 그 이론을 한국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 현실에 대한 사유가 현실과 이론의 관계에 대한 사유로 변질된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273~274쪽) 지은이 오카모토 유이치로 岡本裕一朗 1954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1984년 규슈 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규슈 대학교 문학부 조교수를 거쳐, 현재 타마가와 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철학과 윤리학이다. 지은 책으로 『포스트모던의 사상적 근거』, 『헤겔과 현대사상의 임계』, 『12살 이후의 현대사상』, 『네오프래그머티즘이란 무엇인가』, 『사고체험』, 『현대 철학 로드맵』, 『지금 세계의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 등이 있다. 옮긴이 차은정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규슈 대학교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 대학교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숲은 어떻게 생각하는가』(근간), 『지구화 시대의 문화정체성』(공역)이 있다. 현재 ‘식민지 이후의 식민지’를 주제로 역사의식과 신화세계를 연구하며, 서강대학교,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강의한다.
- 라인스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38-0 (93380) 출간일: 2024년 3월 14일 정가: 23,000원 제본: 무선 쪽수: 368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 > 문화연구/문화이론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생태/환경 > 생태/환경 일반 라인스 : 선의 인류학 지은이: 팀 잉골드 옮긴이: 김지혜 시작도 끝도 없으며,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선(line)에 대한 인류학 탐구 막다른 곳 너머 ‘더 먼 곳’을 향해 열리는 선의 여정 학제, 문화,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대한 책 심오하고 창조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선 인류학의 시작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모두 선을 따른다는 점이다. 『라인스』는 이처럼 일상생활 속, 역사 속, 세계 속 어디든 존재하는 선을 탐구한다. 심오하고 창조적인 관점을 통해 과감하게 사유하는 팀 잉골드는 이 책을 시작으로 ‘선 인류학’을 전개해나간다. 그는 열린 길을 따르며 움직임 속에서 성장해나가는 행로(wayfaring) 방식을 매혹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은 학문 세계에 몰두하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음악가와 화가, 서예가와 장인,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 에게 새로운 길을 엮는 매듭이자 또 다른 길을 향해 열리는 고리가 될 것이다. 선을 따라 이어지는, 끝도 시작도 없는 이야기로서의 세계가 펼쳐진다.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모두 선을 따른다는 점이다 『라인스』(Lines)는 영국의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2007년에 출간한 그의 대표작이다. 1948년생인 팀 잉골드는 1970년대부터 연구 활동을 했는데, 2007년 환갑에 이르러 그동안의 연구 주제들과 자신의 화두를 집약해 『라인스』를 출간하면서 마침내 ‘선 인류학’의 시작을 알렸다. 잉골드는 『라인스』 출간을 통해 자신이 ‘인류학과 결별하는 것이 아닌가’ 되묻고는 이 시점부터 자신이 비로소 선을 연구하는 사람, 즉 선학자(linealogist)가 되었다고 말한다. 잉골드는 『라인스』 출간 이후 『산다는 것』(Being Alive, 2011), 『만들기』(Making, 2013),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The Life of Lines, 2015), 『조응』(Correspondences, 2020) 등을 잇따라 출간하는데, 실제 『라인스』 출간 이후 그의 논의들은 모두 선에 대한 고찰 속에서 펼쳐진다. 『라인스』는 ‘선 인류학’이라는 창조적인 흐름의 시작에 있는 기념적인 책으로서, 삶과 생명에 대한 심오한 관점을 제시하며 역사, 문화, 예술, 기술, 생태, 진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풍부한 고찰을 선보인다. 은유도, 이론의 대상도 아닌, 실제의 ‘선’을 탐구하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 『라인스』에서 탐구하는 선은 은유로 표현된 선이 아니며, 이론을 구성하는 대상으로서의 선도 아니다. 잉골드는 우리 일상 속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실제의 ‘선’을 탐구한다. 그래서 선이라는 낯선 주제는 처음에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이것이 정말 인류학의 연구 대상일 수 있을까? 선의 탐구가 사람과 사물에 대해, 역사적 시간과 일상생활에 대해 과연 무언가 말해줄 수 있을까? 잉골드는 세계를 동적인 만들기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때문에 사람과 사물에 대한 연구 역시 그것들을 독립된 존재로서 파악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되고, 그 연구는 그들을 구성하는 선을 따르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또한, 사람들의 삶의 내부에서 여정을 시작해 열린 길을 따르며 관계들 속에서 조응하며 만들어나가는 성장의 실천, 그 자체가 인류학이라 여긴다. 『라인스』에는 선을 따르며 나아가는 행로의 실천이 중요한 삶의 방식으로 제시되는데, 잉골드에게 이것은 인류학 실천이기도 하다. 『라인스』는 이러한 잉골드의 사유와 실천이 만들어낸 하나의 매듭과 같은 작품이다. 인류학자 마크 에버트는 『라인스』를 평가하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라인스』를 읽고 나면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처럼 우리가 매일 같이 수행하는 활동의 의미조차도 전적으로 새롭게 지각하게 된다. 나아가 “생명은 점에 가둬지지 않는다. 생명은 선을 따라 나아간다”는 말로 표현되는, ‘끝이 시작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방식에 눈을 뜨게 된다. 세계 속의 선을 알아차리고 따르는 경험은 ‘산다는 것’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 이에 잉골드는 주저함 없이 강조한다. “정말로 선은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고 있다”고. 행로의 구불구불한 선처럼 끝과 시작이 이어지는 여섯 장의 이야기 1장 언어·음악·표기법 1장에서 잉골드는 자신이 어떤 이유로 선을 연구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며 논의를 시작한다. 사실상 선과는 무관하게도, 처음 잉골드를 사로잡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말과 노래를 구별하게 됐는가”라는 질문. 과거에는 음악이 무엇보다도 ‘가사의 울려 퍼짐’이었고, 언어란 ‘말소리’로 이해되었던 것에 반해 오늘날에는 음악에서 가사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고, 언어란 이제 말소리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일종의 ‘의미 체계’가 되었다고 잉골드는 지적한다. 그리하여 이 변화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음악은 말이 없게 되고, 언어는 침묵하게 됐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언어의 침묵’이 발생한 이유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잉골드는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이행하던 시기의 변화들을 조사한다. 이때 잉골드는 언어의 침묵이 ‘쓰기’가 이해되는 방식의 변화, 즉 쓰기가 손으로 하는 기입으로 이해되다가 어느 시점부터 말의 언어구성 기술로 바뀌어 이해되기 시작한 변화와 관련 있음에 주목한다.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쓰기의 역사’를 살피는 과정에서는, 쓰기의 역사란 보다 폭넓게는 ‘표기법의 역사’에 포함된다는 점을 확인한다. 그리고 표기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을 때, 표기법은 다름 아니라 선으로 구성됨을 깨닫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잉골드는 선의 생산과 의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2장 자취·실·표면 2장에서는 선과 선이 그려지는 표면의 관계를 살펴본다. 선의 탐구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선이 새겨지는 표면과의 관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선의 역사를 살피려면 선과 표면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를 살펴야 한다. 때문에 2장에서는 표면이 탐구 대상이 된다. 잉골드는 표면 탐구에 앞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선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선의 주요한 두 가지 분류를 제시한다. 바로 ‘실’과 ‘자취’다. 실과 자취는 표면을 만들기도 하고 표면을 없애기도 하면서 움직임과 성장의 선을 만들어나간다. 3장 위로·가로질러·따라서 3장에서는 선과 표면의 관계가 변형된 결과들을 살펴본다. 3장에는 비판적 논의가 포함된다. 무엇에 대한 비판일까. ‘위로’의 움직임과 ‘가로질러’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잉골드는 먼저 ‘산책’과 ‘조립체’ 사이의 구별을 사례로 제시한다. 산책은 몸짓의 자취인 반면 조립체는 점대점연결장치로 만든 인공물이다. 점대점연결장치 방식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형시키고, 환경을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점거하는 곳으로 지각하게 한다. 잉골드가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존재들이 땅에 거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양상”이라 생각하는 방식은 바로 ‘따르는’ 움직임의 방식이며, 잉골드는 이를 행로(wayfaring)라고 표현한다. 3장에서 잉골드는 교점을 직선으로 잇는 연결망 방식과 운송의 방식을 비판하면서, 그물망이라는 얽힘의 구역에서 선을 따르며 살아가는 존재 방식을 이야기한다. 잉골드에 따르면, 존재들은 움직임과 성장이 통합된 행로의 방식을 실천함으로써 세계에 거주한다. 4장 계보의 선 4장에서 살펴보는 것은 ‘계보의 선’이다. 계보의 선이라는 주제에서 즉각 떠오르는 사례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등장하는 도식, 즉 생명 진화를 묘사한 계보도이다. 잉골드는 찰스 다윈이 이 도식을 그리면서 ‘선을 따라가는 삶’이 아닌 ‘각각의 점 안에 있는 삶’을 그렸다고 말한다. 계보도를 구성하는 ‘점선’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점선이 자명하게 드러내는 바, 이 계보의 선은 생명선도 아니고 인간에 대한 줄거리조차 아니다. 잉골드는 이처럼 선의 관점을 통해 역사 속에서 ‘진화’ 개념이 어떻게 다뤄져왔는지를 검토한다. 5장 그리기·쓰기·캘리그래피 5장에서는 다시 ‘쓰기’ 주제로 돌아간다. 잉골드는 그리기와 쓰기에서의 몸짓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쓰기가 본래 의미대로 기입의 실천으로 이해되는 한 그리기와 쓰기 사이에 엄밀한 구분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리기와 쓰기를 다른 것으로 이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고찰하면서 잉골드는 (앞서 논의한 말과 노래의 분리를 포함한) 이 ‘현대적인 분리’를 추동하는 이분법, 즉 기술과 예술 사이의 이분법을 지적한다. 6장 선이 직선이 되는 법 6장에서는 ‘선의 으스스한 유령’, 즉 직선을 고찰한다. 선이 반드시 곧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어떻게, 우리의 인식 속에서 선은 반드시 직선이어야만 하는 것이 되었을까. 잉골드는 직선이 근대성의 도상이 되었다고 말하며, 직선의 역사적인 근원을 쫓는다. 잉골드는 직선을 수수께끼라고 표현한다. 직선은 표면을 지배하지만 그 무엇도 연결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종류의 움직임이나 몸짓도 체현하지 않는다. 더불어 근대성의 확실성이 의심받는 상황에 처하면 한때 점과 점을 잇던 직선은 조각나버린다. “선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 속에서 다시금 세계를 엮어나가는 몸짓” 책의 말미에는 『라인스』와 선 인류학의 맥락과 의미를 상세히 해설하는 역자 후기를 실었다. 이 ‘초대장’ 같은 글에서 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별히 내가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성장’에 대한 것이다. 개발주의와 자본주의로 점철된 세계에서 ‘성장’의 의미는 고도의 테크노사이언스와 자본화, 규모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이러한 파국적인 상황에 저항하는 많은 이들은 ‘탈성장(degrowth)’이라는 탈출구를 추구하곤 한다. 그 개념은 나름대로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남기지만 나는 잉골드의 시도가 훨씬 더 대담하다고 생각한다. 잉골드는 우리의 ‘성장’이 무엇인지 다시금 사유하고, 결정론적인 성장이 결코 성장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성장의 욕구와 욕망을 긍정하며 재전유하면서 우리는 삶과 세계를 다시 직조하는 내파의 가능성도 확인하게 된다. […] 선은 오직 다시금 찾아지고 따라가질 때 새로운 세계를 열게 만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선을 통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그 ‘새로운’ 길은 ‘따라가는 것’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비어 있는 공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 속에서 다시금 세계를 엮어나가는 몸짓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도는 세계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현대의 경향과는 사뭇 다르다. 행로의 여정은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의미 있다.” 지은이 소개 팀 잉골드 Tim Ingold 영국의 인류학자. 1948년 출생. 애버딘 대학교 사회인류학과 명예교수이며 영국학사원과 에딘버러 왕립학회 회원이다. 1970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사회인류학 학사학위를, 197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연구를 위해 핀란드 북동부의 스콜트 사미족을 현장 조사하며 스콜트 사미족 공동체의 생태 적응, 사회 조직 및 민족 정치를 연구했다. 이후 헬싱키 대학교를 거쳐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멘체스터 대학교에서는 북극 북부 민족 연구와 더불어 순록 무리와 사냥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갔다. 이 연구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 인간-동물 상호작용의 개념, 수렵 채집 사회와 목축 사회의 비교 인류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후 잉골드는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인류학, 생물학, 역사학 분야에서 ‘진화’ 개념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연구했으며,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언어와 기술의 연관성에 관심을 가지고 기술과 예술의 인류학을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1988년 이후로 잉골드는 생태인류학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는 한편, 지각 체계에 대한 제임스 깁슨의 연구에 영향을 받아 인류학과 심리학에 생태학적 접근법을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환경 지각과 숙련된 실천이라는 주제를 연결하는 연구를 통해 2000년에 『환경 지각』(The Perception of The Environment)을 출간했다. 2002년부터 잉골드는 환경 지각에 관한 초기 연구에서 비롯한 세 가지 주제, 즉 첫째로는 보행자 움직임의 역동성, 둘째로는 실천의 창의성, 셋째로는 글쓰기의 선형성을 주제로 탐구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삶과 경험에서 움직임, 지식, 기술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했다. 이 연구로 2007년에 『라인스』(Lines)를 출간했다. 이후 인류학, 고고학, 예술, 건축학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인간과 인간이 거주하는 환경의 관계를 탐구하여 2013년에 『만들기』(Making)를 출간했다. 이외에도 서른 권 이상의 인류학 저서를 출간했다. 2018년 대학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독립 학자로서 계속 연구하고 집필하고 있다. 옮긴이 소개 김지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해양쓰레기와 함께 세계 짓기: 지구적 해양보전에서 나타나는 존재들의 연합과 분열」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잡지 『Littor』에 「해양쓰레기 탐사기」(2022)를 연재했고,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2022), 『비재현적 방법론: 연구를 재상상하기』(2023)를 공역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사 이 책은 숲길에서 족보까지, 글쓰기 행위에서 패턴 있는 실내 장식까지, ‘선’이라는 이토록 간단한 낱말로 엮은 무수한 의미에 대해 심오하고 풍부하며 매혹적인 사색을 제공한다. 학제, 문화,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대한 책. 이 책을 읽는다면 컴퓨터 사용이나 여행을 다녀오는 행위의 의미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 스티븐 로즈(Steven Rose), 오픈 유니버시티 신경과학과 명예교수 팀 잉골드가 제시하는 매혹적인 미로를 통해 길을 따라가기 전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선이 존재하는지, 우리가 그 선들을 구분하지 않아 얼마나 잘못 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 메리 미즐리(Mary Midgley), 뉴캐슬 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 행려가 세계를 여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독자들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던 때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 마크 에버트(Mark Ebert), 서스캐처원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학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서 “그 위에 글을 조금 쓰겠다”던 저자의 야망은 매혹적으로 달성됐다. — 스티븐 풀(Steven Poole), 「가디언」 기자 본문 중에서 이 학문[인류학]은 존재가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도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지닌 비교학이며, 현재 상태의 존재로는 결코 안주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비판학이다. -22쪽 걷기, 직조하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노래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이 모든 것들이 이러저러한 선을 따라 진행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목적은 선의 비교 인류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의 기초를 세우는 데 있다. 내가 아는 한, 이러한 종류의 것은 시도된 적이 없었다. -23쪽 행려(wayfarer)는 끊임없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는 그의 움직임이다. 위에서 보았던 예시에서 이누이트족의 경우처럼 행려는 세계 속에서 여행의 선으로 예시된다. -159쪽 나는 행로가 인간과 비인간들을 모두 포함하여 살아 있는 존재들이 땅에 거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양상이라고 생각한다. -170쪽 거주민은 세계가 지속적으로 탄생하는 바로 그 과정 속에서, 그 안으로부터 탄생에 참여하는 사람이자, 삶의 흔적을 남기며 세계의 무늬와 질감에 기여하는 사람이다. -170쪽 길 위에 있는 행려는 언제나 어디엔가 있지만, 그 모든 ‘어딘가’는 다른 어딘가로 가는 도중에 있다. 거주하는 세계는 이러한 길들로 이루어진 얽힌 모양의 그물망이며, 삶이 그것들을 따라 나아가면서 지속적으로 직조된다. -174쪽 거주민의 지식은 한마디로 말하면, 따라가면서 통합된다. -183쪽 이야기로 말해지는 것들은 말하자면 존재한다기보다는 발생한다. 즉 각각은 계속 진행해가는 활동의 순간이다. 한마디로 이것들은 객체가 아니라 이야깃거리이다. -185쪽 나는 작가가 걷기와 상응하는 것을 수행하길 그만두었을 때 낱말이 조각으로 환원되고 결과적으로 파편화된다고 주장한다. -191~192쪽 정주민은 장소를 점령한다. 반면 유목민은 점령에 실패한다. 하지만 행려는 실패한 점령자나 주저하는 점령자가 아니라 성공한 거주자이다. 그들은 사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때때로 상당히 먼 거리를 폭넓게 여행하고, 이 움직임을 통해 그들이 지나간 각 장소의 계속되는 형성에 기여한다. 요컨대 행로는 장소가 없는 것도 장소에 묶인 것도 아니라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205쪽 삶은 가두어지지 않고, 오히려 관계들의 무수한 선을 따라 세계 사이로 길을 누비듯이 나아간다. -209쪽 요컨대 생명의 생태학은 실과 자취의 생태학이지 교점과 연결장치의 생태학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의 탐구 주제는 유기체와 그들의 외부 환경 사이의 관계들이 아니라 그들 각자가 걸려든 삶의 방식을 따라가는 관계들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간추리자면 생태학은 선으로서의 삶에 대한 학문이다. -209쪽 생명은 점에 가둬지지 않는다. 생명은 선을 따라 나아간다. -213쪽 행로의 선은 거주의 실천과 그것이 수반하는 우회적인 움직임을 통해 성취되는 것으로 장소적(topian)이다. 반면에 진보적인 전진이라는 거대 서사에 의해 추동된 근대성의 직선은 무장소적(utopian)이며, 탈근대성의 파편화된 선은 탈장소적(distopian)이다. -330쪽 정말로 선은, 삶처럼 끝이 없다. 삶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길을 따라 일어나는 그 모든 흥미로운 일들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이 갈 수 있는 더 먼 곳이 있기 때문이다. -333쪽 차례 감사의 글 라우틀리지 클래식 에디션 서문 들어가며 1장 언어·음악·표기법 2장 자취·실·표면 3장 위로·가로질러·따라서 4장 계보의 선 5장 그리기·쓰기·캘리그래피 6장 선이 직선이 되는 법 역자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보도자료 다운로드
- 보통의 행복 | 포도밭출판사
2018-04-23 출간 | 원제 愛と欲望の雜談 | 정가 12,000원 | 156쪽 | 128*188mm | ISBN 9791188501021 보통의 행복 지은이: 아마미야 마미, 기시 마사히코 옮긴이: 나희영 책 소개 세상이 말하는 '여성성'과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고 열등감에 빠지는 모습을 묘사한 자전적 에세이 <여자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여>로 여성 독자들의 전폭적인 공감과 사회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가 아마미야 마미.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으로 사회적 주변인들의 삶을 세심히 응시하며 통상적인 사회학 방법론과 다른 방식의 새로운 사회학 글쓰기를 선보이며 2016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을 수상한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 두 사람은 2015년 4월 어느 날 지하철역 개찰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딱히 정해진 주제도 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우연처럼 시작된 둘의 대화는 오늘날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주제인 '사랑과 욕망'에 대한 것으로 모아진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은 건가? 이제는 욕망을 갖지 않는 것이 시대의 흐름인가? 타인과 마음을 나누기가 무서운 '혐오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사랑은, 연애는 정말 감정의 사치일까? 긴 대화를 나누면서 작가와 사회학자는 서서히 알아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이어지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기 자신으로서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도자료 작가와 사회학자가 이야기하는 혐오 시대의 사랑과 연애 이십 대를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를 보면 “한 번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고 답한 이가 20%에 이른다고 한다. 비혼율이 급상승한다는 통계 결과도 있다. 이를 보면 ‘사랑과 연애’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말이 사실인 듯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일까. 우리는 여전히 타자와의 만남을 원하지만, 세상이 타자와 만나기가 무서운 사회가 되어가는 탓은 아닐까. 아마미야 저는 고민 상담 연재를 두 개 하고 있는데요, 둘 다 “연애를 할 수 없다”는 고민이 엄청 많아요. 기시 오네트(일본에서 회원 수가 가장 많은 온라인 결혼중개업체)에서 발표한 ‘제20회 새내기 성년 의식 조사’에 의하면, 새내기 성년의 7할이 ‘교제 상대가 없다’, 5할이 ‘교제 경험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해요. 가장 재밌는 게 ‘한 번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2할 정도였다는 거예요. 혈기왕성한 시기인 이십 대 얘기예요. 기본적으로 어느 조사를 봐도 성행동이나 연애행동 자체가 점점 줄고 있어요. 또는 몇 번이나 사귄 경험이 있는 사람과 한 번도 사귄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갈리고 있어요. - 본문 43~44쪽 타자와 만나기 무서운 사회, 연애는 할 수 있는 사람만 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랑과 연애의 모습, 욕망의 풍경도 달라진다. 저자들은 1990년대만 해도 사회규범에서 벗어나는 일탈이 멋진 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성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고 약물복용담을 자랑하는 것이 멋지게 보이던 시대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섹스에 탐닉하는 것은 물론, 술을 마시는 것조차 촌스럽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뭔가에 도취되는 것을 멋있게 여기던 저때와 달리 지금은 특별한 체험에 휘둘리는 사람은 촌스러운 걸로 치부된다. 시대에 따라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욕망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다. 특히 지금 시대에 느껴지는 큰 특징 하나는 타자에 대한 배외주의, 혐오 감정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아마미야 꼭 연애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타인과 관계 맺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친구가 생기지 않는 거죠. 다들 사람 사귀는 게 어렵다고 느끼는 듯해요. 기시 모두들 사람이 두려운 거겠죠. 두렵기 때문에 만나지 못해요. (…) 타자가 두렵기 때문에 혐오 발언 같은 배외주의적인 일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공격성의 이면에는 공포감이 있는 것이죠. 아마미야 틀림없이 뭔가를 빼앗기거나 손해를 입거나 끔찍한 일을 당할 거라는 느낌 때문에 공격적이 되는 거겠죠. 기시 (…) 전반적으로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어요. 그래서 뭐랄까, 극단적이에요. 타자가 두려워서 관계를 맺을 수 없다거나 (…) 주변 사람들을 보면 많이들 그래요. 모두 이미 친구나 연인을 만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타자가 두려운 사회에 살고 있어요. - 본문 55~58쪽 연애는 꼭 해야 하나? 바람은 피면 안 되나? 도저히 타자와 마음을 나누기가 무서운 사회에서는 연애 감정 역시 꺼리게 된다. 실제로 그런 경향이 짙어지는 것이 오늘날의 풍조다. 하지만 연애가 없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없을까? 사랑이 옅어지면서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능력도 같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시 만나서 연애의 계기를 만드는 걸 이른바 ‘소셜 스킬’이라 하잖아요? 그건 말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요. 신체를 이용하면 폭력이 되고요. 단순히 “좋아해”라며 내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끔 만들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전술이 필요하거든요. 상대가 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건데, 이걸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죠. 실은 우리도 그렇고 이 사회가 언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 거예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해요. 아마미야 진정한 의미에서 연애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거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기시 공공연하게 개인적인 의사소통들은 하고 있지만 어딘가 서툰 점들이 있는 거죠. - 본문 32~33쪽 우리는 왜 만나고 사랑하고 혐오할까 보통의 행복, 그리고 생의 가능성 혐오 분위기가 높은 사회, 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격차 사회에서는 인간관계도 연애도 불평등하게 조직된다. 이른바 ‘연애 격차 사회’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들은 ‘보통의 행복을 얻으면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한다. ‘보통의 행복’이란 평범한 일상을 잘 가꾸는 삶을 뜻하는 말인 한편, 우리가 경계할 것들을 말하고 있다. 꼭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항상 대단해야 한다는 강박, 누구보다 압도적이어야 한다는 경쟁심 들을 비우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도 행복할 것. 이렇게 자신이 머물 ‘보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 존재의 자리를 긍지와 자부심으로 채워나가는 것. 이것이 저자들이 권하는 행복의 방향이며 생의 가능성이다. 기시 (…) 끝까지 파고들면 우리들의 욕망은 굉장히 뻔해요. 엄청난 집착을 가진 사람만 욕망이 있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도 욕망이 있는데, 사실 의외로 온건해요. 특별한 미인이 되지 않아도, 그렇게 부자가 되지 않아도 좋고요. 평범하고 아담한 곳에서 그럭저럭 살아나가기를 바라죠. 많은 사람이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욕망도 평균치에 가깝게 온건해지는 거죠. 그래서 보통의 행복을 얻는다면,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 본문 22쪽 저자 소개 아마미야 마미 (雨宮まみ) 작가. 여성의 자의식, 연애, 성 등을 주제로 독자와 소통하는 많은 글을 발표했다. 2011년 출간한 《여자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여 女子をこじらせて》가 사회 전반에 큰 화제를 일으켰고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지은 책으로 《성실하게 살면 손해입니까? まじめに生きるって損ですか?》 《방에서 느긋한 생활 自信のない部屋へようこそ》 《계속 독신으로 살 생각이야? ずっと獨身でいるつもり?》 《여자여 총을 들어라 女の子よ銃を取れ》 등이 있다. 기시 마사히코 (岸政彦) 1967년생으로 사회학자다. 오사카시립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를 수료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류코쿠(龍谷)대학을 거쳐 2017년부터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주제는 전후 오키나와의 노동력 이동과 아이덴티티, 도시형 피차별 부락의 구조와 변용, 생활사 방법론 등이고, 에스니시티(ethnicity), 차별, 사회 조사 실습 등을 가르치고 있다. 오사카 번화가를 자주 어슬렁거리며 재즈와 동네 산책을 좋아한다. 『동화와 타자화-전후 오키나와의 본토 취직자들(同化と他者化─戰後沖繩の本土就職者たち)』,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보통의 행복(愛と欲望の雜談)』(대담집), 『처음 만나는 오키나와(はじめての沖繩)』 등을 썼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으로 2016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을 수상했고, 첫 소설 『비닐우산(ビニ-ル傘)』으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과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에 올랐다. 옮긴이 나희영 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했고, 현재 출판사에서 기획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차례 시작하며_ 아마미야 마미 첫 번째 만남_ 보통의 행복을 얻을 가능성 필연적인 상대와 우연히 만나고 싶다? 사람들이 탐내는 것을 나도 원한다 무분별한 욕망이 더 진실하다는 망상 ‘보통의 행복’을 바라는 시대 뿌리내리지 못하는 연애 웨딩드레스 입고 싶어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칭찬받고 싶다 “한 번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아주머니는 사회에 꼭 필요하다 개인의 능력에 맡겨도 괜찮을까? 불륜율이 결혼율을 떨어뜨린다? 힘든 경쟁과 개인의 고통 차별의 역전 현실과 문자 메시지의 간극 부정적인 마음 길들이기 기분을 분명히 전한다 사이에_ 기시 마사히코 두 번째 만남_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다는 것 ‘포엠 장례’는 용서해! 규슈에는 포옹 문화가 없다! “결혼하지 않아도 좋으니 아이만은 낳아” 딸이 즐겁게 지내는 게 못마땅한 부모 무라카미 하루키여도 어림없는 ‘대출’ 집짓기란 어떻게 살지를 선언하는 것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결혼 ‘결혼 안 한다’고 결정하면 실례일까? 알콩달콩한 결혼에 대한 동경 바람피워도 들키지 않으면 OK? 결국, 남자가 싫은 거죠? 내가 싫으니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다 몸이 목적이면 왜 안 돼? 담쟁이덩굴 같은 다리털까지 너무 좋아 연애도 목표를 내걸고 매진해야만 하나? 사회학이 싫어진 건 그래서일까? 관계가 깊을수록 쓸 말은 줄어든다 마치며_ 아마미야 마미 · 기시 마사히코
- 관계와 경계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15-1 (03300) 출간일: 2021년 1월 28일 정가: 15,000원 제본: 무선 쪽수: 260쪽 판형: 130×210mm 분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생태/환경 국내도서 > 자연과학 > 생명과학 국내도서 > 인문 > 인류학 관계와 경계 엮은이: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 지은이: 이동신, 김정미, 권헌익, 김산하, 최태규, 조윤주, 천명선, 이형주, 이항, 황주선, 김기흥, 박효민, 박선영, 이인식, 주윤정 코로나로 인한 불안과 위기는 인간만의 것일까 팬데믹 1년, 동물들은 어떠한 위기에 처해 있는가 인간과 동물이 안전하게 공존할 방법은 무엇인가 국내의 대표적인 학자와 전문가, 활동가가 모여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최신의 연구와 성찰을 나누다 국내에서 처음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딱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전 세계는 전례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이런 사태를 만든 가해자와 피해자는 누구인가? 인간의 취약성과 동물의 취약성은 어떻게 얽혀 있으며 인간보다 훨씬 전염병에 취약한 동물들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을까?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은 메르스, 구제역, 조류독감과 같은 인간-동물질병 방역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빚을 지고 있는가? 발생부터 대처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는 인간과 동물이 맺고 있는 관계와 촘촘히 얽혀 있다.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침범하고 동물체험카페에서 진귀한 야생동물들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는 사람들 한편에는 전염병의 원인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마구 살처분되는 동물들이 있다. 인간이 함부로 좁힌 거리와 함부로 넓힌 거리, 그 사이 생태적으로 올바른 공존의 거리는 얼마일까? 이 책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국내 학자, 전문가, 활동가 등이 한데 모여 이룬 성과이다. 인간-동물 관계 연구의 최신 논의와 성찰을 담았다. ‘거리’의 중요성 ‘거리두기’라는 말은 코로나와 함께 우리에게 찾아왔다. 거리두기라는 말은 대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일컫는다. ‘사람끼리 밀집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동물의 거리, 나아가 동물과 동물의 거리는 어떨까.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그 어느 때보다 신경 쓰는 지금, 우리는 사람과 동물 간의 거리, 동물과 동물 간의 거리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을까. 체험동물원이나 동물체험카페 같은 공간을 만들어 야생동물을 만지고 쓰다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가. 병에 걸리지 않을 도리가 없을 만큼 가축들을 밀집해 키우는 지금의 공장식 사육방식은 과연 지속가능한가. 이런 질문들에 응답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팬데믹은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사이’를 생각하다 인간-동물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사유하기 위해 영문학자 이동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고 제안한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이’를 고민하자는 말에는 ‘차이’에 집중하지 말자는 함의가 있다.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고민하기보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사유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을 차이 혹은 동질성으로 파악하고 위계화하는 논의틀은 이제 버려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동물의 ‘사이’를 고민하고 적당한 ‘거리’를 부여하는 실천이다. ‘인간중심주의’에 맞서다 만일 코로나19가 정말로 이전과 다른 ‘뉴노멀’ 시대를 가져온다면, 그 안엔 아마도 인간중심주의적인 현실과는 다른 현실을 만들라는 어려운 요구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15편의 글의 공통된 연구 주제는 ‘인간-동물 관계’이다. 인류학, 사회학, 수의학, 영문학 분야 연구자뿐 아니라 동물권 단체, 지역공동체, 동물원과 생태공원 등의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과 영역을 가진 필자들이 참여했다. 코로나 시대의 반려동물은 물론 동물원 동물, 야생동물과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부터, 가축과 인공육 그리고 해상양식동물에 대한 이야기, 인수공통감염병과 동물 관련법에 대한 이야기,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철학적 혹은 사회학적 고민이 담긴 이야기 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인간중심주의로 점철된 인간-동물 관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또 코로나로 현실이 급변하는 이 시기에 인간-동물 관계를 고민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이 되고 있다는 절박함을 공유한다.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논의가 직접적으로 동물을 접하는 영역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되기에,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에, 학제간 연구뿐만 아니라 학계와 현장의 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동물 경계에 대한 새로운 서사 코로나19로 ‘거리’가 중요해진 이 순간은 사람들끼리의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 그리고 동물과 동물 사이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이’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인간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바라볼 기회인 셈이다. 이 책의 1부 에는 ‘사이’를 얘기하는 네 편의 글을 모았다. 이동신은 「차이에서 사이로: 인간-동물 관계와 거리두기」 에서 포스트 코로나의 ‘포스트’라는 단어를 문제 삼으며, 섣부르게 미래로 나가기보다 현재의 인간-동물 관계를 ‘차이’가 아닌 ‘사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써 나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김정미는 「근거리 입양: 파랑새 ‘짹이’ 이야기」 에서 파랑새와 우연히 같이 살게 된 경험을 통해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고민하면서 ‘입양’이라는 말로 이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관계를 풀어 나가고 있다. 권헌익은 「원거리 입양: 코끼리 ‘마야’ 이야기」 에서 머나먼 거리를 두고도 동물과의 친밀한 사이를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원거리 입양을 제안한다. 권헌익은 제한적이고 고정된 친족 개념의 입양과 달리 유동적이면서 때로는 개방적인 입양 관습과 개념을 부족사회에서 찾으면서, 동물과도 유사한 입양 관계가 가능함을 이야기한다. 김산하는 「야생의 거리와 공존의 생태계」 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를 고민하기 전에 자연상태에 있는 동물들 사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이에서 확인되는 물리적이고 생태적인 거리두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자연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다시 야생성을 되찾도록 하는 ‘활생’이 중요하다. 인수공통감염병 상황에서 동물의 취약성 코로나19 팬데믹의 시작은 인간과 동물의 접점에 있었다. 그리고 팬데믹으로 위기를 겪는 것은 동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만을 걱정하고 인간만이 피해자인 듯 여기고 있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걸릴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동물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까? 이 접점에서 인간과 동물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어떤 변화를 시도해야 할까? 2부 에서는 인수공통감염병 팬데믹 상황에서 동물이 가진 취약성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를 정리했다. 최태규는 「팬데믹 상황의 동물원 동물들」 에서 야생동물이지만 인간이 만든 공간에 갇혀 있는 동물원 동물과 반려동물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누리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버려지고 잊히고 죽임을 당하는 유기 동물들의 상황을 살펴본다. 조윤주는 「팬데믹 상황의 보호소 동물들」 에서 확진된 보호자의 반려견과 반려묘에게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인된 이후 사람들에게 퍼졌던 공포와 그로 인한 사회 현상을 살펴본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보호소의 운영상태 악화와 자원봉사자 감소가 우려되었지만 뜻밖의 국면도 있었다. 집에 고립된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이 주는 위로와 유대감이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면서 오히려 유기동물 입양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이다.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틈을 동물이 메워 준 셈이다. 천명선은 「감염병 환자로서의 동물: 팬데믹 상황의 가축」 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수성이 있다고 알려진 개와 고양이, 동물원의 고양이과 동물, 농장의 밍크 등이 모두 사람으로부터 감염되었음에도 ‘환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동물은 병원체 그 자체로 여겨지거나,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인간에 대한 위험으로만 간주된다. 이형주는 「팬데믹 상황의 동물을 위한 법과 제도」 에서 인간 사회의 법과 제도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듯 동물을 위한 법과 제도 역시 이 취약성을 배려해야 함을 강조한다. 인간-동물의 질병에 대한 원헬스적 접근 이번 팬데믹의 중요한 책임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야생동물 서식지를 침범한 인간에게 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증가하게 되면서 종간 장벽을 넘어 바이러스가 퍼질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급속도로 확산된 세계화와 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감염병 확산에 더욱 취약한 조건으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에 이상적인 배양공간을 제공했다. 결국 코로나19는 단순히 인간의 질병도 동물의 질병도 아니다. 이것은 인간-동물의 접촉과 상호작용으로 일어난 질병으로 규정해야 하며 단순히 의학적·생물학적 문제로 국한할 수 없다. 인간-동물의 문제를 좀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다루려면 의학은 물론 수의학과 생태학 그리고 사회과학적인 접근이 결합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질병에 대한 포괄적 접근을 요구하는 흐름을 ‘원헬스 운동’이라 부르며, 이 운동은 지금까지 인간-동물로 분화되어 왔던 의학적 접근법을 광범위하게 통합할 것을 주장한다. 3부 에는 인간-동물의 관계에서 감염병의 지위를 고민하는 글 세 편을 실었다. 이항은 「팬데믹의 시작: 인간, 가축, 야생동물의 접점」 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인간-가축-야생동물이 조우하는 접점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이항은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인간-가축-야생동물의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특수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종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혼란은 물론 안보에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다. 황주선은 「질병생태학: 야생동물 유래 신종감염병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 에서 야생동물에서 유래하는 신종감염병에 대한 생태학적 이해를 제공한다. 황주선은 ‘질병생태학’이라는 분야의 소개를 통해 병원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연적이고 인위적인 얽힘 현상을 ‘생태’라고 규정한다. 질병생태학은 단순히 바이러스의 분자적 생물학적 단위로 질병을 파악하는 기존 생의학적 패러다임을 넘어 인간-가축-동물-생태환경까지 광범위한 요소들을 포괄하여 다룰 때 비로소 질병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기흥은 「한국 질병관리체계와 인간-동물질병의 공동구성」 에서 코로나19 방역정책을 고찰하며 한국 질병방역의 기본틀이 인간-가축-동물 질병의 주기적 발생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특히, 2000년 이후 발생한 인간(메르스, 사스)-가축(구제역, 조류독감)-동물(아프리카돼지열병) 질병의 방역경험이 현재 다른 서구국가들의 방역정책과 다른 특이한 대응방식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동물질병의 경험이 공동구성되는 과정이었다. 인간-동물 관계의 미래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인간과 동물의 삶에 전례 없는 영향을 끼치며 ‘포스트 코로나’ 담론이 전방위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터와 일상생활에서 어려움과 불편함을 겪고 있지만, 한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먼 미래에 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일들이 보다 빠르게 우리의 현실로 가능해지고 있거나, 현재 인류의 삶의 방식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4부 에서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앞으로의 인간-동물 관계에 어떤 가능성들이 열려 있을지, 혹은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을지 살펴본다. 박효민은 「육식의 미래와 인공육의 이슈」 에서 공장제 축산업에 기반한 육류 소비가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환경적, 윤리적, 비용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축산업 기반 육식의 대안으로서 인공육의 문제를 다룬다. 이를 위해 현재의 기업적 축산업의 문제가 무엇이며 왜 지속가능하지 않은지, 그리고 기술적 측면에서 현재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는 인공육 중 특히 배양육의 발전 단계는 어디까지 왔는지를 살피고 인공 배양육의 장점과 기술적 난제, 사회적으로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짚어 본다. 박선영은 「마을과 바다의 새로운 관계: 지속가능성인증의 가능성」 에서 국제인증을 통한 지속가능한 어업의 가능성을 논의한다. 이 글은 한국의 전라남도 완도에서 책임수산물에 부여하는 에코라벨 프로그램 ASC 국제인증 심사를 받은 과정을 다루고 있다. 박선영은 이 글을 통해 코로나19를 계기로 현재 수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반성적으로 고찰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ASC 인증 사례의 소개를 통해 향후 지속가능한 수산물을 위해 어떤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인식은 「우포늪 습지 복원과 생태적 전환,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 에서 필자가 오랜 시간 우포늪을 보전하는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나아가 정부가 시행하는 그린뉴딜이 에너지산업을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경제정책에 머무르지 않고, 생태계의 불균형과 생물다양성 감소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혁신적인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윤정은 「코로나 시대의 생태적 전환과 실천들」 에서 코로나19가 드러내고 있는 현재 인간과 동물 관계의 취약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친다. 필자는 코로나 이후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포스트 코로나’ 담론이 횡행하고 있지만, 정작 대부분의 논의들이 경제와 산업의 측면에 치우쳐 있어 막상 이 팬데믹을 초래한 근본 문제를 고민하는 반성적 사유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제기한다. 또 다른 형태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코로나가 보여 준 인간과 동물 관계의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대처가 필요하며, 특히 이 과정에서 인간이 자연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엮은곳 소개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는 2018년 “인간-동물 관계의 전환: 신사물론적 경계 허물기”라는 주제의 서울대학교 교내지원사업을 진행하는 연구팀으로 출발해, 2019년 “위계에서 얽힘으로: 포스트휴먼시대의 인간-동물 관계”라는 제목으로 교육부 인문사회기초연구사업에 선정된 후 현재까지 활동을 잇고 있는 연구팀이다.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등장한 생명과 생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자연, 인간-동물의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관계와 규범을 넘어 ‘공존’과 ‘얽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본 연구팀은 인문학(문학), 사회과학(사회학, 인류학), 자연과학(수의학, 생태학, 행동학) 연구자들로 구성된 융합 연구 네트워크이다. 이곳에서는 인간-동물 관계가 위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비판하며, 관계 속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얽힘’을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동물 관계를 재구조화하기 위해 근거자료를 구축(동물인격, 동물인구, 동물인식)하고, 인간-동물 상호작용 과정을 분석하며, 생태정치 및 생태미학 사례를 조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은이 소개 이동신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A Genealogy of Cyborgothic: Aesthetics and Ethics in the Age of Posthumanism』 『영미 소설 속 장르』(공저) 『세계를 바꾼 현대 작가들』(공저) 『21세기 사상의 최전선』(공저)을 썼다. 주요 논문으로 「좀비 반, 사람 반: 좀비서사의 한계와 감염의 윤리」 「좀비라는 것들: 신사물론과 좀비」 「망가진 머리: 인공 지능과 윤리」 등이 있다.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사회인류학 석좌교수. 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초빙석좌교수. 구소련 시베리아 원주민 사회의 환경사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주요 저서로 『전쟁과 가족』 『또 하나의 냉전』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등이 있다. 김정미 서울대학교 인류학 박사과정 수료. 『테크놀로지, 창조와 욕망의 역사』 『100세 혁명』 『아마존의 성공비밀』 『관시(關係)와 비즈니스: 중국 비즈니스 문화의 심층 구조』 등을 번역했다. 김산하 야생 영장류학자. 인도네시아 자바 긴팔원숭이 연구로 박사학위. 영국 크랜필드 대학 디자인센터 연구원이자 현재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으로 활동한다. 『스톱 시리즈 1~9권』 『비숲』 『야생학교』 『습지주의자』 『살아있다는 건』 등을 썼고, 『무지개를 풀며』 『사회생물학』 『활생』 등을 번역했다. 최태규 에딘버러 대학 응용 동물행동학 및 동물복지학 석사. 청주동물원 수의사.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휴메인벳’에서 활동한다. 천명선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 교수. 『조선시대 가축전염병의 발생과 양상』 『근대수의학의 역사』 등을 썼고, 『동물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번역했다. 주요 논문으로 「일제강점기 광견병의 발생과 방역」 「구제역 관련자들의 체험과 그 의미에 대한 질적 연구」 등이 있다. 조윤주 서정대학교 애완동물과 교수. 동물보호소의학(shelter medicine)과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반려동물 보호자의 사육포기 중재방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도심 내 길고양이의 개체수 조절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형주 (사)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공저)를 썼다.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허핑턴포스트〉 〈월간비건〉 등에 동물에 대한 글을 기고했으며 현재 〈한국일보〉 〈네이버 동그람이〉에 고정 칼럼을 연재한다. 이항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의생명과학 박사학위. 야생동물 보전생물학과 정책 연구에 주력하면서 「한국표범의 계통 연구」 등 90여 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황주선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야생동물 질병생태학으로 박사학위. 『동물의 행동』(공저)을 썼고, 『윙~ 파리를 어떻게 잡을까』 『동물이 색으로 말해요』 『하마를 목욕시켜 주는 동물은?』 『야생동물의 질병』(공역)을 번역했다. 김기흥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Social Construction of Disease』 『광우병 논쟁』 『호모 메모리스』(공저)를 썼다. 〈중앙일보〉 과학분야 고정칼럼을 연재한다. 학술지 「과학기술학연구」 「EASTS East Asian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과학사학회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효민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 공정성의 다양한 관점에 대해 사회심리학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청탁금지의 법과 사회』(공저) 『평화의 여러 가지 얼굴』(공저)을 썼다. 주요 논문으로 「Reward stability promotes group commitment」 「공정성이론의 다차원성」 「이주민 주거 밀집지역 내 내국인 인식 연구」 등이 있다. 박선영 경희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국제정치전공) 수료. 2003년부터 국내환경단체에서 저어새, 두루미, 따오기 등 멸종위기조류 및 습지 보전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했다. 보호지역, 생태관광, 지속가능한 어업을 중심으로 한 국제환경규범의 국내 적용과 실천에 관심을 두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인식 우포자연학교 교장. 『비밀의 정원 우포늪』 『낙동강의 선물 주남저수지』 『우포늪의 생물』 등을 썼다. 우포늪 보전과 멸종된 따오기 복원 추진 사업을 주도했으며, 우포늪가에 살면서 야생동식물 보호와 서식처 확대를 위해 습지보전운동을 하고 있다. 주윤정 사회학자. 장애, 생명사회학, 인간-동물 관계, 사회운동 등을 연구했고 대표적인 연구는 시각장애인 연구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보이지 않은 역사: 한국 시각장애인의 저항과 연대』 등을 썼고, 「상품에서 생명으로: 가축 살처분 어셈블리지와 인간-동물 관계」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책 속에서 만일 코로나19가 정말로 이전과 다른 ‘뉴노멀’ 시대를 가져온다면, 그 안엔 아마도 인간중심주의적인 현실과 다른 현실을 만들라는 어려운 요구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요구의 폭과 깊이를 진정으로 가늠하는 첫걸음은 바로 인간-동물 관계 연구에서 시작한다. - 9쪽 박쥐나 천산갑으로 전파된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말로 코로나19를 규정하며 특정 동물을 유해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이 말의 틈새를 들여다보며 인간의 식습관이나 개발 욕구로 인해 뒤틀린 인간과 동물의 사이를 얘기할 때다. 인적이 뜸해진 거리에 나타난 동물을 야생동물이라고 부르며 신기해하기보다는, 이런 말로 동물과의 사이를 짐작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얘기할 때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고민하고 조정하는 것만큼, 동물들끼리의 사이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얘기할 때다. - 15쪽 생태적인 공존의 기초는 다차원에 걸친 존재적 거리두기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 58쪽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에서 야생 멧돼지의 대규모 사살은 사상 최초로 문명 밖 야생의 영역에서 자행된 ‘야생 살처분’이자 인간과 야생동물 간의 평행관계를 파기한 사례이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발병한 병이 한반도에까지 도달한 것은 당연히 인간과 인간이 운송한 물자의 이동 때문이고, 한국의 멧돼지는 이것의 직접적인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문제의 원흉으로 낙인 찍혀 전국에서 사살되고 있다. - 60쪽 이제는 야생과의 관계를 재검토하고 새롭게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대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는 인간이 야생의 영역에 침투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위험의 가능성 중 한 가지 결과를 보여 줬을 뿐이다. - 60~61쪽 사람의 손으로 야생동물을 기르는 기관인 동물원은 그 존재의 의미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 사회는 동물원을 더 이상 동물을 함부로 이용하는 오락시설로 내버려 둘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집단으로 모이는 장소에 야생동물을 가두어 구경시키는 일이 공중보건학적으로 너무 위험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 74쪽 바이러스가 야생동물에게서 왔기 때문에 인류가 ‘야생동물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별 문제없이 지내고 있던 야생의 바이러스를 우리 인류가 ‘억지로 끄집어내’ 우리 자신을 ‘자해’했다고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 130~131쪽 신종감염병을 두고 자연의 습격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저 드라마적 사고일 뿐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극히 건조하고 기계적이다. 미생물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 더 많은 숙주로의 노출을 적극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 148쪽 새로이 관계를 설정하고 종합적인 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의 적절한 거리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대사회는 계몽의 방식으로 자연을 정복한 이후 자연을 낭만화하거나 애완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과 단절된 도시의 삶을 보충하기 위해 자연의 대리물들을 건설해 야생과의 접촉점들을 증가시켜 왔다. - 246쪽 차례 서론 1부 사이 : 인간-동물 경계에 대한 새로운 서사 차이에서 사이로 : 인간-동물 관계와 거리두기 [이동신] 근거리 입양 : 파랑새 ‘짹이’ 이야기 [김정미] 원거리 입양 : 코끼리 ‘마야’ 이야기 [권헌익] 야생의 거리와 공존의 생태계 [김산하] 2부 동물 : 인수공통감염병 상황에서 동물의 취약성 팬데믹 상황의 동물원 동물들 [최태규] 팬데믹 상황의 보호소 동물들 [조윤주] 감염병 환자로서의 동물 : 팬데믹 상황의 가축 [천명선] 팬데믹 상황의 동물을 위한 법과 제도 [이형주] 3부 질병 : 인간-동물의 질병에 대한 원헬스적 접근 팬데믹의 시작 : 인간, 가축, 야생동물의 접점 [이항] 질병생태학 : 야생동물 유래 신종감염병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 [황주선] 한국 질병관리체계와 인간-동물질병의 공동구성 [김기흥] 4부 관계 : 인간-동물 관계의 미래 육식의 미래와 인공육의 이슈 [박효민] 마을과 바다의 새로운 관계 : 지속가능성인증의 가능성 [박선영] 우포늪 습지 복원과 생태적 전환,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 [이인식] 코로나 시대의 생태적 전환과 실천들 [주윤정] 후기 : 관계와 경계에 대해 덧붙이기
-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 포도밭출판사
2016. 5. 10 / 121×188mm / 192쪽 / 13,000원 / ISBN 979-11-952770-6-3 (03380)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지은이: 데이비드 그레이버 옮긴이: 나현영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원리와 기술을 일깨우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게 해주는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낮은 이론’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질 만한 사회 이론은 무엇인가?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20대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선거 결과를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평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선거 결과에 따라 (이를테면 ‘여소야대’냐 ‘여대야소’냐에 따라) 누군가의 삶에 당장 ‘희망’이 생기는 일은 희박합니다. 소외된 이들의 처지나 박해받는 현장의 상황은 여전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느라 힘겨운 이들에게 정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선거 이후 오히려 헛헛하다는 말이 많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질 만한” 탐구, 그리고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고 말하는 사회 이론을 읽어볼 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인류학자이자 아나키스트 활동가인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이력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바로 이를 주제로 연구와 활동을 해온 인물입니다. 이 책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에는 자율적인 사회와 정치를 가능케하는 조건에 대한 그의 핵심적 성찰들이 매우 선명하게 간추려져 있습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에 대하여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서구 사회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인물입니다. 최근 국내에도 그의 새로운 저작들까지 여럿(『가치 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부채, 그 첫 5,000년』,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관료제 유토피아』) 출간되었습니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을 세계적으로 알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그레이버에게 “대단히 눈부시고 독창적인 정치 사상가”라는 찬사를 보냈고, 『21세기 자본론』의 저자 토마 피케티와 그레이버가 벌인 자본주의 시스템과 경제 문제에 관한 논쟁도 유명합니다. 그레이버는 특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자주 소개됩니다. ‘직접행동 네트워크’ 모임과 ‘세계정의 운동’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고, 그 탓에 예일 대학교 재임용이 거부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월가를 점거했던 오큐파이 운동에 깊이 참여하며 “우리는 99%다”라는 구호를 작성했던 활동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레이버는 인류학을 통해 탐구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원리와 기술’을 사회 이론과 연결시키는 독보적인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이자 인류학자인 모리스 블로흐는 데이비드 그레이버를 두고 “이 시대 최고의 인류학 이론가”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왜 인류학인가 인류학 하면 흔히 민속 사료를 살펴보고 원시부족들을 관찰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인류학의 주요한 질적 연구방법인 민족지학(ethnography)은 실제로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 생활상의 맥락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여기서 인류학 연구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사유체계와 개념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식의 “고루한 헤게모니에 맞설 수 있는 최적의 학문”이 인류학이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인류학이 “인간에 대한 숱한 통념들이 진실이 아님을 입증하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을 제시하기 때문”이고, 나아가 “인류학이 중요한 것은 단지 통념을 깨뜨려서만이 아니다. 인류학은 우리는 왜 처음부터 정부와 감옥과 경찰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 묻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의 핵심 주제인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질 만한 사회 이론”을 탐구하는 데 있어 아나키즘의 방식과 인류학의 연구를 긴밀히 연결시켜나가는 이유입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란 무엇인가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이름이 낯선 까닭은, 이 말 자체를 그레이버가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은 우선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의 어떤 시점에 존재하게 될지 모르는 어떤 급진적 이론”으로 구상되었습니다. 일종의 예시적 이론인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이론은 아나키스트 운동의 주요 원리이기도 한 ‘예시적 정치’(즉,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형식의 사회성을 창출하여 이미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직접행동의 원리”)와 나란히 진행될 이론이기도 합니다. ‘낮은 이론’을 찾아서 그레이버는 첫 장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학파와 아나키즘 학파의 특징적인 차이를 짚으며 “마르크스주의는 혁명 전략에 관한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담론이 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아나키즘은 혁명적 실천에 관한 윤리적 담론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마르크스주의 학파와 달리 아나키즘에는 ‘고급 이론’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나키즘에서는 명확하고 총제적인 분석을 위한 고급 이론보다 여러 사람 사이에서 의사를 결정하고 합의를 구하는 과정에 관한 이론이 더욱 중요합니다. 아나키즘에 필요한 이론은 고급 이론이 아니라 “변혁을 위한 기획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론”으로서의 ‘낮은 이론’입니다. 이러한 아나키스트 이론은 “다른 사람의 기본 가정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대신 서로를 강화하는 기획”을 찾으려 합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은 이러한 포부로 ‘낮은 이론’의 윤곽을 그리고 있습니다. 대항권력의 인류사, 그리고 사고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상상력 그레이버는 인간 사회는 항상 권력과 동시에 반(反)권력을 내포해왔다고 지적합니다. 어떤 사회든 권력이 존재하면 반권력도 항상 공존한다는 말입니다. 반권력은 ‘대항권력’이라고도 불리는데, 전형적인 정의로 보면 “자치 공동체에서 급진적 노동조합, 민병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자본에 반대하는 사회제도”를 통칭하여 대항권력이라고 합니다. 권력과 반권력이 공존하며 대치하는 상태는 ‘이중권력’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레이버는 이중권력 상태에서 중요한 것은 “상충하는 원리와 모순된 충동들 자체가 아니라 이것들을 중재하는 조정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은 갈등 없는 사회라는 목표보다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레이버가 제시하는 대항권력 이론의 요점은 “대항권력은 이미 깊숙이 우리들 사이에 배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급진적 변혁의 순간에 완전히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형태를 도입할 수 있게 하는 대중적 역량의 원천”입니다. 이것은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독창적인 점은, 대항권력을 이야기하며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같은 서구의 ‘위대한 혁명’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피아로아족과 티브족과 말라가시 사람들의 사례, 즉 통념상 ‘근대 세계’에 속하지 않는 사회의 사례를 살펴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탐구는 결국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 안에 갇혀 사고하는 틀, ‘사회’, ‘국가’, ‘국민국가’, ‘혁명’ 등에 대한 사고틀을 무너뜨려야 하는 이유를 일깨웁니다. 대항권력을 제대로 고찰하기 위해서도 통념을 깨는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레이버는 이를 “장벽 무너뜨리기”라고 부릅니다. 장벽 무너뜨리기는 사회적 대안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도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고의 장벽에는 주로 ‘상상적 총체성’이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앞서 ‘사회’, ‘국가’, ‘국민국가’, ‘혁명’ 등의 개념을 언급했는데, 이에 더해 ‘민족’이나 ‘이데올로기’ 등도 마찬가지로 “총체적 체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에 근거한” 개념들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레이버는 이러한 ‘총체성’들은 실제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현실’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우리 상상적 구조 안에 결코 완전히 포괄되지 않는 무엇을 가리킨다. 특히 ‘총체성’은 언제나 상상의 산물이다. 민족, 사회, 이데올로기, 닫힌계 등등……. 이것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현실은 항상 무한히 더 복잡한 셈이다.” 그레이버가 강조하는 것은 ‘상상적 총체성’에 갇힌 통념들을 뒤집어보자는 것입니다. 특히나 사회의 대안을 사고할 때 우리는 지극히 저 총체성에 갇혀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근대 사회’가 아닌 인류 사회들의 모습들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다르게 해석할 근거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그레이버는 그 실질적인 방법으로서 ‘사고의 경첩’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이런 것. ‘혁명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이 있다고 할 때, 상상적 총체성에 근거해 혁명을 어떤 지각변동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대신에 질문을 바꿔서 “혁명적 행동은 무엇일까?” 하고 자문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에 답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혁명적 행동은 특정한 권력 또는 지배 형태를 거부하고 그에 맞서 사회관계를 (그 집단 내부에서까지) 재구성하는 모든 집단행동을 일컫는다”라는 답이 가능합니다. 또한 “스스로를 구성하며, 공동으로 규칙이나 운영 원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재검토하는 자율 공동체를 창조하려는 시도는 거의 혁명에 근접한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혁명’이 반복되면 ‘거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혁명적 행동의 목표가 반드시 정권 전복만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인류학은 곧잘 옛날 얘기로 치부되고, 아나키즘은 자주 순진하고 낭만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비전을 이야기하면, 이를테면, 갈등이 고도화되고 이전 시대의 상상을 초월하는 자본주의를 경험한 인류에게는 그런 순진한 비전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반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레이버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삶은 양적으로는 변화했지만 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이전에 존재했던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에 살고 있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다른 시간에 살고 있지도 않다. 공장이나 마이크로칩의 존재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가능성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 서구가 몇 가지 새로운 가능성을 도입했다 해서 오래된 가능성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예시적 사회 이론은 앞서의 원리들 속에서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고 말합니다. 그레이버는 이에 근거해 이 책에서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을 위한 사회 이론의 조각들을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차례 서문 ‘낮은 이론’을 찾아서 그레이브스, 브라운, 모스, 소렐 이미 존재하는 것과 다름없는 아나키스트 인류학 장벽 무너뜨리기 존재하지 않는 학문의 기본 원리 ‘혁명 이후’의 시나리오 내가 배신할 수밖에 없는 인류학 추천의 글 –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와 진심 / 하승우 찾아보기 지은이 소개 데이비드 그레이버 David Graeber 인류학자이자 아나키스트 활동가. 뉴욕 주립대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 대학교,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9년부터 1991년 사이에는 마다가스카르 지역에서 현장연구를 실시했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 연구와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으로 돌아와 ‘직접행동 네트워크’ 모임과 ‘세계정의 운동’ 등에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 이력 탓에 예일 대학교 재임용이 거부되었을 때는 전 세계에서 서명 운동이 일기도 했다. 2011년에는 월가를 점거한 오큐파이 운동에 참여했다. 그레이버는 ‘우리는 99%다’라는 유명한 구호를 작성한 활동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저서로 『가치 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부채, 그 첫 5,000년』,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관료제 유토피아』 등이 있다. 옮긴이 나현영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공역), 로버트 베번의 『집단 기억의 파괴』, 존 케이지의 『사일런스』,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등을 번역했다. 추천의 글 그레이버는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에 감춰져 있어 이들 스스로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방법을 빌려온다. 아나키즘을 어떤 이론의 틀에 가두지 않고 혁명적 실천에 관한 윤리적 담론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런 방법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본 가정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대신 서로를 강화하는 기획”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 하승우(정치학자) 국가 없이 우리는 살 수 있을까? 그레이버는 이 질문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이미 국가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최근 몇 년 동안에 우리를 지켜줄 국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적지 않은 이들에게 이 책은 국가 없이 사는 기술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게 해줄 것이다. – 후지이 다케시(역사학자) 책 속에서 일반적인 설명에서 아나키즘은 흔히 이론적으로는 한발 뒤처지지만 열정과 성실로 두뇌를 벌충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가난한 사촌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실 이런 비유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왜곡된 것이다. 19세기의 이른바 ‘창시자’들은 스스로 특별히 새로운 것을 창안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조직화, 자발적 결사, 상호부조와 같은 아나키즘의 기본 원리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인간 행동 양식이라고 생각했다. 국가 및 모든 형식의 구조적 폭력과 불평등과 지배를 거부해야 하며(아나키즘의 문자적 의미는 ‘지배자 없음’이다), 이 모든 형식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서로를 강화한다는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 39~40쪽 아나키스트 이론은 다른 사람의 기본 가정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대신 서로를 강화하는 기획을 찾으려 한다. 어떤 점에서 통약불가능한 이론들이라 해서 존재할 수 없거나 서로를 강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유일무이하고 통약불가능한 세계관을 가진 개인들이라 해서 친구나 연인, 공통의 기획에 힘쓰는 동료가 되지 말란 법은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아나키즘에 필요한 이론은 고급 이론보다 오히려 ‘낮은 이론’이라 부를 만한 것일지 모른다. 변혁을 위한 기획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론 말이다. – 46~47쪽 이 책의 제목을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이라 붙인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인류학이야말로 우리가 다루는 영역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계에 현존하는 자치 공동체와 비시장경제를 조사했던 이들이 사회학자나 역사학자보다 인류학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 민족지학 연구자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관찰하고 이들의 행동에 감춰진 상징적, 도덕적, 실천적 논리를 밝히려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에 감춰져 있어 이들 스스로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의미를 발견하려 하는 것이다. 급진적 지식인이 맡아야 할 역할도 정확히 이와 같다. 지식인은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관찰해 그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의 더 큰 함축적 의미를 찾아낸 뒤, 그 이념을 처방이 아닌 기여로, 가능성으로, 곧 선물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 50~51쪽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 봤자 원시인들 얘기 아냐?” 인류학을 어느 정도 연구한 아나키스트에게 이런 식의 주장은 매우 낯익다. 전형적인 대화는 주로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회의론자: 좋아, 아나키즘이 실제로 작동한다고 생각할 근거를 대면 아나키즘 사상 전체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정부 없이 존재하는 사회가 가능한 사례를 단 하나라도 들어 줄 수 있어? 아나키스트: 물론, 사례는 무수히 많아. 당장 떠오르는 이름만도 열 가지가 넘지. 보로로족, 바이닝족, 오논다가족, 윈투족, 에마족, 탈렌시족, 베조족……. 회의론자: 다들 그냥 원시인이잖아! 현대 과학기술 사회의 아나키즘을 얘기해달라니까. 아나키스트: 좋아. 성공적인 실험의 예는 아주 다양해.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같은 노동자 자주관리 사례가 있는가 하면, 리눅스는 선물경제 이념에 기초한 경제 실험을 했지. 합의와 직접민주주의 원리 위에 세워진 갖가지 정치 조직이 있고……. 회의론자: 그래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모두 소규모의 고립된 운동들 아냐. 나는 사회 전체에 대해 묻고 있다고. 아나키스트: 사회 전체의 변혁을 시도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야. 파리 코뮨이나 스페인 혁명만 해도……. 회의론자: 그래,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보라고! 다 죽었잖아! 무슨 수를 써도 결과는 똑같다. 이 말싸움에서는 이길 재간이 없다. 회의론자가 ‘사회’라고 말할 때 정말로 의미하는 것은 ‘국가’ 내지 ‘국민국가’이기 때문이다. – 87~89쪽 사실 이 곤봉을 든 남자는 우리가 사는 세계 어디나 침투해 있다. 대다수는 그가 만들어내는 무수한 경계와 장벽을 가로지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의 존재를 상기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산더미처럼 음식이 쌓여 있고, 그 몇 발자국 옆에 굶주린 여인이 서 있는 광경을 보았다고 하자.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대다수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광경이다. 그러나 당신은 여인에게 음식을 집어줄 수 없다. 그랬다간 십중팔구 곤봉을 든 남자가 나타나 당신을 때릴 것이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아나키스트는 항상 곤봉을 든 남자의 존재를 상기시키려 한다. 버려진 군사기지를 무단 점거해 살고 있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아니아 공동체에서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벌이는 의식이 좋은 예다. 크리스티아니아 사람들은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고 백화점에서 장난감을 훔쳐 거리의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모두에게 경찰이 산타클로스를 때려눕히고 울부짖는 아이들에게서 장난감을 낚아채는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 132~133쪽 새로운 운동의 핵심 용어는 ‘과정’이다. 여기서 과정은 ‘의사 결정 과정’을 뜻한다. 북아메리카에서 의사 결정은 거의 언제나 합의를 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에도 이데올로기적 억압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모든 바람직한 합의 과정은 타인의 관점 전체를 나와 똑같은 관점으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합의 과정의 목적은 한 집단의 공동 행동 방침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안을 표결로 수락 또는 거부하기보다, 다듬고 또 다듬고, 폐기하거나 다시 고쳐 최종적으로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 151쪽 위의 사례들은 결국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민주주의(democracy)’는 본래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엘리트주의자들이 비방을 목적으로 만든 용어로, 문자적으로만 풀이하면 민중의 ‘힘’ 또는 ‘폭력’을 뜻한다. ‘아르코스(archos, 통치)’가 아닌 ‘크라토스(kratos, 힘)’인 것이다. 이 용어를 만든 엘리트주의자들은 민주주의가 단순한 폭동이나 폭민의 지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당연히 그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다른 누군가가 민중을 항구적으로 정복하는 것이었다. (…) ‘민주주의’가 ‘대의(representation)’의 원리를 포함하는 용어로 완전히 탈바꿈하다시피 한 것은 나중의 일이다. (한편 ‘대의’라는 용어는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가 지적하듯 그 자체로 매우 기이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원래 왕 앞에 선 민중의 대표를 뜻하는 말이었다. 즉, 스스로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내부의 사절을 지칭하는 용어였던 것이다.) 어쨌든 민주주의는 이렇게 탈바꿈하고 나서야 명문가 출신 정치 이론가들에게 재조명되어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 160~162쪽
-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 포도밭출판사
지은이: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옮긴이: 존재론의 자루 ISBN: 979-11-88501-28-1 (93380) 출간일: 2022년 10월 12일 정가: 21,000원 제본: 무선 쪽수: 252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문화연구/문화이론 국내도서 > 인문 > 철학/사상 > 인간론 국내도서 > 인문 > 철학/사상 > 형이상학 국내도서 > 역사 > 아메리카사 > 중남미사 월딩 시리즈 2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16세기 브라질에서 가톨릭과 식인의 만남 지은이: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옮긴이: 존재론의 자루 책 소개 20세기 유럽 철학의 탈근대적 전환뿐만 아니라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를 주도해온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대표작! 다자연주의와 퍼스펙티브주의로 나아가는 교두보 아마존에서 퍼 올린 21세기의 인간학! 참조한 번역 판본이 5종, 옮긴이 7인의 집단 번역의 성과 이 책은 16세기 브라질 해안에서 일어난 가톨릭 선교사들과 식인부족 간의 ‘존재론적 만남’에 대한 탐구이다.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는 이때의 사건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우리의 시점을 16세기 브라질로 이동시킨다. 카스트루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의 ‘변덕’에 주목했던 사실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관점에서 이 존재론적 만남의 의미를 추적해나간다. 아마존 원주민들은 선교사들이 전하는 가톨릭 복음을 무척 순순히 받아들이면서도 교리가 금지하는 전쟁과 복수와 식인 풍습 등은 멈추려 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아마존 원주민을 ‘변덕스럽다’고 기록한 유럽인 선교사들의 문헌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 이 탐구는 원주민의 우주론에 대해 전혀 뜻밖의 차원과 맥락들을 밝혀낸다. 보도자료 《월딩 시리즈》 두 번째 책은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이다. 카스트루는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학자이며 인류학계뿐만 아니라 지식계 전반에서 사상적 전환을 주도하는 인물로서 명성이 높다.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은 그가 이끄는 사상적 전환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자 할 때 맨 처음으로 살펴보기에 매우 알맞은 책이다. 카스트루가 아마존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에서 근대유럽의 형이상학 비판으로 연구 범위와 영역을 확장하는 시점에 교두보 같은 역할을 한 책이기 때문이다. 카스트루는 이 책을 일컬어 “가장 좋아하는 논문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의 원출처가 되는 논문은 1992년에 포르투갈어로 처음 출간되었고, 이듬해인 1993년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이후, 2002년에 간행된 카스트루의 논문집에 다시 수록되었고, 2017년에 한 번 더 신판으로 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꾸준히 수정과 보충이 이루어졌는데, 이처럼 30년 동안 판본을 달리 하며 계속 재출간되었다는 것은 이 논의의 시의성이 여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참고로 밝히면,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의 한국어판 역자들은 부가 설명 단락과 저자 각주 등의 편집이 언어별 번역본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는 탓에 총 5종의 번역 판본을 대조하며 한국어 번역을 진행했고 7인의 집단 번역으로 이를 완성해냈다. 이 책은 16세기 브라질 해안에서 일어난 가톨릭 선교사들과 식인부족 간의 ‘존재론적 만남’에 대한 탐구이다. 카스트루는 이때의 사건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우리의 시점을 16세기 브라질로 이동시킨다. 카스트루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의 ‘변덕’에 주목했던 사실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관점에서 이 존재론적 만남의 의미를 추적해나간다. 더불어 문화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인류학적 논쟁과 관련한 놀라운 통찰을 이끌어낸다. 16세기에 브라질로 건너온 유럽 선교사들은 그들이 남긴 문헌에서 반복적으로 ‘야만인은 변덕스러운 자’라고 기록한다. ‘변덕스러움’은 유럽인이 규정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특질인 것이다. 원주민들이 변덕스럽다고 기록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아메리카를 찾아온 유럽인들의 최우선 목표는 바로 ‘선교’였다.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에 반해 성과는 미미했는데, 이는 원주민들이 다른 신을 섬기거나 기독교 신앙에 반대해서가 아니었다. 원주민들은 오히려 기독교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감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문제는, 원주민들이 “믿는 것도 아니면서 믿음을 거부하지 않”았고, “믿게 된 후에도 믿음이 없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었다. 원주민들은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기독교가 금지하는 것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이들은 숭배와 복종을 몰랐으며 유럽인들과 달리 신앙의 이름으로 무엇에 복속되는 일이 없었다. 반면 이들이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은 전쟁과 복수였다. 그리고 유럽의 선교사들이 그토록 근절하고 싶어 한 것, 바로 식인 풍습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전쟁과 복수와 식인과 음주 같은 이른바 ‘악습’을 멈추지 않으려 한 아마존 원주민의 우주론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러다가 결국 식인 풍습을 잃었을 때, 이들은 과연 무엇을 영영 잃게 된 것이었을까. 투피남바 족을 ‘변덕스럽다’고 기록한 유럽인 선교사들의 문헌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 이 탐구는 원주민의 우주론에 대해 전혀 뜻밖의 차원과 맥락들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그리고 이 깨달음으로 인해 이 책이 종국에는 투피남바 족의 변덕스러움을 ‘예찬’하며 마무리되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지은이 소개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Eduardo Viveiros de Castro 인류학자, 민족학자. 1951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폰티피시아 가톨릭 대학 사회과학부에서 사회학을 배운 후 1974년에 브라질국립박물관 대학원 과정에 진학했다. 1974년에 아마존 내륙의 야왈라피티(Yawalapiti) 족을 현지 조사하기 시작했고 1977년에 그에 관한 민족지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부터는 투피계 인디오인 아라웨테(Araweté) 부족을 현지 조사하여 1984년에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이 논문은 『아라웨테: 식인의 신들 Araweté: os deuses canibais』(1986)로 간행되었다. 이후 아마존 원주민의 우주론을 논한 『적의 관점에서: 아마존 사회의 인간성과 신성성 From the Enemy’s Point of View: Humanity and Divinity in an Amazonian Society』(1992)과 「우주론적 직시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퍼스펙티브주의 Cosmological Deixis and Amerindian Perspectivism」(1998) 등을 통해 그의 인류학적 사상이 유럽의 인류학계뿐만 아니라 철학계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아마존 원주민의 우주론을 다자연주의와 퍼스펙티브주의로 이론화하는 한편 유럽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인 ‘나르시시즘적 중심주의’를 지적하고 그것의 탈식민화를 제기함으로써 20세기 유럽 철학의 탈근대적 전환뿐만 아니라 21세기 인류학의 사상적 전환 운동인 ‘존재론적 전회’를 이끌고 있다. 2009년에 프랑스판으로 출간된 『식인의 형이상학: 탈구조적 인류학의 흐름들』(한국어판은 2018년 출간)에서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적 사유와 들뢰즈의 생성철학을 횡단하며 아마존의 우주론에 기초한 그의 사상을 놀라운 필치로 펼쳐냈다. 지금까지 그는 브라질국립박물관 교수로 재직하면서 유럽과 영미의 주요 대학에서 강연 활동을 전개해왔고, 120여 편의 논문과 1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옮긴이 소개 〈존재론의 자루〉 이 책을 집단 번역한 〈존재론의 자루〉는 서울대 인류학과 석박사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존재론적 전회’ 공부 모임이다. 2019년 1월에 시작하여 현재까지 ‘존재론적 전회’의 주요 저작들을 강독해왔으며 최근에는 레비스트로스의 저서들을 함께 읽고 그것의 인류학적 사상을 상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권혜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 졸업. 석사논문은 「지리산국립공원과 마을 주민의 자연 보호 관념과 실천」이다. 한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맺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김성인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박사과정 수료. 논문으로는 「필연적 만남, 방법 없는 이별: 한국전쟁 피난민의 ‘비공식적’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 내 만남과 이별의 재현」 등이 있다. 현재 한국 내 시각장애를 가진 아동의 초기 사회화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 중이다. 김지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논문으로는 「한국의 양식 산업 속 적조와 인간의 관계: 작은 것들의 카리스마, 적조」, 「줄줄이 매달아 굴 기르기」(공저)가 있으며, 『한편 4호 동물』에 「플라스틱 바다라는 자연」을 기고했다. 해양쓰레기에 대항하는 해양 보전과 해양 공간의 재발명에 관한 학위 논문을 작성하여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경빈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석사 졸업. 석사논문은 「실향민 공동체의 시간과 위기: 이북5도청과 도민조직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이다. 기지촌 여성의 구술을 다룬 『영미 지니 윤선: 양공주, 민족의 딸, 국가 폭력 피해자를 넘어서』를 공동 저술했다. 탈식민과 냉전, 이데올로기와 상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손성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박사과정 수료. 논문으로는 「The Nurturing of a Communal Self in an Elementary School Home Class」가 있으며, 『다시개벽』(2021년 여름호)에 「불확실성의 시대를 조망하는 인류학적 사고: 가상의 힘을 마주한 상징계, 그리고 상징 너머의 인류학」을 기고했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한국 교육열의 지속과 변화에 관한 현지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차은정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대학원 박사 졸업. 논문으로는 「인류학에서의 탈서구중심주의: 데스콜라의 코스몰로지와 스트래선의 탈전체론을 중심으로」 등이 있고, 저서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 식민지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의 탈향, 망향, 귀향의 서사』가 있으며 번역서로 『숲은 생각한다』, 『부분적인 연결들』, 『부흥문화론』(공역) 등이 있다. 최경선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과정 수료. 간호사들의 ‘태움’ 관행과 그 관계의 억압적 구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시리즈 소개 월딩 시리즈 월딩(worlding)은 있기(being)에서 하기(doing)로 삶의 문제의식을 전환합니다. 《월딩 시리즈》는 지구생명체 간의 공생 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실천을 모색하는 인류학 저서들을 소개합니다. 1. 『타자들의 생태학』 필리프 데스콜라 지음 / 차은정 옮김 2.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지음 / 존재론의 자루 옮김 3. 『라인스』 (근간) 팀 잉골드 지음 / 김지혜 옮김 4. 『오늘날의 애니미즘』 (근간) 오쿠노 가츠미, 시미즈 타카시 지음 / 차은정, 김수경 옮김 책 속에서 선교사들은 구세계 이교도들 가운데 자기들이 극복해야 할 저항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우상과 성직자, 예배와 신학, 즉 자기 것이라고 할만한 배타적인 것은 거의 없으면서도 그 이름에 가치를 두는 종교 말이다. 이에 반해 브라질에서는 한쪽 귀로는 신의 말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다른 한쪽 귀로는 무심하게 흘려보냈다. 여기서 선교사들이 싸워야 할 적은 다른 교의가 아니라 교의에 대한 무관심, 선택의 거부였다. 변덕, 무관심, 망각. “이 땅의 사람들은 전 세계의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야수 같고 가장 은혜를 모르며 가장 변덕스럽고 가장 비뚤어져 있고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자들이다”라고, 그들에게 환멸을 느낀 비에이라는 그처럼 도발적인 단어들을 늘어놓았다. - 14~15쪽 반복해서 말하면, 예수회 수사들이 화가 난 이유는 ‘브라질 사람들’이 다른 신앙의 이름으로 복음에 대한 적극적 저항을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이 사람들이 복잡다단한 관계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누리고자 했다. 선교사들이 그들을 거두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들은 거꾸로 ‘구습이라는 토사물’(Anchieta 1555: Ⅱ, 194) 속으로 되돌아갔다. - 23쪽 따라서 문제는 투피남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즉 유연함과 완고함, 순종과 불복종, 열광과 무관심이 뒤섞여 있는 이 혼합의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는 ‘빈약한 기억력’과 ‘의지의 결여’로 보이는 인디오들의 신앙심 없는 믿음 너머를 보려는 것이다. 결국 타자가 되고자 하는, 그러나 자기만의 관점대로 되고자 하는(여기에 미스터리가 있다.) 저 모호한 욕망의 대상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 30쪽 따라서 우리는 브라질 사람들의 세 가지 ‘구성적 부재’에 상호 인과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디오들에게 신앙이 없었던 이유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며, 법이 없었던 이유는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에는 소리(F, L, R의 발음)도 의미도 없었다. 참된 믿음은 지배에 대한 지속적인 복종을 전제하고, 이는 결국 군주에 의한 강압의 행사를 전제한다. 왕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제들을 믿었다.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논리로─왕이 없었기 때문에─그들은 믿을 수 없었다. - 65쪽 내가 말하는 바는 투피남바 철학이 본질적인 존재론적 불완전함을 확증한다는 것이다. 사회성의 불완전함, 일반적으로는 인간성의 불완전함 말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내부성과 동일성이 외부성과 차이에 위계적으로 종속된, 생성과 관계가 존재와 실체보다 우위에 있는 질서였다. 이러한 유형의 우주론에서 타자는 문제─유럽의 침략자들은 타자를 문제로 삼았지만─이전에 해답이다. 은매화는 대리석이 알 수 없는 논리들을 가지고 있다. - 67쪽 인디오들이 적어도 한 영역에서 매우 철저하게 일관적이며 또 어떤 것에 대해 “오래 견지할 만한 세심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면, 그것은 복수에 관한 모든 사태와 얽혀있었다. - 77쪽 브라질 민족은 목숨을 바칠만한 우상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른 것을 위해 죽었고 죽였다. 바로 ‘뿌리 깊은 관습’을 위해서였다. 이것은 왜 그들의 관습이 예언의 샤먼들보다 개종에 더 근본적인 장애물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전사의 복수는 모든 악습의 근원에 자리한다. 식인, 일부다처, 만취, 이름 수집, 명예. 이 모든 것들이 복수의 테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 79쪽 적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잡아먹히는 것은 부패하기 쉬운 사람의 일부를 승화시켜 달성하는 불멸화(immortalization)다. (...) 그러나 투피남바 사람들이 적을 먹어치운 것은 애도가 아닌 복수와 명예를 위해서였다는 것도 분명하다. 여기서 내가 근본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학적인 동기와 마주한다. 이 동기는 부패하는 것과 부패할 수 없는 것에 관한 인격론적인 테마보다도 더 깊은 어떤 것─그리고 개종을 위한 선교사들의 노력에 식인주의 이상으로 저항한 어떤 것─을 가리킨다. 적의 죽음과 적의 손에 의한 죽음을 허락한 것은 바로 복수의 영속화 자체였다. - 87쪽 투피남바 전사의 복수는 사회의 중추적 가치로서 그 자체를 구성함으로써 근본적인 존재론적 불완전성,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불완전성을 표현했다. 일관성과 변덕스러움, 개방성과 완고함은 단 하나의 진리가 가진 두 얼굴이다. 그 진리란 외재적 관계의 절대적 필요, 다시 말해 타자 없는 세계의 사고 불가능성(Deleuze 1969)이다. - 101쪽 인디오에 대한 무자비한 전쟁을 통해 침략자의 신학-정치적 장치는 마침내 인디오 전쟁을 길들일 수 있었고, 사회적 목적의 특성을 제거하여 침략자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매체로 변형시켰다. 요컨대 투피남바 족은 전쟁에서 패배했고, 또 전쟁을 잃었다. - 109쪽 식인은 사교성의 완전한 결여가 아니라 사교성의 과잉을 표현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식인의 중단은 어떤 의미에서 투피남바 사회의 근본적인 차원의 상실을 뜻할 것이다. 근본적인 차원이란 적과의 ‘동일화’, 말하자면 근본적인 변성(alteration)의 조건으로서 ‘타자’를 통한 자기규정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식인이 상대적으로 쉽게 포기된 것이 실은 유럽인의 도래에 의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식인은 오로지 혹은 주로 유럽인이 식인을 혐오하고 탄압했기 때문에 포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인이 투피 사회에서 적의 위치와 기능을 점하게 되었기 때문에 포기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139쪽 아라웨테 족은 16세기 투피 족의 식인적 사회학으로부터 자그마치 식인적인 종말론을 개발했다. 적들은 신들로 탈바꿈했다. 아니, 오히려 우리 인간은 이제 적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죽음을 통해 우리의 적/인척인 신들로 변신하기를 희망한다. 마이란 어떤 면에서 옛 투피남바가 신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투피 족의 변덕스러운 혼은 아직도 식인주의라는 문제와 연루되어있다. - 141쪽 차례 감사의 글 1부 16세기 브라질에서 불신앙의 문제 종교체계로서의 문화 지옥과 영광에 대하여 낙원에 있는 구분 믿음의 어려움에 관하여 2부 투피남바는 어떻게 전쟁에 패했는가? 시간을 이야기하다 오래된 법 기억의 즙 완강한 식인자들 변덕스러움을 예찬하며 미주 대담 ‘엑스트라 모던’의 형이상학 옮긴이 후기 아마존에서 퍼 올린 21세기의 인간학 참고문헌 찾아보기 보도자료 다운 받기



